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분석 결과
순직하지 않은 동료를 발견한 주광효와 송정풍의 얼굴에 희색이 엿보였다.
허칠안이 가슴팍에서 식골작심을 꺼내 도날에 바르고는, 여청에게 던지면서 소리쳤다.
“도날에 바르게.”
여청은 몇 보 뒷걸음쳐 독을 날에 바르고, 다시 독을 송정풍과 주효광에게 던졌다.
송정풍은 운도 없었다. 그가 도날에 독을 바르고 있는데 놈이 갑자기 습격하는 바람에, 그 혀에 스친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 틈을 타 여청이 요괴의 몸을 그었다. 상처 난 부위가 급격히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악취를 뿜었다. 여청이 얼굴에 희색이 돌더니 허칠안을 보면서 외쳤다.
“효과가 있습니다!”
네 명의 연기경 무사가 힘을 합쳐 포위 공격하고, 연정경 무사 두 명이 옆에서 화살로 교란하니 그들의 우위가 드러났다.
요물은 힘이 무척 강했고, 혀놀림이 뛰어났다.
하지만 방대한 몸체와 신체적 구조로 인해 인간처럼 민첩할 수가 없었다.
“조심해!”
허칠안이 패도를 휘둘러 기기를 주입하더니, 요괴의 꼬리를 잘라 위험했던 여청을 구했다.
여청이 피를 토했다.
허칠안이 여청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죽고 싶어? 뭔 여자가 이렇게 겁이 없어!”
놈은 공기를 바스러뜨릴 기세로 다시 한번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허칠안과 그 일행은 진작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나 놈과의 거리를 벌려 긴 혀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이때, 허칠안과 그의 일행을 후퇴시킨 놈이 몸을 돌리더니 네 발로 날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대한 몸집을 가진 놈은 숲에 들어가 나무들을 쓰러뜨리면서 새로운 길을 하나 트고 있었다.
이때 여청이 소리쳤다.
“쫓아! 도망치게 해서는 안 돼!”
놈이 물로 들어간다면, 더 이상 멸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송정풍이 훌쩍 뛰더니, 경공(轻功)이 뛰어난 무림 고수마냥 나뭇가지를 밟으면서 솟아올랐다.
그는 나뭇가지 하나를 힘껏 밟더니, 반공중에 떠올라 수림 전체를 굽어보았다. 도를 잡은 그의 오른손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널찍하던 소맷부리가 찢어졌다.
패도가 발사되어, 반공중에 은백색의 빛이 그려졌다.
일 초 후, 밀림 속에서 요괴의 비명이 들려왔다.
기진맥진한 송정풍이 지면에 떨어졌다.
뒤이어 주광효가 나섰다. 그는 경공은 송정풍에 비해 좀 약하나, 폭발력은 전혀 뒤지지 않았다. 주광효는 쏜살같이 달려가 놈을 쫓더니 큰 소리와 함께 몸을 공중으로 날려 도를 매섭게 내리쳤다.
팍!
등에 칼이 꽂힌 요괴가, 꼬리로 그를 쳐버리고는 무작정 도망쳤다.
이제는 여청과 허칠안만 남았다. 여청은 놈의 뒤를 한사코 밟았다. 하지만 결국은 쫓지 못했다.
수림의 끝이 보였다. 추격전이 한참이나 벌어지다 보니 강변이 가까워져 있었다.
놈이 물에 뛰어들자, 강물에 물보라가 일어났다.
늠름한 여청은 실망스러워하는 것과 동시에, 옆쪽에서 높이 뛰어오른 허칠안을 발견했다. 그는 허리에서 쇠뇌를 꺼내 들더니 겨냥도 하지 않고 멋지게 방아쇠를 당겼다.
화살이 나가는 찰나, 강한 기기가 폭발했다.
여청은 화살의 그림자조차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귀에서는 이미 입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 초 후,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수면 위가 순간 피로 물들더니, 이 장(약 6m) 길이의 괴물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괴물의 머리를 관통한 화살이 치명적인 듯했다.
여청이 멍하니 고개를 돌려 눈앞의 젊은 야경꾼을 바라봤다.
허칠안이 어깨를 들썩이더니 한 마디 던졌다.
“난 역시 운이 좋아.”
