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1화 (21/712)

21화. 남색 거죽 서적

관성루는, 기초만 해도 육 미터로 일반 가정집의 지붕보다도 높았다.

왕 포두는 불안한 마음으로 관성루의 일층에 들어섰다. 채광이 무척 좋은 공간이었다. 햇빛이 벽에 뚫린 공기구멍으로 들어와 수많은 빛줄기를 형성했다. 먼지가 빛줄기를 타고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왕 포두의 눈에 줄을 세워 늘어선 약품 수납장이 보였다. 백의를 입은 젊은이들이 둘러앉아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민간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의술이 뛰어난 사천감 명의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도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왕 포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이 말을 드디어 믿게 되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백의를 입은 사람이 왕 포두를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지키는 사졸이 없음에도, 사천감에 접근하는 백성은 거의 없었다. 큰 병이 걸려 죽게 된 몇몇 사람들만이 가끔 와서 운에 맡겨보는 경우가 있었다.

왕 포두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

“저, 저……. 는 장락현아의 포졸입니다.”

백의를 입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생기가 도는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을 것만 같이 예리했다. 그 눈빛에 큰 압박을 느낀 왕 포두는 허칠안을 포기하고 돌아갈 뻔했다.

“저, 저 ‘채미’라 불리는 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왕 포두가 입을 열었다.

“채미 사저(师姐)요?”

백의를 입은 사람이 다시 왕 포두를 아래위로 훑었다. 텅 빈 두 손을 본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먹을 것도 가져 오지 않고 채미 사저를 찾는다고?’

“무슨 일입니까?”

왕 포두는 가슴에 손을 넣어 남색 거죽의 서적을 꺼내들었다.

“제 친구가 이 책을 ‘채미’라 불리는 분께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한마디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허칠안이 위기에 처했으니 속히 구해달라고.”

백의를 입은 자는 책을 받아서 몇 장 넘기더니, 닭발로 그려낸 것 같은 추한 글씨에 책에 대한 흥취를 금방 잃고 입을 열었다.

“채미 사저는 나갔습니다. 기다리지 않으실 거라면, 늦은 시각에 다시 찾아오십시오. 혹은 책을 맡기시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왕 포두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도망치듯 돌아섰다.

“사형, 무슨 일입니까?”

“포졸인데, 채미 사저를 찾는대. 급한 일인가……. 이 책을 칠층에 가서 송 사형에게 전해주면서, 사형의 의견을 물어봐야겠어.”

* * *

송경(宋卿).

그는 육품 연금술사 중의 일인자로서 감정의 네 번째 제자였다. 사천감의 모든 제자는 대외에 자신이 감정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손수 가르친 제자는 여섯 명뿐이었다. 이 여섯 명을 사천감 육자라 부르기도 했다.

기타 제자에게는 모두, 이들이 스승님을 대신해 가르쳤다. 저채미는 가장 작은 제자로서 아직 출사(出师)하기 전이라 사제, 사매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종종 있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에 주목했다. 주목한다고 하더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절차1: 소금을 여과하여 염화나트륨(정제염)을 추출한다.

절차2: 소금물을 증발시켜 생긴 결정을 팔백 섭씨도의 고온으로 용화한다.

절차3: 주의할 점! 해당 절차는 세은 정제 과정의 핵심이니 성공 여부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송경의 두 눈이 빛을 발사했다. 끝내! 끝내 자신과 사제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문제를 해결하게 된 순간이 온 것이었다!

‘이건 정말 신서(神书)야.’

송경은 침을 손끝에 묻혀 서둘러 장을 넘겼다.

‘백지장? 더 없다고?!’

송경은 답답해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세 번째 절차가 대체 뭐냐고! 왜 기록하지 않았어. 대체 누가 쓴 거야? 이렇게 책을 쓰는 자는 정말 상식이 없는 사람이야. 뭔가 잊은 듯한데. 그래 맞아.’

“이 책 누가 가져왔다고 했지?”

“그건 또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못 들었어요.”

“잊었는데.”

사제들의 답을 듣자마자, 송경은 바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왕 포두를 접대했던 제자를 찾아 자세한 경과를 물었다.

말을 듣던 허신년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이건 하나의 교환이다…….’

송경이 분석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사형,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백의 사제들이 뒤따라 내려왔다.

“이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송경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도 엄숙했다. 그가 사제들의 얼굴을 한 번 훑더니 입을 열었다.

“잠깐 내 말을 들어보거라. 이건 사천감이 급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연금술사들이 전대미문의 휘황찬란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기회라고.”

* * *

면양정.

마차 두 대가 관도(官道)에서 천천히 달렸다. 방금 전 전쟁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던 두 명의 대유였다.

허신년은 서생 한 명과 함께 말을 타고 마차를 따라갔다.

“방금 전 사실대로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허신년이 후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유 두 명이 서로 욕설을 퍼붓다가 손까지 올리려는 장면을 보던 허신년은, 그만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았어야 할 말을 뱉었던 것이었다.

“스승님과 모백 선생은 후세에 길이 전해질 시 한 수를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말이 대유들의 싸움을 말릴 수는 있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 나는 말을 참 못해. 앞으로는 고쳐야겠어!”

허신년은 인생에서 n번째의 반성을 했다.

그래도 가슴에 손을 넣어 자양거사, 양공한테 받은 옥패를 만지작거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 먼 곳에서 말을 타고 질주해 오는 사람이 보였다.

잠깐 멍해졌던 허신년이 말 복부에 닿은 두 발에 힘을 주더니, 마차 앞으로 달려가 부친을 맞이했다.

“아버지,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부친의 안색을 확인한 허신년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허평지는 최대한 빠르게 일의 경과를 알려주었다.

‘주 시랑의 공자가 거리에서 동생을 희롱했고……. 말발굽으로 영음이를 죽일 뻔했다……. 그래서 형이 형부에 잡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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