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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61화 (61/712)

61화. 괴이한 정보 (2)

봄철 같이 따스한 안방의 병풍 뒤 욕통.

허칠안은 꽃잎이 넘실거리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편안하게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얇은 견사를 걸친, 백옥같이 흰 피부의 부향이 욕통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시중을 들었다. 보드라운 손이 부드럽게 허칠안의 몸을 문질렀다.

“며칠 안 보이더니, 상태가 더 좋아지셨네요.”

부향은 허칠안의 건장한 몸을 감상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예전에도 오관이 준수하긴 했으나, 오늘 다시 보니 무언가 좀 더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낭자가 좋아한다니 내 변화가 헛되지는 않았나 보오.”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부향의 얼굴에 홍조가 들더니, 그녀가 쑥스러운 듯 희색을 보였다.

그녀는 이내 원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공자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 하시는군요. 제가 눈에 차지도 않잖아요?”

‘대체 어떤 남자가 밤새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느냔 말이야.’

“그날은 좀 많이 피곤해서…….”

허칠안은 답하다 아차 싶었다.

‘이건 사오십 되는 늙은 남자가 하는 핑곈데…….’

허칠안은 바로 화제를 바꿨다.

“춥지는 않으시오?”

부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약한 목소리로 답했다.

“추워요.”

허칠안이 한 손으로 부향의 허리를 감싸 욕통 안으로 끌어들였다.

부향이 허칠안의 품에 엎드리더니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쁜 사람.”

부향은 허칠안의 다리 위에 올라앉더니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조잘조잘 시에 관해 물었다.

허칠안은 가짜 시인이긴 했으나, 머릿속에 훌륭한 시구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무심결에 뱉은 몇 마디에 기녀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맞다. 주 시랑이 파면당해 유배당한 사실을 들으셨어요?”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도, 허칠안은 바로 경계 태세로 들어갔다.

“들었소. 위무후에 의해 탄핵 당했지, 아마?”

“주 시랑이 끝끝내 못된 심보를 버리지 못하고, 위무후의 서녀를 납치했다지 뭡니까.”

허칠안은 대강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사 전문가인 나한테서 정보를 들을 순 없을 거란다. 그나저나, 부향의 마음에 의심이 생겼나보군.

일이 너무 공교롭게 일어난 건 사실이다. 그날 양릉한테 주립이 위무후 서녀를 마음에 들어했다는 말을 하고, 또 얼마 안 되어 주립이 위무후 서녀를 납치했으니……. 의심까지는 아닐지라도 호기심이 들었던 건 분명해.

나에 대한 부향의 호감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 그녀가 완전히 내 편이 되게 만들어야지.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모 관원에게 나에 대해 말하기라도 한다면……. 절대 안 되지!’

“방금 전 낭자의 춤사위를 보면서 영감이 생겨 몇 마디 구상해놓은 시구가 있는데…….”

허칠안이 부향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더니 시를 읊기 시작했다.

“금년환소부명년(*今年欢笑复明年: 해가 바뀌어도 웃고 떠들면서 지내는 생활은 변함없네), 추월춘풍등한도(*秋月春风等闲度: 가을이 가고 봄이 오더니 아름다운 시절만 헛되이 지나가네).”

‘금년환소부명년(今年欢笑复明年), 추월춘풍등한도(秋月春风等闲度)…….’

부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더니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

“공자, 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시는 겁니까? 참 잔인하네요.”

이날, 기녀의 침상은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 * *

이튿날 묘시, 허칠안은 초췌한 부향의 시중을 받으며 의관을 입고 조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부향과 작별하고 안방을 나섰다.

부향의 시중을 들던 여종은 그를 숭배하는 눈길로 바라봤다. 이에 득의양양해진 허칠안은 가슴을 쫙 펴고 걸어갔다.

영매소각을 나서자 문어귀에서는 활력이 넘쳐 보이는 두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네. 두 분.”

셋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방사의 골목을 나섰다. 헤어질 때쯤, 송정풍이 실눈을 뜨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부향 낭자……. 어떠하던가?”

