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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2화 (62/712)

62화. 도문 지종(地宗)

“큰 오라버니, 술을 드셨네요. 저녁을 드셨다니 저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허영월은 허칠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허칠안은 되레 감동받은 상태였다.

‘이 집에선 숙부가 아닌, 눈앞의 여동생이 내게 가장 잘해주는구나.’

“날이 어두워졌으니 홀로 걸어다니면 위험해. 오라버니가 바래다줄게.”

허영월은 거절하지 않았다. 허부 본채의 정문은 별채의 대문에서 이삼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인이 홀로 밤길을 걷기에는 안전하지 않았다.

허영월이 생각 못했던 것은, 허칠안이 대문 방향이 아닌 정원의 모서리로 걸어갔다는 것이었다. 허칠안은 허영월의 허리를 안고 뛰더니 담을 훌쩍 넘어갔다.

발이 땅에 떨어지기 바쁘게 허칠안을 밀치던 허영월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큰 오라버니.”

허영월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허칠안은, 다시 훅 뛰어 별채로 건너왔다.

그때 뭔지 모를 감응이 있어, 허칠안은 가슴에서 옥석경을 꺼냈다. 깨끗한 거울 표면에 서서히 글씨 한 줄이 나타났다.

[구: 어딥니까?]

허칠안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이마를 찌푸렸다.

그는 벽에 기대어 잠깐 고민하다가 문자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어쨌거나 옥석경은 현재 나의 소유다. 거울의 기능과 신기를 파악하면 도움이 되겠지.

2. 이건 내게 옥석경을 준 도사가 보내온 거라는 추측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응답하는 김에, 왜 내게 이것을 준 것인지 이유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모를 선물을 받았던 그는 마음이 늘 어딘가 불편했던 터였다.

허칠안이 음성으로 문자 입력을 시도했다.

“음, 목욕하고 있어.”

깨끗한 거울 표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허칠안은 방식을 바꿔서 손가락으로 붓을 대신해 거울 표면에 글을 써봤다.

그러자 신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거울 표면에 한 줄의 글씨가 나타났다.

[삼(叁): 허허, 목욕하고 있어.]

‘접촉으로 생각을 전달한다? 삼(叁)은 그럼 내 거울의 순번인가? 상대방은 구……. 그도 거울을 하나 가지고 있다는 거겠지?’

[구: 너는 누구냐?]

허칠안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상대방도 침묵했다. 몇 분 후 다시 글씨가 떴다.

[구: 금련(金莲) 사형은 어디에 있느냐? 산 거야? 죽은 거야? 어떻게 이 거울을 얻게 되었느냐? 천지회(天地会) 사람이더냐?]

‘금련 사형은 나한테 거울을 준 도사일 거고, 구호(九號)라고 하는 사람이 그 도사를 사형이라고 부른다면, 두 사람은 동문…….’

허칠안은 상대방의 신분을 파악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붓을 대신해 글을 써넣었다.

[삼: 저는 천지회 사람이 아닙니다. 이 거울은 어떤 늙은 도사 한 분이 저한테 준 겁니다.]

[구: 어떻게 네가 천지회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느냐. 이름이 뭐더냐?]

[삼: 도장(*道长: 도사의 존칭), 전 일반 평민입니다.]

한참 후.

[구: 그럼 이 거울을 너에게 준 도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삼: 모릅니다.]

허칠안은 문자를 보내고 나서,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구: 빈도(贫道) 자련이라고 합니다. 거울을 귀하에게 준 도사가 나의 사형입니다. 이 거울은 우리 지종의 법보(法宝)입니다.

허허, 사형이 이 거울을 귀하한테 줬다면 귀하도 일반인은 아닌 게 분명하군요. 우리 지종에 대해서는 들어봤습니까?]

허칠안이 이에 답장을 보냈다.

[삼: 죄송합니다만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보내지 않더니 개의치 않는 듯 답장이 왔다.

[구: 도문은 천지인 삼종으로 나뉩니다.]

‘도문의 사람이구나……!’

허칠안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삼: 천지회는 뭡니까?]

[구: 천지회는 사교(*邪敎: 부정한 종교, 혹은 나라의 도덕과 제도에 어긋나는 종교)입니다. 우리 지종 법보를 노린 지 오래됐지요. 이 법보를 지서라고도 합니다. 소식을 천리 밖으로 전할 수 있지요.

얼마 전, 금련 사형의 구조 소식을 듣고 대봉 경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성에 들어가야만 천지회의 추격을 피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내가 경성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사형과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서(地书)로 소식을 보내고 나서야 ‘지서’를 귀하에게 준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마 사형이 무척 위급한 상황이라,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서를 포기한 듯합니다.]

‘이런! 그럼 이 말은 나한테 덤터기를 씌웠다는 거네?!’

허칠안은 순간 멍해졌다.

[구: 귀하는 어떤 신분인지요? 금련 사형이 이렇게 시름 놓고 지서를 귀하에게 맡기다니요.]

‘난 그저 쾌수. 아니 그저 보잘것없는 야경꾼이라고…….’

허칠안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삼: 어째서 지서(地书)를 포기하고 목숨을 건지려 한 건가요? 천지회 사람들이 지서(地书)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가요?]

추리의 달인인 허칠안은 바로 문제점을 파악했다.

[구: 이 일은 우리 지종의 비밀과 관련된 것이라, 빈도가 귀하에게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지서는 지종의 보물로서 지종에서 무척 중요한 물건입니다. 지서를 빈도에게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사후 후하게 사례하겠습니다.]

