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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3화 (23/712)

23화. 사람을 풀어주다

절거덩! 절거덩!

족쇄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허칠안이 형부 심문실로 끌려왔다.

주 공자는 짙은 남색포로 갈아입은 채였다. 두툼해 보였지만 보기 싫지는 않았다.

주 공자는 기세등등하게 한쪽 발을 의자에 올리고 있었다. 허칠안이 발로 밟아 찢어진 귀는 흰색 면포로 감쌌다.

옷깃과 소맷부리 모두 금색으로 두른 장색포를 입은 마른 노인이 주 공자의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쳐다봤다.

형구(刑具) 옆에 서 있던 옥졸 두 명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 공자가 손을 휘두르자, 옥졸 한 명이 가슴에서 종잇장 한 장을 꺼내 허칠안의 앞에 던졌다.

“지금 네 앞에 놓인 건 두 갈래 길뿐이다.”

주 공자가 허칠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죄를 인정하고 화압(*畫押: 수결을 쓰다)하느냐, 아니면 여기에 배열해 놓은 형구를 하나하나 맛보고 나서 죄를 인정하고 화압(*畫押: 수결을 쓰다)하느냐다. 스스로 선택하거라!”

허칠안이 자백서를 한 번 훑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장락현아 쾌수 허칠안이 거리에서 주 공자와 시비가 붙자 살심이 생겨, 수 년 간 수련해온 무공으로 주립에게 중상을 입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졸들이 도착하여 허칠안을 붙잡았다…….”

‘거리에서 살인하려 했다. 그것도 호부시랑의 공자를. 여기에 화압(畫押)하면 가장 가벼운 벌이 유배다. 주 공자가 손을 좀 쓰면 야채 시장에서의 참수도 가능해진다……. 이건 날 죽이겠다는 소리잖아!’

허칠안이 시선을 거두고 주 공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서명을 하고 화압(畫押)하면 육체적인 고통은 면할 수 있습니까?”

주 공자가 피식 웃더니 희롱하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 내가 네게 준 선택지는 먼저 화압(畫押)하고 형벌을 받느냐, 아니면 먼저 벌을 받고 화압하느냐였다!”

옥졸들이 크게 웃었고, 허칠안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허칠안이 이러면 이럴수록 주 공자는 희열을 느낄 터였다. 그는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즐겼다.

“쯧, 쯧, 쯧 무서워, 너무 무서워!”

주립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진숙, 족쇄 튼튼하죠? 만일 이놈이 사람을 죽이려고 들면 어떻게 한담?”

“걱정 마세요. 보잘것없는 놈입니다. 제가 손 한 번 쓰면 당장 즉사할 놈이지요.”

“그러면 안심이 되는군요.”

주립이 몸을 일으켜 형구 앞으로 걸어가며 느긋하게 말했다.

“여기 스물네 가지 형구가 있다. 형구마다 극도의 고통을 느낄 거야. 다만 목숨줄은 끊지 않아.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데는 엄청 좋은 도구들이지. 나는 널 죽이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널 보내겠주느냐? 들어본 바에 의하면, 야경꾼 대옥에는 백여덟 종의 형구가 있다는구나.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은 살아서 나오지 못하고. 아쉽군. 네가 그걸 누리지 못한다는 게! 쯧쯧 너무 아쉬워!”

허칠안의 눈은 어느새 형구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못이 가득 박힌 의자, 여기저기에 쇳녹 자국인 쇠바늘, 오랜 시간 피에 물들어져 암홍색으로 변한 쇠톱 등등 잔인함과 끔찍함이 서린 형구들이 있었다.

허칠안의 얼굴빛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시간을 어림짐작해도 이맘때면 사천감의 채미가 왕 포두의 통지를 받고 와야 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야? 나를 구하지 않으려는 건가? 아니, 그럴 수 없어! 어떻게 연구해서 쓴 책인데. 연금술사라면 그 책을 보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 지옥이어야 하는 것을, 왜 아직도 날 구하러 오지 않냐고……. 조금만 더 늦으면 살아남는다고 해도 사람 구실을 못하는 폐인이 될 판인데……. 이렇게 많은 형구를 일일이 사용하면…….’

