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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50화 (50/712)

50화. 질투

정자 밖의 장공주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공주를 알아본 노 선생이 몸을 일으키더니 공손한 태도로 읍하면서 인사했다.

“장공주마마를 뵙습니다.”

귀티가 흐르는 장공주가 머리를 살짝 끄덕이더니,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운록서원에 언제 어린 친구가 한 명 늘어난 것입니까?”

노 선생이 머리를 돌려 자매더러 앞으로 와서 예를 갖추라는 눈치를 줬다. 허영월이 몸을 일으켜 예를 갖췄다. 그에 반해 허영음은 눈앞의 아리따운 여인을 멍하니 쳐다만 봤다.

노 선생이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가 범한 무례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두 분은 서원 학생의 가족입니다. 집안에 일이 생겨 여인들을 잠깐 서원에 맡겼습니다.”

‘피난이란 건가?’

머리가 남다른 장공주는 곧장 노 선생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느 학생입니까?”

장공주 또한 서원의 학생이라면 학생이었다. 때문에 서원의 규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대유의 동의 없이는 학생의 집안 여인들이라 해도 청운산에서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허영월이 가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형(家兄) 허신년이라 부릅니다.”

허영월은 허칠안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큰 오라버니, 허칠안은 서원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허신년…….’

장공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허칠안의 뒷조사를 했던 그녀는 바로 둘 사이가 형제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세은 사건의 배후가 주 시랑이었고, 대략 일순 전에 허칠안과 주 시랑의 공자가 거리에서 충돌했지.’

장공주가 소녀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언제부터 머물렀느냐?”

“열흘이 거의 되어갑니다.”

허칠안과 채미는 아는 사이였다. 채미 또한 주 시랑이 세은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를 보았을 때, 주 시랑을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 집안 여인들을 서원에 보낸 것이 분명했다.

‘이도 대책이긴 하겠지만 집안 모두 경성을 떠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집안 여인은 서원에 보내고 남자들은 여전히 경성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지금 뭔가 꾸미고 있다는 뜻?’

장공주가 실눈을 뜨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하여 산을 올랐다.

* * *

장공주가 원장 조위를 살피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열흘만에 원장님의 기색이 완전 달라졌네요.”

예전의 원장은 결코 스스로를 꾸미지 않았다. 헝클어진 백발에 양미간은 항상 침울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눈에 생기가 돌았고,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의기(意气)가 굳어진 게 엿보였다. 전반적으로 원기왕성했다.

조위는 장공주의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우렁차게 말했다.

“성인이 가로되, 학무장유(*学无长幼: 배움에서 굳이 연배를 따지지 않고), 달자위선(*达者为先: 먼저 도착한 자가 우선이다)이니라.”

‘학무장유, 달자위선……. 이는 그에게 선생이 생겼는데, 결코 나이가 많지 않은 선생이라는 뜻이다. 그날 아성전의 청기충천과 연관 있는 건가?’

장공주는 아성학궁에서 일어난 이상현상에 무척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지식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건 유가 도통을 둘러싼 논쟁과 미래 조당의 국면과 연관되기 때문이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성학궁을 막아서 그 누구도 출입을 못하게 하니, 이에 야경꾼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장공주는 분산된 사고를 다잡아 짙은 푸른색의 대나무숲으로 시선을 옮기며 감탄조로 말했다.

“원장께선 주 시랑이 파면당해 충군한 일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대봉의 관장의 당쟁을 생각하면, 서막에 불과한 사건 아닙니까?”

조위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이에 대해 더 이상 논하고 싶지 않은지 손짓하여 바둑판을 가져오라고 분부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모백은 위연에게 삼패를 겪고 나서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습니다. 서원에 노부와 바둑을 둘 만한 사람이 몇 없는데, 마침 오늘 장공주께서 오셨으니 노부와 한 판 두시지요.”

“본 공주와 바둑을 두겠다니요. 스스로 굴욕을 자처하시는 거 아닙니까?”

* * *

벼랑을 등진 각루.

대유 세 분의 논쟁이 끝났다. 시동이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장공주가 서원에 방문해서 사람을 시켜 전해온 것이다.

편지내용은 이러했다. 최근 경성 서생들이 즐겨 읊는 시 한 수가 있는데, 국자감에서 이를 백 년 이래 시사 괴수(魁首)로 꼽으면서, 운록서원의 송별시를 제쳤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송별시와 달리 그 시는 출처가 교방사인 탓에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자고로 사람들은 재자가인(才子佳人)의 이야기에 무척 큰 관심을 보이는 법이었다.

마지막에 장공주는, 며칠 동안 경성의 서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를 첨부했다.

‘노부가 폐관한 지 고작 며칠인데, 경성에 또 놀라운 시가 나왔다고?’

장진이 시를 집중하여 읽었다.

<영매소각 증 부향(赠 浮香>

중방요락독선연(众芳摇落独暄妍), 점진풍정향소원(占尽风情向小园).

소영횡사수청전(疏影横斜水清浅), 암향부동월황훈(暗香浮动月黄昏).

다 읽고 난 장진은 조각상마냥 요지부동의 자세로 한참이나 시만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손에 든 종잇장을 천천히 내려놓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모백과 진태를 바라봤다.

“자네들 어서 와서 이 시를 한 번 보게나.”

장진이 말했다.

갑자기 엄숙해진 장진의 안색에 두 대유는 멍해졌다. 이모백이 종잇장을 건네받아 빠른 속도로 한 번 훑더니 한층 어두운 얼굴을 했다.

“내가 한 번 보지.”