‘요괴의 물밑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게다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머리를 쏘아서 꿰뚫었다……. 실로 예리한 통찰력과 놀라운 판단력이야. 놀라운 청년이군…….’
여청은 여인으로서 부아까지 됐던 터라, 쉽게 타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허칠안이 보여준 신기(神技)에 대해서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허칠안은 실력뿐만 아니라 성품까지 겸손한 청년이었다. 여인을 깔보는 남자들보다는 백 배 나았다.
‘휴……. 놈이 부상 당하지 않고 독을 맞지 않았더라면 사이에 물까지 있어 화살 한 발로는 어려웠을지도 몰라…….’
쇠뇌를 거두면서 허칠안은 못내 아쉬워했다. 이 쇠뇌는 세 번만 사용이 가능했다. 내구성이 너무 떨어졌다.
세 번 쏘고 나면 일반 쇠뇌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됐다.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인데, 요괴를 대적하는데 사용했으니 허칠안은 아깝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칠안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던 여청도, 평범해 보이는 쇠뇌에 눈길을 주었다. 쇠뇌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여청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쇠뇌에는 무척 복잡하고 심오한 진문(阵纹)이 새겨져 있었다. 화살이 나갈 때의 기기를 봐도 법기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야경꾼에게는 동라가 유일한 법기인데……. 그럼 쇠뇌는 청년의 개인적인 재산? 사천감 술사를 청해올 수 있다고 했던 것이 허풍은 아니었구나.’
눈앞의 남자에 대한 여청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허칠안은 몸을 돌려 여청이 자신의 보물을 더 이상 주시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끌어내지 않으면 물에 밀려갈 텐데, 그러면 우리의 공로도 떠내려갈 테지.”
여청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괴물의 시체를 지면으로 끌어냈다.
이때 송정풍이 주광효를 부축하고 절뚝거리며 숲에서 나왔다.
“자네 둘이서 이 놈을 죽인 건가?”
송정풍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그는 큰 짐을 내려놓은 것같이 마음이 흐뭇했다.
과묵한 주광효도 크게 한 번 탁한 공기를 내뱉었다.
“상처는 어때? 괜찮나?”
허칠안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주광효의 상태를 물었다.
주광효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답했다.
“괜찮아. 늑골 두 대가 부러졌을 뿐이다.”
* * *
네 사람은 강변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 연정경 포졸 두 명이 이장을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요괴의 시체를 본 이장은, 화도 나면서 두렵기도 했다. 그는 조심스레 앞으로 가더니 요괴를 발로 한 번 차고는, 어울리지도 않는 민첩함으로 물러났다.
몇 초 후, 괴물이 반응이 없자 그는 그제야 다시 다가가 요괴에게 마구 발길질을 했다. 분을 한바탕 해소한 이장이 갑자기 무릎 꿇더니 허칠안과 그 일행한테 절을 했다.
허칠안이 손짓하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묻겠네. 남쪽에 있던 그 산굴에선 언제부터 채굴한 건가?”
이장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그건 오래전에 사용했던 가마입니다. 남쪽은 석회암이 많지 않고 길도 가팔라서 폐기한 지 오래됐습니다.”
“그럼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주 다녔는가?”
“자주까지는 몰라도 인적이 끊긴 적은 없습니다.”
‘가끔 다녔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뭘 이렇게 빙빙 에둘러서 말해…….’
허칠안이 마음속으로 투덜대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우선 돌아가 부아의 소환을 기다리고 있게나.”
요괴가 산굴 어귀에서 습격할 당시, 주광효가 이장을 발로 걷어차 산굴로 대피시켰다. 이장은 그 때문에 부상을 입었는지, 시종일관 손으로 허리를 잡고 있었다.
허칠안의 일 처리에 찬성한 여청이 동료 한 명을 불러 이장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남은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토납법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물과 음식을 보충했다.
* * *
일 각 후, 말 세 필이 요괴의 시체를 끌고 느릿느릿 달렸다.
돌아가는 길에 여청은 일행에게 허칠안이 요괴를 죽인 과정을 생생하게 말해주었다.
송정풍은 말에 채찍을 가해 허칠안을 따라가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여 포두, 너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이에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뭘 말하고 싶은데?”
송정풍이 말했다.
“여 포두가 경성 육선문에서는 좀 유명해. 아직 미혼이거든.”
“그럼 노력해보시든가.”
