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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3화 (33/712)

33화. 허평지의 죄업

“훌륭한 시로군. 칠안, 자네는 그야말로 천재 시인이네.”

이모백이 손바닥을 힘껏 마주쳤다.

서생으로서 훌륭한 시를 만난 기쁨도 있겠지만, 이 시를 읽고 난 학생들의 반응도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소박한 문장이지만 내포된 함의가 매우 깊구나. 삼경등화오경계, 정시남아독서시…… 장진, 우리도 젊은 시절 학문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기억날는지 모르겠군.”

진태는 시를 되새기면서 그 속에 숨겨진 깊은 뜻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로 우리 그때를 그린 시네. 어린 시절 나도 집안이 가난해 매일 겨우 찐빵 두 개로 요기했었지. 그래서 한밤중만 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던가? 허기를 애써 이겨내면서 공부했었는데.”

장진은 그렇게 말을 하며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자신이 손수 가르친 학생이 큰 업을 이루는 것을 지켜보는 스승의 표정과 같았다.

이때 이모백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자네가 3일에 한 번 내 달걀을 도둑질한 이윤가?”

장진이 불쾌한 어조로 반박에 나섰다.

“그걸 어찌 도둑질에 비하겠는가? 빌린 거지. 후에 다 갚지 않았는가.”

그러자 이모백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화난 어투로 말했다.

“가난할 때 달걀 하나면 오늘날의 천금 만 냥이 아닌가?”

“큼큼.”

진태가 헛기침으로 두 사람의 논쟁을 중단시키고 허신년을 보며 말을 꺼냈다.

“신년, 춘시가 끝나면, 순위가 어떠하든 넌 출사 자격이 있는데, 미래를 생각해본 적은 있느냐?”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가는 진태의 발언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장진과 이모백도 이내 허신년의 앞길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진태는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경성에 남아 있다가 부임하는 게 관장에서 진급하는 일반 과정이다. 내가 비록 관직에 있지는 않지만 널 경성에 남게 할 수는 있을 것이야.”

이 말을 들은 장진은, 허신년의 스승으로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구나. 신년아. 얼른 진 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지.”

“인사는 됐고, 정 보답하고자 한다면 노부한테 좋은 제안이 있긴 한데…….”

진태가 미소를 머금더니 말을 꺼냈다.

이에 장진과 이모백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보답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태가 눈이 반달 되어서는 말을 이었다.

“칠안, 넌 아직 원석이라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려면 더 다듬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노인네는 엄청 거칠거든. 너, 이 노부의 문하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느냐?”

“저리 가라! 이 염치없는 노인네야.”

이모백과 장진이 벌컥 화를 냈다.

이때, 허칠안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선생, 두 분께 저 칠안, 가르침 받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연정경에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습니다. 공훈도 없고 집이 가난하다 보니 여태 연기경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칠안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면서 읍하더니 말을 이었다.

“선생, 저를 위해 천문을 열어주십시오.”

이건 그가 서원을 찾은 두 번째 목적이었다. 물론 송경이 선물한 법기를 팔아 천문을 열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공짜로 얻는 기쁨을 잃게 된다.

장진이 실소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우리는 너한테 천문을 열어줄 수가 없다. 유학의 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어찌 너를 위해 천문을 열어주겠느냐? 무부의 기가 체내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도, 경맥을 어떻게 경과하는지도 모르는데. 이건 너 같이 무도(武道)를 수련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야.”

‘체제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가 보군…….’

허칠안은 다소 실망하긴 했으나 계속하여 물어보았다.

“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만, 천문을 여는 데 연신경 이상의 고수가 도와야 한다면, 맨 처음 무도 창시자는 천문을 어떻게 연 겁니까?”

“넌 무도가 한 사람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생각하느냐? 단번에 완성된 거라고?”

이모백이 찻잔을 들어올려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반문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개척해낸 거지.”

이모백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맨 처음에는 어쩌면 연정경이 전봉(*巅峰: 최고봉)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우연히 천문을 열어 연기경에 이르자, 연기경이 무도의 전봉(*巅峰: 최고봉)이 되었겠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완전한 무도체계가 완성된 것이고.”

“우연하게?”

허칠안은 이모백의 말에서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다.

“연신경 고수가 천문을 열어주는 게 가장 안전하면서도 편리한 방법이긴 하다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이번에는 진태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을 이었다.

“갓난아기는 태어날 때, 선천적인 진기(真气)를 갖고 태어난다. 나이가 들어 천문이 닫히면, 선천적인 진기도 체내에 숨겨지지. 체내에 숨겨진 진기를 사용하려면 닫힌 천문을 다시 열어야 하고 말이야.”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람이 오곡 잡곡을 먹다 보니 불순물이 생겨 천문이 막혔고, 따라서 기의 운행도 멈췄더라는 이론을 들은 적 있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문을 여는 방법 이외에도 두 가지 방법이 더 있는데, 첫 번째는 토납법(吐纳法)이지. 토납법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 매일 약욕으로 경맥을 씻어 천문을 여는 방법인데, 십여 년이면 어마어마한 금전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들 않지.

두 번째 방법은 외부의 힘을 빌려 천문을 여는 건데, 바로 최초 선조들이 채택했던 어리석은 방법이지. 예를 들어 요단(*妖丹: 요괴의 내단)을 먹는다든지. 요단은 요족도행(妖族道行)의 정수가 응집되어 어마어마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요단을 먹기만 하면 내재되어 있던 힘이 방출되면서 기경팔맥(*奇经八脉: 한의학에서 정경에 대비되는 경맥을 이르는 말)이 강제로 관통되기도 한다. 하지만 통제가 불가하다 보니 이 방법은 죽을 위험을 수반하지.”

