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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9화 (69/712)

69화. 천지일도참(天地一刀斩)

‘도수가 입마했다. 그럼 자련이 변한 음산한 사기(邪气)가…….’

위연의 준수한 얼굴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때 그가 시험하듯 물었다.

“자네는 금련이 왜 자네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고 생각하나?”

허칠안은 이에 모른다고 답하려다가 위연의 깊은 눈빛과 마주쳤다. 허칠안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주도면밀한 그가 나에게서 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닐 거고…….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시험하고 있는 거다. 방금 사고를 거치지 않고 ‘모른다’고 답했더라면 대환관은 나를 총명하지도 않고, 지력이 이만저만인 부하로 여겼겠지.’

허칠안은 순간 머리를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이윽고 그가 얼굴에 가뿐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종의 변고는, 천지회 구성원이라면 다 알고 있습니다. 금련 도장이 사실대로 말해준 것은 나에게 성의를 표하는 거겠죠.”

이에 위연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지종은 무척 은밀한 문파지. 야경꾼은 여태 공덕으로 입마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네.”

허칠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위 공의 뜻은, 금련 도장이 나를 통해 위 공과 동맹을 맺으려는 의도라는 겁니까?”

위연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의 물음에 직접 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말투가 온화해진 채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자네가 천지회 내 야경꾼의 첩보일세. 다른 구성원들의 진짜 신분을 알아보게. 필요하면 아문에서 자네에게 일정한 도움을 제공할 것이야.”

허칠안이 공수하면서 응했다.

“네. 알겠습니다.”

‘방금 전에 반응이 좀 늦었더라면 위 공은 나의 지서 파편을 회수하여 더 총명한 부하에게 주어 천지회에 잠복하도록 했을까? 큰 인물들은 진짜 예고나 흔적 없이 시험을 치르는군.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겠어…….’

위연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지금 연기경이니 구체적인 절학(绝学)을 수련할 때가 됐네. 장서각(藏書閣)에 가서 하나 골라보게. 자네는 도가 편한가? 아니면 검이 편한가?”

“도가 편합니다!”

허칠안이 답했다.

장락현아 시절부터 박도를 차고 다녔는지라 비록 쓸모는 없었지만, 검보다는 그래도 도가 그에게는 더 익숙했다.

위연이 일깨워 주었다.

“절학을 선택할 때에는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도법을 고르게.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화려한 것들은 일절 포기하고. 무사 체계는 다른 체계와 달리 신기가 많지 않고 괴력만 있네. 그래서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좋아. 나중에 높은 품계가 되면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될 거네.”

비록 아주 짧은 몇 마디지만 천금보다 더 값진 충고였다. 허칠안은 이에 무척 기뻤다.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큰 조직을 등에 업고 거기에 위연의 인정을 받아 그의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면, 벼슬길이나 무도에서의 정진은 무척 순탄할 것이다.

‘사천감은 동자만 받고, 유가는 나와 맞지 않다. 게다가 두 곳은 무사체계가 아니다.’

무도에서 계속하여 발전하려면 무인이 밀집된 야경꾼에 의존해야 했다.

* * *

허칠안은 위연의 친필 서신을 가지고 장서각에 도착했다. 이옥춘이 동행했다.

이옥춘이 허칠안에게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언제 위 공께 들붙었느냐?”

“위 공께서 먼저 저를 소견했습니다.”

허칠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옥춘은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도 없었다.

허칠안의 갑상 자질은 위 공께서 손수 평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를 집중 육성하려는 것도 당연했다.

이는 이옥춘이 진작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는 허칠안이 자신을 뛰어넘어 윗사람의 환심을 산 것에 불평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갑상 자질이 주로 육성되는 것이나, 위 공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게다가 허칠안은 그의 수하에 있는 동라가 아니던가.

함께 일한 친분이 있으니, 이옥춘은 오히려 허칠안이 높이 올라가기를 바랐다.

하급 관리가 그들을 서가로 안내했다.

