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서재 논의
허칠안은 콩알이의 손을 잡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저녁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호화로웠다.
우연인지 일부러인지, 아환과 나이든 하녀들이 제일 맛있는 반찬을 허칠안 앞에 놓았다. 허칠안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숙모에게로 돌아갔다. 어두운 무늬의 치마를 입은 숙모의 얼굴은 여전히 고왔다. 촉촉한 눈빛에 속눈썹이 빽빽이 들어선 숙모의 얼굴은, 부인 특유의 품위를 풍겼다. 마치 활짝 핀 해당화 같았다.
그녀는 오늘 허칠안이 겪은 일 정도는 하찮다는 듯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허락 없이 나이든 하녀들이 어찌 감히 허씨 집안의 큰공자님에게 이런 대접을 하겠는가?
깨작깨작 밥을 먹던 허영월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어머니께서 가족들의 겨울옷을 만들고 있어요. 조금 이따 제가 오라버니의 치수를 잴게요. 제가 손수 오라버니한테 겨울옷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허영월은 연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치마에 번다한 구름무늬가 그려진 피백(披帛)을 걸치고 있었다. 이토록 화려한 옷차림에, 열여섯 소녀의 고운 얼굴이 더 두드러지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천진난만함을 물씬 풍겼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허영월은, 오라버니가 아무 말 없는 것을 보자 빨개진 얼굴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이 시대의 동생이 좋아. 오라버니를 위해 손수 옷까지 지어주다니. 전생의 사촌 동생은 맨날 웃는 것밖에 몰랐는데!’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응답했다.
“알겠어. 고마워.”
시선을 거둔 허칠안이 입을 다시 열었다.
“숙부, 밥 먹고 나서 서재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년이도 함께.”
* * *
서재.
녹아가 차를 올리고 물러갔다.
허칠안은 찻물로 목을 적시며 다시 한번 조미료가 없는 음식에 대해 감탄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오늘 오후 발생한 일에 대해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서, 숙부와 사촌 동생의 의견을 물었다.
‘그 일은 이미 지나간 거 아니야?’
눈썹을 찌푸리던 허신년이 입을 열었다,
“형님은 주 공자가 복수를 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겁니까?”
호부시랑의 자제로서, 일개 서리한테 놀아났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때 허평지가 손사래를 치더니 말을 꺼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평소라면 모를까, 오늘은 운록서원의 대유도 있었고 사천감의 백의들도 나섰잖아. 내 생각에 그놈은 다시 파장을 일으키지 못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순리에 어긋나지는 않았다.
관리의 자제들이 백성을 괴롭히는 건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들도 관장이나 큰 세력 앞에서는 엄청 신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것이 있는지라 경성의 물이 깊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른들도 자주 경고를 해줬을 테지.’
이에 머리를 절레절레하던 허신년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형님이 이렇게 말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허신년이 허칠안을 쳐다봤다.
허칠안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오늘 사천감에서 들은 소식인데, 세은 사건의 배후가 바로 주 시랑이라 합니다.”
‘세은 사건의 배후가 주 시랑이라고?
허평지가 주먹을 내리치자, 찻상이 산산조각이 났다. 분노를 못 이겨 몸을 일으킨 허평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으나,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허신년은 무능하게 광노하는 부친을 보다가 엄숙해진 얼굴로 물었다.
“믿을 만한 소식입니까?”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세은 사건의 수사를 맡은 책임자한테서 들었어.”
허칠안이 저채미의 말을 다시 한번 그대로 전해주었다.
허신년이 들었던 찻잔을 되레 놓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발생한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니겠네요. 주립의 보복행위였던 거군요.”
‘그럼 그렇지. 역시 거인에 급제한 녀석이군. 머리가 잘 돌아가.’
이에 허칠안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오늘 이 담화에서 수확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만약 허평지만 있었다면, 절대로 오늘의 밀담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궁지에 몰리면 그저 한마디밖에 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 나랑 같이 가서 놈들의 목을 베자.’하고.
어쩔 수 없었다. 무식하고 힘만 센 무부니까. 목을 베는 거야 자기 전문이지만 계략을 꾸미는 일은, 그와 추호의 상관도 없었다.
‘분야가 다를 뿐이지.’
허칠안이 시험관처럼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허신년이 허칠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허칠안의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먼저 손을 써야지요. 나중에 손을 쓰면 제대로 한 방 먹는 건데.”
‘오호?’
허칠안은 놀랐다. 허신년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허평지는 가장이 되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들을 훈육하기 시작했다.
“무지하고 경망스러운 생각은 집어치워라. 너 따위 거인, 아니, 장원이라 하더라도 호부시랑의 상대는 아니야.”
말이 끝나자마자, 허칠안이 바로 반박에 나섰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신년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건드린 건 주립이 아니라 호부시랑 주현평입니다. 주립이 더 이상 복수를 못한다 하더라도 호부시랑이 가만히 앉아만 있을까요? 그가 한 몫 제대로 챙기려던 계획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적자(嫡子)에게까지 부상을 입혔으니, 이를 참을 리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주 시랑에게 있어, 허부는 밟으면 바로 죽는 개미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를 방치할 이유가 더더욱 없지요.”
