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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7화 (67/712)

67화. 서로 떠보다

‘음신!’

허칠안은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부으면서 방금 전에 나눴던 대화를 다시 되새겨봤다.

‘지금 상태를 봐서는 지종의 고수가 내게 악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노인네의 포섭 능력이 장난 아냐. 겉에 드러난 불분명한 단서나 흔적으로는 그들의 진짜 계획을 꿰뚫을 수 없다. 거울을 나에게 증여하고, 야경꾼의 손을 빌려 동문을 처단했다……. 그리고는 어부지리로 가장 큰 득을 보았지. 이것만으로도 포석에 매우 능한 노인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허칠안은 두려울 것 하나 없었다. 이미 자신을 위해 길을 하나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포석에 능한 자는 포석에 능한 자로 대처해야 한다.

‘위연!’

대환관은 학식이 장난이 아닐뿐더러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거느리는 데 조예가 깊었다. 오늘날 황제가 그를 야경꾼 최고 위치에 올려놓아 백관을 통제하도록 한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수단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성에서 살아남으려면 위연에게 빌붙어야 한다…….’

허칠안은 계획을 세우자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그는 ‘지서’의 파편을 들고는, 다시 한번 혼돈 속으로 들어갔다.

* * *

어슴푸레한 혼돈 속에 여덟 개 광점이 걸려 있었다. 그 중 가장 밝은 점 하나가 보였다.

‘육호!’

허칠안은 모든 광점을 일일이 짚은 다음 혼돈의 세계를 빠져나와 손가락으로 거울면에 글을 적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참 동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머쓱해진 허칠안은 다시 글씨를 입력했다.

“여러분, 소생 진근남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육: 진 형, 지서를 통해 도장과 연락하여 대략 상황을 파악했네. 이번에 도장이 위기를 넘기는 데 큰 도움을 주어 고맙네.]

[삼: 쉬운 일인걸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쉬운 일? 그날 자련 도사와 대화할 때만 하더라도 어리석어 보였는데, 경지도 높지 않고……. 그런데 금련 도장을 도와 자련을 없애고 구호 지서를 되찾다니……. 이 삼호, 자체 실력은 그냥저냥이지만 배경 세력은 남다른가 보네…….’

지서 소지자들은 저마다 삼호에 대해 추측했다.

이때 허칠안은 거울면에서 다른 한 구성원의 문자를 확인했다.

[이: 최근 들어 지서를 보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구: 얼마 전, 도수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지종에 돌아가 일을 처리하려다가 그만 매복 당했네. 대봉 경성까지 도망쳐서 목숨은 건졌지만 추격을 피하기 위해 봉인된 거울을……. 젊은 형제에게 선물했네.]

‘내 성별뿐만 아니라 나이도 눈치채버렸군.’

허칠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천지회에서 고수인 척 위장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구: 그 후로 진근남 형제의 도움을 받아 자련을 격살하고 위기를 모면했네.]

[이: 삼호, 어느 관아인거요?]

‘이건 주소를 알려 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질문이잖아. 내가 그렇게 쉽게 알려주겠냐고…….’

어떻게 답할까 머리를 굴리던 허칠안이 허신년의 말투를 흉내냈다.

[삼: 관아? 경성 관아들이야 하나같이 시위소찬(*尸位素餐: 직책을 다하지 못하고 급여만 받는 사람을 이르는 말)하는 사람들 아닌가.]

삼호의 말투를 보면 그는 관아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으로 추청됐다.

‘게다가 오만한 녀석이다. 경성에 분포된 세력이 거기서 거긴데. 우선 인종은 배제해야지. 금련 도장이 인종과는 협력하지 않을 테니까. 야경꾼은 경성 관아를 이렇게 보잘것없이 말하지 않을 거고. 그럼 사천감 혹은 운록서원?’

이 말투는 유가의 학문지상주의 서생들과 무척 유사했다.

거울 앞에 있던 이호와 육호의 추측이 일치했다.

[이: 일호도 경성에 있는데, 어쩌면 두 사람은 아는 사이일 지도 모르겠군. 일호, 거울 앞에서 사람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오늘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는가?]

[일: 내성 계월루에서 강호객 한 명이 죽었고, 동성 육십 리 밖의 산이 남모를 수단으로 구멍이 뚫린 것을 말하는 건가?]

일호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일: 이호, 운주(云州)의 비적들은 다 물리쳤는가?]

‘재미있군!’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는 이들 사이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감지했던 것이다.

이호는 삼호와 일호가 경성에 있다는 정보를 흘리면서 일호를 물고 늘어졌다.

이건 분명 일호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전의 대화를 통해 삼호가 경성에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호는 아직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 일절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호는 굳이 일호가 경성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일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이호가 있는 곳을 알리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정보 입수 능력을 과시했다. 이는 이호에게 반격함과 동시에 허칠안에게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호가 운주에 있다……. 비적……. 그도 관아 사람?’

운주는 해마다 비적들에게 해를 입었다. 이런 연유로 다른 주의 사람들에 의해 비주(匪州)라고도 불렸다.

‘동성 육십 리, 산에 구멍이 뚫렸다…….’

정보가 너무 적어 어떤 수행 체계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을 한 이가 높은 품계의 강자라는 것이다.

[이: 어찌 평정할 수 있겠는가? 대봉 황제가 머리가 텅 빈 원숭이마냥 맨날 어떻게 하면 신선이 될지에만 혈안인데. 아예 인간 세상에는 관심도 없잖은가.]

‘이 말을 보면 이호는 조정 녹봉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허칠안이 추측했다.

