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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0화 (30/712)

30화. 말썽꾸러기

허신년이 피식하더니 입을 열었다.

“부친께선 그럼, 어도위 백호 신분으로 당당하게 호부시랑을 조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권종을 열람할 수나 있고요?”

이 말에 허평지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허칠안이 피식 웃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물론 불가능하지.”

‘숙부, 총알받이가 돼줘서 고맙습니다.’

지력으로 사촌 형을 누르지 못한 허신년이, 불만스런 기색으로 캐물었다.

“그럼 형님 생각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허칠안이 손끝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호랑이를 몰아넣어 승냥이를 삼키는 거지. 주 시랑에 맞서는 주력은 우리가 아니야. 우리는 그저, 승냥이의 남은 마지막 숨통을 끊으면 돼.”

허칠안은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괜찮구먼.’

허신년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허칠안의 말을 이었다.

“한발 물러서는 거죠. 우리는 주 시랑에 맞설 필요가 없습니다. 정삼품 관원의 수완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약점은 누구나 있는 법입니다.”

‘아하! 그래, 약점!’

갑자기 허칠안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가 싶더니, 그가 박수를 치면서 흥분조로 외쳤다.

“주립!”

“네, 맞습니다. 주립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을 주 시랑에 비하면 대처하기 훨씬 더 쉽죠. 죄명이 탄핵에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가 그 죄명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주현평의 정적에게 비수를 넘겨, 그들이 우리를 도와 주현평의 목을 긋게 하는 겁니다.”

별같이 빛나던 허신년의 눈동자에 잔인함이 스쳤다.

“경찰이 눈앞이니, 주 시랑의 공자가 천인공노(天人共怒)의 일을 저지른다면 부친인 주현평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황상께서도 그를 한 번 봐주지 두 번은 봐주지 않을 거고요.”

말을 하던 허신년이 갑자기 눈썹을 찌푸렸다.

“이렇게 접근하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죄를 뒤집어씌우는 방법이 먹힐까요?”

자기 아들과 조카가 제각기 한마디씩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평지는, 가장인 자신이 이번 밀담의 언저리로 밀려나 한마디도 끼지 못하는 걸 문득 발견했다.

하지만 아들의 점진적인 분석을 듣던 허평지는 가능성을 본 건지, 갑자기 탁자를 내리치면서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신년이에게 수보(*首輔: 재상과 비슷한 신하로서의 최고 지위)자질이 보이는구나.”

‘그럼 당신 조카는 수보(*首輔: 재상과 비슷한 신하로서의 최고 지위)의 자질이 안 보이고?’

허칠안이 숙부를 흘기더니 입을 열었다.

“신년아, 그래서 서생이 입으로만 나랏일을 논하다 나라를 망친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너도 별수 없는 서생이구나.”

허신년은 허칠안의 견해에 반대하는 듯 입을 삐죽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형님이 가르쳐 주시지요.”

이에 허칠안은 당황한 기색 없이 응했다.

“기성 방안은 내놓지 못하지만, 한 가지 사고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어.”

허신년이 다급히 물었다.

“뭡니까?”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

허칠안은 스스로가 자신 있는 부분부터 접근했다.

“우선 현장을 수사하고, 거기에서 단서를 수집한 후 과감하게 추리를 시작하지. 그 다음 추리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거야. 그러면 사건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게 돼 있어.”

밖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촛불이 너울거리면서 허평지의 얼굴을 비췄다. 그 표정은 그야말로 ‘머엉!’ 그 자체였다.

허신년은 눈썹을 찌푸린 채, 깊은 사색에 빠져있었다.

허칠안이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우선 고민해야 할 건 주립을 어떻게 꾀냐, 이게 아니야. 우선 주립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는 거지. 계획을 세운 다음에도 섣불리 행동하는 게 아니라, 먼저 계획이 이뤄지는 과정을 조심스레 유추해보고 성공할 확률을 따져보아야 해.”

허신년은 분명하고 빈틈없이 치밀한 허칠안의 전략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내심 형님의 제안에 공감했다.

