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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2화 (52/712)

52화. 확실한 증거

낯선 은라가 물었다.

“너, 세은 사건의 배후가 주 시랑이라는걸 알았느냐?”

허칠안이 사실대로 말했다.

“사천감 저채미한테 들었습니다.”

“그럼 주립이 너한테 했던 짓이 복수였다는 것도 알았느냐?”

“그렇게 추측했습니다.”

허칠안은 실눈 청년의 경고를 명심하고 있었다. 그는 말해야 할 건 절대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날 사천감 백의들이 형부에 들이닥쳐 자신을 구하는 걸 본 사람이 수두룩한데, 이를 부인해서는 안 됐다.

그럴 거면 차라리 당당하게 인정하는 게 백 배 나았다.

“주립이 너를 사지에 몰아넣으려 했던 것도 아느냐?”

“네, 압니다.”

“그래서, 주씨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위무후의 서녀를 납치해 주립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게냐?”

낯선 은라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칠안을 주시하면서 물었다.

‘이 일로 불렀구나…….’

허칠안은 당황한 기색을 티 내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망연자실한 기색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소인,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위무후 서녀가 납치당했던 당일, 장락현아에서 당직을 서지 않고 어디 갔었느냐?”

“소인, 기루에 가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소인의 독직죄(瀆職罪)는 인정합니다. 늘 남몰래 기루에 가서 노래를 듣곤 했습니다.”

이 부분은 왕 포두와 동료 서리들이 증명해줄 수 있었다. 다들 그런 식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장락현아 쾌수가 무단결근하고 기루에 갔는데, 그게 너희 야경꾼과는 뭔 상관인데?’

“그럼 증서는 어떻게 해석할 테냐? 관아에서 발행한 증서 기록에 네가 여러 번 내성으로 들어갔다고 기재되었던데.”

이옥춘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인 억울합니다!”

허칠안이 눈에 힘을 주더니 격한 말투로 자신을 위해 변호에 나섰다.

“소인은 태어나서 여태껏 내성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관아에서 증서를 받은 적도 없고요.”

‘이들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성으로 들어가는 증서는 사람을 통해 만들었다. 게다가 위탁인은 양릉인데, 그게 나 허칠안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은라 두 명은 한동안 심문하다가 허칠안의 말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자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를 한 번 마주보았다.

‘심문에 있어선 나도 전문가다, 이놈들아.’

안도의 한숨을 쉬던 허칠안이 형구를 곁눈질하더니 다시 움츠러들었다.

이옥춘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꺼냈다.

“그래, 좋다. 만약 우리가 사전에 증거를 파악하지 않았다면 방금 전 네 말을 믿었을지도 모르지.”

‘또 거짓말을 했다……. 무척 확실한 것처럼…….’

이에 허칠안은 무표정으로 은라들을 쳐다봤다.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경찰서에서도 몇 년 근무했었던 허칠안은 이런 심문 대응에는 자신이 있었다.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낸다면 또 다른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허칠안은 주 시랑이 이미 무너진 판국에,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야경꾼들이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낯선 은라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는 허칠안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떨어뜨려 수첩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시월 초하루, 임순일(壬戌日). 허칠안이 운록서원에서 돌아와 보기헌에서 금보요 두 개를 샀다. 도중 미행을 당했다. 주부 사람으로 보였다.

당일 밤에 주부 자객을 물리쳤다.

시월 초이틀, 계해일(癸亥日). 집안 여인들을 운록서원으로 이송했다.

시월 초닷새, 병임일(丙寅日). 내성에 진입해 교방사에 들어갔다. 영매소각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증 부향>은 허칠안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시월 초이레, 무진일(戊辰日). 위무후 서녀가 탄 차량과 마차로 충돌하여 위무후 서녀를 납치했다.”

낯선 은라가 수첩을 덮더니 허칠안을 조소하듯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허칠안은 몸 구석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엄동설한에 옷 한 벌 감싼 채 밖으로 내몰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경꾼이 나를 미행했다. 운록서원에 간 날부터 내게 사람을 붙인 거야. 며칠간 우리가 꾸몄던 일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니. 이제 끝이군! 야경꾼은 왜 나를 미행했지? 보잘 것 없는 쾌수 나부랭이를. 이건 합리적이지 않아…….’

