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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2화 (22/712)

22화. 덕행

“신년아, 칠안의 생사가 너에게 달렸다.”

“아버지, 우선 조급해하지 마세요.”

허신년의 머리에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말을 돌려 마차를 멈춰 세우고 큰 소리를 말했다.

“스승님, 모백 선생, 부탁이 있습니다.”

드리워졌던 발이 열리고, 장진과 이모백이 머리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더냐?”

“제 형님이 곤경에 빠졌습니다. 스승님, 이모백 선생, 부디 우리 형님을 구해주십시오.”

허신년은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그대로를 두 분께 알렸다.

장진이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 ‘모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불식군’을 써낸 재자(才子) 말이더냐?”

그의 목소리는, 엄청 중대한 일을 대하듯 엄숙하고 진지했다.

“네, 바로 그 형님입니다!”

허신년이 머리를 끄덕였다.

장진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마차 안에 있던 이모백이 그의 말을 끊었다.

“신년, 네 형의 일은 내게 맡겨라. 너는 네 스승님과 함께 우선 서원으로 돌아가 있으려무나.”

“흥!”

장진은 못마땅해 했다.

“타인은 개입할 필요 없어. 내 학생의 일은 내가 해결한다.”

선생들이 자기 아들을 이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걸 보던 허평지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스승님, 모백 선생, 형님이 형부로 이송됐다고 합니다. 얼른 가야지 아니면 변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허신년이 말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만큼은 말다툼을 좀 삼갑시다.’

* * *

이모백이 손을 한 번 흔들자, 마차를 몰던 마부가 바람에 실려 가볍게 길옆에 내려졌다.

고삐를 친히 잡은 이모백이 느릿느릿 말했다.

“이건 천리마야.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지.”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차를 끌고 가던 적색의 말이 흥분하더니, 힘줄들이 갈래갈래 부풀어 올라 몸체가 팽창하여 순식간에 보통 말의 두 배 크기로 변하는 것이었다.

휙!

눈 깜짝할 사이에 이모백은 마차를 몰고 저 멀리에서 달리고 있었다.

못마땅해진 장진이 마부에게 명했다.

“너도 내려가거라.”

마부를 길옆에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은 장진이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몸체가 크고 건장한 이 말은, 천리마일 뿐만 아니라 다리가 여섯 개야.”

그러자 방금 전과 같은 이변이 일어났다. 검정색 말도 방금 전의 말과 같은 종류였다. 말의 몸체가 팽창하고, 근육이 얼키설키 일어났다.

다른 점이라면 이 말은 복부의 살이 벌어져 골격이 생기더니 거기에 신경이 엉켰고, 그러더니 다리 두 개가 더 생겨났다는 점이었다.

육굽(六蹄) 흑마는 나는 듯이 달렸다. 늦게 출발했지만 금방 이모백의 마차를 따라잡았다.

“망할 노인네. 낯가죽이 두껍기도 하지. 다리가 여섯 개인 말이 어디 있어.”

이모백이 대노했다.

“내가 있다면 있는 거야.”

“그래 좋아. 그럼 내 말은 팔굽(八蹄)이야!”

“염치없는 노인네, 기어코 나에게서 제자를 빼앗겠다고? 내 마차는 종잇장처럼 가벼워서 바람을 타고 갈 수 있어!”

바람이 불어오더니 장진의 마차가 종잇장처럼 가벼워져, 바람을 따라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모백은 이에 뒤질세라 호통을 쳤다.

“내 마차는 구름을 탈 수 있다고!”

갑자기 지면에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더니, 바퀴에 찰싹 달라붙어 마차를 공중부양 시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허평지는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마차가 사라지고 나서야 침을 꿀꺽 삼기더니 입을 열었다.

“학자들의 허세도 만만치가 않구나.”

“이건 허세가 아니고 유가 오품, 덕행(德行)입니다.”

허신년이 부러운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며 주절주절했다.

과거 감정 대인이 술기운에 이들을 향해 야유한 적이 있었다.

‘유자(儒子)들은 학문으로 법을 흐리는군.’

