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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8화 (68/712)

68화. 조직이 있어서 좋은 점

문자를 발송했다.

무척 오랫동안 맞받는 사람이 없었다. 허칠안은 탁자 옆에서 반나절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모든 사람들이 이미 대화창 앞에서 자리를 떴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너무 무례한데……. 자리를 뜨면 뜬다고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허칠안은 옥석경을 잘 보관한 후, 문을 잠그고, 촛불을 끄고 침상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천지회는 무척 느슨한 조직인가 봐. 구성원끼리 연락하면서도 서로 경계하고. 그렇지만 이해할 만하다.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거니와 심지어 모두 대봉 황조의 사람인 것도 아니니까 서로 경계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

현재로서 좋은 점이라면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비대면으로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맞으면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법이지.’

이호는 운주에 있어 너무 멀었다. 신분과 지위 모두 낮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각 부와 각 현의 호적을 조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일호는 경성에 있고, 진짜 신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 같은 가짜랑은 차원이 다르다.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육호……. 나에게 구호에 응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이다. 그도 경성에 있다고 했다. 일호와 육호가 앞으로 내가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기타 구성원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이 내 신분을 안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익 충돌이 없으니까.’

일호와 육호는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없애줄 테니”의 느낌을 줬다.

‘하지만 반면에 그들과 친분을 쌓을 수만 있다면, 가까이에 있으니 급한 불을 꺼줄 수 있을 거다.’

허칠안은 왠지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꿈나라로 떠났다.

* * *

흐르는 강물 같은 밤하늘에 달무리가 서리 같이 앉았다.

찬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스산하게 불어댔다. 영보관(灵宝观)은 까만 밤에도 등불로 환했다.

인종 도수가 국사로 책봉된 이후 인종의 심장부는 황성으로 옮겨졌다. 황제는 인종을 위해 대단한 장관인 도관을 지어주었다.

이때 화려한 단목(檀木) 마차 한 대가 도관 밖에 세워져 있었다. 계단 위로 청색 외투를 걸친 위연이 걷고 있었다.

문지기 도동(道童)이 공손한 태도로 위연을 맞았다.

그들은 정원, 회랑, 화원을 지나 널찍한 유실에 도착했다.

도동이 떠나자, 위연이 손가락을 휘둘러 방문을 열었다.

칸막이가 자동으로 열리면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 공께서 친히 왕림하시다니요. 황송할 따름입니다.”

위연은 비꼬는 말투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문턱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은 썰렁했다. 탁자 위에는 단향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청과 긴 의자 사이에는 병풍이 놓여 있었다. 병풍 뒤로 아름다운 자태로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는 여인의 모습이 어슴푸레 보였다.

냉담한 기색의 위연은 말투도 쌀쌀맞았다.

“지종에 대체 무슨 일인가?”

여국사는 소리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령 소녀의 맑음도 있었고, 성숙한 여인의 부드러움도 있었다.

“위 공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으신 분인데, 저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요?”

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과거 여자와 소인은 키우기 어렵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에, 여태 나에게 앙금을 품고 있나?”

병풍 뒤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야경꾼에서 지서 파편을 하나 가지고 있네. 필요한가?”

“그건 지종의 물건입니다.”

위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 * *

그가 영보관을 떠나자 마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양연이 걸어왔다.

“의부님, 무슨 소식을 알아냈습니까?”

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 하지만 지종에 일이 있는 건 분명해.”

위연은 마차에 앉은 후 꽁꽁 얼어붙은 손을 화로에 가까이하여 몸을 녹였다. 그는 그제서야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근 몇 해 동안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는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니 대봉의 기수(气数)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각 수행체계에도 문제가 잇따라 폭발하고 있고. 무슨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구나.”

이에 양연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의부님께서 너무 생각이 많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날 사천감에 찾아갔을 때, 감정 어르신도 모든 게 정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위연이 탄식하더니 말했다.

“천기를 엿보는 사람의 말을 가장 믿을 수 없는 법이지.”

잠깐 멈칫하던 위연이 안색이 엄숙해지더니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종의 근황을 조사해 오거라.”

“지종의 사람들은 너무 조용해서 그들 그림자조차 찾아내기 힘듭니다…….”

다시 한번 위연의 얼굴을 본 양연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고분고분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정중하고도 엄숙한 의부님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 *

이른 아침, 두꺼운 솜옷을 입은 허영음이 손에는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들고 짧은 다리를 내디디며 어린 거위들을 쫓아다녔다.

허영음은 큰 오라버니가 걸어오는 걸 발견하자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큰 오라버니, 저, 이제는 동년배들 중에서 무적이에요.”

허칠안이 허영음을 쳐다보더니 받아쳤다.

“어리석음으로 무적인거냐?”

허영음이 급하게 변명했다.

“어리석음으로 무적인 게 아니라! 그저 무적입니다.”

허영음은 손에 쥔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휘두르면서 싸움으로 무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언니가 그러는데, 우리 허부에는, 동년배들 중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장 세다고요!”

‘우리 허부에 어린애라고는 너밖에 없어…….’

허칠안은 그저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래, 네 언니 말이 맞아.”

이 말에 허영음은 기분이 좋은지, 큰 오라버니와 밥 먹으러 가는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다.

* * *

숙모가 우아한 모습으로 밥을 먹으면서 무심코 입을 열었다.

“나리, 우리 영월이가 이제는 혼사 치를 나이가 다 됐습니다.”

