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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3화 (53/712)

53화.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

수속이 끝난 후, 송정풍은 그를 데리고 관아를 깊숙이 돌아보았다. 그들은 대화를 이어갔다.

“야경꾼에 입직하고 나면 또 하나의 절차가 있어. 바로 자질 시험이야.”

“자질 시험?”

허칠안의 머릿속에, 갑자기 수정석에 손을 얹어 투사의 등급을 시험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위 공이 정한 규정이자 절차다. ‘지(智)’, ‘력(力)’, ‘문심(问心)’관이 있어.”

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각루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무척 높은 문턱을 넘어 대청에 들어갔다. 그곳의 하중 기둥에 시 두 구절이 걸려있었다.

원이심심봉찰진(*愿以深心奉刹尘: 심심으로 중생을 위해 기여하자),

불위자신구리익(*不为自身求利益: 자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리).

“이건 위 공이 쓴 거다. 우리를 깨우치고 우리에게 경고하는 거라 볼 수 있어.”

송정풍이 말했다.

“분명한 건, 별로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단 거고.”

허칠안이 송정풍을 힐끗 보면서 말했다.

이에 못 알아듣는 척하던 송정풍이 허칠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넌 지금 연정경이라 전력(战力)을 시험할 필요 없어. 우선 지력을 시험해봐.”

그가 각루의 하급 관리를 불러와 분부했다.

이내 하급 관리 두 명이 손에 각각 상자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송정풍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상자 중 하나는 빈 거고, 하나엔 물건이 있다. 넌 이들 중 한 명을 골라 질문할 수 있는데, 하나만 물어볼 수 있어. 게다가 이들 중 한 사람은 거짓말만 하고, 한 사람은 참말만 하고 있지. 네게는 한 주향의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고.”

주광효가 요점을 찌르는 경고 한마디를 했다.

“이 문제는 무척 어려워. 잘 생각해 봐.”

송정풍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았다.

“위 공은 이게 보잘 것 없는 유희라고 하지만 맞히는 사람이 무척 드물어. 나도 나중에 깨닫기는 했으나 시간을 초과했지.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금라 대인들만 스무 호흡 내에 이 문제를 깨달았다 하더군.”

하급 관리가 향을 피워 옆에 놓았다.

허칠안은 이렇게 단순한 논리 문제를 전생에 무척 많이 풀어보았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좌측 하급 관리에게 물었다.

“자네가 저자라면 나에게 뭘 알려주겠나?”

하급 관리는 순간 멍해졌다. 허칠안이 이런 물음을 던질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물건이 없다고 할 듯합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측 관리가 들고 있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건은 이 안에 있어.”

송정풍이 입을 쩍 벌리더니, 굳은 얼굴로 동행한 친구를 향해 물었다.

“얼마나 지났는가?”

주광효가 우울한 말투로 대꾸했다.

“하급 관리가 어리둥절해 있는 시간까지 합치면 열두 호흡…….”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던 송정풍이 공수하면서 입을 열었다.

“세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건 단순한 운이 아니었구먼.”

허칠안은 눈앞의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다. 이옥춘이 세은 사건의 주된 책임자 중 하나였으니, 세은 사건 당시, 송정풍과 주광효 같은 사람들은 밖에서 죽자 살자 존재하지도 않는 요괴를 쫓아다녔을 것이다.

이 사건에 참여했던 그들은, 세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난 후, 자연스레 허칠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문심(问心)은 위층에서 진행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맨 위층까지 올라가면 돼.”

송정풍이 허칠안을 계단 어귀까지 데려다 주고는 계단 위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번 시험에는 조건이 따로 없다. 마음에 따라 걷는데,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나치게 머리를 굴리면 오히려 평점이 낮아진다는 거야.”

“평점은 무슨 쓸모가 있지?”

허칠안이 되물었다.

“그럼 넌 자질을 왜 시험한다고 생각하지? 이는 모두 갑, 을, 병, 정 네 개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어. 자질이 좋을수록 육성에 도움이 되겠지.”

송정풍이 턱을 살짝 올리면서 말했다.

“난 을이네.”

주광효가 우울하다는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병.”

* * *

이윽고 허칠안은 홀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층에 도착하자 맞은편 빨간색 계단 기둥에 수수한 동경(铜镜) 하나가 걸려있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허칠안은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을 움찔했다. 온 몸의 근육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다시 천천히 풀렸다.

마음속의 모든 잡념이 가라앉더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공명과 사리(私利)를 향한 탐욕 또한 깔끔하게 사라졌다.

‘이 거울에 문제가 있어…….’

이 생각은 떠오르자마자 다시 가라앉았다.

‘현자(贤者)의 시간으로 강제 진입했군…….’

이 생각 또한 바로 사라졌다.

허칠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이층 대청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부티 나는 몸체에 장엄한 표정을 한 불타(佛陀)상이 있었다.

향안(香案) 위에는 공물이 진열되어 있었고, 향로에는 향불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불상 앞에는 하급 관리 한 명이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허칠안은 평안한 얼굴로 불상을 조용히 몇 번 올려보다가 더 이상 보지 않고 삼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급 관리가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떨어뜨려 종잇장에 뭔가를 적었다. 평가를 적는 모양이었다.

* * *

삼층에는 도존(道尊)이 모셔져 있었다. 도존(道尊)은 몸에는 도포를 입고, 손에는 목검을 쥐고, 발로는 구름을 밟은 채였다.

하급 관리 한 명이 법상(法相) 앞에서 조용히 허칠안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칠안이 마음대로 몇 번 훑어보고 지나가자, 하급 관리가 바로 붓을 들어 탁자에 펴놓은 종이에 평가를 쓰기 시작했다.