“총 사백칠 부의 도보(*刀谱: 도의 족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허칠안과 이옥춘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급 관리가 물러갔다.

허칠안을 쳐다보던 이옥춘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나에게 어느 도법이 가장 강하냐고 물어보려는 거지?”

허칠안이 헤헤 웃자, 이옥춘은 머릿속을 잠깐 정리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절학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기(技), 하는 도(道). 후자는 생각지도 말고. 전자는 강약 차이가 없이 사람 나름이다.”

두 사람은 도보를 고르기 시작했다. 허칠안은 위연의 충고를 명심하여 화려하면서 실속 없는 도법을 피했다.

한 시진 후, 기다리다 지친 이옥춘이 물었다.

“네 마음에 드는 게 없더냐?”

‘대장, 제가 까먹고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전 결정을 더럽게 못한다고요!’

울상인 허칠안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옥춘은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면서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거라.”

이옥춘이 하급 관리를 불러와 물었다.

“최근 새로운 절학이 입고된 건 없느냐? 도보(*刀谱: 도의 족보) 말이다.”

하급 관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있습니다. 사천감에서 며칠 전에 절학 몇 부를 보내오고 몇 천 냥의 은자로 바꿔갔습니다.”

‘몇 천 냥?’

이옥춘이 넋을 잃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넌 운이 참 좋구나.”

이옥춘이 부가 설명을 해줬다.

“은자 몇 천 냥의 절학이면, 품질이 여기에 있는 그 어느 것 보다도 좋을 거다. 아마 모 도법지도(刀法之道)의 일부분일 거다.”

“도(道)?”

허칠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도운(道韵)을 가진 절학이라면, 일반적으로 높은 품계의 무사가 만든 것이지. 그 안에는 무도에 관한 그들의 한평생 깨달음이 녹아들어 있다. 높은 품계의 무사가 되려면 이러한 절학을 배워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건 그들만의 도이니까. 하지만 일부분은 배워 보아도 무방하다.”

이옥춘이 하급 관리에게 분부했다.

“가서 가져오너라.”

그러자 하급 관리가 절학 몇 부를 들고 왔다. 그 중 한 부는 이옥춘의 말대로 도도(刀道)절학의 일부분이었다.

<천지일도참>

‘이런 이름을 지은 사람은 사춘기 아니면 편집광(偏执狂)이다…….’

허칠안이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다. 서적은 무척 얇았다. 첫 장을 펼치니 바로 서론이었다.

<세상에는 단도(單刀)에 자르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만약 있다면 나는 도망칠 것을 제안한다.>

허칠안은 비적(祕笈)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고 한 장을 더 펼쳐보았다.

그는 개요를 자세히 읽고 나서 절학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허칠안의 추측이 맞았다. 이 책을 쓴 고수는 편집광이었다. 그는 천지를 제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물건이라도 단도에 자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도 마찬가지였다. 쓸모없는 동작이나 몸싸움 모두 무도에 대한 모욕이라 하였다.

‘난 그저 단도면 끝난다. 그럼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겠지.’

물론 편집광이라고 결코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개요에 언급했듯 그는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적수를 만났을 때에는 도망칠 것을 제안했다.

허칠안은 개요를 다 보고 나서 절학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바로 천지일도참으로 최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

허칠안이 서적을 덮더니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 말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 * *

삼일간의 주간 순찰이 끝나고 야간 순찰이 시작됐다.

검은색 제복에 짧은 피풍, 가슴에 동라를 묶고 허리에 패도를 찬 허칠안이 송정풍과 주광효와 조를 이루어 내성의 거리를 돌았다.

해가 넘어가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면에 떨어진 꽃잎에 서리가 앉았다.

밤의 장막이 내리기 바쁘게 북적이던 경성은 적막에 잠겼다. 초겨울에 들어섰는지라 벌레나 새 울음소리마저도 없었다. 허칠안은 한가로운 작은 마을을 거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따금 흐트러짐 하나 없이 질서정연하게 걸어가는 소리와 갑옷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성을 순찰하는 어도위들이었다.

