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제가 공자님께 가르침 하나 드리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칠안이 기름종이로 싼 어육완자 삼인분을 들고 동생들이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수종(隨從) 다섯 명이 허영월을 둘러싸고 손을 대지 않은 채 희롱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열여섯 소녀는 우리에 갇힌 사슴이 돼버렸다. 허영월은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포위를 뚫으려는 시도를 하다, 수종들에 의해 다시 원래 자리로 쫓겨났다.
그 모습을 보던 수종들이 하하하하 크게 웃어댔다.
옆에는 비단 옷차림의 공자가 준마에 올라타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언니가 괴롭힘을 당하자, 콩알이는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공자 앞에 달려가 윗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간 채, ‘와아아앙’ 울음을 터뜨려 음파 공격을 시작했다.
“시끄러워!”
본능적으로 마편을 들어 올리던 공자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눈빛에 잔인함이 서리는가 싶더니, 말고삐를 잡아당겨 준마의 발굽을 들어 허영음을 밟고 지나려 했다.
분노가 폭발한 허칠안은 말발굽이 올라가는 순간, 가슴팍에 넣었던 동전 꿰미를 꺼내 있는 힘껏 뿌렸다. 이와 동시에 발밑에서 ‘즈즈즉’ 소리가 나더니, 벽돌이 깨지고 몸이 번개같이 사라졌다.
묵직한 동전이 공중에서 마찰음을 내며, 비단 옷차림을 한 공자에게로 날아갔다.
앞에서 날아오는 살기등등한 암기(暗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공자의 얼굴에는, 개미를 밟아 죽이기 직전의 흥미진진한 표정이 남아있었다.
오히려 수종 한 명이 기색이 급변하더니 공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들은 말에서 함께 굴러 떨어져 바닥에서 굴렀다.
동전 일부는 바닥에 떨어졌고, 일부는 말에 꽂혀 말 몸뚱어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허영음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다.
펑!
허칠안은 몸을 기울여 어깨로 말을 힘껏 밀었다. 그러자 말이 힘없이 날아갔다.
덩치가 엄청난 준마가 수 미터 떨어진 곳에 맥없이 쓰러졌다. 청석판이 깔린 거리는 피가 끌린 흔적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주위에 있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멀리에서 이 장면을 구경했다.
허칠안은 이내 콩알이를 품에 꼭 안고, 그녀의 안색을 살피면서 위로했다.
“괜찮아, 괜찮아! 오라버니가 여기 있어.”
콩알이는 입술을 움직이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허영월을 둘러싸고 있던 수종들이 우르르 비단 옷차림의 공자한테로 달려갔다.
허칠안은 얼굴이 백지장이 된 허영월에게 막내 동생을 맡기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장락현아에 데리고 가서 문을 두드려라. 내가 보냈다고 해. 그리고 왕 포두한테 어도위 주백호 집에 가서 이숙을 청해달라고 부탁해. 황림가(黄林街), 얼른!”
허칠안을 빤히 보던 허영월이 콩알이를 안고 냅다 달렸다.
“감히 내 말을 죽여?”
비단 옷차림의 공자가 흉측한 웃음을 지으며, 수종의 손을 뿌리쳤다. 이윽고 그가 허칠안을 포위하라고 수종들에게 손짓했다.
‘너마저 죽이고 싶다 이 새끼야…….’
공자가 타고 있던 말은 천금으로도 사기 어려운 설굽오룡표(雪蹄乌龙骠)였다. 군사들 중에서도 부장령급 이상이어야 탈 수 있었다.
허칠안은 군인 출신인 허평지한테서 어린 시절부터 설굽오룡표에 대해 들어왔던지라, 첫 눈에 그 말을 알아보았다. 현대로 말하면 람보르기니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초특급 2세란 말이었다. 그것도 고관 2세. 재벌 2세는 이 시대에서는 값이 없었다.
설굽오룡표 외에도 청색에 연자(烟紫)색을 배합한 화려한 자수와 허리춤에 이(螭)를 조각한 백옥대(白玉带), 여기저기에 걸린 염낭(荷包), 옥패……. 모든 정보가 공자의 신분을 암시했다.
“소생 허칠안. 어도위 백호 허평지의 조카입니다. 방금 전 제 동생이 공자께 어떤 잘못을 했는지요?”
허칠안은 공수의 예를 갖추고, 애써 화를 눌러가며 공손하게 말했다.
“어린 동생을 구하려다가, 공자께서 아끼는 말을 실수로 그만 죽였습니다.”