* * *

사층에서는 유가 성인을 모셨다. 유가 성인은 유삼을 입고, 유관을 쓴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인 이소(泥塑) 앞에도 하급 관리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는 허칠안을 조용히 살폈다.

‘눈앞의 이소는 운록서원의 성인상과 똑같네…….’

허칠안은 감탄을 하고는 아무 미련 없이 돌아섰다.

* * *

드디어 꼭대기 층인 오층에 도착했다.

오층에서는 황포를 입은 사내를 모시고 있었다. 위엄 있게 선 사내는 두 손으로 검 하나를 들고 있었다. 검같이 예리한 눈썹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흘렀다.

낯선 얼굴이었다. 하지만 황색의 용포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대봉 황조의 모 군왕, 혹은 개국 황제일 것이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올라와서야 이 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이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성품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 거울의 역할은, 시험을 보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억지로 분향하거나 억지로 예를 갖추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었다.

‘망했다. 방금 전 예불에도, 도존에도, 성인에도 절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이건 내가 신도, 부처도, 사서오경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오층에 모신 이 분께는 반드시 예를 갖춰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망하는 거야. 마음에 군(君)도 없고 부(父)도 없고 신(神)도 없고 부처도 없는 사람은 이 시대에 용납되지 않으니까.’

야경꾼은 무슨 조직인가?

황제 직속의 간첩기관이자 호위기관이었다.

그들은 신도, 부처도, 성인도 경외하지 않아도 되지만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문심(问心) 시험은 성품을 가르는 과정인 듯했다.

‘나는 보나마나 불합격이겠군. 예를 갖추지도 않고 단숨에 오층까지 올라왔으니. 나 같은 인간쓰레기는 아마 야경꾼 관아에서 쫓겨나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야경꾼이 내가 주립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실을 아는데, 이후에 이 일을 들추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허칠안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바로 가라앉았다.

허칠안은 ‘현자의 상태’와 애써 대항하여 강제로 군왕에게 절하려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의식이 미친 듯이 싸우다 보니 몸이 굳어지고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 부들부들 떨렸다.

군왕상 앞에 서 있던 하급 관리가 허칠안을 잠깐 지켜보더니 그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몇 분 후, 하급 관리가 다시 오층으로 돌아왔는데도 허칠안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온몸은 굳은 채 부들부들 떨렸고, 손발에는 경련이 일어났다.

돌아온 하급 관리가 희귀종을 본 것마냥 허칠안을 아래위로 훑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미 아래층 동료들과 평가를 교환했습니다. 위 공께서 문심(问心)관을 세울 당시 분부가 있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오층 연속 절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악인 중의 악인이라고 말입니다.”

‘형, 기회를 한 번 더 주셔!’

허칠안이 초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급 관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위 공께서, 그런 사람들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마련한 게 있습니다. 바로 여섯 번째 관입니다. 다만 그 관은 누구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급 관리가 신기한 눈길로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몸의 긴장을 푸세요.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마시고요.”

허칠안은 ‘현자 상태’와 대항하지 않고 숨을 골랐다. 뒤이어 경련이 멈췄다.

등은 이미 땀으로 폭 젖은 채였다.

그는 하급 관리를 따라 군왕의 조각상을 지나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투각한 창으로 빛이 들어와 점 모양으로 목판을 비추었다.

목판에는 시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

<살진적추백만병(*杀尽敌酋百万兵: 적의 백만 병사를 몰살하여), 요간보검혈유성(*腰间宝剑血犹腥: 허리에 찬 보검이 피로 물들었다). 귀래수지황금간(*归来手持黄金锏: 돌아올 때 손에 황금간을 들었더니), 만조문무미감언(*满朝文武未敢言: 조당의 문무백관이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척 기세등등한 시로군……. 내게 보여주는 의미는?’

허칠안이 고개를 돌려 하급 관리를 쳐다봤다. 그는 하급 관리에게 은표를 찔러 주어 정보를 얻으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고작 하급 관리 한 명이 어찌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환관의 뜻을 알겠나 싶었다.

오히려 잘못 가르쳐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 수도 있었다.

‘시를 겨루다? 그럴 리 없다. 딱 봐도 시적 재능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문심관은 성품과 연관되니 이와 연결지어 생각해봐야 한다. 성품을 시험하는데, 위연은 왜 시 한 수를 이 곳에 새긴 거지?’

허칠안은 잡생각을 비우고 문제 분석에 전념했다.

‘여섯 번째 관은 나 같이 군도 없고 스승도 없는 자를 위해 마련했다. 신과 부처를 경외하지 않는 유물론자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허칠안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럼 나에게서 뭔가 특별하면서도 귀한 성품을 발굴하려고 하는 건데, 만약 나에게 없다? 그럼 나를 가차없이 죽이겠지. 귀한 성품이라…….’

순간 허칠안의 머릿속에 일층에서 읽었던 시가 떠올랐다.

“원이심심봉찰진(*愿以深心奉刹尘: 심심으로 중생을 위해 기여하자), 불위자신구리익(*不为自身求利益: 자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리).”

‘게다가 야경꾼의 직책은 백관을 감찰하는 것이다…….’

위연의 이 시는 충군과 보국의 뜻도 있거니와 백관을 위압하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허칠안은 드디어 환관의 의중을 깨달았다.

눈앞의 시는 시를 겨루기 위함이 아니라 공감을 자아내기 위함이었다.

군도 없고 스승도 없는 악한 놈, 진짜 천성이 악랄한 놈이라면 문심관에서는 절대 자신의 본뜻을 거슬러 억지로 이에 공감하는 시구를 써낼 수 없었다.

반대인 경우, 그나마 귀한 성품이 내재하고 있으니 그런 자에게 위연은 기회를 한 번 더 주고자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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