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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0화 (20/712)

20화. 형부에서 체포하러 오다

‘호부시랑의 공자라…….’

허칠안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봉 황조에서 관원의 힘은, 품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배경과 권력에 의해 결정됐다.

일이품 관원은 엄청 많았으나, 권력의 최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육부상서와 시랑이 바로 그 극소수에 포함됐다.

호부시랑의 아들을 건드렸으니 일이 커질 터였다.

“작작 좀 해라, 작작! 네가 안 잡으면 내가 직접 잡는다.”

주 공자가 손을 휘두르면서 주종들에게 명을 내렸다.

“이놈을 잡아라!”

이때 주 현령이 호통치듯 소리쳤다.

“누가 감히 현아 공당에서 폭행을 가하더냐? 함부로 움직이는 자들의 목을 당장 쳐라.”

삼반 아역들이 우르르 나서더니, 움직이려 하는 수종들의 목에 박도를 뽑아 들이댔다.

백역들도 몽둥이를 들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네가 감히 내 사람들을 건드려?”

주 공자가 주 현령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건 오해입니다. 조정의 관원으로서, 원칙에 따라 처리할 뿐입니다.”

여전히 아첨의 웃음을 잃지 않은 주 현령이, 얼굴에 튄 침을 손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여기, 송서가 한 부 있습니다. 공자가 말발굽으로 폭행을 가하고 양가 여인을 희롱했다는 내용의 송서입니다. 고소인은 허영월입니다.”

주 현령이 미리 준비해놓은 수단이었다. 상대방이 일반 관원의 자제일 경우 사사로이 해결을 보려 했던 것이다.

다만 상대방이 호부시랑의 공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뿐이었다.

“허!”

주 공자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말발굽으로 폭행해? 누구 몸 상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양가 여인을 희롱해? 네가 직접 거리에 가서 물어보거라. 내가 이 여인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댔나!”

“그럼 이 여인이 사람을 잘못 봤나 봅니다.”

주 현령이 웃는 얼굴로 송서를 바로 옷소매에 넣었다.

‘이런. 망했다. 정 안되면 튈 수밖에 없다……. 안 돼. 그러면 이숙의 집안에 화가 미칠 거야.’

허칠안은 조급해졌다. 이 시대에서는 관리 2세만이, 관리 2세와 대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상대방 사이의 격차는 너무 컸다.

허칠안이 아니라 어도위 백호인 이숙이더라도, 호부시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후회하냐고?

‘아니!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그냥 놔두란 말인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 주 공자의 수종 한 명이 현아를 떠났다. 주 현령은 이를 막지 않았다.

이를 보던 허칠안은 실망했다. 그러더니 왕 포두 옆에 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장, 어째 일이 해결될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침묵하던 왕 포두가 낮은 소리로 응했다.

“말해 보거라.”

한 달 동안 왕 포두와 허칠안은 부쩍 친해졌다. 매일같이 기루를 찾아 술을 마셔대더니, 사이가 엄청 돈독해진 것이었다.

“우선 은자 한 냥을 빌려주십시오.”

왕 포두가 가슴에 손을 넣어 뒤적뒤적하더니, 쇄은자 하나를 꺼냈다. 한 냥이 안 되었다.

허칠안이 은자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더니 말했다.

“대장, 말을 타고 빠르게 우리 집에 간 뒤에, 내 침상 옆에 놓은 궤짝에서 남색 거죽으로 된 서적을 찾아주십시오.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남색!”

일기장이 옅은 누른색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가지고 빠르게 사천감으로 가서, 채미라 불리는 소녀에게 말 한마디 전해주십시오. 허칠안이 위기에 처했으니 속히 구해달라고.”

“그곳에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

왕 포두한테 사천감에 들어가라는 것은, 일반인더러 황궁에 들어가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왕 포두는 아마 사천감에 가까이 갈 용기도 없을 것이다.

허칠안은 이런 반응을 미리 예상했다. 그래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제게 일이 생기면, 빌린 은자를 돌려드릴 수 없을 겁니다.”

이에 왕 포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일을 도와주시면, 다음 달 녹봉 전부를 대장께 바치겠습니다.”

“이런 미친놈! 나까지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네.”

왕 포두가 투덜거리며 현아를 나갔다.

* * *

허평지는 동료한테서 말을 빌려,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장락현아에 도착했다.

문턱을 넘어 공당으로 들어서자마자 흐느끼며 우는 큰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으로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 있는 아역들과 수종들이 보였다.

이윽고 허평지는 눈길을 거두고, 딸 앞에 다가와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더냐?”

허영월은 절망 속에서 빛 한 줄기를 본 것마냥, 더 심하게 흐느꼈다. 그러고나서 일의 경과를 부친에게 말해주었다.

주 시랑의 공자가 말발굽으로 양가 소저를 밟으려 했다는 말에, 허평지의 눈이 뒤집혔다.

“오라버니가 아니었으면 영음이는 이미……. 엉엉엉…….”

“너는 편청에 가서 영음이를 돌보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는 나오지 말고.”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허평지는 앞으로 가서 비단 옷차림의 공자를 쏘아보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주 공자, 그만하시죠.”

허평지와 눈이 마주친 비단 옷차림의 공자는 살기를 느꼈다. 곧 그는 허칠안이 거리에서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뱉으려 했던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허백호의 위엄이 어마어마하구먼. 우리 공자께서 그만두지 않으면 피비린내라도 풍길 셈인가?”

