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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6화 (66/712)

66화. 야회

허칠안은 밥을 다 먹고 담을 넘어 자신의 별채로 건너왔다. 이 시대에는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어 무미건조한 밤 생활을 보내야 했다. 교방사에 가는 것 외에는 야밤에 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간을 때워야 했다.

허칠안은 방에 들어와 탁자 위에 놓인 부싯돌로 촛불을 켰다.

그러자 갑자기 온 몸의 근육이 극도로 긴장되더니 그대로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침상에 너덜너덜한 도포를 입은 늙은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백발은 흑단도잠(乌木道簪)으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닥이 흘러내려와 무척 어수선해 보였다.

그의 모습에선 소탈함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우리 또 만났군.”

늙은 도사가 고요한 시선으로 허칠안을 응시했다.

“지난번에는 연정경 무사더니, 지금은 연기경이 됐구먼. 참으로 복이 많은 청년일세.”

탁자 옆에 선 허칠안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도장께서 이 늦은 밤에 민가에 침입한 의도가 뭡니까?”

늙은 도사는 허칠안의 적대감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담담한 말투를 유지했다.

“할 말이 있어 찾아왔네. 자련 사제가 이미 우화(羽化)되었네.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죽인 겁니까?”

“아니, 우화를 도왔을 뿐이네.”

‘그럼 오늘 밤은 나의 우화를 도우러 온 건가? 홀로 자련을 대적할 수 있었으면 보물을 버릴 필요가 없었겠지…….’

허칠안이 추측하기로 늙은 도사는 지금 어부지리를 탐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사전에 함정을 만들었냐 이거지. 아, 알았다. 또 나를 미행한 거야.’

늙은 도사가 허부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미행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허칠안의 야경꾼 신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부의 자객, 야경꾼, 늙은 도사……. 난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환생자일 뿐인데, 너희들은 왜 나를 자꾸 미행하냐고.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다. 보물을 나에게 줬는데, 어찌 나를 미행하지 않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겠는가…….’

허칠안이 넌지시 떠보았다.

“도장은 그럼 지서를 가져가려고 온 겁니까?”

늙은 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내겐 이미 있네.”

그가 옷소매에서 옥석경 하나를 떨어뜨렸다. 허칠안의 가슴에 있는 것과 똑같다.

“이건 빈도의 사제가 가지고 있던 구호 파편이네. 결국 내 손으로 돌아왔지만. 자네에게 있는 건 빈도가 자네에게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게.”

허칠안이 답하기도 전에 늙은 도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서 파편은 모두 아홉 개라, 빈도가 각각 서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네. 자네도 빈도가 선택한 사람인 거지. 자네 말고 일곱 명이 더 있는데, 그들이 천지회를 설립했네.”

“그들은 누굽니까?”

늙은 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들 모두 각자 신분이 다르네. 정 궁금하다면 직접 물어볼 수는 있네. 이미 지서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빈도는 그 누구의 신분도 누설하지 않을 것이야. 물론 자네 신분도 말이야. 빈도가 오늘 이 밤에 찾아온 건 자네를 천지회의 일원으로 청하기 위함이네.”

“저 말입니까?”

허칠안이 경계하며 질문했다.

“저는 금방 연기경에 입문한 무인입니다. 저의 어떤 면이 도장의 마음에 든 겁니까?”

“빈도가 말했잖은가. 자네는 복 많은 사람이라고.”

허칠안의 마음이 움찔했다.

‘과연 이 늙은 도사가 나의 괴이한 운을 알아봤구나.’

드디어 내막을 아는 사람을 만나 의혹을 풀 수 있을 듯했다. 자주 은자를 주워 기쁘기는 하지만 마음 한편은 항상 불안했다.

‘필경 나는 착실한 사람이니까.’

그는 자신의 이상야릇한 운을 바로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했다.

“설명을 좀 더 해주시지요.”

도호(道號)가 금련인 늙은 도사가 느긋하게 말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빈도가 심한 부상을 입어 경성으로 몸을 피했네. 그런데 직감이 말해주기를 나의 위기를 해결해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거지. 그래서 길가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네. 그러다가 자네를 만나게 된 거고. 다만 난 자네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 그 출처가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모르겠네.

그런데, 당시 마차에 앉은 그 여인은 남다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었고 깊이도 남달랐네. 세상에 보기 드문 사람이었지. 자네가 팔찌를 선물했으니 앞으로 두 사람은 모종의 인연으로 엮일 걸세.”

늙은 도사는 사리에 맞는 말만 골라 했다. 다만 뭔가를 분명하게 콕 짚어 말하지 않았다.

‘이건 귀신 들먹여 사기 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허칠안이 물었다.

“저를 선택한 것처럼, 천지회 기타 일곱 명도 선택했습니까?”

“그렇다네.”

“그럼 이유를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늙은 도사가 벙긋 웃더니 말을 꺼냈다.

“물론. 다만,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을 텐데, 괜찮겠나?”

허칠안이 한참 고민에 빠지더니 이해득실을 따져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죠.”

머리를 끄덕이던 늙은 도사가 입을 열었다.

“빈도가 하는 모든 일은 지종을 살리기 위함이네.”

‘지종을 살린다고?’

“이상하지 않던가? 지종은 공덕의 힘을 수행하는데, 자련 사제가 자네를 죽이려다가 자네 대신 거래 장소에 나간 사형수를 죽였지. 이건 지종의 수행 이론과 완전히 상반되는 행위지 않은가.”

‘구호가 나를 대신해 거래 장소에 나간 사람을 죽였다고?’