‘우리 칠안이 이렇게 지혜롭고 믿음직스런 아이였구나…….’

허평지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황소고집에 한사코 원칙만 따지던 조카가 나중에 큰 손해를 볼까 염려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견이 없자,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신년, 넌 거인에 급제했으니 사림 학자들에게 접촉해 관장(官場)에 관한 정보를 알아봐. 크고 작고를 불문하고 주립에 관한 거면 낱낱이 긁어모아줘.

그리고 숙부, 주부(周府)가 내성에 위치해 있거니와 평일에 내, 외성의 야간 순찰은 어도위 담당이니 주부의 움직임은 숙부가 살펴주세요. 물론 직접 따라붙지 말고, 믿을만한 심복을 시키세요. 주립이 평일에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는지 모조리 알아내야 합니다.”

부자(父子)가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뭔가 떠올랐는지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넌?”

“그럼 형님은요?”

허칠안이 수상한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난 허부를 위해 퇴로를 모색하려고요. 신년, 구체적인 절차를 논의할 겸, 오늘 네 방에서 묵을게. 너한테서 몇 가지 알아볼 것도 있고.”

* * *

그렇게 잠시 후.

똑, 똑, 똑…….

조용한 방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형님, 주무십니까?”

“아니, 아직.”

“네.”

……또 그렇게 잠시 후.

“형님, 주무십니까?”

“아니, 아직.”

“네.”

한참 이따, 허신년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팔뚝 좀 치워주십시오.”

“그래.”

방안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던 허칠안이 말을 꺼냈다.

“잠이 안 오지?”

“네, 좀 불편해서요.”

허신년이 말했다.

“나도 그래…….”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우리 얼마 만에 한 침상에서 잠이 드는 거냐?”

허신년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10살 이후로 처음인 거 같습니다. 형님이 무공을 수련하느라 해마다 100냥에 가까운 은자를 쓰면서부터 어머니와의 관계가 나빠졌고, 따라서 우리 사이도 점점 멀어졌죠.”

‘우리 한 번도 한 침상에서 잠든 적 없는데요, 라고 말할 줄만 알았는데…….’

머릿속에선, 몸 주인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숙모 탓만은 아니지. 어도위란 뒷돈 챙길 구멍 하나 없어 숙부가 아무리 애를 써봤자 일 년 녹봉이 이백여 냥밖에 안 되는데, 절반을 나한테 써야 했으니 숙모도 오죽했겠어.”

이때 허신년이 화제를 돌렸다.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허씨 가문은 정말 망하는 길밖에 남지 않습니다.”

주 시랑을 넘어뜨리지 못한다면, 경찰이 끝나는 순간, 허부에는 재난이 들이닥칠 터였다.

“내가 퇴로를 마련해놓을게. 정 안 되면 경찰이 지나 우리 모두 경성을 떠나면 되지. 나와 숙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 가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순 있을 거야.

우리는 그렇다 치고, 네가 아깝지. 십여 년의 노력 끝에 이제 막 거인에 급제했는데.”

허칠안은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공명과 관위야 금방 사라지는 안개 같은 거 아닙니까. 저 그래도 성인의 경전을 읽고 성인의 도를 수련한 서생입니다. 그까짓 공명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허칠안이 공감하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천하가 나 허신년을 용납지 못하니, 오늘부로 대봉에 긴 밤이 내리리라.”

그 순간, 조금이나마 복구되었던 형제애가 다시 와르르 무너졌다. 허신년은 씩씩거리더니, 이불을 몽땅 끌어가서는 잠든 척 꼼짝달싹을 하지 않았다.

“신년아, 이불 좀 나눠주지. 형님이 아무리 연정경이더라도 엄동설한의 추위는 견디기 어려워.”

허신년은 몸을 움츠리면서 이불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 * *

허영월의 규방.

어젯밤 활활 타오르던 숯불이 꺼지고, 방 안은 이산화탄소로 꽉 차 갑갑했다.

조금 열어놓은 창 틈새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탁한 공기를 그나마 맑게 했다.