허영월은 진작 혼사를 치를 나이가 된 터였다. 일반 가정에서는 열네 살이면 출가할 수 있었다. 허씨 집안은 큰 가문이라 급하게 딸을 시집보낼 필요는 없었지만 열일곱이면 출가해야 할 나이였다.

열여덟이 지나서도 혼사를 치르지 않으면 노처녀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는 참 희한했다.

허영월이 바로 머리를 들더니 고집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전 아직 시집가기 싫습니다.”

숙모가 그런 딸을 노려보더니 훈계했다.

“이게 네가 좋고 싫고를 따질 문제더냐?”

허영월이 불복하듯 입술을 오므리더니 말을 꺼냈다.

“둘째 오라버니도 아직 혼사를 치르지 않았잖아요.”

숙모도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네 둘째 오라버니는 혼사를 치르더라도 춘시가 끝나야 돼. 아직 급하지 않아. 우선 네 혼사부터 결정해야지.”

허영월은 두 볼에 공기를 불어넣더니, 천덕꾸러기마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평지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영월이가 출가할 나이가 된 건 사실이다. 에휴, 시간이 참 빠르구나. 눈 깜짝할 사이 이렇게 커버리다니. 시집을 가도 큰 오라버니처럼 훌륭한 대장부 같은 사람에게 가야지.”

옆에서 우습다는 듯 숙모가 피식했다.

허평지는 이어 물었다.

“부인, 봐둔 사람이라도 있소?”

“천천히 고르죠. 지금 나리와 의논하는 거잖아요.”

허신년이 가족들을 한 번 보더니 선포하듯 말을 꺼냈다.

“내일부터 운록서원에 돌아가 춘시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가 수신경에 들어서고 난 후, 장진 대유는 그를 운록서원으로 불러들였다. 한편으로는 옆에 두고 가르치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춘시를 준비하라고 다그치려는 것이다.

허신년이 가족들의 반응을 기다리듯 가족들을 한 번 훑었다.

숙모가 바로 살코기 한 점을 아들에게 집어주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우리 신년이가 훌륭하구나.”

허칠안은 만족한다는 듯 ‘음’이라고 했다.

* * *

아침밥을 먹고 난 후, 허칠안이 허부를 나서려 할 때, 뒤에서 소녀의 맑고 깨끗한 소리가 들려왔다.

“큰 오라버니…….”

허칠안이 고개를 돌려보니 허영월이 서 있었다. 그녀가 이내 속상한 듯 말했다.

“저 출가하기 싫어요.”

허칠안이 생각해보더니 벙긋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신년이랑 숙부한테 말해볼게. 숙모가 언제부터 그렇게 집안일에 대해 왈가왈부했다고.”

“허칠안!”

허영월 뒤에서 숙모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다시 한번 말해봐.”

이에 귀찮은 일이 생길까, 허칠안은 얼른 허부를 빠져나갔다.

* * *

허칠안은 빠른 속도로 야경꾼 관아에 도착해 호기루로 직행했다.

‘또 이 동라네…….’

수위는 통보하고 나서 신기한 눈길로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들여보냈다.

일반 동라는 위 공에게 직접 보고할 자격이 없었다. 그들 위에 은라와 금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위 공도 동라를 소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동라의 대우는 남달랐다. 그가 찾아올 때마다 위 공이 그를 소견했다.

* * *

칠층에 도착한 허칠안이 차실에 들어서자 전망정에 서 있는 위연이 보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대환관이 그를 등지고 서서 몸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허칠안은 어젯밤 일을 보고하러 찾아온 바였다. 야경꾼이 뒷심이 돼주고 위연 같이 든든한 방패가 있는데, 그는 홀로 그 비밀을 끌어안을 필요가 없었다.

위험을 줄일 수도 있거니와 위연의 신뢰도 얻을 수 있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였다.

‘나도 앞으로 당신과 같은 큰 사람이 될래…….’

허칠안은 속으로 위연을 못내 부러워하면서 그를 향해 공수의 예를 갖췄다.

“어젯밤에 지종의 금련 도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저를 해치지도 않았고 지서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지회에 가담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천지회…….”

위연이 몸을 돌려 차실로 걸어 들어왔다.

“천지회를 설립한 당사자가 바로 지종의 금련 도장과 몇몇 지종인이었습니다.”

위연이 경청의 자세를 보이자 허칠안은 자신이 준 정보가 무척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천지회의 핵심 인물은 아홉 명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지서’ 파편의 소지자이기도 하지요. 그들은 이름을 파편 번호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허칠안이 어젯밤 대화를 대략적으로 보고했다.

“현재 일호가 경성에 있고 세력이 꽤나 크다는 것과 이호가 운주에 있고, 비적 토벌에 전념하고 있는 조정 인원으로 추정된다는 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위연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서로 신분을 모르고 있다……. 금련이 자네와 또 무슨 말을 하던가?”

허칠안이 사실대로 말했다.

“지종에 문제가 발생했다 하면서 지종을 재정돈하기 위해 천지회를 설립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세월의 세례를 거친 대환관의 깊은 눈이 반짝거리더니, 허칠안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말해보게.”

“지종 도수가 입마하여 대다수 지종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마도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제정신으로 종문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들 또한 지서의 보호가 있어 가능했다고 합니다.”

허칠안은 금련 도장을 철저하게 팔아먹었다.

“그래서 금련 도장이 천지회를 설립하여 지서 파편을 유능한 인재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을 돕다가, 나중에 그가 지종을 정돈할 때 도움을 받고자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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