허평지는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안 돼. 우리는 시랑의 상대가 못 돼. 너와 사천감 백의들과의 관계, 그리고 신년이와 운록서원의 관계가 있으면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건드리지 못할 거다.”
‘정말 그럴까요?’
허칠안이 말을 보탰다.
“숙부께서 모르는 게 있는데, 사천감의 백의들은 조정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허신년이 말을 받았다.
“세은 사건이 발생할 당시, 제가 운록서원의 학생이 아니었습니까? 오늘 형님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주립이 막무가내의 저속한 수단으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 시랑이 나선다면 또 한 번의 세은 사건으로 허씨 집안을 멸망으로 몰지 못한다는 법이 없잖습니까? 이때, 사천감과 운록서원이 우리를 위해 나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를 위해 대봉의 법률과 맞설 수 있을까요?”
가장의 위엄이 서지 않자, 허평지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정삼품인 호부시랑과 맞선단 말이냐?”
‘저도 몰라요. 저는 그저 순진한 환생자일 뿐인데…….’
허칠안은 준수한 동생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침묵을 지키던 허신년은 허평지의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에야 입을 열었다.
“방금 전, 한 가지 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세은이 절취당했던 당시, 폐하께서는 분명 진노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당연히 범인을 엄벌해야 맞습니다.”
“졸개 놈들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잖아.”
허평지가 답했다.
허신년이 부친을 힐끗 보더니,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 호부시랑의 뒤에 더 큰 배후가 있다. 아니면 둘째, 황상께서 다소 우려하시는 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어떠한 균형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겠지요. 형님이 말했던 것과 같이 호부 급사중이 주 시랑을 국고 재물 탐오죄로 탄핵했지만, 다른 한 시랑과 호부상서는 왜 탄핵하지 않았을까요?”
허칠안이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주 시랑의 정적이 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에 머리를 끄덕이던 허신년이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왕술의 핵심은 영원히 균형이라고. 폐하께서 주 시랑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 일이 당쟁과 관련되었음을 설명합니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이냐?”
허평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물음이 흘러나왔다.
허칠안이 턱을 만지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코앞이 경찰이니, 주 시랑의 약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를 넘어뜨릴 수 있을 겁니다. 경찰은 대대로 내려온 제도라 황상도 자기 뜻대로만 고집할 수 없을 겁니다. 유가 도룡술의 핵심이 예제(*礼制: 국가의 예법)가 아닙니까. 그러니 주 시랑의 정적도 이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무식하고 힘만 센 형의 입에서 도룡술 세 글자가 튀어나오다니. 이게 쾌수가 맞아?’
한편,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그냥 사극을 많이 봐서 그래.’
물론, 역사에 관해 많이 배운 것도 있었다.
역사서는 인류 문화의 정수이기에 깊이 연구하다 보면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역사서를 가장 쓸모없는 서적이라고도 떠들어댔다. 인류가 역사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은, 인류가 역사에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역사서를 읽기 좋아했던 허칠안은 이 말에 코웃음을 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에도 일정한 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고? 그가 공부하던 시절, 부모님이 매일 같이 했던 말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였으니 말이다.
공부하던 시절에는 누가 이 말을 귀담아 듣겠는가?
‘좌절을 겪고 나서, 사회의 매질을 당하고 나서야 불현듯 깨닫게 되는 거지.’
전생에 허칠안의 사촌 동생은 공부하기를 싫어했다. 사업이 쫄딱 망하고 나서, 허칠안은 어느 날 갑자기 사촌 동생에게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했다.
‘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저도 모르게 나간 말임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랐던 경험이었다.
허신년이 턱을 들더니 시험관과 비슷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형님이 보기에는 어떡해야 마땅합니까?”
‘너 이 녀석 아직도 인정이 어렵구나. 여주인공이 이런 오만한 성격이었다면 사랑을 받지 못했을 거야. 나는 개인적으로 애교 많은 누나를 더 선호해.’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비아냥거리면서도, 겉으로는 느긋하게 말을 꺼냈다.
“주 시랑이 왜 세은 사건을 꾸몄을까? 탐오가 목적이 아니었을 거야. 탐오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지. 왜 하필 경찰이 눈앞인데 이때 일을 벌였겠어? 급하게 은자가 필요하지 않고서야 말이 안되지! 그 돈으로 구멍을 메우려는 목적이었을 거다. 그것도 경찰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
허칠안은 자신의 논리적인 추리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말했다.
“그래서?”
허신년이 입을 삐쭉거리더니 계속 캐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시랑이 세은을 갈취하려던 진짜 원인을 밝혀야하는 거라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 주 시랑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도록 죄를 인정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려고 입을 연 순간, 허칠안은 웃을 듯 말 듯한 허신년의 눈을 발견했다. 그래서 입을 다시 닫았다.
“나 알았어!”
돌연 허평지가 허벅지를 치더니,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 주씨 그놈이 더 이상 어디에도 숨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거다!”
허평지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잘 돌아간 것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나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구나!
허평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