백자(白瓷)같이 희고 깨끗한 얼굴에 빽빽이 들어선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곧 눈이 뜨였다. 허영월은 눈을 떠서 몇 초간 멍해 있더니 바로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지라 일으켜 앉힌 몸은 여전히 나른했다. 밤새 굳어있던 몸을 움직이려 기지개를 켜자, 두꺼운 솜이불이 윗몸에서 흘러내렸다. 얇은 재질의 흰색 내의가 소녀의 작은 몸집을 감싸고 있었다.

내의 위로 드러난 목선은 매우 희고 늘씬했다. 부스스한 머리는 조각처럼 아리따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이때, 허영월이 길쭉한 손가락을 모아 앵두같이 작은 입을 막으며 하품했다.

맞은편에서 자고 있던 여종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뜨더니,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방이 너무 갑갑하구나. 얼른 가서 창을 열거라.”

양미간을 꾹꾹 누르던 허영월이 여종에게 분부했다.

그러자 여종이 바로 달려가 창을 열었다.

이어 솜이불을 젖힌 허영월이 일어나 창 옆으로 걸어가더니, 밖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무장(武将) 가문에서 태어난 허영월은 결코 허약한 체질이 아니었다. 허평지가 허칠안을 데리고 무공을 연마할 당시, 종종 허신년과 허영월도 데리고 단련했다.

그 덕분에 허신년과 허영월 모두 신체가 무척이나 튼튼했다.

나이가 좀 든 이후로는 숙모가 한사코 말렸던 터라, 더 이상 단련하지는 못했다. 그때 허평지가 조카는 무도(武道)를, 아들은 유도(儒道) 걷도록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유생이 무공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게으름을 피운다는 의미였다.

딸은 당연히 더 말렸다. 이 시대에 근육이 불뚝불뚝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자 할 남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

창 옆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던 허영월의 시야에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들어왔다. 까만색 바탕에 소맷부리와 옷깃을 빨간색으로 두른 포졸복을 입은 남성이었다.

두 남녀는 그렇게 창을 사이에 두고 몇 초간 눈을 마주쳤다.

허칠안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허영월은 갑자기 꽥 비명을 지르더니, ‘쾅!’ 하고 창을 닫아버렸다.

“우리 동생 이제 다 컸네!”

허칠안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내 손으로 키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지켜봤으니까……. 저 애도 정말 콩알만 했었는데. 옷을 다 걸쳤으면서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잖아.’

* * *

규방 안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허영월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여종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소저, 봐봐요. 습관을 좀 고치셔야 한다니까요. 잘 꾸미고 나서 창을 열어야지요. 집안의 큰공자님이니 망정이지 바깥사람이 보면 어쩌시려고요?”

“계속 잔소리할 거야?”

허영월은 민망한 나머지 화를 냈다.

평일에 허신년은 이쪽으로 다니지 않았다. 부모님의 방도 이쪽엔 없는지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을 여는 것이 허영월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큰오라버니가 왜 내원에 있는 거지?’

거울 앞에 앉은 허영월은 무척 의아해했다.

허영월의 등 뒤에서 치장을 돕던 여종이 장신구함을 뒤적이더니 투덜투덜거렸다.

“소저한테는 예쁜 장신구 하나 없네요.”

허영월은 아무런 말 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집안에는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고, 가산은 점점 바닥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인을 포함해 17~18명이 되는 사람이 먹고 입어야 하니 지출이 또 어마어마했다.

‘어디에 은자가 남아돌아 장신구를 마련하겠어.’

“보기헌(宝器轩)의 장신구들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어제 들어가 봤는데 발을 떼기가 싫더라고요. 소저의 머리에 꽂으면 엄청, 엄청…… 예쁠 거 같은데.”

허영월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눈빛에 갈망을 드러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여종은 계속하여 중얼중얼했다.

“그런데 너무 비싸요. 비녀 하나에 은자 10냥이나 해요. 그런데 가게 안에 걸어놓은 자미(*字谜: 글자 수수께끼)를 맞히면 가게 주인이 좀 싸게 준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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