* * *

형부 감옥.

가쇄에 묶인 허칠안은 해져서 너덜너덜해진 초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차디찬 벽에 기대있었다.

습기가 찬 썩은 공기를 맡으니 부아 감옥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형부 사건들을 뒤져보면, 경성에서 백성을 괴롭혔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었다. 다만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일들은 황제의 귀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경찰 기간인데! 정적들이 이를 빌미 삼아 자신을 무너뜨리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

“그래, 속전속결로 나를 죽이고, 가족들의 생명으로 숙부를 위협하겠지. 그럼 이 일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 거다! 내 생각이 틀렸어. 중산층의 생활이 편하기는 하지만 큰 인물을 한 번 건드렸다 하면 끝장난다.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권력과 힘을 손에 쥐어야 해.”

꽈당!

복도 끝에 있는 철문이 열렸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졸이 칼을 지닌 갑사 두 명과 함께 난간 앞에 멈춰 섰다.

“가자! 황천길에 오르기 전 밥은 먹어야지.”

옥졸이 빈정댔다.

문을 연 옥졸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호통쳤다.

“얼른 나와!”

두 명의 갑사가 칼자루에 힘을 주더니 경계태세를 취했다.

특별 제조한 가쇄와 족쇄를 채웠으나, 연정경 전봉의 상대가 최후의 발악을 한답시고 덮친다면 그들도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얌전히 따라와! 손발 힘줄이 끊어지고 나서 질질 끌려가기 싫으면.”

허칠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 * *

탁자 앞에 앉아 사무를 보는 형부 손 상서(孙尚书)의 앞에는, 권종과 문서가 산같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는 머리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저게 뭐지?’

정체불명의 그림자 두 개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윤곽이 점점 선명해지자 제대로 보인 것은, 바람을 탄 마차와, 구름을 탄 마차였다.

마차 두 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시에 형부 아문의 대원(大院)에 떨어졌다.

마차가 지면에 착륙하자마자 말 두 필이 쓰러졌다. 말들은 마치 모든 생기를 빼앗긴 듯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갔다.

형부 아문의 사졸들이 우르르 이들을 둘러쌌다.

손 상서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걸어왔다. 사각형 얼굴에 양미간을 찌푸리고 정신을 집중하니, 엄숙함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두 분께서는 우리 형부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국자감과 운록서원의 팽팽한 관계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지만, 대유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친히 찾아왔으니, 이에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진이 공수하더니 입을 먼저 열었다.

“형부에서 오늘, 허칠안이라고 부르는 제 제자를 끌고 왔습니다. 제 제자를 풀어주십시오.”

‘운록서원의 학생을 잡았어? 운록서원 노인네들은 학생을 두둔하기로 유명하거늘…….’

“법을 집행하는 형부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붙잡아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지요.”

손 상서는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평소 국자감의 억압으로 인해 운록서원은 기를 펴지 못했다. 왜냐면, 국자감은 조정에서 설립한 학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운록서원이 국자감을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조정에서 운록서원의 사람을 받지 않는데 뭘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운록서원이 만만하기만 한가? 아니었다. 유가 수련체계를 틀어쥔 운록서원은 천하 문인들의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학원 선생들은 학생들을 두둔하기로 유명했다. 때문에 운록서원의 학생들이 죄를 범하지 않은 이상, 형부에서 먼저 트집을 잡는 일은 없었다.

대유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아역 몇 명이 당황한 기색으로 달려와 큰 소리로 말했다.

“상서 대인, 밖에 사천감의 백의들이 무리를 지어 마구 들이닥쳤습니다! 저희로서는 막아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손 상서와 형부 관원들은 소리를 따라 가보았다. 백의를 휘날리는 사천감 제자들이 형부 아문 안으로 마구 들이닥치고 있었다.

앞장선 자는 가슴에 화로를 수놓은 남성이었다. 짙은 눈썹에, 오뚝한 코, 눈 주위가 일 년 사시사철 거무스름한, 사천감 감정의 네 번째 제자 송경이었다.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치는 사천감 제자들을 보던 손 상서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호통쳤다.

