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2화 (42/712)

42화. 사회적인 죽음

“칠안, 이 일을 어떻게 알아낸 거냐?”

허평지가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물었다.

‘조정 정상에 앉아있는 관원들의 분쟁을, 어찌 잡다한 사람을 통해 알 수 있었겠냐 이거지.’

“사천감의 채미가 알려준 거예요.”

허칠안이 말했다.

‘그 대가는 탕후루 하나, 오리 다리 구이 하나, 술로 빚은 완자와 어완탕 한 사발이었지요.’

그가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큰 눈을 가진 미인인 채미는 참으로 매수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그녀는 조정에 관심이 없거니와 사천감이 조정 일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수중 정보에 한계가 있던 것이었다.

허칠안은 가볍게 박수를 쳐, 사색에 잠긴 사촌동생의 의식을 깨웠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로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기 어려워 보여. 하지만 한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허신년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교방사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부향한테서 정보를 얻는 겁니다. 물론 저는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저는 그런 곳에는 다니지 않으니까.”

대봉 관원들이 청루에 드나드는 건 매우 보편화된 일이었다. 하지만 관직이 없는 서생들은 또 달랐다.

‘교방사에 가보자는 생각을 하다니. 급제의 길이 아직 멀고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여인들이랑 놀아날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척 봐도 뭔가 미심쩍어. 앞으로 잘 되기는 글렀다! 예전에 내가 공부할 때, 우리 부모님은 아예 게임의 ‘게’ 자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고! 만약 어느 한 학생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한다 그러면 그 학생은 나중에 사회의 찌꺼기가 된다는 의미니까!’

허칠안이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갈 수 없다. 연기경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그럼 누가 교방사에 가서 정보를 알아온단 말인가?

형제 둘은 약속이나 한 듯 허평지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날 왜 보느냐? 내가 교방사에 갈 사람으로 보이더냐? 글도 제대로 모르는데 내가 거길 왜 간단 말이냐?”

허평지도 자신이 그런 곳을 전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했다.

허평지가 원치 않자 허신년은 허칠안을 바라봤다.

“형님의 시적 재능이면 교방사에서도 엄청 환영 받을 겁니다.”

이때 허평지가 나서서 아들의 제안을 묵살시켰다.

“네 형님은 기루도 가지 않던 사람이다. 형님더러 교방사에 가서 정보를 알아오라니. 괜히 가서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 채 여인한테 빠져 실정하면 어쩐단 말이냐?”

무인들에게 연기경에 이르기 전 동정을 잃는 것은 매우 큰 손해였다.

‘기루에 가서 노래도 듣지 않던’ 허칠안이 숙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허평지가 입을 열었다.

“신년아, 네가 가려무나.”

허평지는 교방사와 같은 곳에는, 아무래도 서생이 가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이 시대의 고착 관념이었다.

이에 허신년이 피식 웃었다.

허평지가 교방사에 가는 것을 거부한 데에는, 물론 거기에 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문인들이기에 무부를 꺼려하는 것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허신년이 교방사에 가는 것을 거부한 데에는, 물론 서생으로서의 명성과 소문을 중요시한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허칠안이 교방사에 가는 것을 거부한 데에도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사회적 죽음!’

세 사람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방 안에는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째서 세 사람 다 사회적인 죽임을 당할까 봐 염려하고 있는가? 이건 경성의 규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내성은 외성과 달리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다. 조정의 주요 관원들이 내성에 거주하다 보니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황혼이 내리면 북을 쳐 거리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했다.

허나 모두 알다시피 교방사는 밤에만 영업하는 곳이었다.

이건 교방사를 일단 가기만 하면,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게 바로 허평지가 허칠안이 교방사로 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였다. 혈기왕성한 청년이 교방사에서 밤을 지내다 보면 여인들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러기에 누구든 교방사로 가면 여인과 밤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자리에 모인 남자 셋에게는 모두 부각해놓은 모습이 있었다.

정인군자(正人君子) 허신년.

기루에도 가지 않는 허칠안.

가정을 잘 돌보는 애처가 허평지.

세 사람 모두 설령 어쩔 수 없이 교방사를 가더라도 여인과 밤을 보낸 사실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허칠안은 전생에 기생집 같은 데에 드나든 적은 없지만,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 갔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부모님한테 그 사실이 알려지는 그 난감함…….

‘죽고 싶은 충동도 들겠지.’

허칠안은 자세를 바로 하고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왕 포두가 말해준 청루에 관한 웃기는 일화가 떠올랐다. 조정 모 관원이 교방사에 갔는데, 타차위에서 자기 아들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은 난감함으로는 형용되지 않을 터였다.

그 일화는 이튿날 바로 경성 관장의 웃음거리가 돼버렸다. 왕 포두 같은 사람마저 주 현령한테서 들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유학의 삼강오륜(三纲五常)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허평지와 허신년을 쳐다보자, 허칠안의 머릿속에는 재밌는 장면이 그려졌다.

허신년: “아버지도 오셨네요. 오늘은 제게 양보하시지요. 아버지는 내일 다시 오시면 되잖아요.”

허평지: “썩 물러나지 못할까! 대체 누가 애비냐? 내가 먼저다!”

허칠안: “다 물러나시지요. 제가 접수하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허칠안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교방사 일은 미뤄두고,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의 방식대로 정보를 캐냅시다. 교방사에 꼭 가야 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 부향이라 불리는 기생으로부터 도움이 되는 소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일이니까요. 모레 다시 모여서 정보를 공유해보고, 수확이 따로 없으면 교방사 가는 일을 다시 고려해봅시다.”

