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화학 수업을 받다
연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빈둥거리는 관리 2세라고 다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는 관리 자제들이 자주 사용하는 시비를 걸었고, 관계를 이용해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내는 수단을 아주 잘 이용했다…….
‘그러면서 나를 황천길에 오르게 하려는 계획이었던 거다.’
일을 성사시키더라도 뒤처리는 깔끔할 수 있었다.
‘아무리 경찰이 눈앞이라 하더라도 서리 한 명을 죽여서야 정삼품인 호부시랑에게 영향이나 미치겠냐 이거야. 주씨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내가 사천감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운록서원의 대유까지 내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겠지…….’
허칠안은 갑자기 자신이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세은 사건의 진상을 분석해낸 그날부터 호부시랑의 눈 밖에 났던 거지. 그런 줄도 모르고 황권을 멀리하고 그저 수많은 첩을 거느린 부자가 되어 무미건조하고 소박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했다니.
만약 신년이가 마침 시를 서원 장자(长者)께 드리지 않았다면, 만약 며칠 전에 기억을 더듬어 화학 지식을 적어놓지 않았다면……. 난 이미 황천길에 올랐을 거다! 심지어 자신이 무슨 이유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막무가내인 관리 2세를 건드린 줄만 알았을 거야.”
‘잇따른 우연의 일치가 나를 위기에서 구했다……. 운이었다!’
허칠안은 숨을 몇 번 크게 들이쉬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저채미에게 물었다.
“채미 소저, 망기(望气)가 가능하시지요?”
“응.”
저채미가 입에 있던 음식을 삼키더니 말했다.
“팔품 술사를 망기사라고도 하지. 망기술은 우리 술사의 가장 기본 능력이야. 그 뒤로 여러 가지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데, 모두 이에 기반을 두지.”
저채미는 자신의 수련체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엄청 많은 듯했다.
“그런데, 너 술사의 구품이 왜 망기사가 아니고 의사인지 알아?”
허칠안은 머리를 절레절레하면서 장단을 맞춰 주었다.
“술사라면 모두 사람을 살리려는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저채미가 갑자기 허리를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선생이 되어 사람을 가르치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세상 만물에는 모두 기수(气数)가 있어. 그 가운데, 사람이 가장 많지. 인생팔고(人生八苦), 칠정육욕(七情六欲) 모두가 기수(气数)지. 의사가 목숨을 구하고 상처를 치료하다 보면 생로병사를 자주 겪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기수를 보아내는 맑은 눈동자가 생겨.”
‘이렇게 끊임없이 재잘재잘할 수 있는 여인은 나한테는 딱인데…….’
허칠안은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내 기수(气数)를 봐줄 수 있습니까?”
손수건으로 입 주위를 닦던 저채미가, 시선을 집중해 허칠안을 관찰했다. 맑고 까만 눈동자가 밝은 빛을 뿜어내더니, 그 빛이 점차 동공을 덮었다.
밝은 빛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두 눈이 허칠안을 응시하면서, 그의 영각(灵觉)을 건드렸다. 허칠안은 오싹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저채미의 눈에서 밝은 빛이 사라지더니, 이내 얼굴빛이 돌아왔다.
“기수(气数)를 보면, 담홍색에 흑색이 섞여있어.”
“무슨 뜻입니까?”
“빨간색은 관직에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색채가 옅은 편이라 관직 말단의 서리를 의미해. 그리고 까만색은 액운을 의미하는데, 이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 거라 믿어.”
눈썹을 찌푸리던 허칠안이 넌지시 떠보았다.
“다른 색은 없습니까? 예를 들어 천자가 될 운명의 색이라든지.”
“그 말은 내 앞에서나 농담이지, 따로 꿍꿍이를 품은 자들에게 들리면 불경죄로 낙인찍힐 거다. 황제 말고, 자신이 천자의 운명이라고 떠드는 사람이 이 어디 있어.”
허칠안의 말에 저채미는 내심 놀란 바였다.
‘불경죄는 차치하더라도 이 사람은 무슨 배짱으로 자신이 천자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다시 한번 보라고! 저채미가 보아내지 못하는 건, 품계가 너무 낮아서일 거야. 아니면 나의 운이 따르는 체질이 기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든가…….’
한편, 허칠안은 비록 태연자약한 척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복잡한 생각들을 떠올려댔다.
팍!
저채미는 또 한 번 음식을 쥐려는 허칠안의 손을 내리쳤다. 입은 여전히 미어터지려는 상태였다. 그녀가 불쾌한 듯 한마디 던졌다.
“내가 배부른 다음에 먹어. 배부르면 나눠줄게.”
허칠안이 탁자를 다시 내려다 봤을 때에는, 음식이 절반 정도 사라진 상태였다.
“맞다. 호부시랑은 어떻게 됐습니까?”
허칠안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더 이상 음식에 곁눈질하지 않고 물었다.
“호부 급사중이 얼마 전에 주 시랑에 관해 탄핵을 상주(上奏)했는데, 폐하께서 처리하시지 않았어.”
저채미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그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
‘그래서 증거가 없다고? 이 시대 황제가 누굴 죽이려고 맘먹으면 증거 따윈 따로 필요 없잖아……. 당파 싸움에 말렸을지도……. 혹은 황제에게 다른 생각이 있든지……. 음, 조당의 일은 잘 모르니까.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관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알아봐야겠네…….’
허칠안은 이를 저채미에게서 알아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조당 일엔 흥미가 쥐뿔도 없는 저채미한테서는, 쓸 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너 정말 짜증나. 우리 사천감은 조당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허칠안의 물음이 거슬렸던 저채미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선생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이를 눈치챈 허칠안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음식들은 대체 얼마나 주고 사온 겁니까?”
