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창의(枪意)
피풍의 차림의 강호객은 계월루를 떠나 자신이 타고 왔던 준마에 올라타, 느긋한 속도로 내성을 지나 외성을 벗어났다. 관도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전속으로 내달렸다.
한 시진쯤 미친 듯이 달렸더니, 차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노천 차점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낡은 탁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주인은 백발노인이었다. 아직은 손님이 없는지 노인 혼자 탁자 옆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준마가 소리를 길게 내며 앞발굽을 높이 들더니 멈춰 섰다.
그는 말고삐를 길옆 말뚝에 매고, 좌우를 한 번 살핀 후 차점으로 걸어갔다.
피풍의 차림의 남자가 가슴에서 옥석경을 꺼내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치며 말했다.
“방주(帮主), 제게 맡긴 임무를 완성했습니다.”
백발노인이 옥석경을 받아 쥐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을 달고 왔구나.”
이 말에 멍해진 그가 반응할 겨를도 없이, 노인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피풍의 차림의 남자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펑!
거꾸로 날아가던 남자는, 예리한 기기와 부딪친 것마냥 곧바로 폭발하더니 먹물을 뿌리듯 피를 사방으로 튀겼다.
노인이 실눈을 뜨면서 관도의 끝을 바라봤다. 우뚝 솟은 건장한 체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타날 때만 하더라도 관도의 저 끝에서 보였으나, 고작 몇 호흡이 지나자 노인과 백 미터 차이도 나지 않았다.
“양연, 위연이 키운 개 같으니라고.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라.”
안면마비 양연이 무표정으로 한마디 뱉었다.
“굳이 참견하겠다면!”
이에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럼 목숨을 잃어도 탓하지 말거라!”
노인이 입은 소박한 도포가 출렁대더니, 검은색 연기가 체내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스산한 울음소리를 냈다.
양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종은 공덕을 수행하는 거 아니었나? 언제 이렇게 기괴망측한 요술을 익힌 거지?”
노인의 얼굴에 검은색 혈관이 거미줄마냥 얼키설키 일어났다. 노인의 동공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악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내가 너를 도덕천존에게 보내주마. 직접 물어보렴.”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순간 공중에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양연을 향해 덮쳐왔다.
양연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는 두 손을 주먹 쥔 채 서로 맞댔다.
펑!
난폭한 기기가 양연을 중심으로 물결 퍼지듯 확산되더니, 도중에 풀과 먼지를 말아 올리면서 검은색 막에 부딪쳤다.
하늘에 검은빛이 서리며 얇고 매끄러운 반원형의 대진(大阵)이 나타났다.
“내 이 백귀진(百鬼阵)은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어렵다. 네가 사품 무사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죽어야 할 거다.”
노인의 쉰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양연의 기기에 맞아 흩어졌던 까만 연기가 공중에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양연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 진법은 사천감의 진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천감의 진법은 천지의 힘을 빌렸기에 오랫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도문의 진법은 인간의 힘으로 배치하였기에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이 백귀진은 무척 까다로웠다.
도문은 원신(元神) 분야에서는 수행체계 중에서도 일등이었다. 도문의 육품 음신(阴神)은 고대에 귀차(鬼差)라고도 불렸다. 밤에 사람의 혼을 부르고, 인간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뜻이었다.
이 백귀진도 그와 유사한 수단이었다.
무사도 원신을 연마하지만 그저 방어에 힘을 보탤 뿐 공격은 불가능했다.
“내가 듣기로 도문의 팔품은 식기(食氣)로서 법보(法寶)를 통해 천뢰(天雷)를 부를 수 있다던데, 내게 보여주지 않을 텐가?”
양연이 무표정하게 경멸의 어조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바로 보여주지!”
격노한 노인이 옷소매에서 두 갈래의 핏빛을 뿜어냈다. 마치 핏빛 번개 같았다.
양연은 피하지 않고 두 갈래의 핏빛 번개를 맞았다.
두 갈래의 핏빛 번개가 그의 유삼을 찢더니 반사되어 나갔다.
‘동피철골!’
“왜 반격을 하지 않느냐?”
노인이 격노하여 소리쳤다. 검은색 혈관이 거미줄마냥 얽히고설킨 노인의 얼굴은 흉악하지 그지없었다.