반 시진쯤 순찰하고 나서 송정풍은 둘을 데리고 작은 층집 꼭대기에 올라가 종횡으로 얽히고설킨 내성의 거리를 굽어봤다.

“거리 순찰은 어도위의 몫이고 우리는 주로 지붕이나 담 위를 타는 놈들이 있나 지켜보면 된다.”

송정풍이 지붕마루에 올라서서 밤바람을 맞받으며 실눈을 떴다.

“전망할 때에만 지붕마루에 올라서야 해. 그 외에는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지붕이나 담 위를 함부로 타진 마라. 경성의 물이 깊다보니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고수들도 부지기수야. 함부로 지붕을 탔다가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검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물론 야경꾼이 복수해줄 테지. 시체도 잘 처리하고 위로금도 줄 거고.”

“위로금이 얼마길래?”

허칠안이 물었다.

“동라는 은자 삼백 냥.”

송정풍이 말했다.

“그만하면 후하게 쳐주는 거다. 은자 삼백 냥이면 처자식이 풍족한 생활을 하기에는 넉넉할 거 아냐.”

‘다만 은자 삼백 냥이면 몸값이 폭등한 부향과는 다섯 밤밖에 함께 보내지 못한다고…….’

허칠안이 농담을 던졌다.

“그렇지. 그럼 네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가하고 너의 죽음으로 바꾼 돈은 웬 남모를 남자가 써버리겠지. 그 남자는 네 아내와 잠자리를 가질뿐더러 네 자식에게 매도 들겠지.”

송정풍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허칠안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참 후에야 한마디 던졌다.

“갑자기 가정을 이루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

주광효도 소리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점심. 다섯 시진밖에 자지 않은 허칠안은 맑은 정신으로 기상했다.

그는 돼지털 칫솔에 분말을 묻혀 지붕 밑에 웅크리고 앉아 양치질을 했다.

칫솔 분말은 고대 치약이었다. 이 안에는 생강, 조각(皂角), 승마(升麻), 지황(地黄), 한련(旱莲), 괴각(槐角), 세신(细辛), 연잎(荷叶), 청염(青盐) 등 아홉 가지 약재가 들어있었다.

그밖에도 전생에는 듣도 보도 못한 성분이 들어있었다.

바로 제거완(除垢丸).

이 성분은 치약의 청결, 미백, 입냄새 제거 효과를 크게 향상시켰다.

전생의 치약은 이 시대의 칫솔 분말에 비해 효능이 훨씬 못했다.

물론 제거완(除垢丸)도 사천감 연금술사들의 작품이었다.

연금술사 덕분에 대봉 백성들의 생활이 얼마나 편리하고 건강해졌는지는 이 제거완(除垢丸) 하나로도 알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위대했다. 다만 술사 체계의 역사가 짧다보니 전면적인 이론 체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따라서 허칠안의 화학 이론이 연금술사들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담을 타고 본채로 넘어갔다. 이 시간이면 숙모와 동생들은 이미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그는 오후에 토납하면서 연기를 훈련하고 천지일도참을 연구할 참이라 기루에 가서 밥을 먹지 않기로 했다. 허칠안은 하인들에게 주방에 남은 밥과 반찬을 데워달라 부탁하여 간단하게 요기했다.

* * *

그는 밥을 먹자마자 바로 수련에 몰입하는 대신 내원에 가서 허영음을 잠깐 놀리다가 오관이 조각같이 아리따운 열일곱 소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나중에 소설을 써줄 테니 규방에서 심심할 때 보렴.”

“그럼 그 소설도 양산백과 축영대와 같은 사랑 이야기입니까?”

허영월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

“자극이요?”

자극이란 단어에 허영월의 얼굴이 빨개졌다.

“백발의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

허칠안은 필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전생에 읽었던 소설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린 터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많은 은전을 긁어모았을 텐데…….’

허칠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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