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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0화 (40/712)

40화. 숙모의 심기를 건드리는 허칠안의 일상

그렇게 허칠안은 금보요 두 개를 가슴팍에 넣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가게를 나섰다.

‘진짜 무상으로 가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가게 주인께서 너무 친절하셔서 저에게 주신 거지.’

허칠안은 가게 주인의 마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만한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자에게 은자 2~30냥은 그렇게 큰 손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꼼수를 부려 이득을 보았으면, 고수를 만나 손실을 볼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어야 했다.

‘너만 타인의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은 너한테서 이득을 보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그런데 가게를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솜털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모공에 아주 얇은 침이 꽂히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수가 매우 빨라졌다.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 날 주시하고 있다. 적의가 느껴진다……’

허나 허칠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다.

‘누가 나를 미행하고 있는 거지? 보기헌? 아니다. 가게 주인의 표정을 보아서는, 나를 때리고 싶은 건 맞지만 고작 장신구 가게에서 모골이 송연할 만큼의 고수를 두었을 리 없다.

운록서원? 그것도 아닌데. 운록서원의 대유들은 다투면서까지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려 하잖아. 그런 그들이 나한테 적의를 품을 이유가 없지.

아, 주부(周府)! 이 시기에 나를 적대시하고 암암리에 감시할 대상은 주부밖에 없다. 전생의 경험으로 분석해보면, 일단 누군가가 미행을 시작했다는 건 곧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의미다. 어쩌면 오늘 밤일지도. 운록서원을 찾아갔던 게 현명한 선택이었구나. 나랑 숙부야 모두 무공이 어느 정도 된다지만 집안 여인들이 문제인데…….’

허칠안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주부에 대한 계획을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허부.

허칠안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궤짝 앞으로 직행했다. 그는 사천감 송경한테서 사실상 무상인 등가교환으로 받아온 쇠뇌를 허리에 걸고, 호심경을 가슴팍에 묶었다.

그제야 허칠안은 약간의 안정감을 얻고는, 담을 넘어 숙부네에 도착했다. 허영음이 뒤뜰에서 거위 무리를 쫓고 있었다. 허리에 두 손을 얹은 허영음이 발을 구르니 거위들이 놀라 ‘꽥꽥’ 하면서 허둥지둥 달아났다.

“큰오라버니, 큰오라버니, 저 엄청 위엄 있지 않아요?”

허영음이 득의양양해서 물었다.

“이 거위들은 어디서 온 것이냐?”

허칠안은 순간 멍해졌다.

‘오늘 아침에 허부를 떠날 때만 해도 분명 없었는데.’

“어머니가 사오라고 했어요. 집에서 키우겠다고…….”

허영음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응석받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다음은 잊어버렸어요.”

‘아마 집에서 키우면 밖에서 사는 것보다 싸서 그랬겠지.’

“알았다. 조심해. 거위들을 다 밟아 죽이지 말고. 어미 거위는 없어?”

허칠안이 물었다.

“큰 거위는 저기 있어요. 제가 가서 몰아올게요.”

허영음이 자진하더니, 짧은 다리를 움직여 꽃밭으로 들어갔다.

몇 초 후, 꽃밭에서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관목들이 격하게 흔들거리더니, 허영음이 대성통곡하면서 달려 나왔다. 발에는 큰 거위 한 마리가 딸려 나오고 있었다. 큰 거위가 허영음의 다리를 물고 놓지 않았던 것이다.

허영음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큰오라버니 구해줘요!”

수수방관하던 허칠안이 큰 소리로 웃어댔다.

* * *

황혼이 내리자 허평지가 무장 차림으로 집에 돌아왔다. 허리에는 장도와 쇠뇌를 걸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그 모습은 편한 옷차림일 때와는 판이했다.

남자 세 명이 서재에 모였다. 녹아가 따뜻한 차를 올리고 물러갔다.

허신년이 말을 꺼냈다.

“저와 형님이 오늘 서원에 다녀왔습니다. 내일 어머니와 동생들을 서원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마침 영음이도 글을 익힐 나이니 가서 서원의 선생한테서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모신 선생은 너무 별로입니다.”