이 말에 과묵한 주광효도 귀를 기울였다.

허칠안이 저 멀리 앞을 바라보면서 오만하면서도 건방진 태도로 입꼬리를 치켜세우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윤 거사(居士)라 부르시오.”

* * *

허칠안은 내성에서 비단 몇 필을 구매하고, 마차 한 대를 빌려 허부로 서둘러 돌아갔다.

허평지는 오늘 휴가라 집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신년은 독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이 하인을 시켜 비단을 옮기라고 하고 나서야 집안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었다.

허칠안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숙모와 동생들, 옷 해 입으라고 사왔습니다.”

숙모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래턱을 높이 치켜들더니 ‘흥’ 하고 소리를 냈다.

콩알이가 바짓단을 잡고 기어오르더니 중얼거렸다.

“저 어제 언니가 숨어서 우는 걸 봤어요.”

허영월의 얼굴이 빨갛게 피어올랐다.

허칠안은 아리따운 소녀를 향해 한 번 웃고는, 허영음을 공중으로 올렸다가 품에 안았다.

멍해있던 허평지가 물었다.

“연기경에 들어선 게냐?”

허칠안이 ‘그렇다’고 하자 허평지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 * *

서재.

허칠안은 허평지와 허신년에게 일의 경과를 대략 말해줬다.

허신년이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물었다.

“장공주가 왜 형님한테 사람을 붙였습니까?”

‘나도 알고 싶어…….’

허칠안이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마 그날, 서원에 외부인이라고는 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

아성학궁에 이상이 발생한 당일, 장공주도 서원에 있었다. 그녀가 그 일을 그저 지나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당일, 유일한 외부인이었던 허칠안을 감시했던 것이다.

허신년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공주는 무척 생각이 깊은 사람입니다. 운록서원에서 다년간 학생으로 있었거니와 위연과도 사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둑에도 조예가 무척 깊은 터라 형님을 야경꾼으로 추천했다는 건, 한순간의 충동으로 결정내린 것은 아닐 겁니다. 장공주가 형님을 소견하면 놀라지 말고 신중하십시오.”

“어렵지 않지.”

허칠안이 답했다.

‘허칠안이 이토록 중시하고 경계한다는 건 장공주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는 거겠지.’

충고를 한 허신년은 이내 아래턱을 치켜들더니 입을 열었다.

“저, 수신경에 들어섰습니다.”

‘나도 유가 팔품 고수가 되었다고요!’

얼굴에 희색이 돌던 허칠안이 급하게 물었다.

“수신경 유생은 무슨 신기가 있지?”

허신년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의지소재(*义之所在: 의가 있는 곳이면), 수천만인(*虽千万人: 천군만마가 앞을 가로막더라도), 오왕의(*吾往矣: 나는 전진한다.)”

허신년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허칠안은 마음속에 호방한 기개가 넘쳐나더니 천군만마에 홀로 대적할 수 있는 용기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뭔지 모를 용기는 일각이나 지속되더니, 그 후에야 차츰 사라졌다.

“수신은 문장력을 연마하는 과정입니다. 이 경지 유생들의 일언일행은 모두 사람들에게 신뢰를 줍니다. 방금 전 형님이 제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믿은 것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제가 관직에 오르면 사건 분석 또한 형님에 뒤지지 않을 겁니다.”

‘그건 아니지. 난 진짜 실력이고 네 건 부정행위잖냐!’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이건 언출법수의 초기 법술이다…….’

허칠안이 눈을 반짝거리며 허신년을 바라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있잖아, 형님이 너한테 여태 잘해주지 않았니?”

“저리 가세요!”

허신년은 허칠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옷소매를 뿌리치면서 서재를 나섰다.

‘무식한 무사 같으니라고!’

* * *

허칠안은 자신의 별채에 가서 잠을 보충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베개 밑에 두었던 옥석경 때문이었다.

옥으로 된 거울 표면에 한 줄의 글씨가 나타났다.

[구(玖): 지금 어딥니까?]

허칠안은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거울 표면을 쳐다보았다.

‘거울이 말할 줄 안다? 이건 자아가 있는 보물?’

