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광(矿)
반 시진도 안 되어 연정경 전봉의 포졸이 노인 한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소인, 장씨입니다. 대황산 하구촌(河沟村)의 이장입니다.”
노인은 격에 맞지 않은 예를 올리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 대인들을 못내 기다려 왔습니다. 사건이 반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아 촌민들의 양식이 바닥난 상황입니다.”
여청이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엄한 어조로 물었다.
“본관이 묻겠다. 맨 마지막에 산에 들어간 십여 명은 어디에서 죽었느냐?”
“남쪽…….”
이장이 산맥의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류 방향으로 들어갔습니다.”
송정풍이 바로 입을 열었다.
“거기 석회를 굽는 가마가 있느냐?”
그들은 방금 전 진행했던 수사를 통해, 석회를 구웠던 흔적이 가장 밀집했던 곳이 강과 멀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회호가 에둘러 산으로 들어갔다면 그쪽에서는 석회를 굽지 못했을 것이다.
이장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몇 군데가 있긴 하지만 여기처럼 많지는 않습니다.”
“그곳으로 가보게 앞장서거라.”
여청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 * *
일행은 그렇게 남쪽으로 걸어갔다. 남쪽은 산길이 험해 오르기가 무척 힘들었다. 게다가 그 노인까지 돌봐야 하니 걸어가는 속도가 여간 늦은 게 아니었다.
“여깁니다.”
이장이 꼬불꼬불한 오솔길에서 멈춰 서더니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채굴 공지(空地)였다.
돌들이 쌓여있었고, 나무들은 채벌한 상태였다. 산굴 같은 가마 몇 개가 있긴 했다. 거기서 석회를 구운 듯했다.
그들이 현장에서 수색해보아도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현장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송정풍과 여청이 마주보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마 안에 들어가 보지.”
허칠안이 제안했다.
일행은 현장에서 나무를 찾아 불을 붙여 패도를 꺼내들고, 흙으로 된 가마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단순히 석회를 굽는 가마라면 이토록 깊을 리가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곳은 가마가 아니라 산굴이었다. 한참 걸어서야 끝이 보였다.
송정풍이 실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가마라면 이 정도로 깊게 팔 필요가 없지. 이건 분명 뭔가 다른 걸 채굴하려고 판 거다. 벽에 불로 그은 흔적조차 없잖아.”
여청이 이장을 불러 호통쳤다.
“이곳은 대체 어떤 용도인가?”
이장은 멍해졌다가 말을 더듬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불을 높이 들어 암벽을 관찰하던 허칠안은 다시 지면을 자세히 살피다가 손바닥만 한 흰색 광석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그 광석을 집어 들어 세밀히 관찰했다.
‘대체 이 사람들이 채굴했던 이 물건은 뭐지? 석회암 같지는 않은데.’
허칠안이 손바닥에 힘을 주어 운기하자, 흰색 광석이 부서져 분말 상태가 되었다. 그는 분말을 불 위로 뿌렸다.
그러자 갑자기 맹렬한 불길이 일어났다. 밝은 황색에 조금 어두운 자색빛이었다.
‘초석?!’
허칠안이 깜짝 놀랐다.
순간 일어난 맹렬한 불길에 산굴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패도에 기기를 모으는 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허칠안의 짓인 걸 확인한 여청이 조금 화난 어투로 말했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허칠안이 동료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초석이네.”
초석이라는 명칭은 책을 적게 읽고, 관련 지식이 부족한 무사들에겐 매우 낯선 단어였다.
송정풍이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눈썹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초석?”
허칠안이 해석을 더했다.
“명칭을 바꿔보지. 염초(焰硝)라 하면 훨씬 더 익숙할 텐가? 화약의 주재료다.”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화약은 대봉의 특급 비밀이었다. 주변 나라들을 위협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에 화약 관련 제조방법이나 재료에 대해서는 무척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도 했다.
‘대황산에서 초석을 발견했다……. 게다가 채굴 흔적까지……?’
송정풍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더니, 그가 전에 보지 못했던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바로 경성에 돌아가 이 일을 보고해야 해.”