‘영음이가 이 소식을 들으면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겠군.’

허평지는 이 소식에 기뻐했다. 집안 여인들이 늘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안전한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뒷걱정이 없었다.

“신년아, 다 네 덕분이구나. 너를 유도의 길에 들어서게 한 게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허신년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다 형님의 공로입니다. 저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칠안이?”

허평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조카를 바라봤다.

아들의 설명을 듣고 난 그가 못내 아쉬워하면서 말했다.

“칠안아, 숙부가 했던 일 중 가장 큰 실수가 너를 무도의 길로 인도한 것인 듯하구나.”

허평지는 이제 조카가 학자가 될 충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생에 배웠던 지식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허칠안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께 드릴 말씀 있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 누군가 저를 미행했습니다. 신년, 너는?”

부자의 얼굴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허신년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설령 누군가 저를 미행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래, 허신년은 아직 개규경의 서생일 뿐이지.’

허평지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거리면서 말했다.

“칠안아, 오늘 밤 여기서 머물러라. 우리 둘이 가까이에 있는 게 서로를 돌보기 좋을 것 같다. 나는 일단 어도위에 가서 허부 부근의 순찰 강도를 높이라고 이르고 오마.”

허신년과 허칠안이 마주 보았다. 그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 * *

식탁 앞에서 허칠안이 허영월을 향해 헛기침을 해, 집안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가 가슴팍에서 ‘보기헌’ 세 글자가 새겨진 빨간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천천히 뚜껑을 밀어 열자, 상자 안에는 금빛이 반짝거리는 보요가 놓여 있었다. 잠수(*簪首 : 비녀 맨 앞)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꽃송이에 진주가 박혀 있었고, 그리고 그 아래로 엄청 가는 금으로 만든 술들이 늘어진 채였다.

모양은 차치하고, 금의 양만으로도 집안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했다.

넋을 잃은 허영월과 숙모의 커다란 눈이 금보요에 꽂혔다.

금보요 같은 장신구는 가공 기술이 정교한 데다, 재료도 귀중한지라 줄곧 돈 있는 집안 여인들 전용이었다. 일반 여인들은 바라볼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예전에 숙모한테도 꽃을 조각한 금보요가 있었다. 숙모는 그걸 무척이나 아꼈었다.

하여튼 연인도 없는 허칠안이 아무 이유 없이 금보요를 샀을 리 없었다.

‘집안에 금보요를 꽂을 수 있는 여인이라고는 두 명밖에 없는데…….’

숙모의 아리따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눈빛도 따라서 부드러워졌다.

“네 놈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가져오너라.”

숙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칠안은 금보요를 허영월 앞에 갖다 놓았다.

“영월아, 너한테 주는 선물이다.”

허영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기헌 장신구는 이 부근에서 매우 유명했다. 가공 기술 또한 최고라, 부근에 돈 있는 집안 여인들이 열광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허영월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눈은 반달이 되었다.

반면 몸을 바르르 떨면서 씩씩거리던 숙모는 눈시울까지 붉혀가면서 숙부에게 노발대발했다.

“얼른 선택하세요. 조카예요, 나예요?”

숙모는 눈앞에 있는 고약한 녀석과 도저히 평화롭게 지낼 수 없었다.

허평지가 눈을 부릅뜨고 허칠안을 노려보더니, 급히 아내에게 반찬을 집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노여움을 푸시오. 저놈은 그냥 무시하고.”

누군가가 허칠안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허칠안이 고개를 들어 옆에 앉은 허신년을 쳐다보니, 허신년은 그저 고개를 떨어뜨리고 밥만 먹고 있었다.

숙모가 제대로 뿔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깔렸다. 말로는 달랠 수 없는 그런 울분이었다.

이에 허평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칠안아, 돈이 있어 집안에 보탰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건 왜 산 것이냐?”

허평지는 조카를 비난하는 것으로 아내의 공감을 얻어, 그녀의 분을 덜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이때 허영월이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집에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전혀 부족하지 않잖아요. 아버지 드시는 밥에 큰오라버니의 봉미도 들어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딸의 말에 말문이 막힌 허평지가 화두를 돌렸다.

