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놀랍고도 무서운 일
그의 추리는 계속됐다.
‘내 이상한 운도 하나의 공덕이다?’
하지만 허씨 가문은 십팔 대를 거슬러 올라가 봐도 도문은커녕 관리 하나 없었다. 지금쯤 와서야 조금 나아졌지만 허평지의 형제 둘은 또 칼을 휘둘러 타인의 목을 자르는데 조예가 깊었다.
이때 하급 관리가 차를 가져오면서 말을 건넸다.
“대인, 지금 인종의 자료를 찾고 계십니까?”
‘아니, 지종 자료를 찾는 건데…….’
허칠안이 반문했다.
“인종?”
“우리 국사가 바로 오늘날 인종의 도수(道首)시잖아요.”
하급 관리가 말을 이었다.
“위 대인은 그 여도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여도수……. 아, 그 전설 속의 절세미인이라는 여도사?’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과거 폐하이 도(道)에 빠져 장생불사를 목적으로 절세미인의 여도사를 국사로 책봉한 것만 알았지, 그 여도사가 인종 도수인 줄은 몰랐다.
‘사천감의 술사, 도문 인종, 야경꾼, 유가의 운록서원, 대봉 군대, 조정 문무백관……. 작은 못 같은 경성에 교룡들만 득실득실하구먼. 그래서 ‘구호’가 천지회 사람들이 경성에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구나.’
그러다가 허칠안의 머릿속에 웃기는 장면이 떠올랐다.
금련 도장: 어디 한 번 들어와 보시지.
천지회 자객: 들어가는 즉시 별세야.
허칠안은 입꼬리를 움찔거리다 말을 꺼냈다.
“천지회 자료를 더 찾아주게. 음, 그러고 지서에 관해서도. 음, 내가 갑, 을, 병 세 개 창고에 가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
허칠안의 말을 듣던 하급 관리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을과 병은 각각 금라와 은라에 해당하는 창고입니다. 갑 창고는 위 공의 친필 서신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인께서 찾으시는 천지회와 지서 자료는 ‘정’ 창고에 있습니다.”
말을 듣던 허칠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급 관리가 추가 설명을 했다.
“천지회는 딱 들어봐도 강호 조직이고, 지서는 전설 속의 상고 법보 아닙니까. 두 가지 모두 기밀이 아니라서요. 제가 책자를 가서 찾아보겠습니다.”
하급 관리는 말이 끝나자 바로 안내처로 돌아갔다.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허칠안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방금 전 오류를 범했구나! 옛날 물건일수록 기밀인 줄 알았더니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옛 물건일수록 값이 떨어진다……. 음, 이건 가격 문제가 아니다. 골동품은 여전히 값이 나가니까. 이건 기밀 등급 문제다.
진짜 기밀은 오히려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군사 정보, 변방 배치, 화약 조제법, 공성(攻城)기기, 조선(造船) 도면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머지않아 갑 창고에 기밀문서 하나가 추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인간과 야수의 잡교 비적>. 저작자는 송경, 허칠안.’
얼마 지나지 않아 하급 관리가 ‘지서’와 천지회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왔다.
허칠안은 자료를 받자마자 펼쳐보았다. 천지회는 그의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조직에 대해 알아봐야 했다.
강호에는 조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문파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부당한 수입을 긁어모으긴 했으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조정의 관할에 복종했던 것이다. 일부 세력이 센 강호 조직들만 조정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사회의 일부 지역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가끔은 자발적으로 비적들도 토벌했다.
천지회는 그 중에, 눈에 띄지 않는 강호 조직이었다.
천지회에 관한 가장 이른 기재는 일갑자 전의 기록이었다. 그 해, 운주에는 가뭄이 심했다. 운주의 유민들은 비적으로 전락해 가는 곳마다 약탈을 강행했다.
자연재해와 인적재해가 도처에 만연했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 강호 조직들은 힘을 합쳐 비적들을 물리쳤다. 천지회도 그 중 하나였다.
‘의협심이 있는 조직인가 보군. 음, 좋은 일 한다고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 마치 자선을 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선을 베푸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야.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허칠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계속해서 내리 읽었다.
천지회는 활약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은폐 성질을 띠었다. 천지회 관련 기록이 거의 없었다.
허칠안은 자료를 다 보고나서도 별로 큰 수확이 없어 씁쓸했다.