“내 창(枪)을 기다리고 있다.”
양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왔군!”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저 하늘 끝에서부터, 긴 창 하나가 은백색 빛을 그으며 날아왔다.
매끄럽고 얇은 공기망이 소리와 함께 바로 깨지더니 빛이 지나온 자리의 검은색 연기가 증발했다.
“내부에서 진을 격파할 수 없다면 밖에서 격파하는 거지.”
양연이 손을 내밀어 긴 창을 들었다. 은색의 장창이었다.
그러자 양연이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장창과 한 몸을 이룬 듯했다. 그러더니 그가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노인을 향해 창을 찔러왔다.
노인의 핏빛 동공에 은빛이 서렸다. 노인은 백전불마(百战不磨)의 창의(枪意)를 막아낼 수 없었다. 이는 사품 무사의 창의(枪意)였다.
“안 돼!”
노인이 입을 벌려 핏빛과 검은빛을 발하는 금단(金丹)을 뱉어 장창을 들이받았다.
금단이 창의에 부딪쳐 가루가 되었다. 노인의 몸체 또한 창의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은색 빛은 계속하여 수백 장을 더 날아가더니 산까지 뚫었다.
노인은 자신의 몸체를 공중에 다시 모았다. 그는 허상도, 실상도 아닌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원한이 서린 지독한 눈빛으로 양연을 노려보더니 한 줄기의 연기가 되어 먼 곳으로 사라졌다.
허리를 굽혀 옥석경을 주운 양연은 은창을 메고 경성 방향으로 돌아갔다.
* * *
검은색 연기는 수백 리를 도망쳐 어느 한 마을 위에서 멈췄다.
노인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검은색 연기 가운데 나타나, 마을을 굽어봤다.
음신(阴神)은 낮에 오랫동안 활동할 수 없었다. 육신이 없으면 실력 또한 무척 떨어지기에 뒤따라오는 위기를 모면하기가 어려웠다.
노인은 한시바삐 육신 하나를 차지해야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영혼을 삼켜 몸을 보양할 계획을 세웠다.
검은색 연기가 가볍게 마을로 내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력이 넘치던 마을이 갑자기 깨지고 부스러졌다. 이때 오색 공덕으로 형성된 막이 피어오르더니 검은 연기를 가두었다.
진법 중앙에는 너덜너덜한 도포를 입은, 오관이 뚜렷한 늙은 도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 * *
이른 아침, 허칠안은 늦지 않게 야경꾼 관아에 도착해 점호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지서’ 사건에 관한 후속 조치를 기다렸다. 결과를 알기 전에는 마음 한편이 계속 불안했기 때문이다.
점심이 가까워질 즈음,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하급 관리가 춘풍당 옆에 있는 편청에서 그를 찾아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허 대인, 위 공께서 부르십니다.”
‘드디어 왔구먼…….’
허칠안이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답했다.
“알겠네.”
* * *
호기루, 차실.
허칠안은 우아한 품위를 지닌 대환관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하늘색의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눈에는 형용 불가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밖에 키가 크고 냉엄한 표정의 남성이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다탁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탁자 옆에 앉아 있던 위연이 차를 음미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 거울은 이미 자네를 주인으로 인정했으니 자네가 잠시 보관하게. 맨 처음 자네와 연락한 사람은 지종 사람이 맞았네. 자네를 필히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도 사실이고.
양 금라가 이미 그 사람을 격퇴했으니 잠시 동안은 위험이 없을 걸세. 앞으로 오랫동안 자네 집 부근에 야경꾼의 암장(暗桩)을 붙일 걸세.”
허칠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위연의 행동은 결코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제 구호에게 답장하라고 할 때부터, 눈앞의 대환관은 이미 살기를 드러냈었다.
그가 불만이었던 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놈이 도망쳤으니 위험은 여전히 잠재해 있었다.
“지종의 음신은 그림자도 형태도 없어 소멸하기가 어렵네.”
위연이 설명을 덧붙이고는 고개를 떨어뜨려 차를 마셨다.
이건 서로 체계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양연이 손을 휘두르자 거울이 허칠안의 눈앞에 날아와, 공중에 둥둥 떴다.
허칠안은 거울을 받아 품에 넣고 읍한 후 호기루를 떠났다.