[이: 지나간 건 그렇다 치고, 올해만 해도 그래. 운주 각 부와 각 현의 호적을 모두 조사한 후 백성을 대상으로 일대일 조사를 진행해본 결과, 어림짐작해도, 최소 육백만 명이 도망쳐 유민 아니면 비적이 됐네.]

유민은 경작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금을 부담하지 못해 경작지를 버리고 도망친 백성을 가리켰다.

경작지가 없는 그들은 목숨은 부지해야 하니 구걸하거나 막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비적이 되어 노략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악순환은 계속 돌고 돌았다.

이호가 말을 이었다.

[이: 내가 열여 무리의 산적을 섬멸하면서 발견한 건데, 그들 뒤에 더 큰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었네.]

[일: 그럼 진전은 있는가?]

[이: 아니……. 요즘 경성의 형세는 어떤가?]

일호가 답하기 전에 허칠안이 먼저 문자를 입력했다.

[삼: 주 시랑이 무너지면서 정쟁이 막을 올렸네. 다만 주 시랑은 조금 황당한 이유로 무너졌네. 외아들이 미색에 빠져 위무후의 둘째 딸을 납치하려 든거지.]

허칠안은 이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일호를 넌지시 떠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조정과 대립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 시랑이 무너진 진짜 이유가 세은 사건때문이라는 내막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호는 결코 허칠안의 말을 시정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이에 실망했다.

[일: 금련 도장, 제가 알아봤습니다. 운록서운의 아성학궁이 봉인된 날짜가 갑자일이었습니다. 당일 운록서원에 외부인이라고는 장공주를 제외하면 허칠안이라 불리는 자뿐이었습니다.]

허칠안의 심장이 갑자기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일호는 도대체 뭐지? 왜 당시의 일을 조사한 거야……?’

허칠안의 머릿속에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신년이 날 데리고 운록서원을 돌아보았지. 그러다 내가 순간 북받쳐 오르는 정서를 못 이겨 비석에 네 구절의 비문을 남겼지.’

그러자 아성전(亞聖殿)에 청기충천(清氣沖天)하는 이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궁금했던 건 금련 도장이 운록서원의 이상에 마음을 쓰는 이유였다.

이 일은 국자감의 서생들이라면 모를까 지종의 도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일: 하지만 그 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시적인 재능이 있긴 하지만, 연정경의 무사일 뿐, 운록서원의 학생도 아니거니와 문인도 아닙니다.]

[구: 음, 알았네.]

[삼: 도장은 왜 운록서원의 이상에 마음을 쓰시는지요?]

허칠안이 떠보았다.

[구: 난 정 아성의 비석에 왜 균열이 생겼는지를 알고자 한 걸세.]

[삼: 그게 중요합니까?]

[구: 무척 중요하지.]

‘균열이 생겼단다…….’

허칠안은 금련 도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알려주더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삼: 여러분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이: 말해보게.]

[삼: 연금술은 사천감 특유의 기술입니까?]

허칠안의 이 물음은 그가 사천감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모든 사람이 그가 운록서원의 서생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허칠안이 학원 선생들이 무척 중시하는 학생이라고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높은 품계의 강자를 모셔서 자련 도사를 격살하지도 못했을 테니.

이 또한 허칠안이 바라는 바였다.

‘나를 운록서원의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난 실은 야경꾼이야. 앞으로 내가 야경꾼이라는 의심도 들겠지만 내가 진짜 운록서원의 학생이라는 것도 발견하게 될 거야. 게다가 내가 사천감 연금술사들의 반쪽짜리 스승이라는 것도 알게 되겠지.’

[육: 이 문제는 내가 대답하지. 600년 전에는 술사 체계가 없었네. 대봉 개국 이후에야 사천감에 술사가 나타났네.]

‘문파의 역사가 짧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거군. 다시 말해서 사천감 이외에는 연금술사가 아예 없다는 말이지……. 아니, 있긴 있겠지만 무척 적겠지. 아니면 내가 청서를 꺼냈을 때 연금술사들은 응당 이상하게 여겨야 했다. 연금술사들이 무척 강한 실전 능력을 겸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화학 이론과 지식을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군.

역사가 짧아서 전면적인 이론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건가? 그럼 세은 사건의 배후에 있는 연금술사는 또 누구란 말이야?’

수사 전문가인 허칠안의 마음속에는 세은 사건에 관한 의문점 하나가 여태 남아있었다.

사천감은 사건에 연루된 연금술사에 대해 무척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건 과학적이지 않았다.

저채미나 송경, 그리고 기타 백의들도 허칠안 앞에서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육: 삼호, 규정에 따라 삼호도 내 물음에 하나 답해줘야 하네.]

허칠안은 이 규칙을 그제야 발견했다. 일호와 이호의 대화를 보면 일문일답 형식이었다. 방금 전 자신이 억지로 끼어들어 일호를 대신해 경성 조정의 근황을 알려준 것이었다.

[삼: 묻게.]

[육: 유가 이품은 뭔가?]

‘내 신분을 떠보는 물음이다……. 운록서원 학생 여부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나의 사회적인 지위를 알아보려는 거야.’

일반 유가 학생들은 유가 이품이 뭔지 몰랐다. 당시 전종 대유의 일생 사적을 적은 비문도 그의 경지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나도 신년의 해석을 듣고 나서야 알았지. 신년이 이를 아는 것도 그가 추시에서 거인에 급제한 학생이기 때문이다. 운록서원 학생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우수생이니까.

설령 내가 운록서원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 물음은 유효하다. 유가 학생도 아니면서 유가 이품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무척 높다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답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들은 내 지위를 탐탁지 않아 하겠지.’

허칠안은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넣었다.

[삼: 유가 이품은 대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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