[삼: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돌려드릴까요?]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보물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이 작은 물건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하여 돌려주기로 했다.

[구: 현재 경성에 있기에 언제든지 귀하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귀하께서 교환 지점을 따로 정해도 됩니다. 음, 귀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여인, 뜨거운 여인이 필요하오…….’

허칠안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자신의 경망스러운 생각을 꺼낼 뻔했다.

[삼: 아닙니다.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건데요, 뭐.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이죠. 허나 당시 금련 도장(*道长: 도사의 존칭)께서, 이게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며 황금 오백 냥의 가격에 저에게 넘겼지 뭡니까. 제가 돈 욕심에 그런 건 아니지만, 보물을 주인에게 돌려드렸으니 황금도 자연스레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등가교환, 그렇죠?]

[구: ……. 응당 그리 해야지요.]

* * *

허칠안은 거울을 베개 밑에 잘 보관해두고, 황금 오백 냥을 가질 생각에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허칠안은 야경꾼 제복으로 갈아입고, 요패와 패도를 허리춤에 건 뒤, 새로 바꾼 동라를 가슴에 묶었다. 이어 담을 넘어 허평지의 집에 가서 아침밥을 먹었다.

허부를 나선 허칠안은, 문지기 로장에게서 말고삐를 건네받고는, 말을 타고 야경꾼 관아를 향해 달렸다.

이 말은 허평지의 말이었으나 지금은 허칠안의 소유였다. 물론 숙모의 입을 막기 위해 허칠안은 허평지에게 은자 오십 냥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야경꾼의 관아가 내성에 위치하다 보니 허부와 거리가 너무 멀었다.

* * *

빠른 속도로 관아에 도착한 허칠안은 춘풍당에 들어섰다. 이옥춘이 다른 한 은라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자네 수하로 들어온 신입인가?”

은라가 낯선 허칠안을 보고 무심코 물었다.

“그렇네.”

이옥춘이 머리를 끄덕였다.

“자질은 어떤가?”

이옥춘은 허칠안이 입도 열기 전에 급히 말했다.

“을하.”

이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은라가 칭찬을 늘어놓았다.

“괜찮구먼. 야경꾼에 이렇게 잠재력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해. 앞으로 자네들이 야경꾼을 이끌어 나가야지.”

마지막 한 마디는 허칠안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허칠안이 공손하게 예를 갖춘 후 춘풍당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대장, 공문서를 둔 창고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허칠안은 공문서 창고의 위치도 모르거니와 열람하려면 어떤 권한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앞으로 모르는 게 있으면 하급 관리를 찾아가서 물으면 된다.”

이옥춘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허칠안은 춘풍당에서 나왔다.

윗사람들이 얘기를 나눌 때 피해주는 게 부하된 도리였다. 허칠안은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그는 하급 관리 한 명에게 공문서 창고의 위치를 물어, 어느 한 대원(大院)을 찾았다.

허칠안은 자신의 요패를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하급 관리에게 건넸다. 요패를 받아 확인하던 하급 관리가 허칠안에게 요패를 다시 돌려주면서 말했다.

“공문서 창고는 갑, 을, 병, 정 네 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동라는 ‘정’자 방에서만 공문서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허칠안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물었다.

“조사하고 싶은 자료가 어느 방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하급 관리는 공손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정’자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갑, 을, 병, 정, 네 개 구역이라. 정이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이면서 공문서 양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건 피라미드 법칙에 부합된다.

‘기밀문서일수록 양이 적지.’

허칠안은 ‘정’자 창고에 들어서서, 안내처를 찾아 물었다.

“도문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 싶네.”

안내처 하급 관리는 무척 두꺼운 책자를 펼쳐 한참을 찾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말을 건넸다.

“대인,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하급 관리는 이내 창고에서 나와, 허칠안의 요패를 받는 동시에 책을 건넸다.

허칠안이 말했다.

“차 한 잔 부탁하네.”

뒤이어 허칠안은 몸을 돌려 탁자를 배치해놓은 옆 청으로 들어가, 도문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시작했다.

도문은 도존에서 비롯되었다. 도존의 연대는 지금으로서는 검증할 수 없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도존은 상고(上古) 시기 기인(奇人)이라고 한다. 그는 일기(一气)로 삼청(三清)인 원시천존(元始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 영보천존(灵宝天尊)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하게 천지인, 삼재(三才)가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도문의 ‘천지인’ 삼종의 유래였다.

그중 천종과 인종은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 자신이 도문 정통이라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지종이 가장 담박했다. 지종은 사람들 자체가 겸손하고, 명예와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은, 도문에 천종과 인종만 존재하는 줄로 알고 있을 터였다.

‘이 시대에 도통 분쟁이라니, 가장 큰 모순이군.’

허칠안은 계속해서 자료를 열람했다.

지종은 도덕천존을 모셨고, 무량공덕(无量功德)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천하를 돌아다니며 겸손하게 행동하고,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으며, 덕을 쌓은 후 이내 자리를 떴다.

“공덕이라…….”

허칠안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깊은 사색에 빠졌다.

공덕은 모종의 의미에서 운기와 기원이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늘 ‘착한 일을 하면 덕이 쌓이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들 하지 않던가?

공덕이 바로 복이었다. 복과 운은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지종의 늙은 도사가 나의 특별한 점을 본 건가? 내가 복이 따르는 금손인 줄 알고 나에게 옥석경을 넘긴 건가? 이런! 공덕을 수행한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비열한 짓을 하냐고…….’

허칠안은 속으로 투덜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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