한참 후, 드디어 배가 부른 저채미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한참을 계산하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나 주셨습니까?”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가게 주인한테 은자 네 냥을 주고, 한 냥 삼 전 60닢을 받았어.”
저채미가 귀찮다는 듯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나 도대체 얼마를 쓴 거야?”
양미간을 찌푸린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하지만 허칠안은 마치 일곱 살 여자애한테 수학을 가르치는 느낌이었다.
“…….”
허칠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도 모르겠는걸요.”
은자 한 냥에 팔 전, 한 전에 동전 백 닢이다. 10:1의 비례가 아니어서 계산 난도가 높아졌다.
보아하니 저채미는 글만 배웠지, 연산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은 것 같았다.
이를 알아본 허칠안은, 이 대목에서 잘난 척하지 않기로 했다.
허칠안의 답을 듣자, 찌푸리고 있던 저채미의 양미간이 펴졌다. 동류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럼 사건 해결 당시에는, 왜 그렇게 계산을 잘한 거야?”
“그때에도 엄청 오래 계산했어요.”
“그렇군.”
저채미가 허칠안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먹는 모습이 왜 기뻐 보이지가 않지?”
“그건 아니고, 그냥 맛이 보통인 거 같아서요.”
“허튼 소리. 취심구(醉心居)에서 사온 건데, 남성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야.”
“더 맛있는 걸 먹어봤거든요.”
저채미의 눈에 바로 생기가 돌았다.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시간 나면 우리 집에 와요. 제가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 * *
연단실.
백의들이 실험기기 앞에 모여 송경이 조작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계란 껍질 두께만 한 사기그릇을 촛불 위에 놓은 뒤, 불을 쬐이고 있었다.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사기그릇에 담겼던 물이 거의 증발할 즈음, 결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경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니,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결정을 감쌌다. 결정이 녹기 시작했다.
“전생에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피우는 재주가 있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여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허칠안은 이 순간 술사들이 살짝 부러웠다.
염화나트륨 결정이 용화되자 송경의 안색이 한층 무거워졌다. 바로 다음 단계를 넘어가지 못해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뇌격!
송경은 저도 모르게 옆에 서 있는 허칠안을 쳐다봤다.
뿐만 아니라, 저채미와 기타 백의들도 허칠안을 쳐다봤다.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 말이 없는 거 보면 내가 실행한 이전의 모든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건데…….’
송경은 그제야 마음을 잡고 딱 소리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미미한 전호(電弧)가 공간을 긋고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사기그릇에 주입됐다.
“숨을 죽입시다.”
‘사실 유독 가스를 흡입하더라도 너희 같은 비인류는 아무 일이 없을 테지만…….’
허칠안은 그저 사고적인 관성으로, 사람들에게 숨을 죽이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때 사천감 백의들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사기그릇에 불규칙적인 은백색의 덩어리들이 형성되었다. 은자와 똑같았다. 덩어리 주변에는 아직 전화하지 못한 부드러운 소금들이 널려있었다.
“성, 성공이야…….”
“송경 사형, 어떻게 한 거야?”
눈앞에 나타난 은백색의 물체에, 백의들은 넋이 나갔다. 어떻게 해도 실패를 거듭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성공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그날 저채미가 가짜 은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운이었어……. 아니, 저채미의 운이 아니라 그 옆에 있었던 내 운이었겠지…….’
허칠안은 묵묵히 정제해낸 가짜 은자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의 의혹을 풀었다.
송경은 가짜 은자와 흥분에 겨운 사제들을 번갈아 보더니, 망연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제 과정에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예전에도 이와 똑같은 절차로 진행했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허칠안을 바라봤다. 하지만 허칠안의 얼굴에서는 놀란 기색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눈빛이 무거워진 듯했다. 마치 성공을 예상한 표정이었다.
“허칠안, 자네 원인을 아나?”
송경이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허칠안에게 물었다.
사색에 빠졌던 저채미도 허칠안을 쳐다봤다.
기타 백의들도 두 사람을 따라서 허칠안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허칠안이 뒷짐을 지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문제는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셔야죠. 성숙한 연금술사라면, 독립적으로 사고할 줄 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결정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는 이미 깨달은 것 같은데요.”
‘결정적인 문제?’
송경은 대뇌를 고속으로 회전했다. 그는 이전에 거듭했던 수많은 실패와 이번 성공을 결부하여 과정을 분석했다.
이전 절차에서 바뀐 거라고는 마지막 절차, 뇌격밖에 없었다.
‘그럼 이번 뇌격과 이전 뇌격의 차이는 무엇인가?’
몇 갈래의 미미한 신호가 송경의 마음을 긋고 지나갔다. 이윽고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움찔하더니 감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어. 허칠안, 자네 정말 놀라운 연금술 천재로구먼. 우리가 실패를 거듭했던 과정을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자네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지. 자네는 우리가 실패한 원인을 이미 알고 있었어.”
‘아니, 난 몰랐어. 너무 앞서가지 말고…….’
허칠안은 웃음을 애써 참았다.
“결정적인 문제가 뭡니까? 송 사형, 뭘 아셨다는 겁니까?”
“송 사형, 제발 에두르지 말고 얼른 말해줘요. 이 연금술로 인해 너무 괴로웠어요.”
백의 연금술사들이 다급히 캐물었다.
송경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사제들을 둘러보면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뇌격의 강도야.”
송경은 말하고 나서 검증을 구하는 눈빛으로 허칠안을 바라봤다.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마디 보탰다.
“저는 이를, 전압이라 명명했습니다.”
금속 나트륨의 정제 전압은 6-15볼트 사이로 제어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