그때, 옷깃과 소맷부리를 모두 금색으로 두른 남색 장포에, 허리춤에는 옥패를 건 노인이 현아 대문으로 들어왔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마른 얼굴, 눈길은 예리하기로 마치 비수를 머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목소리가 들릴 때만 해도 문 어귀였는데, 말이 끝나자 그는 이미 공자 옆에 서 있었다.

“진숙(陈叔).”

공자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공자님,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느 미친놈이 공자님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공자님의 작은 상처 하나에도 마음이 아프곤 했는데!”

공자의 귓불에 붙은 피딱지를 본 노인은 마음이 아파 탄식했다. 물론 그의 분노도 한층 심해졌다.

“몇 번이나 나리께 연기경의 고수를 붙여달라고 했었는데, 공자께서 말썽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거절하시더니 일이 이 지경으로 된 거 아닙니까!”

“말썽을 일으키면 또 어떻습니까. 공자님만 안전하면 그만이지요.”

허평지는 뭔지 모를 기(气)에 묶인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빙실에 추락한 것 같이 오싹했고, 등엔 뱀이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배회하는 느낌이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만 느낄법한 살벌함. 허평지는 옴짝달싹 못하고 서 있었다.

‘저 노인은 연신경에 이른 고수다.’

이때 헛기침을 하던 주 현령이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주 현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노부, 주부(周府)의 늙어빠진 하인일 뿐입니다. 주 대인님의 존댓말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너무 겸손하십니다.”

재상 문전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칠품 관원이라는 도리를 주 현령이 모를 리 없었다. 물론 재상까지는 아니지만 호부시랑의 곁을 지키는 자라면 만만치 않은 배경일 것이다.

“일이 괜히 커졌습니다. 다 오해입니다. 경찰이 눈앞인데, 화목을 도모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노인이 냉소를 머금더니 입을 열었다.

“보잘 것 없는 사람 몇 명으로 우리 나리께 영향이 가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덕을 최우선시하는 주부에서는 당연히 조정의 규장제도에 의해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무리는 이 말의 본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문(衙門) 밖에서 우렁찬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예기를 갖춘 무장 갑사들이 우르르 아문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맨 앞에서 들어오던 청포에 백한(白鷳)을 수놓은 관원이 주위를 한 번 훑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부에서 죄인을 체포하러 왔다! 기타 사람들은 물러나 있거라. 이에 방해를 하는 자들은, 동일한 죄로 치부하겠다!”

잠깐 멈칫하던 청포 오품 관원이 주 공자를 향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공자, 죄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 공자가 허칠안을 향해 삿대질 하면서 말했다.

“이놈이다!”

청포 오품 관원이 손을 한 번 휘두르면서 명을 내렸다.

“체포해라!”

갑사들이 앞으로 달려오더니, 허칠안에게 가쇄(*枷鎖: 죄인에게 채우던 쇄사슬)를 채웠다.

“대인, 제 조카가 무슨 죄를 범했습니까?”

허평지가 다급히 물었다.

“유죄 여부는, 본관이 판단한다.”

“본관 형부 낭중(郎中)으로서 공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다.”

청포 오품 관원이 담담하게 답했고, 주 현령은 계속해서 따지려는 허평지를 겨우 말렸다.

“데리고 가라!”

형부의 사람들은 죄인 명분으로 허칠안을 체포한 뒤, 이내 현아를 떠났다.

그제야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허평지에게 가한 기를 풀었다. 이어 허평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주 공자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공자님, 제가 관저로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주 공자가 그를 따라 나서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미친놈을 죽여야 해!”

“알겠습니다. 노부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노인이 자상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내가 직접 갈래.”

“네. 공자님 원대로 하세요.”

두 사람이 수종들을 거느리고 현아를 떠났다.

허평지는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익사할 뻔했던 위기에서 금방 벗어난 사람처럼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온 몸은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채였다.

“어장(*御状: 황제께 올리는 소장)을 올려야겠네!”

허평지가 말했다.

“성상을 만날 수 없을 걸세. 어도위 백호가 어찌 황궁에 들어설 수 있겠나. 게다가 자네 상주할 수 있는 권한도 없지 않나.”

주 현령이 한숨을 내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만 하게.”

“그건 안 되네. 안 돼!”

마음속에서 고역을 치르고 있는 허평지의 얼굴에는, 분노와 실망이 번갈아 드러났다.

이때 주 현령이 말을 꺼냈다.

“자네,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신년을 찾아가는 일일세. 운록서원의 거인이잖나.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온갖 탄압을 받고 있는 운록서원이라지만, 거기에는 힘없는 서생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성인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치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당시 허신년이 공명을 제적당하고 천적에 오르기는 했지만, 유배를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운록서원 덕분이었다.

* * *

‘관성루!’

왕 포두는 말에 채찍을 가해 먼지를 날리며 경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도착했다. 주변을 지키는 사졸은 없었고, 관성루 부근에도 백성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천감은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감정 대인은 성상(星象)을 관찰하고 역법을 제정하는, 하늘의 신과 소통할 수 있는 그야말로 땅에 있는 신 같은 존재였다.

사천감 연금술사들의 작품 또한 민간에 널리 퍼져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줬다. 기타 수련체계에 비해 사천감의 술사야말로 백성들 마음속의 신 같은 존재였다.

신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 포두는 몇 번이고 말고삐를 조여 돌아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거스르고 관성루 앞에서 멈춘 왕 포두는 말에서 내려 돌계단 난간에 고삐를 묶었다. 그의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이때 송경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채였다. 그는 한 편으로는 공포를 느끼고 한 편으로는 흥분을 느꼈다. 갑자기 송경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세은을 정제하는 연금술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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