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야경꾼이 찾아오다
언어 폭격을 한바탕 당하고 난 허칠안은, 고분고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앞으로는 좋은 시가 있으면 우선 두 선생의 다듬질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이모백과 장진의 노여움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싶었다.
두 대유는 후세에 길이 전해질 시를 놓쳤단 아쉬움도 있었지만, 교방사의 기녀에게 시를 바쳤다는 사실을 더욱 마뜩잖아했기 때문이다.
‘포진천물(*暴殄天物: 하늘이 낸 만물을 함부로 다 써 버림)이란 거지.’
허신년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수습에 나섰다.
“막내 동생이 서원에서 글을 배운 지 며칠 됐는데, 효과는 어떻습니까?”
진태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네 동생은 참으로 심지가 굳은 아이더구나.”
장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열흘 사이, 네 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이모백이 덧붙였다.
“가르쳤던 선생 모두 맹세를 하더구나. 다시는 어린아이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허칠안과 허신년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 * *
소원(小院), 오랜만에 상봉한 집안 식구들.
숙모는 기쁨으로 남편과 아들을 맞았다. 숙부도 기쁨에 겨워 막내딸과 아내를 껴안았다.
부친을 만나더니 드디어 서러움이 터진 허영음이, 부친의 다리를 붙잡고 대성통곡했다.
허평지는 그런 막내딸을 안쓰럽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엄한 서원 선생 밑에서 글을 배우느라 무척 고생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옆에서는 짙은 남색 비단옷을 입은 허영월이, 웃음을 머금은 야윈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있다 보니 콩알이처럼 거리낌 없이 부친의 품에 안길 수도 없었고, 또 장자가 아니었기에 부모님의 관심도 크게 받지 못했다.
이래서 중간에 끼인 자식은 항상 서러운 법이다.
“열흘을 보지 못했더니 무척 야위었구나.”
허칠안이 동생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자세히 살피면서 말을 건넸다.
허영월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큰 오라버니의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큰 오라버니…….”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영월은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했다. 말을 타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승마를 배운 적이 없는 그녀는, 부친의 동의하에 허칠안과 함께 말을 탔다.
햇볕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찼다. 한겨울의 승마란 엄동설한에 헬멧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았다.
허칠안의 품에 쏙 들어간 허영월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둘러봤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이 몰려왔다.
허신년의 품에도 동생이 한 명 있었다.
“둘째 오라버니, 말이 너무 덜컹대서 토하고 싶어요.”
“그럼 마차에 들어가렴.”
“싫어요. 오라버니 목 위에 탈래요.”
작은 동생이 영 귀찮았던 허신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차에 탄 숙모가 갑자기 발을 올려 얼굴을 내밀더니 물었다.
“나리, 제가 없는 동안 나가서 나쁜 짓은 안 하셨지요?”
허신년과 허칠안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안 했습니다!”
숙모가 두 사람을 흘겼다.
‘너희들에게 물은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참견하긴!’
* * *
삼 일 후, 휴일.
허칠안은 이른 아침부터 옥석경을 만지작거렸다. 안에는 쇠뇌, 동경, 박도의 허영(虚影)이 보였다. 꼭 어렴풋하게 그려 넣은 그림 같았다.
그는 이 거울을 수납공간으로 사용했다. 잡다한 물건들을 이 거울 안에 넣어 보관했다.
허칠안은 본채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허영월이 기대하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큰 오라버니, 오늘 휴일인데 저와 함께 나가는 건 어때요?”
얼마 전에 있었던 주립 사건이 떠오른 허평지가 이마를 찌푸리더니 말했다.
“나도 오늘 휴일이란다. 영월아, 아버지와 함께 가자꾸나.”
이에 한숨을 쉬던 허영월이 머리를 절레절레하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네요.”
허평지는 멍해졌다.
한편, 허칠안의 영혼은 이미 가출한 상태였다.
‘오전에 기루에 가서 노래를 듣고, 점심에 집에 돌아와 한잠 자고, 날이 어두워지면 암시장에 다녀와야지. 얼른 연기경에 들어서야 한다…….’
