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소직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오: 만요국은 오백 년 전에 복멸되었네. 불문이 서역 열국을 거느리고 만요국을 초토화시켰지. 전승에 의하면 최후 분산(焚山) 싸움에서 불타가 직접 나섰다네.]
[삼: 잠깐. 방금 전 불타라 했나?]
허칠안은 실은 ‘불타가 진정 존재한단 말인가? 품계를 뛰어넘은 신선과 부처가 진짜 실존한다고?’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불타가 직접 나섰다는 말에 대해 의혹을 품은 양 물었다.
‘이렇게 되면 내 무지함을 가릴 수 있을 테니까.’
[오: 아무튼 윗분들은 그렇게 말들 하시지. 아마 만요국을 거느린 자가 어떤 경지인지 알면 자네도 믿을 걸세.]
여국사와 친분이 있는 사호가 물었다.
[사: 일품?]
[오: 일품……. 허, 부친이 말씀하기로 반보무신(半步武神)이라 하네.]
‘반보무신? 그럼 일품을 넘어 무사체계의 신이 될 뻔했다는 뜻?’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나중에 공문서 창고에 가서 찾아봐야지. 가만! 오호는 어떻게 만요국의 역사를 이렇게 잘 안대? 만요국 잔여 세력은 아니겠지?’
이때 금련 도사가 나타났다.
[구: 만요국 여황이 반보무신이라고? 빈도의 기억에 의하면 지종 전적에는 일품이라 기재된 것으로 알고 있네만.]
요족과 무사는 동일 체계였다.
[오: 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릅니다. 필경 오백 년 전의 일이니까요.]
[오: 만요 여황이 무너지고 나서 요족들은 일갑자 동안 대항하다가 결국 남강으로 도망쳤네. 근 오백 년 동안 만요국 잔여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지. 그들은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국의 꿈을 잃지 않았네. 그건 만요국 공주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고.
그녀는 만요 여황이 남긴 혈육으로 현재 만요국 잔여 세력의 지도자일세.]
[삼: 그럼 그자는 무슨 경지인가?]
[오: 그건 나도 모르겠군.]
[삼: 만요국에 어떤 강한 요물들이 있는가?]
[오: 난 만요국의 역사만 알지, 만요국의 현황은 잘 모르네. 만요국은 암암리에 활동하는 세력이라 수면 위에 자주 나타나지는 않으니까.]
‘이건 역사 수업이지 사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이때, 이호가 넌지시 떠보았다.
[이: 삼호, 자네 만요국의 정보를 알아서 무엇 하려 하는가?]
허칠안은 이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글씨를 입력했다.
[삼: 금련 도사, 제 지인 한 명이 최근 이상한 일에 봉착했습니다.
어째서인지 밖에서 자꾸 은자를 줍습니다. 그것도 무척 빈번하게 말입니다. 이건 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칩니다. 이렇게 비유해보겠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자만 주워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종은 공덕을 수련하니 이와 유사한 일이 없었습니까?]
‘돈을 줍는다고? 게다가 삼호의 말에 의하면 그저 운이 좋아 줍는 것이 아니라 무척 자주 줍는다는 거잖아.’
‘세상에 은자만 주워 풍족하면서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지서 채팅방이 갑자기 침묵에 빠졌다.
[오: 삼호, 농담하지 말게.]
[구: 공덕이 쌓인다는 건 복이 따른다는 말이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일이 무척 순조롭게 진행된다든가 병마나 재난의 시달림이 없이 매번 화가 복으로 바뀐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네. ‘은자 줍기’ 처럼 보상되는 것이 아니고. 음, 젊은 친구, 내 말뜻을 알아듣겠나?]
다시 말해, 공덕이 쌓인 사람은 만사형통이라는 뜻이다.
‘이건 무척 포괄적이면서도 범위가 큰 복이지, 단순히 은자 줍기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 여태 내 땡잡았던 운은 지종의 공덕과는 다른 개념인데.’
허칠안은 돈을 줍는 게 지종의 공덕과 근원이 같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공덕이 쌓여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거울 표면에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허칠안은 악취를 풍기는 뒷간에 반나절이나 앉아있고 나서야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는 것을 알았다.
‘떠난다면 떠난다고 말 좀 해. 말 좀 하라고…….’