요괴 작간보다도, 초석을 발견했다는 것이 더 심각한 일이었다.
여청이 백발의 이장을 노려보면서 부하들에게 하명했다.
“이 자를 묶어서 데리고 가거라.”
대황산에 초석이 있었다. 그런데 이장이 아무것도 모른다니? 어찌 됐든 데리고 가서 심문을 해봐야 할 터였다.
포졸 두 명이 허리에 두른 끈을 풀어 이장의 손을 뒤로 묶고는, 그를 압송하여 굴을 나갔다.
‘이장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게 맞는 듯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의 신체적인 언어와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해보아도, 몰랐다는 게 더 합리적이지. 글도 모르는 노인네가 이 정도의 연기력을 보였을 리가 없다……. 요괴가 회호를 쫓은 이유는 초석 때문일 가능성이 크고.
음……. 전문인사를 청해 이곳의 초석 채굴 시간을 분석하고 나서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텐데.’
허칠안은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불을 들고 산굴로 나갔다. 그런데 그때, 여청의 비명이 들려왔다.
“조심!”
동시에 쌩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측면에서 날아왔다. 속도가 너무 빨라 허칠안은 미처 반응할 수가 없었다.
퍽!
가슴팍에 묶었던 동라가 깨졌다. 허칠안은 고속철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몸은 허공으로 날아갔고, 의식이 희미해졌다.
난데없이 날아온 습격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부아의 포졸 세 명은 패도를 뽑고 쇠뇌를 빼들었고, 주광효는 이장을 산굴 안으로 힘껏 걷어찼다. 송정풍은 칼을 뽑으면서 호통쳤다.
“들어가! 나오지 마라!”
석굴 측면 바위에 이 장 길이의 괴물이 엎드려 있었다. 외형은 도롱뇽이었는데, 몸은 갑편(甲片)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났고, 호박색의 세로 동공은 차디찬 흉악함을 드러냈다.
앞발은 발가락이 네 개였다.
놈의 두 볼은 볼록했다. 마치 어두운 기운을 머금고 있어 언제라도 발사할 것 같았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가 놈의 입에서 발사되더니, 송정풍을 직격했다.
송정풍은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몸을 뒤로 힘껏 젖혔다.
여청이 허리를 굽히고 앞으로 걸어갔다. 걸음마다 돌에 균열이 생기면서 분말이 흩날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도(刀)를 잡고 힘껏 휘둘렀다.
도(刀)는 무척 잦은 빈도로 진동하더니, 이어서 놈의 혀끝을 잘랐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괴물은 통증을 느꼈는지 긴 혀를 들여보내고는, 방대한 몸으로 버티고 바위에 서서 사람들을 굽어봤다.
이어 괴물이 시뻘건 아가리를 쩍 벌려 묵직한 소리로 비명을 크게 질렀다.
괴물의 포효로, 산간의 새들마저 놀라 하늘로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다.
‘연신경이다…….’
송정풍은 현기증을 애써 참으면서 도병(刀柄)으로 가슴에 묶은 동라를 힘껏 쳤다.
쨍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놈이 발사한 음파를 물리쳤다.
정신이 맑아진 송정풍과, 그의 일행은 이내 대응에 나섰다.
여청이 뒤로 한 발 물러서면서 연정경 전봉인 두 동료에게 말했다.
“쇠뇌를 꺼내 놈의 눈, 턱, 입을 공격해라.”
송정풍이 동라를 벗어 주광효에게 던지면서 말했다.
“정면 견제는 네가 책임져라. 조심하고!”
방금 전, 송정풍은 허칠안의 동라가 파손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동라가 요괴의 혀를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칠안을 생각하자니, 송정풍은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동라가 연신경의 전력 일격을 막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까 맞은 건 놈의 습격이었으니 말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충격 여파에 심장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근무 연한이 하루밖에 안 되는 녀석인데……. 너무 처참한 최후다.’
송정풍이 이내 안타까운 맘을 거둔 채 도(刀)를 끌고, 미친 듯이 측면으로 달려들어 놈을 공격했다.
이때 호박색의 흉악한 눈동자를 굴리던 도롱뇽이 고개를 돌려 혀를 내두르려 했다. 그때, 주광효가 동라를 쳐 놈의 정신을 교란했다.