허칠안은 오싹한 마음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위연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허칠안은 거래 과정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늙은 도사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보물과 황금에 눈이 멀지 않고 마음에 따라 움직이기를 잘했구먼.’

위기를 모면했거니와 충심을 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일은 지종의 기밀일세. 절대 밖으로 누설해서는 안 돼.”

이에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 도사는 그런 허칠안을 보면서 바로 말을 잇지 않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한탄하면서 입을 열었다.

“지종의 당대 도수가 입마(入魔)했네. 그래서 지종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마도(魔道)에 들어섰네. 나를 포함한 극소수의 사람만이 도수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 우리를 지켜준 게 바로 이 지서라네.”

“입마?”

허칠안은 이를 믿기 어려웠다. 지종은 공덕을 수행했다.

‘문파의 도종(*道宗: 지종 일인자를 뜻하는 명칭)으로서 무한한 공덕이 쌓여 길가에서 은자 한 냥쯤 줍는 건 무척 보편적인 일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입마하다니……. 이 사회가 정녕 이렇게 냉혹하단 말인가?’

“성공도 공덕에서 비롯된 것이요, 실패도 공덕에서 비롯된 것이지.”

초점 없는 금련 도장의 눈은 가물거리는 촛불만 바라봤다.

“도덕천존이 지종을 개척할 당시 남긴 교훈이 있네. 복과 화는 따로 지정된 것 없이 모두 자초한 것이고, 선과 악의 열매는 그림자 같이 따라다닌다고.”

‘알아듣게 좀 말하시오…….’

허칠안이 속으로 투덜댔다.

“자네는 사람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공덕이라고 여기는가?”

도장이 물었다.

“그럼 아닙니까?”

허칠안이 반문했다.

“자네가 구한 사람이 천벌을 받아 마땅할 악인이라면? 자네가 살려줌으로 인해 악인이 계속하여 악행을 저지른다면?”

도장이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것도 선한 일을 했다고 할 수 있겠나?”

허칠안은 순간 사색에 잠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살을 조금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인간성은 변덕이 심하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항상 엇갈리죠. 어두운 면을 한 번 봤다고 세상을 미워하고 광명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을 구하기 전에 그 사람의 과거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나서 구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허칠안의 말을 듣자 늙은 도사가 갑자기 허리를 쭉 펴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봤다.

“자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제는 시름 놓고 지서를 자네에게 맡겨도 될 것 같군. 일반인이면 위에 말했던 원칙에 따라 행해도 무방하네만 우리에게는 이게 가장 무서운 인과일세. 공덕을 쌓으면 쌓을수록 인과도 무거워지는 법이지.

도수는 한평생 선행하며 덕을 쌓았네. 하지만 일갑자(*60년) 전에 도겁(渡劫)에 실패하면서 인과의 역효과에 의해 마도에 빠졌네. 사물이 극에 달하면 필히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소리겠지.

공덕으로 도를 증명하려면 받드시 그에 해당하는 인과를 감당해야 하네. 그래서 지종인이라면 일념(一念)에 신이 되고, 일념에 마(魔)가 되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한다네.”

‘지종에 이렇게 은밀한 비밀이 있었구나! 그때에는 유가의 가르침을 받아야지. 소위 군자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 극단에 치우치면 오래 가지 못한다…….’

허칠안은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를 떠올리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나의 그 특이한 운들이 지종과 근원이 같다면, 그럼 나도 입마의 위험이 있다는 거 아니야?’

늙은 도사를 여전히 완전히 신뢰할 수 없던 허칠안은 입으로 튀어나오려는 물음을 애써 다시 삼켰다.

“천종과 인종은 관계하지 않습니까?”

허칠안은 기회를 잡았다 싶어 내막을 알아내려고 넌지시 떠보았다.

“어쨌든 도문이 아닙니까?”

“지종에 입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똑같이 도문에서 갈라져 나간 천종과 인종에는 이와 유사한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가 피식 웃었다.

“게다가 우리 지종의 일인데,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러니까 천종과 인종의 위험은 도대체 뭐냐고? 아, 일갑자! 천지회도 일갑자 전에 생겼잖아.’

이건 허칠안이 열람한 자료와 맞먹는 정보였다.

“도장이 천지회를 설립한 목적은 그럼…….”

도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도수(道首)를 멸하고, 지종을 다시 정돈하는 것일세.”

“지종 도수(道首)는 무슨 경지입니까?”

“이품.”

‘……얼른 거울을 가져가세요. 내가 그래도 기개가 있는 사람인데 이런 뇌물은 안 받습니다.’

오관이 뚜렷한 늙은 도사가 허칠안의 속내를 읽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공덕을 수행한 지 수십 년이 되는데,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사람 보는 눈만은 정확하네. 자네를 포함한 여덟 명은 앞으로 큰일을 해낼 인물들이야.

자네 여덟 명은 지금은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한 곳에 모일 운명이네. 하루빨리 천지회에 가담해 친분을 쌓는 게 좋지 않겠는가? 아니면 나중에 대립하는 신분으로 만나 사상(死伤)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

천지회 가담에 거부감을 가졌던 허칠안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었다.

늙은 도사의 말이 진실이라면, 천지회에는 모두 인재들만 모여있을 터였다. 이런 사람들과 친분이 있으면 자신에게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좋습니다.”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에 늙은 도사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지서를 통해 나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네. 아니면 지서를 통해 다른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만약 그들 중 경성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 서로 돕는 것 또한 천지회 설립의 취지 중 하나니까. 그리고 지서 소지자는, 지서 번호로 서로를 부르곤 한다네.”

늙은 도사는 말이 끝나자 연기로 변하여 방을 떠나 먼 곳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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