허칠안은 절망의 심연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호부시랑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데다 후작의 딸을 납치한 것까지 하면 가문 몰살감이었다.

운록서원의 대유뿐만 아니라 사천감의 백의들도 그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구해낼 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 흔적 없이 일을 처리했건만, 나를 미행했던 야경꾼은 우리가 꾸몄던 일의 전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니…….’

실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허칠안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은라 두 명의 시선 속에 볼을 타고 주르륵 내려오더니 바닥에 뚝 뚝 떨어졌다.

‘잠깐!’

허칠안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야경꾼이 전반 과정을 지켜봤다면 왜 그를 중도에 까발리지 않았는가?

저 수첩을 상납하기만 했다면 주립은 죄를 면할 수 있었을 테고, 허씨 집안에 닥칠 재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을 것이다.

‘어째서 주 시랑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지?’

허칠안은 혼탁한 기운과 함께 여러 부정적인 정서를 토해내고는 고분고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소인 죄를 인정합니다. 모두 소인이 한 짓입니다. 대인께서 처리하실 대로 처리하십시오.”

엄숙한 표정의 두 은라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이옥춘과 눈을 한 번 마주쳤다. 그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무척 총명한 친구로군. 반응이 무척 빨라.”

이옥춘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전 너를 시험해본 거다. 심문에서 허점을 보였거나, 증거 앞에서 심지가 와르르 무너졌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재가 시작되겠지.”

잠깐 멈칫하더니, 엄숙한 기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이옥춘이 입을 열었다.

“우린 너에게, 야경꾼의 일원이 될 것을 제안한다.”

‘야경꾼이 될 것을 제안한다고? 내가 야경꾼이 될 수 있다고?’

허칠안은 믿기지 않아, 함부로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넌 인재다. 경조부 후당에서 난 이미 알아차렸다. 다만 야경꾼 내부에는 야경꾼에 대한 기준이 있어. 최소 연기경은 돼야지.”

이옥춘이 편한 자세로 바꾸더니 허칠안에게 말했다.

“대봉의 수호자이자 폐하의 보위자로서 기준이 높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넌 재능으로 스스로를 증명했어. 때문에 연정경일지라도, 야경꾼은 널 환영한다.”

‘내 수단이 충분히 더럽고 생각이 충분히 치밀해서 파격적으로 들인다는 거야 뭐야? 맞다. 남쪽 혈통이 섞인 은라가, 세은 사건 당시에도 나를 마음에 들어 했지.’

엄숙한 표정의 은라가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장공주마마께서 널 추천했다는 거야.”

허칠안이 깜짝 놀랐다.

‘장공주는 누구? 왜 나를 추천한 거지? 난 모르는 사람인데. 어……. 맞다. 운록서원에서 들어보긴 했구나.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나를 추천했지?’

지금 허칠안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두 명의 은라는 허칠안의 의문을 풀어줄 마음 따윈 없어 보였다. 어쩌면 그들도 모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인 두 분께서 저를 적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옥춘이 웃으며 답했다.

“야경꾼의 직책이 뭔지는 잘 알고 있겠지?”

‘백관을 감찰하는 거지…….’

국고의 재물과 양식을 탐하는 자는 야경꾼과 같은 편이 될 수 없었다. 야경꾼은 심지어 주 시랑을 무너뜨리는 것에 일조했다……. 허칠안은 그제야 깨달았다.

“주 시랑은 언젠가 망할 거였다. 이미 우리 측에서 손을 대고 있었어. 다만 너의 꼼수로 진척이 빨라졌지.”

엄숙한 표정의 은라가 말했다.

이옥춘이 그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손 대인, 사전 약속대로 이 친구는 내 수하로 두겠네. 우리 두 사람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주게나.”

손씨는 이 말에도 자리를 바로 뜨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허칠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네게도 선택권이 있다. 이 대인을 따를 거냐? 아니면 나를 따를 거냐?