송정풍이 실눈을 뜨더니 탄식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말이야. 교방사에나 어울리지.”
허칠안은 문득, 조금 전 송정풍이 도를 휘두르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도법은 뭐야?”
“효풍검법(嘯風劍法).”
송정풍이 말했다.
‘검법? 그럼 아까 전투할 때 여 포두가 휘둘렀던 절단기 도법도 뭔가 있는데……. 잠깐, 검법?!’
허칠안은 순간 송정풍이 허리에 찬 패도로 시선을 옮겼다.
송정풍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누가 그래? 도로는 검법을 쓰지 못한다고.”
‘그래, 그래. 누가 그러겠냐. 창끝이 없다 해서 사람을 찌르지 못한다고?’
허칠안이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밭에 있던 한 무리의 백성들이 관도로 모여들었다.
맨 앞에는 이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를 데려갔던 연정경 포졸도 함께 서 있었다.
포졸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하면서 입을 열었다.
“굳이 와서 고맙다는 말을 친히 전하겠다기에, 이렇게 왔습니다.”
이장이 손에 든 달걀 바구니를 허칠안 앞으로 높이 들면서 말했다.
“대인, 받아주십시오. 우리 촌에서 모은 달걀 전부입니다. 만약 오늘 대인들께서 요물을 죽이지 않았다면 우리 촌민들은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세를 상납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도망쳐 유랑민이 되어야 합니다.”
이장의 초조한 눈길을 지켜보던 허칠안이, 삐쩍 마른 회호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알았네!”
허칠안이 웃음을 지으며 달걀 바구니를 받아 말 안장에 걸었다.
그러자 촌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제야 그들은 시름을 놓았는지, 요물의 시체를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허칠안이 끝까지 받지 않고 그들에게 ‘난 백성들의 물건을 절대 받지 못해’라고 소리치면 그들은 아마 겁에 질릴 것이다.
허칠안은 이러한 상황에 묵묵히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 * *
경성에 돌아오자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아 백역들이 괴물의 시체를 인수했다. 그들은 시체를 큰 수레에 싣고, 흰 천으로 덮어 흔적을 없앤 다음 성 안으로 들어갔다.
“초석광은 작은 사건이 아니야. 바로 위에 보고해야 해.”
송정풍이 날달걀 하나를 터뜨려 입에 넣었다.
‘기생충 경고…….’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야경꾼 관아에 돌아가 보고서를 쓰지도 않고, 춘풍당으로 직행해 이옥춘에게 이 일을 알렸다.
다 듣고 난 이옥춘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잘했다. 허칠안, 큰 공을 세웠군.”
이옥춘은 세 사람 앞으로 걸어오더니 손수 그들의 의복을 정리해주고 나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송정풍이 먼저 입을 열었다.
“허칠안의 분석에 의하면 요물은 의도적으로 회호를 쫓았습니다. 게다가 조사 도중에 산속에서 초석광을 발견했으니…….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더 구체적이면서도 유력한 분석 결과는 없느냐?”
이옥춘이 반문했다.
이에 송정풍이 손을 번쩍 들더니 입을 열었다.
“대장, 사람을 베는 일에는 자신 있지만 사건 해결은 좀…….”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허칠안에게 쏠렸다. 이옥춘이 기대에 찬 눈길로 물었다.
“넌 어떻게 보느냐?”
세 사람 모두 허칠안의 추리 능력을 확인한 바 있었다.
허칠안은 그저 연기경에 방금 들어선 신인일 뿐인데, 셋은 왠지 모르게 든든함을 느꼈다.
인간은 자신이 서툰 분야에서 본능적으로 강자에 의존하는 법이다.
허칠안이 잠깐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좀 보충하겠습니다.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요물이 초석광을 독차지하기 위해 주변의 회호를 쫓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요물이 대황산 유역에 알을 낳으려고 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물이 수컷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요물이 왜 초석광에 눈독을 들였냐는 겁니다. 초석은 약으로 쓰이는 것을 제하면, 화약 제조에 쓰이는 용도뿐입니다.”
물론, 초석엔 다른 역할이 있긴 했다. 하지만 시대적인 격차가 너무 컸던지라 허칠안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래, 요족. 요족이다…….”
이옥춘이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해석도 하지 않고 종이를 펼쳐 붓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