이와 동시에 송정풍이 도봉(刀锋)에 기를 몰았다. 묵직한 소리가 나면서, 농후한 도기가 호형(弧形)으로 그려졌다.
몸체가 방대한 놈은 날아오는 도기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이마에 난 단단한 뿔로 막았다. 뒤이어 도롱뇽은 꼬리를 흔들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송정풍을 후려쳤다.
이에 송정풍이 도(刀)를 가로로 하여 놈의 꼬리를 막으려 했지만, 그 위력이 컸던 터라 몸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다른 한 편에서는 기회를 노리던 여청이 놈의 복부를 향해 도(刀)를 휘둘렀다. 하지만 미리 그녀의 동선을 예측한 놈은 이를 슬쩍 피해갔다.
연신경 수준의 무인이든, 요족이든, 정신력만큼은 뛰어났다. 그들은 주변을 샅샅이 파악하여 주변의 미세한 사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리에 그려낼 수 있었다.
어떠한 미행, 매복, 겨냥, 살기도 연신경 무인의 관찰력을 피할 수 없었다.
이것이 연신경 특유의 신기였다.
그때 까무러쳤던 허칠안이 깨어났다.
‘와! 전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죽을 뻔했네. 연기경에 어떻게 들어섰는데, 동정도 잃기 전에 순직할 순 없지.’
멀리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허칠안은 몸을 일으키지 않고 포복하여, 모든 이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고지를 점령했다.
허칠안은 가슴팍에서 옥석경을 꺼내 뒷면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송경이 선물한 쇠뇌와 식골작심을 쏟아내어, 침착하게 독을 화살에 발랐다. 허칠안은 숨죽이고 놈을 향해 쇠뇌를 겨냥한 뒤, 기회를 기다렸다.
주광효가 동라를 쳐 놈의 원신(元神)을 뒤흔들어 그의 감지 능력을 마비시켰다.
이에 기회다 싶어 사격하려는데, 요괴가 갑자기 몸을 뒤집었다. 송정풍과 그의 일행은 갑작스러운 요괴의 행동에 멍해졌다.
‘이 동작은 뭐지?’
‘제기랄! 그래, 연신경 고수에게 습격은 아무런 효과가 없겠지!’
놈이 갑자기 몸을 뒤집은 진짜 원인을 아는 허칠안이 속으로 투덜댔다.
허칠안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송정풍과 그의 일행이 요괴의 힘을 소모시켜 내력이 떨어지기까지 기다리다가, 연기경 고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법기인 쇠뇌로 놈을 포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 방안은 포기했다.
쏜살같이 달리던 여청이 고함을 지르며 도(刀)를 휘두르더니, 끝내 요괴의 복부에 꽂았다.
통증을 느낀 놈이 머리를 비틀어 턱을 쩍 벌렸다. 순간 검은 그림자가 놈의 입에서 날카롭게 튀어나갔다.
안색이 어두워진 여청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놈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비탈진 곳에서 사람 한 명이 달려오더니, 여청의 몸을 끌어안고 측면으로 뒹굴었다.
송정풍도 바로 뒤따랐다. 그는 놈의 말랑말랑한 복부를 한 번 더 찔러 일행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청은 억센 팔이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육중한 남자의 몸체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죽지 않았네요?”
허칠안이 입을 삐죽거렸다.
“죽을 뻔했지.”
‘송경이 준 호심경이 없었다면…….’
여청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머리 위로 놈의 꼬리가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짜고짜 허칠안을 안고 뒹굴었다.
퍽!
두 사람이 누워있던 곳에, 놈의 꼬리가 깊이 파인 흔적이 남아있었다.
“비겼네.”
허칠안이 여청을 보고 씨익 웃었다. 둘은 바로 갈라져 송정풍을 도와 요괴를 공격했다.
허칠안이 습격을 포기하고 정면전에 뛰어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의 연기경으로는, 연신경 요괴와 싸워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일행이 모두 다치고, 요괴의 힘은 여전하다면, 나 홀로 그런 요괴에 맞서야 할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