우리 둘의 권력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대인은 꽉 막힌 사람이라 부하들의 생활이 그다지 풍요롭지가 않아. 하지만 나를 따르는 동라들은, 최장 3년이면 내성에서 괜찮은 저택 하나를 마련할 수 있지.”

‘3년이면 저택 한 채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군…….’

그러나 허칠안은 손 대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세은 사건 당시, 이 대인께서 제게 공로를 세워 죄를 면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대인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건 물론 이유 중 하나였다. 다른 이유라면 허칠안은 자신의 양심에 거스르는 수작을 지나치게 부리고 싶지 않았다.

이에 손씨 은라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자세는 보기 좋군.”

그리고는 아무 미련 없이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 미소를 머금은 이옥춘이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앉거라. 먼저 내 소개를 하지. 이옥춘이라 부르거라. 앞으로는 너의 대장이 될 테니, 대장이라고 불러도 된다. 아직 입에 붙지 않는다면 이 대인이라 불러도 되고.”

‘춘형(春哥)이라고 부르면?’

허칠안이 자리에 앉더니 조심스럽게 ‘이 대인’이라 불렀다.

“내 수하로 일하려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건 반드시 명심해라.”

이옥춘이 경고조로 한마디 하더니 야경꾼 조직을 소개했다.

“야경꾼에서 가장 말단이 백역(白役)이다. 공식적인 관직이 없이 그저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다음은 동라. 동라부터는 공식 야경꾼이다. 가장 낮은 경지가 연기경이고. 월봉은 은자 다섯 냥에 봉미 두 섬. 그 위로는 은라고, 백호 대우를 받는다. 은라 위로는 금라. 가장 높은 직위지. 대봉에는 금라가 열 명뿐이다. 직접 위 공의 지시를 받지.”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상식은 그도 알고 있었다. 위연이 야경꾼의 일인자였다.

“야경꾼의 직책은 백관을 감찰하고 경성을 수호하는 거다. 구체적인 업무는 앞으로 천천히 숙지하면 돼.”

이옥춘이 허칠안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넌 연정경 전봉이니, 내, 두 가지 제안을 하겠다. 첫째, 공훈을 천천히 누적하여 기회를 기다리는 것. 아니면 은자 사백 냥을 상납하면 내가 널 도와 천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허칠안은 추호도 주저하지 않고 답을 뱉었다.

“두 번째 제안을 선택하겠습니다.”

이에 실눈을 뜬 이옥춘이 입을 열었다.

“돈이 많은 친구군.”

“사천감 채미가 빌려준 겁니다.”

허칠안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채미에게 뒤집어씌웠다.

이옥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우선 너의 호적 변경 수속부터 진행하도록 하지.”

말이 끝나자 이옥춘이 방문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눈을 뜨고 웃음을 짓던 청년과 과묵한 청년이 들어왔다.

“송정풍(宋廷风)이다.”

웃으면 실눈이 되는 청년이 제 소개를 하면서 허칠안을 아래위로 훑었다.

“바로 동료가 되다니, 의외인데?”

“주광효(朱广孝)다.”

그는 딸랑 이름만 알리고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 * *

허칠안은 두 사람을 따라 입직 수속을 밟았다.

길에서 송정풍이 편한 말투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장이랑 일을 하는 건, 전반적으로 마음이 편해. 암투가 적거든. 나쁜 점이라면 뒷돈을 챙길 때 무척 조심해야 돼. 작은 건 괜찮지만 너무 지나치면 안 되거든.”

“그럼 조금 전 삼십 냥을 내게 돌려주는 건 어떤지?”

허칠안이 진심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송정풍도 진정성 있는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답했다.

“내가 언제 돈을 받았다고 그래?”

‘……뱀 같은 놈!’

허칠안이 입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내 기억이 잘못됐나 보다.”

“맞다. 오늘 밤 교방사에 가려고 하는데, 함께 갈 텐가?”

송정풍이 물어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이런 관장의 썩어빠진 교제인데…….’

허칠안이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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