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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8화 (38/712)

38화. 사상금고(思想禁锢)

“묘하구나, 묘해!”

이모백이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더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대체 이걸 누가 쓴 겁니까?”

세 사람 모두 일제히 원장 조위를 쳐다봤다. 원장은 십여 년간 정 아성을 넘어뜨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 시대 누군가 새로운 학파를 창설한다면 그건 원장일 것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원장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조위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 먼저 나가주게나. 할 말이 있으면 우리 나중에 다시 하지.”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군자는 응당 침묵을 지켜야 하느니라.”

대유 세 사람이 허리 굽혀 읍하더니 함께 자리를 떴다.

세 사람이 떠나자 전내는 다시 고요해졌다. 조위는 비석 앞에 서 있었다. 비석 뒤의 구멍 뚫린 창을 통해 햇빛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시간이 또 한참이나 흘렀다. 조위가 차림새를 정리하더니 비석을 향해 제자의 예를 갖췄다.

* * *

장공주는 긴 치맛자락을 끌고 아성학궁 밖에 도착했다. 그런데, 학궁 십장(十丈) 이내는 반구형의 기낭(*氣囊: 공기로 형성된 한 층의 막으로써 공기막 내, 외부를 단절시키는 작용을 함)으로 뒤덮여 외부와 단절된 채였다.

그러나 장공주는 태연한 기색으로 학궁 밖의 계단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 모습은 마치 활짝 핀 꽃 한 송이를 방불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유 세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낭 밖으로 나왔다. 셋 다 놀란 기색이었지만, 감정의 좋고 나쁨은 판단할 수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장공주의 시선이 학궁을 향했다.

“공주, 부디 묻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진태가 읍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이 일은, 저희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장공주가 웃음을 지었다. 귀티가 흐르는 장공주의 얼굴은 여전히 평안해 보였다.

* * *

대유 세 사람과 작별한 장공주는, 홀로 아각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산바람에 치마끈이 흩날렸다. 걸어가는 그 모습은 산속에 숨어있는 정령, 인간 세상에 놀러 내려온 선녀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2열로 선 예기를 갖춘 병사들은, 여전히 조각상마냥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아각 밖을 지키고 있었다.

이 24명의 금오위(金吾卫)는 장공주의 호위대였다. 산 아래에서는 야경꾼 7명이 더 대기하고 있었다.

서원에서는 위연을 싫어했기에, 야경꾼이 산에 오르는 것을 금했다.

장공주는 호위대를 거느리고 하산하여, 관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야경꾼에게 하명했다.

“운록서원에 청기가 충천하여 아성학궁이 봉금(*封禁: 출입이나 접촉을 금하는 것)되었다. 이 일을 위 공께 알려 서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청기 충천의 원인을 조사해 오너라.”

“예!”

야경꾼들이 읍하면서 장공주의 하명에 응했다.

장공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람 하나를 조사해 보거라. 장락현아의 쾌수, 허칠안이다.”

“네! 분부 받잡겠습니다.”

* * *

관성루, 팔괘대.

백의를 입은 노인이 술잔을 들고 저 멀리 서북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람에 그의 백발과 흰 수염이 흩날렸다. 그는 사천감 감정이었다.

좌측에는 탁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탁자 맞은편에는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 흠잡을 데 없는 오관에 사랑스럽기까지 한 채미가 앉아있었다.

입에다 음식을 마구 집어넣던 채미가 재잘거렸다.

“스승님, 전 언제 육품 연금술사가 될 수 있어요?”

감정이 웃으면서 답했다.

“네가 식탐을 버리고 수련에만 몰입할 그때.”

그 말에 채미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 평생 어렵겠네요.”

채미는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계속하여 재잘거렸다.

“스승님, 정제해낸 가짜 은자는 쉽게 연소될 뿐만 아니라 물을 만나면 바로 폭발해서, 보관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폐하께 보고 드리기 어렵습니다.”

감정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황제가 밥 먹고 할 일이 없어 보이는구나. 그냥 찌그러져 있으라 하거라.”

채미가 혀를 날름날름하더니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까. 스승님께서 직접 말씀드리세요.”

감정은 그저 자애롭게 웃어 보일 뿐이라, 채미는 말을 이었다.

“스승님, 송 사형을 좀 말려주세요. 주화입마(走火入魔) 직전입니다. 무슨 금술오의(*金术奥义: 연금술의 깊은 뜻)의 문이 자신을 향해 열렸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일없이 자꾸 밖으로 쏘다녀요.”

“…….”

“제가 생각하기에 허칠안 그놈, 괜찮은 거 같아요. 우리 사천감에서 제자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요? 맞다. 스승님은 그자를 모르지. 그 세은 사건의 진상을 밝힌 사람 있잖아요…….”

“…….”

“스승님, 그런데 접목이 뭔지 아시나요?”

감정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채미야.”

“네, 말씀하세요.”

“음식으로도 네 그 입을 막지 못하겠느냐.”

“네!”

“…….”

“스승님, 어딜 보고 계시는 거예요?”

“채미야, 이 스승이 아쉬움이 하나 있단다.”

“뭔데요?”

“내가 어째서 유가의 금언술(禁言术)을 모르는 것 같으냐?”

그 말을 들은 채미가 저도 모르게 킥킥 웃자, 탁자 위에 놓였던 음식들이 곧장 썩어들어가더니, 이내 썩어 코를 찌르는 쉰내가 났다.

이를 본 채미가 울먹거리면서 스승님께 애원했다.

“스승님, 잘못했습니다. 얼른 음식들을 돌려주세요!”

이에 서북쪽을 주시하던 감정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 스승이 하나 가르쳐주마. 연금술의 대부분은 역방향으로 전환할 수 없단다.”