충돌이 일어난 원인이야 불 보듯 뻔했다. 뉘 집 공자님인지, 허영월의 빼어난 미모에 끌려 희롱하다 좋으면 붙잡아 가려고 했을 터였다.
관아에 있다 보니 이렇게 고위직 관리 집안 공자님들의 행각에 대해 여러 번 들은 바 있었다.
제멋대로 여자를 붙잡아 가고,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해결도 엄청 쉬웠다. 협박하거나 회유하면 끝이었다. 그것도 안 먹히면, 온 집안 식구를 황천길에 오르게 하면 그만이었다.
품계가 높은 관리의 자녀일수록 악행이 심각했다. 조정에서 백성 몇 명의 목숨 때문에 조정 관원을 파면하지는 않았다.
관아에서는 당연히 눈을 감았다. 그들이 백성을 괴롭히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관리 2세를 누를 수 있는 건, 오직 관리 2세밖에 없었다.
허칠안도 관리 2세라 할 수 있었다. 허평지가 칠품 녹포로, 관직에 있기 때문이었다.
관리 2세들이 백성을 괴롭히는 데는 거리낌이 없건만, 조정 녹봉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망설이는 부분이 있었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많은 만큼 경성의 물이 엄청 깊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허칠안의 말을 듣자, 멈칫하더니 물었다.
“허평지, 세은을 잃어버린 그자?”
“네, 그렇습니다.”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목숨만 붙어있으면 된다.”
‘이런 미친 새끼…….’
허칠안은 잇새로 작게 욕을 흘렸다.
수종들은 모두 무공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호주머니에서 비수를 꺼내 들었다.
경성에서 관직 없는 자들은 칼을 차지 못했다. 관복을 입지 않은 한, 패도(佩刀)는 금지사항이었다. 이를 어긴 자들은 장형 80대에 은 백 냥으로 벌했다.
여럿이 함께 칼을 휘두를 경우, 현장에서 바로 참수형에 처해도 무방했다.
다만 비수는 예외였다. 이들은 법의 허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수종 다섯 명은 무공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합공술(合击术)까지 연마한 듯했다.
수종 두 명이 습격과 동시에 비수를 휘둘렀다. 허칠안이 두 사람의 손목을 잡고 반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두 사람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러더니 정면으로, 공자를 말 위에서 밀치던 사람이 무릎을 세우고 사나운 기세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둔 허칠안이 교차 자세로 가슴을 막았다.
펑!
단단한 슬개골이 팔뚝을 내리쳤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남은 두 명은 측면에서 협공했다. 한 명의 비수가 빗나가는 순간, 다른 한 명의 비수가 허칠안의 허리를 찔렀다. 순식간에 새빨간 피가 옷에 번졌다.
“팔다리 힘줄을 끊어버려라.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공자를 힐끗 쳐다보던 허칠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분석했다.
다섯 명 모두 연정경지였다. 다만 전봉(巅峰) 수준이 아니라 일대일로 붙으면 머리통을 박살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합공술로 싸웠다.
비수가 다시 날아들었다. 허칠안은 전생에 배웠던 격투술로 저항하다가 체력이 점점 달리는 체했다.
무부의 연정경 전봉은 체력이 쉽게 방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상대방이 파악하게 해서는 안 됐다. 이길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수종들이 쉽게 허칠안을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을 본 비단 옷차림의 공자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먼발치에서 허칠안을 조롱했다.
“거기 허씨. 무릎 꿇고 절하면서 할아버지라고 두 번 부르면 살려주지.”
“그래, 할아버지가 된 느낌 참 좋구려!”
허칠안이 큰 소리로 응답했다.
허칠안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스스로 격노에 빠진 공자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여라.”
펑!
허칠안은 수종과 일대일로 주먹치기를 하고 난 뒤, 버티지 못하는 척 비틀거리면 후퇴했다.
네 명의 수종이 기회를 봤다 싶었는지 포위하면서 들이닥쳤다.
바로 그때, 허칠안이 딛고 있던 청벽돌에 금이 갔다. 그리고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바지통이 팽팽해졌다. 있는 힘껏 달려가는 허칠안과 부딪힌 좌측 수종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가슴뼈가 골절된 것이었다.
허칠안이 실력을 숨기리라 전혀 예상 못했던 수종들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자, 허칠안은 포위를 뚫고 나갔다.
