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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75화 (75/712)

75화. 난 그저 조용히 미남으로 남고 싶어요

오자마자 다짜고짜 사람을 달라는 은라는 도만(陶满)이라 불리는 자였다. 이옥춘과는 그리 깊은 친분이 없었다. 그저 같은 관아에서 맨날 얼굴을 부딪치는 동료일 뿐이었다.

이옥춘은 당연히 거절했다.

‘무슨 개소리야. 이렇게 대놓고 내 보물단지를 뺏어 간다고? 내가 동의하면 병신이지!’

하지만 도만은 이옥춘의 태도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통보 한마디를 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허칠안을 데리고 가려 했다.

쾅!

이옥춘이 옷소매를 휘둘러 춘풍당의 문을 닫았다.

“이 대인, 이게 무슨 뜻인가?”

“도 대인은 지금 이게 무슨 뜻인가?”

이옥춘이 무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벽 모퉁이를 가리키며 허칠안에게 그쪽으로 가있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허칠안이 고분고분하게 분부대로 행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도 은라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와 나는 같은 금라 밑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이러라는 법이 어디 있나?”

같은 금라 밑이라면 인사조정의 경우 굳이 문방(文房)을 거칠 필요도 없이, 바로 새로운 상사 밑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금라의 수하가 아닐 경우에는 무척 복잡한 인사조정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옥춘과 도만은 상사인 금라가 달랐기에 그들 수하의 동라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 그랬군.”

도만이 머리를 한 번 치더니 구석에 있는 허칠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 대인이 나더러 저 놈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네. 저 놈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허, 저 놈 어디서 굴러온 복인지……. 멍하니 서서 뭐해? 얼른 오지 않고. 구석에 서 있지만 말고 얼른 오거라. 앞으로 넌 내 사람이다. 강 금라의 마음에 들었다는 건 네 복이야.”

‘뭔가 좀 이상하다……. 강 대인이 팔인교(八人轎)를 보내 나를 집에 들이겠다는 거야 뭐야? 게다가 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허칠안이 속으로 투덜대면서 이옥춘을 향해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이옥춘이 답했다.

“그럼 강 대인께 돌아가 말하게.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도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옥춘이 감히 강 대인을 거절해? 오늘 이 자가 가짜 술을 마셔서 머리가 잘못된 거 아냐?’

“강 대인께서 지금 기다리고 있어 자네한테 더 이상 설명할 겨를도 없네. 바로 사람을 데리고 갈 테니 의견이 있으면 직접 강 대인께 말하게.”

“내 수하를 건드리기만 하게. 이 문턱을 넘어갈 수 있으면 내가, 도씨로 성을 갈지.”

“자네 미쳤나?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은라 두 명이 다투는 소리는 편청까지 들려왔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도만이 데려온 동라들과 콩볶음을 먹고 있다가 욕설이 오가는 소리를 전해들었다.

동라 한 명이 도실(刀鞘)로 송정풍의 허벅지를 툭툭 치더니 물었다.

“허, 대체 자네의 저 동료가 누구길래 저래?”

송정풍이 말했다.

“뭐긴. 아무것도 아닌데.”

“그럴 리가. 강 금라가 딱 집어 지명하면서 저 자를 요구하던데.”

동라들은 송정풍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이 자에게 필히 뭔가 남다른 천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송정풍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교방사에 가서 여인들이랑 밤을 보내고도 돈을 내지 않더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주광효를 쳐다보았다. 주광효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믿는 눈치였다.

“어떻게 하면 돈을 안 낼 수 있는 건데?”

동라들은 허심한 태도로 비결을 물었다. 그들에게 돈을 내지 않고 여인과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건 무척 큰 장기였기 때문이다.

“그건 말해줄 수 없지. 비밀 지키기로 약속했거든.”

송정풍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함구하는 대신 은자 한 냥을 받았지.”

“은자 한 냥이란 말이지. 여기.”

송정풍이 은자 한 냥을 받아 가슴에 넣더니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한 냥으로는 부족해. 좀 더 보태야지.”

