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여동생과 함께 거리에 나가다
허영월의 연약한 체구가 떨리더니 손등에는 닭살이 돋아났다.
허평지는 삐죽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왜 들으면 들을수록 몸이 오싹해지는 것이냐.”
불만이던 숙모가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시사의 힘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영혼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 작시(作詩)할 줄도 평측(*平仄: 음운의 높낮이)의 규칙도 모르더라도, 고전 명작을 읽으면 두피가 저려오는 법이다.
이는 허칠안이 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고전 명작을 읽을 때 느낀 것이었다.
“천리황운백일훈, 북풍추안설분분, 막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불식군.”
허신년은 자기도 모르게 기립 자세를 취했다. 얼굴에는 감격의 홍조가 떠올랐다.
‘이렇게 훌륭할 수가!’
시에 재능은 없으나, 서생으로서 누가 술 마시면서 시를 줄줄 읊고 싶지 않겠는가! 또한 좋은 시를 들으면 자연스레 칭찬이 나오고 피가 들끓게 되는 법이었다.
“형님……. 언제부터 시를 지었던 겁니까?”
뚫어져라 허칠안을 바라보던 허신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거기에는 놀라움과 의아함이 섞여 있었다.
“내가 언제 시를 지을 줄 모른다고 했어?”
허칠안이 웃었다.
“어릴 때 만든 시로 뭘 증명할 수 있겠니. 본래 난 작시(作詩)에 재능이 있었어. 나대지 않았을 뿐이지.”
“칠안이가 우리 허씨 집안의 학자 혈통이었네.”
흐뭇한 허평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진작 알았으면 너더러 공부하고, 신년이더러 무공을 익히라고 할 걸 그랬구나.”
숙모는 눈앞의 광경을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딱히 이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도 못했다.
‘아니, 그러면 난 학문 찌꺼기, 신년인 무공 찌꺼기가 될 겁니다.’
허칠안은 몸 주인이 학문에는 눈곱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그럴 바엔 차라리 노역을 하는 게 나았다.
허신년 또한 무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구였다. 여리여리한 신체로 무공을 연마하라니.
“신년아, 칠안의 시는 그저 듣기만 하지, 네 것으로 삼으면 절대 안 된다. 그건 서생이 할 짓이 못 되느니라.”
허평지가 말했다.
부친의 말에 황당해진 허신년은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럴 사람 같아 보이는가? 그러다가 그는 머리 돌려 허칠안을 보면서 말했다.
“이 시구를 빌려주십시오. 물론 시를 지은 자가 형님이라고 밝히겠습니다.”
‘시를 지은 사람이 나라고 해준다고?’
허칠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져가. 이걸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질 좀 해 봐.”
학문을 닦는 일이란,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성인을 가장하는 일이었다.
이 시는 허신년이 인맥을 넓히는 데 사용하라고 읊은 것이었으니, 시인을 누구로 하든 허칠안은 상관없었다.
학문을 닦을 것도 아니었으므로, 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또한 그가 한 달간 시를 읊으면서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하지 않은 이유였다.
게다가 환경도 그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매일 칼을 휘두르는 포졸들과 함께 있는데, 그들에게 시를 읊어 준다고 그들이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시의 제목은?”
허신년이 물었다.
‘앗, 잊었다.’
얼굴이 굳은 허칠안이 답했다.
“그저 영감이 떠올라 지은 거야. 제목은 없어. 네가 알아서 해.”
* * *
허신년은 아침을 먹자마자 뒤뜰로 가, 부친이 아끼는 말 한 필을 끌고 집을 급히 나갔다. 숙부와 조카는 뜰에서 다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무공을 겨루었다.
“발전이 있구나. 동작이 더 정교해졌어. 한 보 더 나아가려면 연기경에 이르러야 하는데, 다만 기기(气机)란 천지가 교감해야만 생겨나는 것이라.”
하인이 건네 온 땀수건을 받아 쥔 허평지가 얼굴을 닦았다.
“약욕(藥浴) 외, 연신경의 고수가 너를 위해 천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아니면 한평생 연기경에 이를 수 없어.”
연신경이란 무사 수련계의 7품이었다.
“숙부, 뭘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허칠안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나 또한 산해 전역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운 덕에 전공(戰功)이 인정되어, 군중 고수가 날 위해 천문을 열어 주어 연기경에 이르렀단다.”
허평지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집에 돌아온 이듬해에 신년이가 생겼지. 그런데 요즘은 태평천국이라 전공을 세울 기회도 없으니, 어떻게 연기(练气)를 한단 말이냐? 연기에 이르지 못하면 장가는 어쩌고?
칠안아, 숙부는 이제 늙었단다. 남은 소원이라면 네가 장가가서 아이를 낳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야 이미 돌아간 네 부친을 볼 낯이 있지 않겠느냐.”
“나중에 보죠.”
허칠안은 건성으로 답했다.
* * *
공을 세우는 것 외에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바로 돈을 쑤셔 넣는 방법이었다.
약 처방과 고수 모두 은자로 해결할 수 있었다.