허칠안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공포를 느끼는 게 당연했다.

주 공자는 말을 할 때마다 허칠안의 안색을 관찰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쥐처럼 잡아 놓고 골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듣자 하니 네 숙부 허평지가 널 키웠다며? 그럼 숙부와의 관계가 엄청 돈독하겠구나. 음……. 그러면 이 일을 너와 네 숙부가 공모한 거라 해도 억울하지는 않겠다. 그렇지?”

‘내 뒷조사를 했다……?’

허칠안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섰다.

“이건……. 주 공자, 이건 자백서에 쓰지 않았는데요.”

아역 한 명이 난감한 표정으로 주 공자에게 말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을 봤나. 다시 쓰면 되잖아.”

다른 한 옥졸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럼 뭘 더 기다리느냐. 여기서 바로 써. 이놈 앞에서 쓰란 말이야!”

주 공자는 광인마냥 웃어댔다.

오싹한 웃음소리가 심문실에 울려 퍼지는데, 불현듯 잠겼던 철문이 열렸다. 옥졸 한 명이 청포 입은 관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청포를 입은 관원은 들어와서 주위를 한 번 훑더니, 허칠안의 옷에 핏자국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자를 데리고 나가거라.”

‘끝내, 끝내 왔다…….’

허칠안은 자신의 숨통을 누르던 멍에를 벗은 듯 후련함을 느꼈다.

“대인, 우리가 지금 죄인을 심문하고 있는데.”

주 공자가 오품 관원을 상징하는 청포에서 시선을 옮겨, 관원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에 청포 입은 관원이 괴상야릇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여기는 형부지, 호부가 아닙니다. 주 공자께서 범인을 심문하려면 호부에 가서 심문하셔야 합니다. 호부에도 범인을 심문할 권한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부하들에게 호통쳤다.

“이런 미친놈들! 내 말이 안 들리더냐. 얼른 사람을 데리고 나가지 못할까?!”

“잠깐!”

주 공자가 옥졸을 멈춰 세우고, 청포 입은 관원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 자가 거리에서 날 죽이려 했다고. 내가 피해자란 말이다!”

“대인, 쓸데없이 참견 마시지요.”

상대방은 정오품 관원으로서, 주 공자의 부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인물이었으나 어쨌든 형부 관원이기에 호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였다.

때문에 주 공자도 대놓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그는 단지 상대방이 시랑의 공자에게 밉보이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뿐이었다.

관장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일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청포 입은 관원의 얼굴에서 추호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 공자, 그 말들은 나가서 상서 대인께 하시지요.”

주 공자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진숙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손 상서와 나리께서는 친분이 있으신데…….”

그 말인즉슨, 뜻밖의 일이 발생하지 않고서는 손 상서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다 된 밥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주 공자는, 큰 문제만 아니면 허칠안을 바로 잡아 와서 고문해 죽여 버릴 기세로 뒤따라갔다.

* * *

형부 대옥을 나서자 햇빛이 쨍쨍했다. 허칠안은 눈이 부셔서 실눈을 떴다.

그는 청포 관원을 따라 형부로 온 참이었다. 형부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각기 다른 색채의 관포를 입은 형부 관원들, 열 명의 백의를 입은 젊은이들, 마차 두 대와 죽은 말 두 필, 그리고 남다른 기운을 풍기는 유삼을 입은 노인 두 명이 서 있었다.

주 공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순간 넋이 나갔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게?’

족쇄의 절커덩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허칠안이 가던 길을 멈춰서더니 뒤돌아서 주 공자를 보면서 말했다.

“내게 형을 가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자기소개를 다시 한번 해주지. 나 허칠안, 감정이 새로 받은 제자다.”

노인의 안색이 변했다.

주 공자도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저놈이 감정의 제자일 리가 없어.’

하지만 백의들이 형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이 광경에 주 공자와 노인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허칠안이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면서 백의들을 훑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채미가 없었다.