그러자 그 은라가 한 냥을 더 얹어줬다.

“얼른 말해보게.”

동라들이 기대에 찬 눈길로 송정풍을 바라봤다.

송정풍이 씩 웃더니 소리쳤다.

“우리가 냈으니까!”

“죽여!”

송정풍은 동라 몇 명에 의해 제압당해 두들겨 맞았다.

허칠안은 자신이 양릉이라는 사실을 퍼뜨리지 않는 대가로, 계월루에서 동료 둘한테 이미 거하게 한턱 쏘았다.

사실 송정풍과 주광효야 부향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허칠안이 부러운 것이지, 시나 이름에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무식하고 힘만 센 무사들에게 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법이었다.

* * *

당 내에 앉아 허칠안의 호적과 기록을 열람하던 강율중은, 그제야 허칠안이 세은 사건에서 무척 뛰어난 수사 재능을 보인 그 쾌수라는 것을 알았다.

‘평원백의 피살사건은 궁극적으로 내 책임이다. 위 공께서 나를 대신해 조정의 압박을 막아냈지만 그래도 방치해서는 안 되는. 그럼 위 공의 눈 밖에 나게 되겠지.’

강율중은 무의식적으로 탁자를 똑똑똑 두드렸다.

‘이 친구는 수사에 재능이 있어. 필요한 인재다. 게다가 사천감 술사와 관계도 밀접하니, 그를 통해 사천감에서 법기를 사들여 부하들을 무장시킬 수도 있겠군. 평원백이야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사건은 여전히 처리해야 한다. 해결하면 공로로 쳐줄 테고. 허칠안은 권종만으로 세은 사건의 진상을 밝혔으니 재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건 허칠안의 첫 번째 장점인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이라면 이거지. 무사가 눈에 차지 않는 사천감 백의들은 야경꾼에 정기적으로 동라를 보충해주는 것 외에 다른 법기를 팔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백의들은 허칠안에게 공손했지.’

고품질의 법기를 만들기 위해선 진법사(陣法師)들의 진법도 중요하겠지만 연금술사들의 조련기술 역시 무척 중요했다.

이때 도 은라가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분노에 찬 얼굴로 공수하면서 말했다.

“대인, 이옥춘이 저를 쫓아냈습니다.”

“쫓아냈다고?”

강율중의 매의 눈이 순간 예리해졌다. 그의 눈을 감히 직시할 수 없었던 도만이 고개를 조금 떨어뜨렸다.

“사람을 내줄 수가 없답니다. 정 데려가고 싶으면 대인께서 직접 데리러 오시랍니다.”

도만이 이실직고했다.

도만은 이옥춘의 반응에 단단히 화가 난 참이었다. 만약 관아에서 관아 연무장 이외에 야경꾼끼리의 사적인 싸움을 금하지만 않았더라면 진작 자신의 주먹이 얼마나 강한지 이옥춘에게 보여줬을 터였다.

“그래, 그럼 내가 직접 가지.”

강 금라는 담담하게 말했다.

* * *

다른 한편에서는 이옥춘이 양연의 신창당(神枪堂)에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찾지 못하자 편청으로 가서 하급 관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급 관리가 양 금라가 호기루에서 위 공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고 전했다.

위연에게는 의붓아들이 두 명 있었다. 하나는 관아에서 공인하는 여인보다도 더 아리따운 남궁천유고, 다른 하나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양연이었다.

이옥춘은 호기루로 찾아가 긴히 보고드릴 일이 있다고 했고, 수위는 관례대로 위층으로 올라가 통보했다. 허락받자 이옥춘은 단숨에 칠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앉은 자세부터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는 돌 같은 양연을 보자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양 금라, 소직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양연이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조용한 시선을 보내면서 말했다.

“말하게.”

이옥춘은 감정이 잔뜩 실린 말투로 말했다.

“강 금라가 사람을 뺏으려고 합니다.”

이 말에 위연과 남궁천유도 이옥춘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을 뺏는다고?”

