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돌발사건
허신년의 방을 지날 때는 안에서 낭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년, 너 서원에 있는 거 아니었어?”
허칠안이 창 옆에 서서 물어봤다.
“마침 잘됐습니다. 형님을 찾아가려고 생각했었는데.”
허신년이 탁자 위에 놓였던 책자 하나를 들고 창 옆으로 다가오더니, 허칠안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이건 스승님과 모백 선생, 그리고 진태 선생이 저더러 형님에게 전해주라고 한 겁니다. 제가 아침에 집에 도착했을 때 형님이 자고 있어서 주지 못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허칠안은 책자를 받자마자 몇 장을 펼쳤다. 책자 내용은 무척 이상했다.
문자도 있고 그림도 있는 게 마치 이것저것 잡다한 내용들을 억지로 책자 하나에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를 보던 허신년이 허칠안에게 책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 책자에는 각 수행체계의 절학들이 기재되었습니다. 대유 세 분이 자신이 수집한 법술들을 모아 형님한테 선물한 겁니다.”
‘어디에선가 질투의 냄새가 풍겨온다…….’
허칠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허신년이 말을 이었다.
“유가의 육품은 유생(儒生)이라고 합니다. 이 경지의 핵심은 ‘배움’입니다. 자신이 봤던 법술을 붓에 담아 종잇장에 기재할 수 있죠. 형님이 기기로 종잇장을 태우면 종잇장에 기록된 법술이 현실이 됩니다.”
‘유가는 진짜 최고의 보조역할을 하는 체계구나.’
허칠안은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억제해 희색을 감추고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 대유 세 분께 말 좀 전해줘. 나중에 직접 방문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테니 그때 시사에 대해 선생들과 의논하겠다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대유 셋이 이렇게 무작정 선물할 때는 그들만의 의도가 있을 터였다.
허신년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형님은 얼른 가 보세요. 저 책 읽는 거 방해하지 말고요. 저는 내일 서원에 다시 돌아갈 겁니다.”
‘네가 날 질투해도 난 널 사랑한다!’
허칠안은 룰루랄라 기분 좋게 자리를 떴다.
* * *
황혼이 내리자 허칠안은 야경꾼 제복으로 갈아입고 급하게 관아로 내달렸다.
그는 내성문이 닫히기 전 관아에 도착해, 송정풍과 주광효를 만나 야간 근무를 시작했다.
내성의 밤은 조용했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허칠안과 그의 일행은 어도위의 순찰을 피한 도둑 한 명을 잡았다.
송정풍이 말하길 이렇게 작은 건은 최대 은자 오 전밖에 못 받는다고 했다.
허칠안은 주루(酒樓)의 지붕에 서서 밤의 장막이 내린 경성을 굽어봤다.
송정풍이 볶음콩을 까닥까닥 씹으면서 물었다.
“칠안, 네 절학은 무엇이냐? 어떤 특징이 있지?”
허칠안은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실전에 강하다. 폭발력은 더 강하고. 하지만 지속력이 약하지……. 음, 한 번 휘두르고 나면 잠시 허약해진다는 것?”
세상에 일도(一刀)에 잘리지 않는 물체는 없었다.
‘만약 있다면 도망치랬지…….’
허칠안은 저자가 농담하는 줄로만 알았으나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이 절학의 본질은 일 초만 강했고 그 후로는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면 폭발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허칠안의 추측이지만 어느 정도 수련하면 품계를 뛰어넘어 적을 벨 수 있을 터였다.
허칠안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누고 나서 송정풍과 주광효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옥석경에서 대유들이 선물한 책자를 꺼내 한 장 찢었다.
종잇장 위에는 청광(清光)이 흐르는 눈이 그려져 있었다. 사천감의 망기술에 해당하는 법술이었다.
이러한 법술은 책자에 무척 많았다. 보조 법술 중 하나이기에 그다지 귀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허칠안은 바로 기기로 종잇장에 불을 붙였다.
순간 활활 타오른 불빛에 주광효와 송정풍이 깜짝 놀랐다.
허칠안은 순간 눈이 따끔해지더니, 무척 다양한 색상을 볼 수 있었다. 세상이 다양한 색채로 물들여진 유화 세계로 변했다.