“그나저나 칠안아, 돈은 어디서 난 게냐?”

‘원래 좀 모은 것도 있었고, 보기헌에서 자미를 맞혀 벌기도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장신구를 공짜로 얻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영월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이 집에서 진정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건 큰오라버니밖에 없는 듯했다. 부친과 둘째 오라버니는 여태껏 자신이 어떤 장신구를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딸도 체면이라는 게 있다고요.’

“큰오라버니, 어때요? 고와요?”

허영월이 금보요를 머리에 꽂았다. 촛불에 비친 소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아리땁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숙모는 더욱 짜증이 솟구쳤다.

허나 허칠안도 허신년과 허영월, 그리고 숙모의 아름다운 미모를 보자니 괜히 질투가 났다.

‘미모를 담당하는 천사는 이들만 편애했나?’

그러다가 숙부와 콩알이를 보자 질투심이 싹 사라졌다.

“영음아, 얼른 고기도 먹어.”

허칠안은 허영음한테는 비계 덩어리를, 허영월에게는 살코기를 주었다.

“큰오라버니는 참 좋아.”

“오라버니도 네가 가장 보기 좋아.”

“그런데 아까는 왜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요?”

갑자기 자신을 거위한테서 구하지 않고 큰 소리로 웃기만 하던 오라버니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콩알이가 슬픈 표정을 했다.

“극한의 고생을 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어. 고생해야만 천하무적이 되는 법이지.”

“그럼 고생하지 않고 천하무적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예요?”

“있지. 꿈에서!”

* * *

밥을 거의 다 먹을 즈음, 숙모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춘절(*春節: 중국의 설날)을 쇠고 나면 칠안이도 스물이지?”

“숙모께서 제 나이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허칠안이 놀라워 되물었다.

그러자 숙모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머리를 홱 돌리더니, 허평지에게 말했다.

“나리, 저 아이 혼사 치를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허영월과 허신년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들어 모친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허칠안이 오히려 가장 늦게 반응했다. 허칠안은 몇 초간 멍해 있다가, 그제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숙모가 어쩌다가 조카의 혼사에 마음을 두었대. 내일 서쪽에서 해가 뜰 건가 봐. 혼사란 엄청 큰일이잖아. 게다가 돈은 또 얼마나 많이 필요하다고.’

숙모가 허칠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녹아가 괜찮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허부에서 컸고, 또 칠안이와는 어릴 적부터 사이좋게 지냈잖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돈 일 푼도 안 들여도 된다는 거……. 역시 숙모답다.’

“네?”

녹아는 깜짝 놀라 두 볼이 순식간에 빨개지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혼인을 이렇게 갑작스레 한다고?’

녹아는 넋이 나갔다. 그녀는 쑥스러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허영월이 눈앞의 여종을 쳐다보더니 굳은 얼굴을 했다.

“어머니 혼자서 결정하지 마세요. 큰오라버니의 혼사는 큰오라버니와 아버지도 함께 의논하여 결정해야지요.”

이때 숙모가 보요를 뺏긴 원한을 담아 딸을 한바탕 혼냈다.

“칠안이와 녹아는 천생연분이야! 더군다나 서로를 잘 알고. 동생인 네가 반대할 위치는 아니지!”

마음 상한 허영월이 머리를 돌렸다.

‘아니, 서로를 잘 안다고? 거기까지는 안 갔는데…….’

허칠안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남동생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 녹아가 형님한테 시집가면 예물에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형님이 집을 나가는데도 충분한 이유가 생기니 그러시는 거죠?”

역시 허신년의 한방은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말문이 막힌 숙모가 아들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너 이 녀석, 어찌 어릴 때부터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느냐!”

이때 허평지가 입을 열었다.

“됐네. 부인은 상관하지 마시오. 칠안이는 연기경에 이르기 전까지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니.”

녹아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가 어릴 때부터 모셨던 부인 말고는, 이 집에 내가 큰공자님에게 시집가는 것에 찬성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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