양연이 물었다.

“예. 동라 허칠안을 뺏으려 합니다.”

양연이 짙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위연을 바라봤다.

“의부님.”

위연이 허허허 웃더니 말했다.

“그건 너희들 일이지, 날 보지 말거라.”

양연은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신속하게 호기루를 떠났고, 이옥춘 또한 위연과 남궁천유를 향해 공수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뒤따라갔다.

* * *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을 데리러 춘풍당에 찾아왔었습니다. 태도는 또 어찌나 살벌한지.”

이옥춘은 간단하게 일의 경과를 보고했다.

“허칠안은 갑상 자질의 신인이니 절대 순순히 넘겨줘서는 안 됩니다.”

이에 양연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다. 그 또한 이 일에 대한 태도가 무척 확고했다.

‘갑상 자질의 동라야. 무조건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양연은 강율중이 감히 사람을 뺏으러 오면 머리통을 박살 낼 기세로 눈을 부릅떴다.

* * *

양연과 강율중 두 사람은 춘풍당 문어귀에서 마주쳤다. 순간 멍해 있던 강율중이 실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양 금라, 허칠안을 내 밑으로 조정해오면 안 되겠는가?”

양연이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거지……. 동라 한 명 때문에…….’

강율중이 눈빛이 예리해지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꼭 데려가야겠다면?”

양연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규정대로 하지.”

“좋다!”

규정이라 함은, 물론 싸움에 의한 승부였다.

이건 위연이 정한 규정이었다. 금라든 은라든, 갈등이 있다면 무력으로 해결하되 대결은 반드시 관아의 연무장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사적인 싸움은 절대 금지였다.

암투를 벌이는 것보다 터놓고 당당하게 싸우라는 것이다.

무사는 순수해야 했으나 의기(意气)를 억제할 수는 없었다.

금라 두 명이 동라 한 명을 쟁취하기 위해 연무장에서 자웅을 겨룬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식을 들은 허칠안도 동료들과 함께 구경하기 위해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야, 피곤하다. 난 그저 조용히 미남으로 남고 싶은데…….’

* * *

은라와 동라들은 너도 나도 지인들을 불러 이 보기 드문 광경을 구경하러 관아 뒤에 있는 연무장에 몰려들었다.

“들었어? 금라 둘이 동라 하나 때문에 싸운대.”

“어떻게 그런 일이! 일개 동라가 금라 두 분의 갈등을 유발했다고?”

“오늘 아침 도 대인이 이 대인한테 사람을 요구했는데 이 대인이 거절했다지. 두 대인도 한바탕 싸웠대. 그러고 나서 각자 자신의 위에 있는 금라를 찾아간 거지.”

동라의 지위는 무척 보잘것없었다. 그에 비하면 금라의 신분은 무척 존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호기심이 발동한 자들이 내막을 묻자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뭇 남성의 마음을 교란시킨 매력적인 여인이 된 기분이군…….’

허칠안이 속으로 투덜댔다.

방금 전 강율중의 얼굴을 확인하자, 허칠안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평원백이 피살당한 당일, 그와 만난 적이 있었다. 자신과 사천감의 친분을 알고 나서 자신을 수하로 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연도 허칠안을 놓치려 하지 않을 터였다.

‘십중팔구 내 갑상 자질 때문일 것이다. 이건 전생에 학교들 사이에 벌어지는 우수생 쟁탈전과 같은 맥락이야. 이옥춘이 나에게 위 공이 나의 자질을 갑상으로 매긴 사실을 알려준 적 있지.

위 공이 나의 자질을 갑상으로 평가한 것은 순전히 그 시 때문이었다……. 이건 공감으로 받은 가산점인 거라고. 나는 나의 실제 자질에 알맞지 않은 압력을 받고 있는 거야.’

허칠안은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고품계 무사의 싸움은 실로 흔하지 않은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에 누구 수하로 남을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춘 형과 송정풍, 주광효가 아쉽기는 하나 인사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라 처지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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