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8화 (48/712)

48화. 납치

송경은 허칠안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두 사람은 탁자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손에 든 찻잔에서는 향기로운 차향이 풍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를 의심한 적 있네.”

송경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자네 18대 조상까지 조사해봤네.”

‘사람을 면전에 놓고 조상 18대를 논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에 허칠안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반문했다.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너무 깔끔하더군.”

송경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더 이상 허칠안의 조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선지 한 뭉치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최근 내 연구를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허칠안은 그것을 받아 쥐고 한 번 훑었다. 그는 하마터면 금방 마셨던 찻물을 뿜을 뻔했다.

식물 접목뿐만 아니라 ‘이럴 거라면, 굳이 하나 가르쳐줬을 때 열을 알지 않아도 괜찮은데.’의 여러 가지 사례를 더 열거해놓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말의 접목.

장점을 무척 많이 열거해놨다. 예를 들어 대봉에서 더 이상 전마의 결핍을 우려할 필요 없고, 사병들이 더 이상 훌륭한 전마가 없음에 기가 죽지 않아 된다는 등등. 왜냐면 사병 스스로가 한 필의 전마가 될 테니.

또 예를 들면, 가축류 요족을 잡아다가 인류와 교배하여 공군(空军)을 충당할 수 있는 반요족을 만들어낸다든가. 그러려면 요괴에 대해 알아봐야 하고, 생식적 격리에 대해 알아봐야 하고…….

‘이게 무슨!’

허칠안은 충격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송 사형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말해보게.”

“제가 주 시랑을 잘못 건드렸단 사실은 아시죠?”

“채미가 말해주었네.”

송경이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유감이네. 사천감이 워낙 조정일에 간섭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폐하께서도 허락하지 않네. 게다가 실권을 잡고 있는 주 시랑은 내 능력의 상한선을 벗어났지.”

“제가 부탁할 일은 무척 쉬운 일입니다…….”

허칠안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니.”

송경이 바로 거절했다.

“그런 일은 할 수 없네.”

허칠안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송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송 사형, 그럼 우리 접목 이론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보지요. 제가 에두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이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눈썹을 찌푸리던 송경이 앉은 자세를 바로 잡더니, 학술 토론 때의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송 사형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유리병에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바로 그 생생한 예잖습니까. 다만 실패의 원인이 궁금하시겠죠.”

송경의 몸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의 숨이 가빠지더니, 그가 눈을 부릅뜨고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자네는, 아는 건가?”

“제가 연구에 참여하지 않아 구체적인 원인은 모르겠으나, 이론적인 근거 하나는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론적 근거?!’

송경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론적 근거였다. 새로운 문파를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심오한 연금술 분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이론적인 뒷받침이 필요했다.

눈에 생기가 도는 송경의 눈길 아래, 허칠안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원소 주기표를 들어보셨나요?”

‘웬 원소 주기표? 내 실험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데?’

순간 송경의 머릿속에는 물음뿐이었다.

이윽고 송경의 숨이 점점 더 가빠졌다. 금방이라도 연금술 진리의 문에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솜털마저 한 올 한 올 곤두섰다.

송경이 묻기도 전에 허칠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금술의 원칙은 등가교환이지요.”

* * *

위무사는 내성의 작복가(雀伏街)에 위치했다. 작복가는 공훈 지역으로, 거리 전체가 후작(侯爵), 백작(伯爵), 공작(公爵)들의 저택이었다.

위무후는 세습해온 작위였다. 이 가문은 삼백 년 전 황위 쟁탈전에서 궐기한 가문었고, 오늘날까지 세습해 오긴 했으나 세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측문이 열리자 동그스름한 얼굴의 묘령 소녀가, 여종과 수종의 보호하에 걸어 나왔다.