‘그렇군. 공짜로 천문을 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무상으로 큰 비밀을 알아냈어. 수확은 있다.’

허칠안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겸손한 것 좀 보게. 예의도 바르고, 말도 어찌나 예쁘게 하는지.’

대유 세 명은 허칠안이 점점 더 마음에 들어갔다.

* * *

서원 중앙에는 성인학궁(圣人学宫)이 있었다. 성인묘(圣人庙)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는, 유도를 창설한 유가에 있어서 고금의 일인자인 성인을 모셨다.

성인학궁 밖에는 청석판을 깐 평지가 있었는데, 이 평지는 운록서원의 모든 학생들이 자리할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었다.

서원 원장은 춘, 추시를 볼 즈음, 이곳에 서원 학생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는데, 대략 공명을 취해 한평생 나랏일에 몸과 마음을 다해 이바지하라고 격려하는 내용이었다.

평지에는 색이 바래 알록달록해진 빨간색 담벼락이 있었는데, 벽면에는 여러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이는 운록서원의 공고란이었다. 벽면에는 서원 선생들의 의론문이나, 시, 서화를 붙였다. 이따금 학생들의 작품도 보일 때가 있었다.

그 외에는 서원의 공고를 붙였다.

시동 두 명이 공고란 앞에 오더니 한 사람이 두루마리를 들고, 한 사람은 공고란 벽면에 쌀풀을 발랐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사람 키 높이에 달하는 대형 종이를 공고란 벽에 붙였다.

그러자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사람 키 높이에 달하는 대형 종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었다.

“뭐지? 가보자.”

“오? 의론문은 아닌 거 같고, 시 같은데……. 뭐 볼 게 있겠어?”

“자양거사 양공께서 떠나고 난 이후부터는, 서원의 선생들과 대유들이 지은 시는 보나마나야.”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학생들이 담벼락 아래에 모여 시가 적힌 종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종이에 쓰인 필적은 용비봉무(*龙飞凤舞: 용과 봉황처럼 웅장하고 분방한 기세를 가짐)의 기세를 자랑했다. 획마다 힘이 느껴졌고, 한 획에서 다른 한 획으로 넘어가는 필적에는 맹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장 선생의 필적이야.”

한 학생이 필적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더 많은 학생들은 필적보다도 종이 위에 쓰인 시에 관심을 보였다.

“삼경등화오경계, 정시남아독서지라니. 부끄럽군. 추시(*秋試: 가을에 보는 시험으로, 향시를 말함)가 끝나고 나서 다시는 등을 켜고 책을 본 적이 없는데.”

“얼핏 보면 엄청 소박하고 일반적인 서술인 것 같은데, 이면에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어 반성하게 만드는군.”

“어디를 봐서 소박하고 일반적이야? 극히 중요한 이치를 단순화한 표현이잖아. 서생으로서의 인생 가치가 이 몇 마디에 다 함축되어 있다니! 놀랍구먼!”

“백수방회독서지……. 나 너무 해이해졌어. 바둑을 두고, 노니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학업은 뒷전이었다고. 이 시를 보니 나중에 후회할 내 모습이 떠오르는군.”

“이 시는 어느 분의 작품이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담벼락 아래를 비집고 들어와 벽에 붙여진 시를 쳐다보았다. 과연 권학시는 엄청나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학생들은 시의 첫 번째 문장을 읽고 손에 땀이 났다. 설령 학업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그 누가 삼경등화오경계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이건 허위적인 묘사가 아니었다. 실제 사례가 존재했다. 서원 대유와 선생들은, 늘 자신의 이야기로 학생들을 훈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학생들 가운데서도 밤을 새가면서 학업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의 가슴이 조여들었던 건 시의 두 번째 문장을 읽은 후였다. 흑발불지근학조, 백수방회독서지(*黑发不知勤学早, 白首方悔读书迟: 소년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선고하는 듯했다. 드디어 최근 들어 학업을 게을리했던 젊은이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조바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내심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학업에 열을 올려야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 * *

평지의 가장자리에서는 대유 셋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태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 감탄했다.

“다들 시사가 무용지물이라 하지만, 진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시사가 최고지. 허칠안, 정녕 작시(作詩)의 기재일세.”

권학시가 학생들의 학구열을 불타오르게 만들자, 장진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맞는 말이네.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이렇게 훌륭한 시를 지어내다니. 오늘날은 물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자는 몇 되지 않을 걸세.”

이때 이모백이 갑자기 생뚱맞은 물음을 던졌다.

“칠안이 학업에 손을 뗀 지 오래되었다고 했는데, 자네들은 그걸 믿나?”

그러자 대유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백이 큰 소리로 웃더니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시를 신년더러 대신 쓰라고 했잖은가.”

장진이 이어 말했다.

“누가 시를 짓고 굳이 대필을 시키겠는가? 그런 경우는 서법에 능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학자치고 서법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서법은 학자의 기본 중 기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모백이 한탄했다.

“아쉽군. 올해는 칠안이 만 20세가 되는 해라 유도로 길을 바꾸는 것 또한 너무 늦었으니 말이네.”

진태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재능 있는 친구가 무도를 수련하다니, 포진천물(*暴殄天物 : 하늘이 낸 만물을 함부로 다 써 버린다)이 따로 없군.”

장진이 뭔가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

“신년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이 아직 어렸을 때, 신년의 부친이 신년은 유도를, 칠안은 무도를 선택하게 했다 하더군.”

“다 허평지의 죄업이야. 이렇게 학문에 재능이 있는 친구를 망가뜨리다니. 실로 가증스럽군!”

이모백이 원한 서린 어조로 한마디 뱉었다.

이에 찬성을 표하듯, 두 대유도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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