허칠안의 말에 안심이라도 한 듯, 허평지와 허신년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허칠안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희생해야겠다. 내일 밤, 교방사에 가는 걸로.’

* * *

다음 날 점심, 허칠안은 휴가를 내고 허부로 돌아왔다.

시끌벅적하던 허부에는 적막이 흘렀다.

여종과 나이든 하녀들 절반이 운록서원으로 갔으니, 남은 사람이라고는 문지기 노장과 하인 몇 명밖에 없었다. 허평지와 허신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허칠안은 익숙한 동작으로 내원에 위치한 허신년의 방으로 들어가, 궤짝을 발칵 뒤집어 옅은 남색의 유삼을 찾아냈다. 재질이 엄청 고급지고 구름무늬가 정교하게 수놓아진 유삼이었다.

허칠안은 포졸복을 벗었다. 그리고는 동생이 가장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고, 허리춤에 그럭저럭 볼 만한 옥패 하나를 골라 걸었다.

그러고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괜찮네. 다만 인상이 너무 강한 게 문제야. 서생들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좀 멀다. 만약 전생의 그 잘생긴 얼굴이었다면 이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었을 텐데.’

허칠안은 옷주름을 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을 나섰다.

* * *

대봉 경성은 궁성, 황성, 내성,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사는, 인구가 밀집된 외성에 비해, 내성은 돈 있는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시대에 내성에 산다는 건 신분과 지위가 어느 정도 있다는 의미였다. 숙모도 항상 외성의 저택을 팔고 내성으로 이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금을 삼키는 조카가 있었기에, 내성에 대한 동경은 마음속에서 삭일 수밖에 없었다.

허부에서 내성 성문까지 가려면 허칠안의 보행 속도로는 서너 시간이 걸렸다.

마차를 빌린 허칠안은, 반 시진 후에 가장 가까운 내성 성문에 도착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증서를 보여주어 순조롭게 성문을 지났다.

성문을 지키던 사졸이 마차 안을 낱낱이 살피더니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교역 물건을 반입하는 차량이 아닌 텅 빈 차량이라, 성문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 * *

내성은 거리가 넓었고, 종횡으로 교차로가 엄청 많았다. 간선도로 양옆으로는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저택이 보였고, 간선도로가 아닌 곳에는 각양각색의 정원들이 널려 있었다.

건물이든 행인들의 옷차림이든, 그리고 마차의 수량이든 모두 외성보다 훨씬 나았다.

‘기회가 되면 영월이를 데리고 와야지. 번화한 정도가 외성과는 비교할 수 없네.’

마차의 발을 올려 번화한 내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허칠안의 머릿속에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아직 이른 시간이기에, 허칠안은 교방사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대여비를 지급하고 나서 목적 없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장터에 도착했다. 고개를 젖혀 거리 패방을 보니 ‘영강가(永康街)’라고 적혀있었다.

허칠안은 이렇게 넓은 거리를 처음 보았다. 이백 미터 너비에 청석판이 깔려있었다. 마차 10대가 나란히 달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너비였다.

거리 양측으로는 가게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행인으로 북적거리는 거리는 거리가 아닌 그야말로 광장이었다.

패방 아래에 서 있던 허칠안은 눈앞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강가는 경성의 간선도로 중 하나로, 숙부한테서 엄청 넓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이렇게 넓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허칠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간선도로가 이토록 넓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황제나 종실 귀족들이 드나들 때는 시위(侍卫)들이 사전에 거리를 지켜야 했다. 이때, 이백 미터 거리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쇠뇌, 화통들의 사격 범위를 초과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설사 자객들이 양측 건물에 숨어 기습하려 해도 이 거리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허칠안은 그런 영강가를 고삐가 풀린 말처럼 마구 쏘다녔다. 호주머니의 예산에는 제한이 있었기에 그는 소비 욕구를 애써 억제했다.

그러다 호화 마차 한 대가 허칠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허칠안의 입이 순간 쩍 벌어졌다.

마차는 체구가 건장한 준마 네 필이 이끄는 중이었다. 마차는 둥근 천장을 금색으로 칠하고, 창에는 황금색 비단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위로는 먼지를 막아주는 바람막이가 있었는데, 맑고 깨끗한 백옥으로 감싸고 있었다. 바퀴 측면에는 금못이 가지런히 박힌 채였고, 바퀴통과 도르래도 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차 재질이었다. 황가 종실 전용인 금사남목(金丝楠木)이었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저 바퀴 하나 사지 못한다니…….”

허칠안은 갑자기 착잡해졌다. 전생의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호화 마차가 길옆에 멈춰서더니 검은 갑옷을 입고, 긴 창을 든 사졸들이 마차 옆에 일렬로 섰다. 더 신기한 것은 다른 일렬의 사졸들이 한 노점 앞에서 투호(*投壺: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넣는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노점 주인은 낡은 도포를 입은 늙은 도사였다. 목잠으로 묶은 새하얀 머리는 헝클어진 채 늘어졌다.

노점에는 동전, 은정(银锭), 금정(金锭), 도경, 보리(菩提) 팔찌, 옥석경(*玉石镜: 옥으로 만든 거울) 등등 별의별 것이 모두 진열되어 있었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금정과 은정을 노점에 진열해 놓았는데도 뺏기지 않는다는 것은 주인장이 만만치 않은 도사라는 걸 설명했다.

허칠안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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