‘수확이 없는 게 오히려 정상이지. 지종 고수마저 경성으로 도망치게 한 조직이라면 분명 무척 방대하고 강한 조직일 것이다…….
이런 조직이 야경꾼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는 건 합리적이다. 춘 형에게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야경꾼 공문서 창고를 더 보완하게.
음……. 당분간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허칠안은 이 사실을 위에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공로가 될 만한 일이긴 하나 황금 오백 냥과는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서 같은 보물이야 보는 사람마다 탐내겠지. 어느 금라가 눈독 들여 나더러 바로 국고에 상납하라고 하면…….’
허칠안이 책자를 덮고 ‘지서’ 관련 자료를 펼쳤다.
지서는 상고 법보였다. 유래는 알 수 없었다. 탄생 연도도 검증할 수 없었고, 그저 도존이 남겼다는 것만 기재되어 있었다.
자료에는 심지어 지서의 기능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상고 법보는 천지로부터 자생한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러한 보물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피를 떨구어 주인을 정한다는 것이다.’라는 비고가 적혀있었다.
‘피를 떨구어 주인을 찾는다…….’
허칠안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송경이 그에게 선물한 법기나 야경꾼의 동라는, 기기만 주입하면 사용이 가능했다. 워낙 도구에 불과하기에 주인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그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피를 떨구어 주인을 정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허칠안은 가슴에서 옥석경을 꺼내 탁자 위에 놓더니, 패도를 이 촌정도 뽑아 손끝을 패도 끝에 조금 대어 눌렀다.
빨간 피가 보이자 그는 이를 옥석경 표면에 발랐다.
옥석경에 묻은 피는 몇 초간 거울 표면에 머물러 있다가 점점 사라졌다. 거울에 흡수된 것이다.
그러자 허칠안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책자, 탁자, 찻잔 모두 가물거리더니 순간 혼돈에 빠졌다.
그는 혼돈 속에서 여덟 개의 광점(光點)을 발견했다. 그 여덟 개 광점(光點)은 혼돈세계에 있었다.
‘이 여덟 개의 광점은 기타 여덟 개의 거울을 상징하는 건가? 나까지 합하면 마침 아홉 개다…….’
허칠안은 광점(光點)을 훑으면서 [구호]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구호가 어느 광점(光點)인지 알 수 없었다.
‘음……. 아무 광점이나 친구로 추가하지 뭐!’
허칠안이 손을 들어 가장 가까운 광점을 가리켰다.
광점이 순간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서, 혼돈 세계의 제반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이 눈앞의 시야가 회복되었다. 허칠안의 몸은 여전히 공문서 창고 열람실에 있었고, 눈앞에는 책자와 찻잔과 평범하기 그지없는 옥석경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방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를 떨구었더니 옥석경과 허칠안 사이에 뭔가 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심오한 소속감이랄까?’
이때 거울 표면에 한 줄의 글씨가 나타났다.
[육(陆): 구호를 믿지 마라. 응답마지 마라. 응답하지 마라. 응답하지 마라…….]
조용한 열람실. 이 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허칠안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조여왔다.
허칠안은 놀란 마음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넋을 잃어 괴이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려 했다.
‘[육호]는 방금 전 내가 가리킨 그 광점일 거고……. 그럼 무슨 뜻이지? 구호가 날 속인다고? 구호가 날 속인 거라면 그 이유는? 구호가 나를 속이는 줄 알면서 육호는 왜 좀 더 빨리 알려주지 않았는가? 구호를 믿을 수 없다면 육호도 마찬가지로 의심스럽다. 그래, 난 누구도 안 믿어.’
허칠안은 숨을 한 번 크게 쉬더니 손가락으로 글씨를 입력했다.
[삼: 당신은 누군데? 무슨 근거로 구호를 믿지 말라는 거지? 당신 천지회 사람이지?]
[육: 그렇다.]
‘이렇게 시원하게 인정한다고…….’
허칠안은 몇 초간 침묵하더니 다시 글을 썼다.
[삼: 방금 전은 무슨 뜻인가?]
[육: 지서는 천지회 소유네. 구호는 지종의 사람이고. 그들은 흉악하고 잔인한 미친놈들이니 그들과 절대 접촉하지 말게. 생명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네.]