소녀는 색상과 무늬가 화려한, 발목까지 내려온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예쁘게 수놓은 작은 신발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수려한 용모에 생기 도는 두 눈. 도도한 분위기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장옥영(张玉英)이 입구에 준비된 가마에 앉자, 교부(*轿夫: 가마꾼)들이 가마를 들고 성황묘(城隍庙)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그녀가 성향묘를 찾아 분향하고 공양하는 날이다. 성향묘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문원백부(文远伯府)에 들러 친한 벗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예정이었다.

그들은 규중 여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금서(禁书)를 잠깐 보다가, 어느 집안 공자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나, 그리고 추시에 급제한 서생들이 어떤지를 평가하다가, 그들이 다가오는 내년의 춘시에 급제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눌 터였다. 그중에 미래의 부군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대오가 두 거리를 지날 때쯤, 가마 옆에서 따라가던 여종이 웬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오던 말 두 필이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통제 불가능해져 전속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놀란 기색의 마부들이 한사코 말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소리쳤다.

“비켜, 다 비켜……!”

놀란 행인들이 질서 없이 사방으로 마구 피했다.

“얼른! 얼른 마차를 막아!”

대경실색하던 여종이 수종들을 시켜 마차를 막게 하고, 가마를 든 교부(*轿夫: 가마꾼)들에게 마차를 피하라 다급히 명했다.

수종이 몇 명 안 되는 터라, 마차를 한 대만 막을 수 있었다. 막지 못한 마차가 교부(*轿夫: 가마꾼) 두 명을 치자 가마가 지면에 떨어졌다.

남은 교부 두 명과 여종이, 반사적으로 몸을 한 쪽으로 던져 마차와의 충돌을 피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혼란에 빠졌다.

짧은 혼란이 지나가고, 마차 두 대는 계속하여 미친 듯이 앞으로 질주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종이 초조한 마음으로 달려가 가마를 살폈다.

“둘째 소저, 둘째 소저! 괜찮으십니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종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급하게 발을 올리던 여종이 멍해지더니 몇 초 후에야 소리쳤다.

“둘째 소저가 없어졌다!”

가마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내성, 모 소원(小院).

장옥영은 누군가가 자신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두통이 완화되자 공포가 밀려왔다.

장옥영은 위무후의 서녀였지만 적녀보다 대우가 약간 못할 뿐, 기타 자매들보다는 훨씬 우월했다. 부친과 정실 부인이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줄 뿐만 아니라, 사촌 언니인 적녀와도 관계가 무척 좋았다. 금의옥식(錦衣玉食)에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주변은 아무 소리 없이 고요했다. 손과 발은 묶인 상태였고, 입도 천으로 틀어막혔다. 공포가 몰려왔다.

이내 밖에서 문 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장옥영은 극도로 두려워졌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좋은 일은 아닐 터였다.

발자국 소리는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누군가 음탕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무척 예뻐. 아까 몰래 봤는데 최고 수준이야!”

“나쁜 녀석. 나를 부르지도 않고 혼자서 봐?”

수치를 느낀 장옥영의 눈엔, 분노로 인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말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아직도 미혼이지?”

“그야 당연하지. 위무후의 둘째 딸인데, 아직 시집가지 않은 소저다.”

장옥영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지도 알고 부친이 위무후인줄도 알면서 나를 납치해?’

이건 배후가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네가 말해봐 봐. 주 공자가 어떻게 처리할지. 무척 미인이긴 하지만 계속 이렇게 두는 건 위험하잖아.”

“쳇. 걱정 마. 주 공자가 한동안 데리고 놀다가 싫증 났을 때, 죽여서 여기에 묻어두면 누가 알아?”

“싫증 났을 때 우리도 숟가락 좀 얹어보는 거 어때. 피부가 다른 여인들과는 비교가 안 돼.”

“그러게. 주 공자만 아니었다면 진작 끝내버렸을 텐데.”

“호부시랑의 공자니 어쩔 수 없지. 가서 술이나 마시자.”

“자리 비우는 거,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해가 금방 떨어질 텐데? 그럼 얼른 술을 사 가지고 와서 마시도록 하지.”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더니 이윽고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주 공자? 호부시랑의 공자?’