진태가 두 사람의 안색을 살피더니 손을 내밀어 종잇장을 받아 보았다. 그도 마찬가지로 무척 오랫동안 종잇장만 들여다보다 말했다.

“소영(疏影), 암향(暗香). 두 마디가 매화의 뛰어난 풍채를 여실히 보여주는군. 이보다 섬세한 묘사는 없을 거네.”

이모백이 그의 뒤를 이어 평론을 늘어놓았다.

“칠안이의 천하수인불식군은 사람 내면의 기개를 불러일으키지만, 묘사의 깊이나 구사의 아름다움이나 기품의 탁월함은 확실히 이 시와 비할 수 없네.”

수염을 쓰다듬던 장진이 감탄했다.

“이제 더 이상 이 시를 초월하는 매화시는 없겠어. 양릉은 누구요? 이렇게 재능 있는 친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니.”

진태가 다시 한번 편지를 보더니 답했다.

“장락현아 수재인가보네. 교방사에서 이 시를 기녀 부향에게 증여했고.”

진태의 말이 떨어지자 순간 차실은 고요해졌다.

공기 중에서 질투의 기운이 점점 더 농후해졌다.

장진이 깊이 사색하더니 말을 꺼냈다.

“이 사실을 지금 바로 원장께 알려서 이 수재를 서원으로 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인재가 묻혀서야 되겠나!”

진태와 이모백 모두 이에 찬성했다.

“일리가 있네!”

* * *

허칠안과 허신년은 집 안의 여인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서원을 찾았다. 학생으로서 우선 스승님을 찾아뵙는 게 도리였다.

마침 수업이 끝난 대유 셋은 ‘중히’ 여기는 학생들이 방문했다는 소리에 당사(堂舍)에 모여 학생들을 기다리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선 제자의 변화가 만족스러웠던 장진이 말을 꺼냈다.

“신년, 성인어록을 초록하는 것이 네게 큰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구나.”

허신년이 머리를 끄덕이자, 이모백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성인어록 초록이 수신경 입문에 도움이 된다고? 노부는 왜 몰랐지?”

허신년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수신경의 문턱에 닿았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형님이 남긴 비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밝히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야 그 비문을 누가 남겼는지 뻔히 다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고 난 후, 진태가 이모백과 장진을 힐끗 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둘은 경성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최근 경성에서 무척 유명한 시 한 수를 들어보았겠구먼……. 소영횡사수청전(疏影横斜水清浅), 암향부동월황훈(暗香浮动月黄昏). 실로 훌륭한 시구지.

칠안, 시적인 재능이 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되네. 천하에 드러나지 않은 인재들이 많다는 걸 항상 명심해야 돼.”

‘우리가 재능 있는 친구를 제자로 두었다고 질투하는군…….’

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타인의 시가 훌륭하다고 굳이 비길 필요는 없지.”

장진이 말했다.

이에 이모백도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최근 들어 서생들의 영기가 부족하다 하지만, 이례적인 상황은 일어나는 거야. 그 양릉이라는 수재에게선 이제 더 이상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겠지만 우리 칠안이는 다르지. 앞으로도 세 번째, 네 번째 시가 더 나올 수 있어.”

허신년이 허칠안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시는 우리 형님이 지은 겁니다.”

“풉…….”

이 말을 듣던 진태가 입에 머금었던 찻물을 뿜었다.

이모백과 장진도 몸이 굳어지더니, 머리를 홱 돌려 허칠안을 노려봤다.

“지은이가 양릉이 아니고?”

‘이 놈 몸이 근질근질한가? 감히 나를 팔아먹어?’

허칠안이 뻔뻔스레 말했다.

“제 가명입니다.”

“정말이더냐?”

“정말이라고!”

장진과 이모백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물었다.

“네가 교방사는 왜 가?”

허칠안이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

“소년이 미인을 애모하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대유 셋은 가슴에 응어리가 맺힌 것마냥 갑갑해진 기분을 느꼈다. 그 갑갑함을 토하고 싶어도 토해낼 수가 없었다.

몇 초 후, 장진이 몸을 일으키더니 허칠안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훈육했다.

“너, 너……!”

“그렇게 뛰어난 시구를 기녀에게 바치다니! 그게 가당키나 하느냐?”

‘그래, 그래, 너한테 바쳐야 좋은 거지…….’

허칠안은 마음속으로는 장진을 비아냥거렸지만, 학생으로서 선생의 훈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이모백도 흥분했다.

“매화시면 매화시지. <영매소각 증 부향>은 또 뭐더냐? 저속해도 이렇게 저속할 수가 없구나. 시를 매장한 거나 다름없지!”

‘<운록서원 증 모백 선생>으로 바꾸면 아마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할 거면서.’

허칠안이 속으로 투덜댔다.

만고에 길이 남을 시구를 기생에게 바치다니, 낭비긴 낭비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안 된다. 만약 이 시로 부향의 환심을 사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순조롭게 주립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도 못했겠지. 주립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못하고 주 시랑이 경찰을 무사히 통과했다면, 허씨 집안에 찾아오는 건 어떤 결말이었겠는가?’

시야 원래 베낀 것이니 아쉬울 거 하나 없었다. 눈앞의 난관을 해결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시를 저장해둬 봤자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아무리 훌륭한 시라도 현실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쓰여야만 유용한 것이다.

진태도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양릉이 허칠안의 가명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게 더 합리적일 듯했다. 이렇게 시에 재능 있는 인재가 하늘에서 갑자기 둘이나 뚝 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모백과 장진도 저 친구를 제자로 들였는데, 나더러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이미 스승이 둘이나 있으니 셋이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 친구를 꼭 자신의 제자로 들이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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