그 말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 건지, 채미는 그저 자리를 뜨고는 울먹거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다시는 얄미운 저 노인네와 벗하지 않을 거야.”

* * *

대나무숲 옆 아각.

원장 조위가 엄숙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곳 삼십 장(약 99m)이내로 접근을 금지하라!”

조위가 말하는 동시에 소매를 휘두르니, 청기가 부풀어 올라 아각을 중심으로 삼십 장(약 99m) 이내를 감쌌다.

조위는 몸을 돌려 세 명의 대유와 마주섰다.

찻잔을 들고 있던 이모백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에게 물어봤는데, 당시 아성학궁 부근에는 서원 학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들어갔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문의 필적을 보아서는 우리 서원의 학생이 아닙니다. 우리 서원에 저렇게 볼품없이 글씨를 쓰는 학생이 있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모백은 그 말을 하자마자 마음이 바로 켕겼다.

‘만약 서원의 학생이 아니라면…… 오늘 서원에 온 ‘그 제자’ 말고 또 누가 있냔 말이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던 장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반박에 나섰다.

“필적은 위장할 수 있지. 추한 글씨체도 마찬가지고.”

이때 진태가 물음을 던졌다.

“그럼 필적을 위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석이 그곳에 세워진 지도 십여 년이 됐는데, 서원 서생 모두 시도해봤잖은가. 모두 영웅이 되기를 원하는데, 필적을 위장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당시, 허신년과 허칠안이 마침 산에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세 사람 모두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모백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위천지입심, 위생민입명, 위왕성계절학, 위만세개태평……(*为天地立心 为生民立命 为往圣继绝学 为万世开太平: 천하를 위해 마음을 정하고, 백성을 위해 사명을 정하며, 성인을 위해 학문을 이어가고, 만세를 위해 태평 국면을 여느니라). 부끄럽네. 최근 들어 관직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버렸지. 그저 어떻게 역사에 내 이름 석 자를 남길 것인가에만 혈안이었건만.”

“역시 순정(纯靖)이구먼!”

장진이 엄지를 내들며 칭찬을 아끼지 않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럼 권학시는, 내가 가르친 것으로 하는 게 어떤가?”

그러자 이모백이 단박에 말을 바꿨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과,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는 건 모순되지 않지.”

이를 지켜보던 조위가 의아한 눈길로 이모백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자네, 곧 입명경에 들어서게 되는 건가?”

“!!!”

이 말에 진태와 장진이 움찔했다.

수염을 쓰다듬던 이모백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 일순간의 깨달음으로 마음이 확 트였습니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대유 두 명은 배가 아파왔다.

두 대유가 보기에도 이모백의 숨결에는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삼품 입명경은 인생 목표를 찾는 품계였다. 누군가는 자신의 벼슬길을 위해, 또 누군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사람마다 자신만의 도(道)가 따로 있었다.

원장 조위의 도는, 유학(儒學)을 위해 새로운 학파를 창설하여 천만인의 서생들이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이루지지 못하는 한 그는 이품경에 이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이모백에게 인생 목표를 묻는 이는 없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모백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테니까.

이때 장진과 진태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오늘부로 아성학궁에 틀어박혀 도를 닦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부로 아성학궁은 출입 금지네.”

조위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 있는 대유 세 명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 일은 외부에 절대 비밀일세. 이에 대해 자네 셋, 모두 맹세하게나.”

대유 세 사람이 눈빛을 서로 교환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위가 단전에 기를 모으고 혀에 힘을 주었다.

“군자란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야 마땅하리.”

* * *

말 두 필이 나는 듯 달리고 있었다. 허칠안과 허신년은 경성에 거의 접어들자 달리는 속도를 줄였다.

그들이 빌린 말은 일반 말보다는 나았지만, 체력이 부족해 장시간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대신 대여 비용이 쌌다.

말이 달리다 죽으면 은자 십여 냥을 보상해야 했는데, 형제 둘은 돈 관리에 무척 철저했으므로 그런 일을 애초에 만들지도 않을 것이었다.

허신년이 탁한 한숨을 뱉더니, 자신이 품었던 의혹을 허칠안에게 물었다.

“형님, 설명 좀 해보시지요.”

방금 전 허칠안이 비문을 쓴 것에 대해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보라는 말이었다.

“나더러 뭘 설명하라는 거냐?”

허칠안이 되물었다.

“형님은 어린 시절 글을 배운 게 다인데, 어찌 그리 놀라운 문구를 쓸 수 있었습니까?”

허신년이 또 그 오만한 턱을 치켜세웠다.

“그건 저 같은 서생들만이 써낼 수 있는 글이잖아요.”

‘이놈 봐라. 그래도 내가 9년 의무교육에 경찰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인데! 게다가 명색이 인터넷 검색 전문가라 어떤 분야든 조금씩은 안다고……. 지식의 비축량을 따진다면 너희와 같이, 소위 학문을 닦았다고 하는 이들보다 훨씬 많단 말이다, 인마!’

허칠안은 이런 말들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결국 에둘러서 표현했다.

“신년이 너도 오늘날의 유가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잖아. 하지만 내가 네게 학문을 닦은 자가 응당 해야 할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넌 여전히 오늘 이 시대에 맞는 표준답안을 줬지.”

이 말에 허신년은 깊은 사색에 빠졌다.

“이걸 사고의 국한성이라고 하는 거다. 소위 학문을 닦은 자들이 사상의 영향을 장기간 받다 보면 나중에는 그저 그 사상을 곧이곧대로 담아내는 그릇이 돼버리지. 설령 그 사상의 폐단을 발견하더라도 거기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허칠안이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를 사상금고(思想禁锢)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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