“이렇게 형부에 난입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법률을 어긴 걸세. 얼른 물러가게나!”

송경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읍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상서 대인, 사람을 한 명 찾으러 왔습니다.”

이 말을 듣던 손 상서가 뜨끔했다.

“누군가?”

“허칠안이라고 오늘 형부에 잡혀온 사람입니다.”

‘또 허칠안이다. 대체 어떤 배경의 사람이기에 운록서원의 대유와 사천감의 백의들이 이토록 나서는가?’

대봉에서는 그 누구도 감정에게 밉보이기 싫어했다. 유가 정통이라 자부하는 운록서원도 감정이 술김에 한 야유를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무슨 일인가? 허칠안은 또 누구고? 그런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못 들어보셨습니까? 경성을 뒤흔든 세은 사건은 들어보셨겠지요. 바로 허칠안이 그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그자는 무부(武夫)라고 했는데. 유가와 사천감과는 무슨 관계가 있나?”

“그리고 이상한 건, 형부에서 왜 그를 잡아왔단 말인가?”

둘러보던 형부 관원들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손 상서가 손짓하여 형부 관원 한 명을 불러 물었다.

“오늘 형부에서 허칠안이라 불리는 죄인을 체포했더냐?”

관원이 낮은 소리로 한마디 답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가더니 한 무더기 문서를 안고 오면서 말했다.

“상서 대인, 채포 문서에 허칠안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누가 가서 사람을 잡아왔단 말이냐?”

“하관이 알긴 아는데…….”

그가 쭈욱 한 번 무리를 훑더니, 청포 입은 자를 바라봤다.

“황 낭중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눈길이 청포 입은 자에게로 몰렸다.

황 낭중은 형부로 돌아오고 나서 차 한 모금을 마신 상태였고, 시랑 공자를 찾아 요공(要功)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 상서가 차가운 눈빛으로 황 낭중을 흘겼다.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황 낭중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인, 급하게 발생한 일이라 미처 체포 문서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무부이기도 하고, 어도위 허평지의 조카라 도망칠 위험이 있어서……. 주 공자가 수종을 통해 송서를 제출해, 어떤 놈이 거리에서 대놓고 자신을 폭행하면서 죽이겠다고 위협한다고 해서 그만……. 긴급한 상황이라 도망칠 우려가 있으니 소관, 우선 사람을 잡아놓고 다시 보고하려 했습니다.”

사천감의 백의들과 운록서원의 대유가 있는 현장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또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체포 문서를 지니지 않은 외엔 모두 규정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 형부에서 나중에 체포 문서를 보충하는 경우야 비일비재했다.

사천감 백의들이 이마를 찌푸렸다.

이모백과 장진이 서로 마주 보더니, 이내 이모백이 앞으로 걸어 나와 담담하게 읊조렸다.

“성인이 가로되, 군자는 응당 성실해야 하느니라.”

콩닥, 콩닥, 콩닥…….

황 낭중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얼굴은 화로를 뒤집어쓴 것 같이 뜨거웠다. 스스로 한 거짓말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이었다.

황 낭중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의 양심이, 자신의 비열한 행위에 격하게 반항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각에 화난 입술이 그의 의지를 벗어나 말을 토해냈다.

“주 공자가 허칠안을 죽이려 합니다! 그를 형부 감옥에서 죽여야만 분이 풀린다고 하였습니다! 전 그저 주 공자의 인심을 사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편해지겠지…….’

철퍼덕!

황 낭중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현장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열 명 정도의 형부 관원이 일제히 황 낭중을 쳐다보았다.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이, 그의 처지를 고소해하는 이,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탄식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비열한 자를 봤나! 내일 당장 탄핵해야겠어!”

형부의 급사중이 열을 올렸다.

‘저 술법은 오품 덕행경이구먼…….’

손 상서는 아무런 내색 없이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져서는 멍하니 앉아있는 황 낭중을 훑어보았다. 이윽고 그가 부하 관원에게 분부했다.

“내 말을 가서 전해라. 사람을 풀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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