허칠안은 투덜거리면서 촛대를 들고 뒷간을 나갔다.
그는 촛대를 객잔 점소이에게 돌려주고 객잔을 나왔다. 때마침 야경꾼 동료들을 만났다.
허칠안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뭐 더 발견한 것이 있는가?”
야경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시선을 객잔으로 돌리자 허칠안이 선수쳤다.
“내가 이미 수색했네. 객잔에는 수상한 인물이 없었네.”
* * *
이튿날 이른 아침, 육호는 장포로 갈아입었다. 널찍한 옷이 그의 우람한 체구를 가렸다. 그는 땀수건으로 까까머리를 싸매고 일찍 일어난 손님들과 함께 조용히 객잔을 떠나 길옆 조식 노점에서 아침밥을 먹고 성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는 성문 근처에서 침착하게 동정을 살폈다. 성문을 지키는 수위가 늘어났고 사천감 백의도 한 명 있었다. 백의는 눈에서 청광을 뿜으면서 성문을 나가는 사람마다 살피고 있었다.
육호는 인파를 따라 외성으로 걸어갔다.
사천감 백의가 그를 잠깐 살피더니 바로 통행을 허가했다.
불문 제자인 육호 또한 살인 후, 악기(惡氣)를 제거할 방법이 있었다. 물론 삼호가 벌어준 시간이 있어서 가능했다.
일엽장목과 객잔이 없었다면 어제 사천감 술사들의 수색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육호는 계속하여 동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점심이 다 되어서야 거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거처는 황토로 지은 집으로, 지붕에는 부서진 검은 기와를 얹은, 즉 빈민가의 집이었다.
육호는 이어 익숙한 길을 따라 누추한 대원에 도착했는데 대원 편액에는 ‘양생당(养生堂)’이라고 적혀있었다.
양생당은 조정에서 설립한 복지시설로, 고아같이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조정에서 설립했다고는 하지만 양생당에는 늙은 하급 관리 몇 명과 겨우 집을 지킬 수 있는 고아와 노인들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육호는 승려 신분으로 양생당에 묵으면서 늙은 하급 관리들을 도와 고아와 노인들을 돌봤다.
그는 이곳에서 돈 한 푼 받지 않을뿐더러, 종종 자신의 돈을 양생당에 보태왔다.
근 십여 년, 조정은 갈수록 양생당과 같은 복지시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몇 개월 연속 돈이 내려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정이 설립했다는 명분만 있었지, 실속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육호가 대문 안에 들어서자 하급 관리 한 명이 맞이하며 노파심에 거듭 충고했다.
“항원 대사, 더 이상 애들을 데려오면 곤란해. 당 내 양식이 이미 바닥났네.”
육호가 합장하더니 입을 열었다.
“빈승(贫僧)이 은자 문제는 해결하겠습니다.”
이때 육호의 머릿속에 삼호가 떠올랐다.
‘나도 매일 은자를 줍고 싶군.’
그는 하급 관리들을 도와 죽을 끓여 노인과 아이들한테 나눠주고 후원으로 갔다.
후원 곳간에는 검둥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걸음걸이가 무척 서툴었지만 두 눈에 가끔 빛이 반짝였다. 검둥개가 비틀거리며 승려의 발 옆에 와서 고개를 들었다. 검둥개는 까만 눈을 굴려가며 승려를 쳐다보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복…… 많이…… 받으세요.”
항원 대사가 안쓰럽다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합장하더니 낮은 소리로 법호를 읊조렸다.
* * *
이튿날, 평원백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조정이 뒤흔들렸다. 공훈 세력들은 저마다 분노에 씩씩거렸다. 공훈 세력과 맞지 않는 문관들도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 도찰원 어사가 위연을 탄핵했다.
원경제는 경성오위(京城五卫)의 지휘사를 호되게 질타했다. 위연도 무척 크게 질책 당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사건에 대한 야경꾼 관아의 태도가 무척 소극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편청에서 차를 마시면서 송정풍과 주광효와 수다를 떨었다.
“이상할 거 없어. 평원백이 그닥 좋은 놈은 아니잖아. 다른 동료한테서 들은 건데 평원백이 사적으로 밀매조직을 키워 사람을 팔아먹는 악랄한 짓을 했다더군.”