‘왕 포두가 연금술 비적을 가져다 주었지만 채미가 없다니……. 그런데 사천감 연금술사들이 책 내용을 보고 나를 구하러 왔다? 아니면 채미가 급한 일로 몸을 뺄 수 없어 동문들한테 나를 구해달라고 부탁한 건가?’

허칠안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족쇄의 절커덩 소리와 함께 여러 백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러 사형들을 처음 뵙겠습니다.”

‘사형?’

어안이 벙벙해진 송경이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책은 네가 쓴 거냐?”

선의의 눈길은 아니었다.

“여기서 나눌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형부를 떠난 다음, 사형이 묻는 물음에 숨김없이 전부 답하겠습니다.”

허칠안이 사천감 백의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주 공자는 그만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않기 위해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손 상서 옆에 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 대인, 사천감 백의들은…….”

손 상서가 주 공자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저기 저 자를 풀어달라 얘기하기 위해 온 것이네.”

주 공자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 옆에 있던 노인의 호흡도 가빠졌다.

‘저 자가 정말 감정의 제자란 말인가?! 그럴 수가 없어. 만약 감정의 제자였다면 허씨 집안이 세은 사건에 연루되었을 리가 없잖아. 그래, 세은 사건!’

그런데, 노인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세은 사건 이후, 감정이 제자로 받았다면?

그가 세은 사건의 비밀을 캐낸 건 사실이었다. 스승도 없이 가짜 은자를 스스로 정제해내는 연금술 천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감정이 이례적으로 제자를 삼았을 수도 있었다.

이때 노인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대유와 괴이한 자세로 죽은 말을 발견했다.

노인이 침을 삼키더니 말을 꺼냈다.

“상서 대인, 저 두 분은…….”

“저 분들도 같은 목적일세.”

손 상서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얼굴이 굳은 주 공자가 노인을 쳐다봤다.

* * *

“자네가 허칠안인가?”

이 소리에 머리를 돌린 허칠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회포(灰袍)를 입고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신년의 스승이네.”

옆에 서 있던 남포(蓝袍)를 입은 노인이 말했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 허칠안을 아래위로 훑었다.

“모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불식군! 자네가 쓴 건가?”

“네, 보잘것없는 시로 두 분의 귀를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칠안이 덧붙였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자’를 소개하는 것은 기본 예의였다. 이 시대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걸 꺼리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자’를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과 교제하기 싫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남포 입은 노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우선 형부를 나가지.”

저 편에 있던 송경이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했다.

옥졸이 앞으로 걸어오더니 허칠안의 족쇄와 가쇄를 풀어주었다.

“그럽시다!”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천감 백의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백의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모백과 장진도 이곳에 오래 머물기는 싫었다. 이제 그들 두 사람에게는 격렬한 제자 쟁탈전만 남아있었다.

“휴!”

형부를 떠나는 허칠안의 뒷모습을 보는 주 공자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후련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이 움텄기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허칠안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사천감 백의들과 대유 두 명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습니다.”

허칠안이 공수하더니, 몸을 돌려 주 공자를 향해 걸어갔다. 옥졸 옆을 지날 때는 날쌔게 나무 가쇄를 빼앗기까지 했다.

“너, 너 뭘 하려고?”

놀란 주 공자가 연달아 후퇴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호부시랑의 자제다! 네가 감히 나를 건드려? 형부에서 감히 나한테 손을 대려고? 손 대인, 손 상서, 얼른 이놈을 잡아요……! 진숙, 살려줘…….”

퍽!

허칠안은 가쇄를 올려, 힘을 다해 주립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나무가 산산조각이 났다.

주 공자가 흰자위를 번득이더니, 선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새빨간 피가 머리에서 주르르 흘러나왔다.

허칠안이 굳은 표정으로 노인을 보면서 말했다.

“어디 한 번 손을 써 날 죽여 보지 그래?”

형부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내 사형들과 형부 대인들 앞에서, 그리고 대유 두 분 앞에서! 보잘 것 없다던 날 죽여보라고. 얼른!”

노인은 그만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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