흰색이 가장 많았고 가장 밀집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색상들은 한 줄기씩 쫙쫙 뻗어있었다. 흰색 다음으로는 빨간색, 담홍색, 진홍색, 자색 순서로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자색이 섞인 빨간색, 담자색, 진한 자색……. 진한 자색은 황성 방향에서 뻗어 나왔다.
‘이게 기(气)구나…….’
천지만물 모두 저마다의 기가 있다. 허칠안은 그제야 이 말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이때 허칠의 시야에 신기한 색채가 들어왔다. 위치는 황성 방향이었다. 유난히 화려하면서도 무지개를 방불케 하는 색상이었다.
‘오색찬란……. 황실을 대표하는 자색과는 전혀 다른 색상인데 황성에서 뻗어져 나오다니?’
금련 도사가 황실 전용 마차에 앉았던 사람과 허칠안이 모종의 인연으로 엮인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유난히 화려하고 아리따운 기운을 뿜는다고 말했었다.
‘청기……. 황성 방향이군. 채미가 예전에 나한테 말하길 청기가 유가 아니면 도문을 뜻한다고 했는데……. 그럼 저건 인종(人宗)? 교방사의 색상이 어째서 짙은 녹색이지? 교방사의 여인 모두 죄를 지은 관원들의 가족이 아닌가? 나중에 채미한테 물어봐야지. 녹색광이 뭘 대표하는지……. 엥? 없어졌네?’
교방사에 있던 짙은 녹색을 띤 기(气)는 반짝하더니 바로 사라졌다.
허칠안은 맨 나중에야 시선을 사천감으로 돌렸다.
“아…….”
갑자기 허칠안이 비명소리와 함께 주루의 지붕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무척 아파 데굴데굴 뒹굴면서 두 눈을 막고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란 주광효와 송정풍이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다. 한 사람은 도를 뽑아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한 사람은 앞으로 나가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았다.
“무슨 일이야?”
송정풍이 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긴! 내 눈이 멀게 생겼어! 내 두 눈이 멀게 생겼다고……!’
허칠안은 두 눈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가 관성루를 엿본 순간, 두 눈이 침을 맞은 것마냥 따끔해지더니 바로 극심한 통증이 뒤따랐던 것이다.
송정풍이 한 쪽 무릎으로 허칠안의 가슴을 눌러 뒹굴지 못하게 고정하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눈알은 빨개졌지만 동공은 상하지 않았다. 다행히 눈은 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송정풍은 데굴데굴 뒹구는 눈앞의 어리석은 동료를 내버려두었다.
일각 후에야 불로 지지는 것 같던 통증이 차츰 사라졌다. 허칠안은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땅에 앉아있었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고 눈앞에는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어른거렸다.
“방금 전에 뭔 짓을 한 거야?”
송정풍의 목소리였다.
“관성루를 한 번 봤어…….”
허칠안이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내 사촌 동생이 운록서원의 학생인데 오늘 망기술이 적힌 종잇장을 줬거든.”
허씨 집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송정풍과 주광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망기술로 사천감을 한번 봤지.”
송정풍이 이에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넌 감정 대인께서 관성루 팔괘대에 앉아있기를 즐기는 걸 몰랐느냐?”
“몰랐는데.”
“그럼 술사체계의 전봉이 우리 감정 대인이라는 건 알고?”
“그건 알지.”
“그럼 망기술로 감정(监正)을 보는 게 죽음을 자처하는 일이라는 건?”
“그건 진짜 몰랐네…….”
옆에 있던 주광효도 답답한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사천감 술사와 야경꾼의 왕래는 잦으니 나중에 경험이 쌓이면 알게 될 거야.”
술사나 유가를 제외한 일반인들이야 망기술을 알 리가 없었다. 방금 전 허칠안에게 벌어진 사건은 순전히 사고였다.
세 사람은 야간 순찰을 잠깐 멈추고 길 옆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허칠안의 시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 동쪽 하늘에 홍색광이 솟아오르더니 몇 초간 지속되다 사라졌다.
송정풍과 주광효가 약속이나 한 듯 도를 꺼내 들었다.