앉은 자세에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는 양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의부님, 저는 음신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위연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잡을 필요가 뭐 있겠나?”
위연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양연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양연을 보면서 위연이 웃음을 짓더니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네가 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해낼 거다.”
* * *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를 나왔다. 그는 콩 볶음을 두 봉지 사들고 직속 상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춘풍당을 찾았다.
이옥춘은 탁자 앞에서 열심히 자료를 열람하면서 머리도 들지 않았다.
“춘 형, 콩 볶음 사왔습니다.”
허칠안의 입에서 순간 ‘춘 형’이란 호칭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춘 형?’
이옥춘이 고개를 들더니 엄숙한 기색으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대장.”
허칠안이 덧붙였다.
“거기 놓아라.”
말이 끝나자 이옥춘은 다시 자료에 머리를 파묻었다.
허칠안이 목을 내밀어 자료를 힐끔거리면서 말했다.
“대장, 초석광 사건을 조사하고 계시는 겁니까?”
“주광효는 상처를 치료하고 있고, 송정풍은 기회다 싶어 농땡이를 치는데, 너는 왜 집에 있지 않고 여기 왔느냐?”
이옥춘이 한 마디 묻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 사건, 내가 맡게 됐다.”
“할 일도 없고 해서 관아에 나와 이것저것 익히려고요. 이 일은 요족과 관련된 겁니까? 기밀이라면 질문 취소하겠습니다.”
허칠안이 넌지시 떠보았다.
이옥춘은 콩 볶음 몇 알을 입에 넣어 까닥까닥 씹으면서 말을 꺼냈다.
“사건의 상세한 사항은 말해줄 수 없지만,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만 골라 말해주마. 지금 우리가 의심하는 건, 만요국 잔여 세력이 경성 부근에 잠복하고 있다는 거다.”
“만요국?”
허칠안의 머릿속에 ‘갑자탕요(甲子荡妖)’에 관한 역사가 떠올랐다.
“만요국은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만요국 잔여 세력들이 온갖 계략을 다해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우려고 하고 있지. 불문이 서역(西域) 열국을 통솔하여 실력이 무척 강한지라 전성기 시대의 만요국이라도 상대가 안 돼. 땅을 되찾으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할 거야.”
“그래서 우리 대봉의 화약에 눈독 들인 겁니까? 그 요물이 주변의 회호를 쫓은 것도 화약때문이고요?”
허칠안은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옥춘은 지금 몹시 바쁘다는 듯 물었다.
“그래, 또 다른 일이 있더냐?”
이에 눈치 빠른 허칠안이 답했다.
“없습니다. 일 보십시오. 저는 편청에서 토납하고 있을 테니 분부가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십시오.”
이옥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이 나간 후, 이옥춘은 자료를 열람하면서 콩 볶음을 먹다가 그만 콩 볶음 봉투를 땅에 떨구고 말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콩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이옥춘이 고통스런 표정을 짓더니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 * *
편청.
허칠안이 옥석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기기가 폭주하더니, 바로 멈췄다.
허칠안은 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대환관이 그더러 옥석경을 보관하도록 한 의도를 고민했다.
피를 떨어뜨려 주인을 정했다지만 늙은 도사가 거울을 그에게 맡겼다는 것은 주인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보잘것없는 동라에게 이렇게 중요한 보물을 보관하게 하다니? 그래, 우선 고민하지 말자. 암위가 집 주변을 지킨다고 하니 숙모와 동생들의 안전은 잠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지종의 고수를 물리쳤으니 단시간 내에는 다시 경성으로 오지 않겠지.’
허칠안은 당직이 끝날 때까지 토납했다.
‘오늘 밤에는 부향을 찾아갈까? 아님 부향을 찾아갈까? 아님 부향을 찾아갈까? 음, 안 돼, 안 돼. 지금은 돈을 모아 집을 사야하는 때야. 숙부와 가족을 내성으로 데려와야지 더 안전하다…….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허비해서는 안 돼. 부향 기녀는 친분을 중히 여겨 돈을 받지 않지만 여종이나 무희들에게는 은자를 줘야 하니까. 은자 몇 전도 돈이다.’
허칠안은 큰 결심을 내리고 방향을 돌려 내성을 떠났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초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