이때 문지기 로장이 급히 달려오더니 청 밖에 서서 말했다.
“나리, 밖에 관리 두 분이 찾아왔습니다.”
“차야?”
허평지가 백죽을 한 모금 마시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
“어디서 온 차야더냐?”
허신년이 입을 열었다.
“형님의 동료입니까?”
허칠안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아닐걸.”
문지기 로장이 말했다.
“소인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검은색 옷을 입고, 가슴에 이상하게 생긴 동라(铜锣)를 묶었습니다.”
허씨 집안 남자들은 일제히 손을 떨더니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야경꾼!’
“얼른 안으로 모시거라!”
허평지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전청으로 맞이하러 나갔다.
허칠안과 허신년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머릿속으로 야경꾼이 찾아온 목적을 생각하고 있었다.
대봉 황조에서 ‘야경꾼’이란 세 글자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이는 종종 심문, 수감, 몰살과 같은 피비린내나는 단어와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허평지의 직급으로는, 야경꾼들의 표적이 될 수 없었다.
* * *
종종걸음으로 전청에 도착한 세 사람은, 그들을 찾아온 야경꾼 두 명을 만났다.
야경군 두 명은 검은색 제복에 짧은 피풍(披风)을 걸치고, 가슴에는 무척 복잡한 주문을 새긴 동라(铜锣)를 묶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청년이었다. 좌측은 과묵하다 못해 얼굴 근육이 굳어있는 청년, 우측은 이와 정반대로 실눈을 뜨고 웃음을 걸고 있는 청년이었다.
실눈을 뜨며 웃음을 짓던 청년이, 허씨 집안 남자들을 훑더니 입을 열었다.
“누가 허칠안이냐?”
허칠안이 한 보 앞으로 내디디면서 답했다.
“제가 허칠안입니다.”
청년이 머리를 살짝 끄덕이면서 말했다.
“우리와 가야겠다.”
눈썹을 치켜든 허평지가 허칠안 앞을 막아서더니, 공수하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대인, 조카가 무슨 일을 범했습니까?”
과묵한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웃음을 짓던 청년이 한마디 뱉었다.
“낮에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한밤중 야경꾼이 문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지.”
‘야경꾼은 자신들을 거부하는 즉시 칼을 뽑는 거 아냐?’
허칠안이 한 손을 숙부의 어깨에 살포시 얹더니 야경꾼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 * *
허칠안은 야경꾼을 따라 허부를 떠났다. 대문 앞에는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과묵한 야경꾼이 마차를 가리키며 허칠안이 올라타도록 지시했다.
시종일관 실눈을 뜨고 웃음을 짓던 청년이 가슴에 묶은 동라를 벗어 힘껏 치더니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우렁차게 소리쳤다.
“날씨가 건조하니, 불을 조심하시오.”
* * *
야경꾼의 관아는 내성에 자리하고 있어 허부와는 거리가 무척 멀었다. 보행으로는 최소 몇 시간은 걸어야 해서, 마차를 준비했던 것이다. 결코 허칠안을 특별 대우해서가 아니라 단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과묵한 야경꾼이 마차를 몰았고, 허칠안과 항시 웃음을 짓는 청년이 마차 안에 마주보고 앉았다.
‘야경꾼이 왜 날 찾아? 주립의 건 때문인가?’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완벽한 범죄라는 보증은 없었지만, 감시 카메라가 없는 대봉 황조에서 내가 장씨 집안 소저를 납치했다는 걸 절대 조사해낼 수는 없어. 흔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나를 겨냥할 수 없다고…….’
허칠안은 가슴에 손을 넣어 옥석경의 뒷면을 살짝 당겨 은표 한 장을 꺼냈다. 십 냥짜리 은표였다.
은표의 액면 가치를 확인하던 허칠안이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항시 웃음을 걸고 있는 청년에게 은표를 성의를 다해 건넸다.