그는 바로 도망치지 않고, 비단 옷차림의 공자 앞으로 달려가, 질겁한 상대방의 목을 졸라 아랫배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공자의 몸이 새우처럼 말리더니, 그가 입으로 오물을 토해냈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허칠안이 주먹으로 몇 번 더 내리치자, 공자는 배를 끌어안고 바닥에 꿇어앉았다.
속에서 북받쳤던 분노가 조금 사그라진 허칠안은, 더 이상 폭행을 가하지 않고 달려오는 수종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아니면 이 자는 죽는다!”
허칠안의 말에 수종들은 꼼짝달싹 못했다.
“그래, 좋아…….”
비단 옷차림의 공자가 머리를 들더니, 원한이 서린 지독한 눈길로 허칠안을 쳐다봤다.
“너 내가 누군지 알기나 알아?”
퍽!
공자의 낯을 오물 위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은 허칠안이 발바닥에 힘을 가하자, 공자는 연달아 처참한 비명소리를 질렀다.
“제가 공자님께 가르침 하나 드리죠.”
안색이 어두워진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필부도 노합니다. 필부가 노하면 피 비린 냄새를 풍기기 마련입니다.”
그가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데, 제복에 박도를 찬 포졸들이 열 명 정도의 백역을 거느리고 도착했다.
맨 앞에는 왕 포두가 서 있었다.
동생 같은 부하가 맞고 있다는 소식에 화가 났던 왕 포두는 공자의 옷차림을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금세 다시 격노하여 안색이 급변했다.
“네놈들이 간땡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구나. 감히 장락현아 관할 구역에서 대놓고 쌈박질을 해?”
동료들이 박도를 꺼내 수종들을 포위하고 나서야, 허칠안은 공자를 풀어주었다.
공자가 삿대질을 하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호통쳤다.
“이놈을 잡아라. 내가 오늘 이놈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테다!”
못 들은 척하던 왕 포두가 욕지거리를 해댔다.
“이놈들 모두 잡아라!”
공자가 아무리 자신의 신분을 밝혀도, 왕 포두는 변함없이 거친 태도를 보였다.
‘나 원래 이렇게 무식한 놈이야. 어쩔래?’
이런 태도로 나오는 왕 포두에 더 이상 희망을 걸지 않기로 한 공자는, 조용히 아역을 따라나섰다.
아마 포졸들이 너무 무식해, 어찌 대처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포기한 모양이었다.
왕 포두가 대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더니 허칠안 옆으로 다가왔다.
“이 친구야, 큰일 쳤어. 저놈 신분이 만만치가 않아 보여. 어떻게 해결할지는 생각해놨어?”
왕 포두는 눈썰미 하나는 제대로인 듯했다.
“제 숙부에게 알렸습니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금방 현아에 도착했다.
* * *
허칠안은 현아에 들어서자마자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라버니…….”
담벽색 비단옷을 입은 허영월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희고도 맑은 얼굴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눈은 너무 울어 퉁퉁 부었고, 눈시울은 아직도 빨갰다.
옆에는 콩알이가 없었다. 편청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며 ‘괜찮아’라는 눈빛을 보냈다.
미리 소식을 받은 주 현령이 공당 주좌에 앉아, 아역들이 압송해온 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노에 씩씩거리는 비단 옷차림의 공자를 본 주 현령이 깜짝 놀라더니 벌떡 일어섰다.
“아이코 이게 누구야. 주 공자 아닙니까? 주 시랑은 강녕하시지요?”
비단 옷차림의 공자가 옷소매를 힘껏 뿌리치더니, 허칠안을 가리키며 독살스러운 어투로 주 현령에게 협박하듯 소리쳤다.
“이 사람이 대놓고 거리에서 나를 죽이려 했다! 얼른 이놈을 잡아라!”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주 현령은 웃는 얼굴로 공자의 말에 대꾸하더니, 머리를 돌려 노기등등한 얼굴로 소리쳤다.
“쾌수 허칠안, 얼른 오지 못하더냐?!”
허칠안은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 이놈! 간땡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구나. 감히 호부시랑 주 대인의 공자님을 건드리다니, 죽고 싶은 게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 현령이 발로 허칠안을 찼다.
그러고는 바로 머리를 돌려 웃는 얼굴로 공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주 공자,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조정을 위해 충성하는 한집안 식구 아닙니까? 저 보잘 것 없는 놈 때문에 공자님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허영월은 먼 발치에서 사촌 오라버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질책당하고 있는 허칠안을 지켜보는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끝도 빨갛게 변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