송정풍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위 공이야 이런 좀벌레 같은 놈들이 하루빨리 소멸되기만을 바라겠지. 야경꾼이 그를 위해 복수하기를 기대해? 웃기는 소리.”
주광효가 덧붙였다.
“그래도 조정의 얼굴에 먹칠한 거잖나. 조정 관원들이 이대로 그만두지는 않을 거야.”
“에이, 경찰이 다 되었는데, 평원백이 죽은 것으로 큰 파장이 일어나지는 않을 걸세.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조용해질 거야. 우리만 불쌍하지. 관아에서 명이 내려왔어. 내성의 순찰 강도를 높이라고. 조정의 관원들이 위 공에게 어떻게 반격할지 모르겠군. 이런 기회를 무척 오래 노려왔으니 말이야.”
송정풍이 말했다.
“가자. 우리 손발을 맞춰볼 겸 연무장에 가서 훈련이나 좀 하자고.”
허칠안이 제안했다.
* * *
시간이 흐른 후, 세 사람은 땀범벅이 되어 편청으로 돌아왔다. 허칠안이 물을 두 잔이나 꿀꺽꿀꺽 들이붓더니 입을 열었다.
“난 공문서 창고에 가 보겠네.”
한 번 와본 경험이 있는지라, 익숙하게 안내처까지 찾아온 허칠안이 하급 관리에게 말을 꺼냈다.
“만요국 권종을 찾아주게.”
하급 관리가 창고에 들어가더니 <구주지리지: 남강(南疆)>이라 적힌 책을 찾아왔다.
허칠안은 빠른 속도로 열람을 마쳤다. 만요국에 관한 정보가 적지는 않았지만 모두 지나간 역사였다.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정보라면 만요국 여황에 대한 묘사였다.
구미천호(九尾天狐).
‘야경꾼의 공문서 창고에는 불타가 직접 나섰다는 기재가 없다……. 오호는 어떻게 안 거야? 오호는 어느 쪽 세력인가?’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힌 허칠안이 하급 관리에게 권종을 넘겨주면서 물었다.
“기타 권종은 없는가? 만요국에 관한 권종 말이네.”
“있긴 하나 창고에는 없습니다.”
‘그 뜻인즉 네 권한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겠구나.’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공문서 창고를 떠나 호기루로 직행했다.
위연의 신임을 얻기 위해 이번에는 과감한 시도를 해볼 계획이었다. 구체적인 방안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 * *
칠층에 올라온 허칠안은 곧바로 대환관과 마주쳤다.
그곳에는 용모가 허신년과 막상막하인 남궁천유와 안면마비 상사인 양연도 함께 있었다.
허칠안이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타인은 물러가게 해주십시오. 긴히 고할 일이 있습니다.”
‘타인은 물러가게 해?’
이 말을 들은 남궁천유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허칠안을 적대감 가득한 눈길로 쳐다봤다.
‘금라로서 일개 동라에게 물러가게 해달라는 요구를 받다니.’
위연이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먼저 물러가 있거라. 너희 둘은 서로를 감독하도록. 몰래 엿듣지 말고.”
남궁천유가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동라는 야경꾼이 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부님이 무척 빈번하게 소견하고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심지어 나와 양연을 물러가게 하시다니.’
남궁천유는 이 상황이 무척 불쾌했다.
‘분명 내가 먼저 온 거잖아!’
* * *
금라 두 명은 호기루를 떠났다. 남궁천유가 냉소를 머금더니 입을 열었다.
“수하에 있는 동라가 월권을 하고 있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 너는 안중에도 없잖아.”
양연이 침묵을 지켰다.
양연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남궁천유가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이간질 하고 있는 게 느껴지지 않던가? 체면 좀 지켜주지 그래?”
얼굴에서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양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 동라의 자질은 너도 잘 알잖아. 위 공이 그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것도.”
“하지만 네가 안중에도 없는 것 또한 사실이잖나?”
“내가 그런 거에 신경 쓸 것 같아?”
양연이 반문했다.
남궁천유가 흰자위를 희번덕이더니 화난 어조로 말했다.
“아, 그래. 어쨌거나 네 수하라 이거지? 그래도 정은 있다는 얘긴가 보군?”
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유가 홱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재미없다. 난 내 장난감들이나 찾아가야지.”
그는 지하 감옥으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