“소인은 양민입니다. 나랏일과 백성을 위해 대인께서 항상 고생 많으십니다. 혹 소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맞은편에 앉아있던 야경꾼이 힐끗 은표를 보더니, 아무런 악의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야경꾼은 무척 엄격한 조직이야. 뇌물이 십 냥을 넘으면 장형 오십 대. 오십 냥이 넘으면 바로 유배지. 그러다 백 냥이 넘으면 참수형에 처하는 거고. 그러니 내가 고작 십 냥으로 매를 벌 필요는 없지 않니?”
허칠안이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은자를 가져오려는데 실눈을 뜨고 있던 청년이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서 정보를 얻으려면……. 돈을 추가해야 하지!”
그러자 허칠안이 통쾌하게 삼십 냥을 건넸다.
은표를 건네받은 청년의 눈이 바로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가 두 장은 가슴에 넣고, 한 장은 밖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청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삼십 냥 받았어. 너랑 나 각각 십 냥. 남은 십 냥은 오늘 밤 교방사 다도회에 가서 쓰자고. 한 사람당 다섯 냥이니까.”
과묵한 청년이 은표를 건네받더니 낮은 소리로 답했다.
“그러지.”
실눈을 뜬 청년이 다리를 꼬더니 허칠안에게 말했다.
“규정이 중요하나, 모든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규정을 어길 때에는 오히려 규정을 고수하는 자가 배척을 당하곤 하지.”
억지웃음을 짓는 허칠안을 지켜보던 청년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난 그냥 명령을 받들어 너를 데리고 가는 거다. 구체적인 내막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하나 가르쳐주지. 관아에 가서 말해야 할 건 절대 숨기지 말고, 말하지 말아야 할 건 죽어도 말하지 마라.”
‘이런 제기랄! 그 도리는 나도 알거든? 이걸 은자 삼십 냥과 바꿨다니.’
* * *
그들은 마차로 북적이는 장터와 기나긴 거리를 하나 또 하나 지나, 사시(巳时)에 야경꾼 관아에 도착했다.
허칠안이 마차에서 내려, 야경꾼의 압송하에 관아로 들어갔다.
야경꾼의 사무 공간은 세 겹의 대저택을 개축한 것이었다. 높은 각루에 검은색 제복을 입고 동라를 묶은 야경꾼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어 위엄이 장난이 아니었다.
‘야경꾼의 대옥에 데려갈지도 모르겠네. 거기에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린다던데……. 우선 조용히 지켜보자. 난 양민인데, 법도 범한 적 없고…….’
허칠안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소원에 도착했다.
대문 어귀에 야경꾼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간단한 인수인계를 했다. 이윽고 실눈을 뜬 남자가 허칠안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들어가 봐. 네 안전을 빌어주마.”
그리고는 과묵한 청년과 자리를 떴다.
문을 지키던 야경꾼들이 허칠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들어가라.”
심문실이었다. 구석에는 여러 가지 형구들이 있었고, 중간에는 텅 빈 긴 의자가 놓여있었다.
심문할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칠안은 감히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야경꾼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이 열리자, 가슴에 은라를 수놓은 중년 사내 두 명이 들어왔다.
허칠안은 바싹 긴장한 상태로 빠르게 눈앞에 나타난 은라 두 명을 훑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 중 한 명의 낯이 익었다는 것이었다.
오뚝한 코에, 이목구비가 무척 뚜렷하고 눈동자의 색깔이 살짝 옅은, 남쪽 지역 혈통이 섞인 중년 사내. 세은 사건 수사 당시 부아 후당에서 만났던 그 은라였다.
“또 만났구먼.”
이옥춘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허칠안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친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은라 두 명이 자리에 앉더니 엄숙한 기색에 예리한 눈길로 허칠안을 살폈다.
“몇 가지 물을 건데, 거짓말이 하나라도 섞이면 바로 고문으로 대접하겠다. 알았느냐.”
낯선 은라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네…….”
허칠안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죄인을 보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눈썹을 찌푸리던 이옥춘이 말을 꺼냈다.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의관(衣冠)을 바르게 하지. 이건 기본 예의가 아닌가.”
그제야 허칠안은 자신의 흐트러진 옷깃을 발견했다. 아까 은표를 꺼내다가 흐트러졌던 모양이었다.
허칠안이 옷깃을 바로 하자 이옥춘의 무거운 기색이 조금 완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