‘[구]라는 건 무슨 뜻이지? 이 거울의 이름이 구인가? 아니지, 만약 거울이 자기 의식이 있다면 어디냐는 물음은 묻지 않을 거다. 왜냐면 내가 맨날 거울과 한 침상, 한 베개에서 잠이 드니까.’

허칠안은 거울을 뚫어져라 보면서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는 네 개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1. 옥석경은 어떤 보물인가? 물품 수납 외 정보도 수신할 수 있는 건가?

2. 이건 문자인가? 만약 문자라면 누가 보내온 건가?

3. 늙은 도사는 누구지? 왜 나한테 옥석경을 준 것이지?

4. 답장을 해야 돼, 말아야 돼?

허칠안은 신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조용히 옥석경을 집어넣고 정원에 나와 물독에 머리를 넣어 얼굴을 적시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집을 나섰다.

야경꾼 관아에 정식으로 출근하는 날은 모레다. 그동안 관아에서는 그를 위해 제복과 동라를 준비해줄 것이다.

오시 삼각,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허칠안은 우선 장락현아에 들러, 옛 동료들과 주 현령에게 자신이 야경꾼이 된 사실을 알렸다.

주 현령은 이미 소식을 받은 상태였다. 야경꾼 측에서 사전에 장락현아를 찾아가 허칠안의 이적 수속을 밟았기 때문이다.

허칠안은 동료들과 주 현령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송별연이자 허칠안의 승진을 위한 축하연이었다.

장소는 현아와 머지않은 효월관(晓月馆)으로 정했다. 관장에서의 교제 장소로는 청루가 일순위로 뽑히는 법이었다.

그 전에 허칠안은, 기루에 가서 노래도 듣고, 점심식사까지 해결했다.

* * *

송별연은 신시(申时)에 시작해 유시 삼각에 끝났다.

송별연 자리에서 주 현령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칠안아, 우리 장락현아 출신으로서 야경꾼이 됐다는 건 우리 관아의 영광이다. 본관은 네가 잘 될 거라 생각했다…….”

주 현령이 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

‘만약 관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면 주 현령은 믿을만한 인맥이 될 것이다…….’

허칠안은 주 현령을 따라서 술잔을 비웠다.

송별연이 끝나고도 쾌수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포주가 아리따운 젊은 여인들을 별실로 데려와 쾌수들더러 선택하게 하였다.

하지만 허칠안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부향과 같이 절세의 미모를 가진 기녀와 만나다 보면 일반 여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허칠안은 주 현령과 쾌수 동료들과 인사하고 나서 효월관을 떠나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자신의 별채에 도착하자, 자물쇠가 열려 있었고, 방 안에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숙부가 왔나?’

허칠안이 대문을 밀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황혼이 내린 시각, 촛불에 비친 건 수수한 치마 차림의 소녀였다. 소녀가 탁자 옆에서 턱을 괴고 앉아 졸고 있었다.

허칠안은 바삐 궤짝을 보았다. 그는 궤짝이 열린 흔적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일기를 영어로 쓰는 걸 한 번 고려해 봐야겠구먼.’

허칠안은 허영월을 살짝 흔들어 깨웠다.

“큰 오라버니, 어디 갔었어요?”

허영월은 허칠안을 보자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촛불에 비친 소녀의 얼굴은 티 하나 없는 포근한 옥 같았다. 눈에는 빛이 반짝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허영월이 가녀린 목소리로 답했다.

“왜 식사하러 오지 않으신 거예요? 아버지는 큰 오라버니가 청루에 갔다던데.”

‘숙부는 참……. 나를 너무 잘 알아!’

“아니다, 그냥 동료들과 일반적인 식사 자리를 가졌을 뿐이야. 야경꾼 관아로 이직하기 전에 현아 동료들과 밥 한 끼를 먹었고.”

허평지가 그렇게 여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무인이라면 무도(武道)에 들어서서부터 무척 어려운 과정을 거쳐 연기경에 들어선다. 그러니 십여 년 내지 이십여 년을 억제해왔던 내면의 욕구를 해소하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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