시력이 금방 회복된 허칠안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송정풍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색광은 우리를 향해 경보를 울리는 거다. 보통 수색하거나 체포하는 상황에서 발사해. 아마 야경꾼의 어느 한 조에서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그를 놓친 것 같군……. 홍색광의 거리를 보니 우리와 무척 가까워.
칠안, 넌 시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거리에서 순찰해라. 광효, 우리 둘은 지붕에 올라가서 보자.”
두 사람은 경공으로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세 사람이 책임져야 할 구역은 무척 넓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흩어져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 둘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던 허칠안도 패도를 뽑고 쇠뇌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동라와 의복 안에 있는 호신경을 다시 한 번 잘 묶었다.
식골독은 보통 사용하지 않았다. 평소에 도날에 바르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나가 자신이 도날을 핥을지 모르니,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허칠안이 경계 태세로 순찰하고 있는데 낯선 동료 한 명이 지붕을 타고 오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은?”
“흩어져서 수색하고 있는데 무슨 일인가?”
“평원백(平远伯)이 피살되고, 해당 지역을 책임졌던 동료 두 명이 부상을 입었네. 놈은 밀술(秘术)로 도망쳐 종적을 감췄네.”
‘평원백……. 백작이 피살당했다?!’
허칠안이 깜짝 놀랐다.
‘내성에서 백작을 죽여?’
오늘날 대봉의 공훈 세력들이 실권을 잃어가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백작은 백작이었다. 저택에 필히 고수를 두었을 터였다.
놈은 백작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야경꾼을 부상 입히고 여유롭게 도망쳤다. 이건 그냥 고수가 아니었다. 만나기만 해도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허칠안과 대화를 나누던 동라는 무척 신속히 멀어졌다. 성문을 지키는 수위에게 통지하러 간 모양이다.
‘젠장……. 시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눈앞이 여전히 희미한데……. 그러나 늘 운이 따랐던 나야 놈을 만나지 않겠지…….’
허칠안은 제발 흉수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조용히 기도했다.
이때 허칠안은 ‘지서’로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피를 떨군 후부터 그와 지서 사이에는 뭔지 모를 감응이 형성되었다.
‘어떤 놈이 야밤에 자지도 않고 문자질이야?’
허칠안은 짜증을 부리면서도 옥석경을 꺼내들었다.
[육: 여러분, 제가 경성에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몇 분이 지나서 금련 도사가 답장을 했다.
[구: 무슨 일인가?]
[육: 내성에 갇혔습니다. 지금 야경꾼들의 수색망 안에 있습니다. 최대 한 시진이 지나면 사천감 술사들이 올 텐데 그러면 진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엥?! 설마 아니겠지…….’
순간 허칠안은 평원백이 피살된 사건과 이를 연관지었다.
‘육호가 그 흉수?’
그는 잠시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았다. 금련 도사도 곤란한지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 무력으로 포위망을 뚫을 수는 없는 건가?]
[육: 불가하네. 성문까지 너무 멀어. 야경꾼과 어도위가 순찰하고 있네. 게다가 내성을 벗어나도 외성이 있지 않은가.]
[이: 몸에 기운을 은닉할 수 있는 법기 같은 건 없는가?]
[육: 없네.]
[구: 빈도에게 있긴 한데 자네한테 보낼 방도가 없네.]
[육: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지서를 제자리에 두겠으니 내일 기운을 따라 찾아오시면 됩니다.]
경성, 더욱이 내성에서 야경꾼의 수색망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런 까까중 같으니라고! 벌써부터 그렇게 맥 빠진 소리를 하면 어떡해!]
이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사: 내가 인종과 친분이 다소 있긴 한데……. 다만 영보전은 황성에 있는지라. 승려, 자네를 도울 수가 없네.]
‘사호가 여국사와 친분이 있다? 금련 도사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구먼.’
지서 소지자들 모두 일반인은 아니다.
‘이호가 육호를 까까중이라 하고 사호가 육호를 승려라 하는 걸 보니 육호는 불문 사람?’
허칠안은 묵묵히 거울을 염탐했다.
천지회의 단결력이 엿보이는 문자 내용이었다. 지서 소지자들 모두 각자 방어벽을 쌓아 자신의 신분이 폭로되는 것을 경계했지만 그들만의 정분이 있는 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