장옥영의 머릿속에 비단 옷차림을 한 공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년 원소절에 당했던 일도 기억났다.

‘그가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니! 놀다가 싫증……. 곁들여 숟가락을 얹어……? 죽여서 이곳에 묻어 흔적을 지운다고?’

장옥영은 온실 안의 화초마냥 예쁘게만 커왔던 대갓집 규수였다. 그녀는 이 말들에 두려워 부들부들 떨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장옥영은 큰 소리를 내면서 사지를 움직여, 매듭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다 갑자기 손목이 헐렁해진 느낌이 들었다.

장옥영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두 발에 힘을 주어 비비꼬았다.

얼마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장옥영은 포박을 풀 수 있었다.

장옥영은 곧장 몸을 일으켜 발목에 묶인 줄을 풀고는, 발소리를 죽여 방문 어귀까지 걸어갔다. 그녀는 한참 귀 기울여 밖을 살피다가,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조심조심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선 자리에서 다시 이리저리 살피던 장옥영은, 갑자기 입술을 꽉 깨물더니 전례 없던 속도로 대문을 향해 달려가서는 빗장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 잠가놨던 것이다.

장옥영은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

* * *

허칠안은 정원의 맞은 편 거리에서 면 한 사발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허신년이 서 있었다.

“상스러운 말도 잘하는 우리 동생.”

허칠안은 습관적으로 허신년을 놀렸다.

이제는 이런 말에 감응조차 없는 허신년이 대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올 수 있을까요? 어째서 대문을 잠갔습니까?”

“살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절대 얕보지 마라. 날 믿어봐. 반드시 나올 거야. 담을 넘으면 바로 나올 수 있는데, 뭐.”

허칠안이 후루룩 면을 한 입 흡입하더니 낮은 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너무 허술하잖아.”

이건 주립이 밖에서 사들인 사택이었다. 그 안에는 외모가 괜찮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과 저택에 있던 여종, 하녀, 문지기는 허칠안이 모조리 거울 속에 가둬둔 바였다.

옥석경에는 물품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도 넣을 수 있었다. 허칠안은 허부의 하인을 상대로 사전에 실험해보았다.

거울이 없었다면, 장씨 집안 소저를 납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납치는 고사하고 잡혀가지 않으면 다행이었겠지.’

이때 담 위로 머리가 보였다. 장옥영이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빠끔히 내밀더니,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다가 담을 넘어 저택을 빠져나왔다.

발목을 삐었는지 땅에 엎드려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던 장옥영은 한참이 지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굳센 의지로 몸을 일으켜 벽을 잡고 절뚝거리면서 거리로 도망쳤다.

금의옥식(錦衣玉食)으로 키워지던 세가의 소저에게, 이 고난은 무척 버거웠을 터였다.

‘술 사러 나갔으니 해가 떨어질 즈음 돌아오겠지…….’

장옥영은 빨갛게 물든 서쪽 하늘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안전해졌음을 확신했다.

이때 마침, 무장하고 예기를 갖춘 성내 순찰을 담당하는 어도위가 옆을 지나갔다.

거리에서 다시 납치범을 만날까 봐, 혹은 그들이 쫓아올까 봐 두려워하던 장옥영은 구세주를 만난 것마냥 울면서 달려갔다.

그녀는 어도위가 칼을 뽑기 전에 다급히 소리쳤다.

“저는 위무후의 딸입니다! 납치를 당했습니다! 얼른 구해주세요!”

어도위 몇 명이 서로 마주보더니, 바로 달려가서 그녀를 포위했다.

주변에 있던 백성들도 멈춰서 무슨 상황인지 지켜봤다. 맨 앞에 선 어도위가 물었다.

“누가 소저를 납치했습니까?”

“주립! 호부시랑의 공자 주립이 저를 납치했습니다!”

장옥영이 대성통곡했고, 이내 통금의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허칠안은 사발을 거리 옆에 두고 입을 열었다.

“잘 곳을 찾아 하룻밤 지내고 난 뒤, 내일 집에 가서 소식을 기다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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