[삼: 당신은 나와 구호가 연락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육: 삼호의 파편은 지종에 의해 봉인되어 우리와 서신 전송 능력을 잃었네. 하지만 지종 사람들은 구호 파편으로 삼호를 찾을 수 있네. 이게 바로 금련 도사가 파편을 포기하고 당신에게 건넨 이유지.]
‘……다시 말해서, 내가 구호와 거래를 하지 않아도 구호를 통해 그 사람은 나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이지? 그래서 나더러 얼른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고 주도권을 나에게 넘겨 나더러 장소를 정하라고 한 거였구나.
또 그래서 어제 구호에게 천지회 사람들이 [지서]를 통해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바로 화제를 돌린 거고…….’
허칠안의 머릿속에 세부적인 단서들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는 밑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거래를 선택하면 나를 죽이고 가져갈 수 있고, 내가 거래를 하지 않으면 시간을 끌어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머리가 지끈거려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육호가 계속하여 문자를 보내왔다.
[육: 지서는 일체라 우리는 지서를 통해 당신과 구호의 대화를 볼 수 있네. 그걸 지켜보는 동안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네. 당신이 피를 떨구어 지서의 주인이 되고, 나와 관계를 맺어서야 이렇게 연락할 수 있었네.]
[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육: 당신이 지서를 천지회에 돌려주기를 바라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주소를 보낼 테니 사람을 시켜 그곳으로 보내주게.]
‘그 노인네가 황금 오백 냥을 내겠다고 했지…….’
허칠안은 거울 표면을 빤히 쳐다보면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육호가 좋은 사람일지 어떻게 알아? 어쩌면 오히려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걸지도.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가면 경찰학교를 괜히 다녔던 거지…….’
허칠안이 답장했다.
[삼: 지서는 천지회의 보물이고, 구호가 지종의 사람이라고 하니 그럼 지종이 지서에 눈독 들이고 있다는 건가?]
야경꾼 내부의 기록에 따르면 지서는 도문 지종의 보물이라고 했다. 천지회는 일개 강호 조직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금 전 육호는 지서가 천지회의 물건이고, 지종이 지서에 눈독 들이고 있다고 했다.
만약 육호가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지 못한다면 허칠안은 그를 차단하려고 마음먹었다.
[육: 지서는 지종의 보물이 맞네.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지. 지금은 천지회 소유네. 천지회는 일부 지종인들이 설립했거든.]
[삼: 그건 무슨 말인가?]
[육: 이 일은 지종의 비밀과 연관되어 지종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외부에 누설하기 어렵네.]
[삼: 알겠네. 그럼 주소를 남기게.]
[육: 내성 양수가, 장씨 비단 점포 맞은편 저택. 정원에는 비파나무 한 그루가 있네.]
허칠안은 이제야 냉정하게 사고를 회복했다. 허칠안이 식어가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현재, 그의 앞에 놓인 건 세 가지 선택이었다.
1. 육호의 말에 따라 거울을 돌려준다. 그는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육호의 신분을 고려할 필요도 없거니와 구호가 자신을 찾아낼까 봐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 일에서 자신의 흔적은 지우면 그만이다.
2. 구호와 거래한다. 단점이라면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도 있지만 좋은 점이라면 황금 오백 냥을 벌 수 있다.
3. 지서를 야경꾼에게 맡겨 공로를 세운다.
만약 그가 지금 장락현아 포졸이었다면 무조건 첫 번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안전하니까.
‘하지만 이제 난 야경꾼이 아닌가. 외부 세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대봉 경성은 용과 호랑이의 구역이다……. 그들은 심지어 경성에 들어 오지조차 못하고 있다. 야경꾼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공로가 없으니, 이 일로 창창한 미래를 일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보물을 아문에서는 아마 무척 기뻐하면서 받겠지. 위연, 그 대환관도 절대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허칠안은 지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했다. 그는 책자를 하급 관리에게 돌려주고 자신의 요패를 받아 위풍당당하게 공문서 창고를 나섰다.
허칠안은 사람이 없는 모퉁이에서 옥석경에 보관했던 쇠뇌, 식골작심, 호심경과 춘 형이 돌려준 은표 사백 냥을 꺼냈다. 그는 물건들을 잘 보관한 다음, 야경꾼 관아의 가장 높은 건물인 호기루로 찾아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