협객은 무공을 이용해 범법하는지라, 무사의 수에 대한 조정의 관리는 매우 엄격했다. 연신경 고수는 사적으로 타인을 위해 천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되고, 집안 자녀를 위해 열어준다고 하더라도 관부에 등록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된 바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봉의 관료 풍속은 엉망이었다.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심각하여 조정의 위엄도 날로 쇠약해지고 있었다. 대놓고 율법에 위배 되는 행위를 하지는 않더라도, 적지 않은 연신경 고수들이 암시장에서 거래 대상을 찾았다.
허칠안이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은자로 공을 대신하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연정경에서 멈추면 동정 딱지는 언제 뗀단 말인가.’
이때 숙모가 딸 둘을 데리고, 회랑 지붕 아래 서서 허평지를 불렀다.
“나리, 날도 따뜻한데 영음이와 영월이를 데리고 거리 구경이나 나가세요.”
허평지가 눈썹을 찌푸리며 답했다.
“일이 있소.”
“오늘 휴일 아니에요?”
“동료들과 술 약속이 있소. 잠시 후에 나가 봐야 하오. 아니면 칠안이에게 데리고 나가라고 하시오.”
보통 선비 가문의 소저들은 함부로 거리에 나서지 않았는데, 허씨 가문은 무장세가(武将世家)라 비교적 자유로웠다.
고개를 돌린 허칠안은 16살 소녀의 맑고 깨끗한 눈과 마주쳤다. 그러자 입을 오므리던 허영월이 머쓱한지 고개를 살짝 떨궜다.
“마침 할 일 없었는데, 잘됐네요.”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였다.
회상해 보니, 전생에 열여섯 여자애를 데리고 돌아다녔던 게 열여덟 소년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 만났던 여자애보다 허영월이 훨씬 예뻤다.
* * *
경도 교외, 면양정(绵羊亭)에 화려한 마차 몇 대가 정자 옆에 머물러 있었다. 교외라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기복이 심한 산봉우리는 옅은 적색을 띠고 있었다.
태양이 중천에 걸렸지만, 초겨울 날씨라 따뜻함이라곤 느껴 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운록서원의 양공(杨恭), 자양거사(紫阳居士)가 출사하는 날이었다.
날로 쇠약해지는 운록서원으로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선생들과 춤을 추는 학생들은 드디어 어깨를 펴고 재능을 펼칠 날이 왔다고 기뻐했다.
* * *
정자 안, 노인 세 명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중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자줏빛 도포를 입은 노인이 바로 송별의 주인공이었다.
이름은 양공(杨恭)이요, 자 자겸(子谦), 호 자양거사, 원경 14년의 장원(状元)을 거머쥔 자였다. 그는 이듬해에 치사(*致仕: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고 운록서원에 돌아와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이십여 년의 시간을 거쳐 수많은 학생을 배출한 그는 천하에 이름을 날린 서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더 좋은 벼슬길, 입각배상(入阁拜相)도 손쉬웠을 그였으나, 한창때 암연히 관아를 떠났다. 이에 대해 사림(*士林: 유학을 신봉하는 무리)은 의견이 분분했다. 혹자들은 그가 폐하의 심기를 건드려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당조 수보(*首辅: 최고 직위의 관원)를 잘못 건드려서 관아에서 밀려났다고 했다.
어쨌거나 그는, 20년이 지나 다시 관아에 입성하여 청주의 포정사(布政使)로 가게 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봉강대리(*封疆大吏: 지방 수석 장관)인 셈이었다.
그와 함께 있는 두 명의 노인도 내로라하는 신분이었는데, 운록서원에서의 지위는 물론 외부에서의 명성도 양공에 못지 않았다.
수염을 길게 기른 회색 도포를 입은 대국수(*大国手: 중국에서 바둑의 최고수에게 부여하는 칭호) 이모백(李慕白). 그는 과거 천하제일 바둑기사라 불렸다. 하지만 5년 전, 위연(魏渊)과 바둑 세 판을 두었는데, 세 판 모두 패하자 노하여 바둑판을 내동댕이쳤다. 그 후로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았다.
남색 도포를 입은 자는 장진(张慎), 병법대가였다. 젊은 시절에 저술한 <병법육소(兵法六疏)>는 오늘날 대봉에서도 무관, 장령들의 필독 도서였으며, 그는 대봉에서 유일하게 위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병법대가였다.
* * *
정자 밖은 송별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학생들로 가득이었다. 모두 운록서원에서 손에 꼽히는 자들이었다.
허신년도 그중에 포함됐다.
“자양 선생이 마침내 관아에 다시 나오는군. 선생의 인정을 받을 수만 있다면, 관아에서 만사형통을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신년, 시는 준비했어?”
친분 있는 서생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우리 형님이 나를 위해 준비했어. 그것도 반수(半首) 칠률(七律) 시로…….’
그러나 허신년은 정자 내부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다른 말을 했다.
“반수를 준비하긴 했어. 영숙(永叔), 자신이 있나 봐?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다니,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칠률 시에는 엄격한 격률이 있었는데, 허칠안이 준 칠률 시에는 격률에 벗어나 이련(二联)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물어보긴 했으나, 그는 우물우물하면서 화제를 돌리더니 끝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이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지. 배움의 터와 벼슬의 터는 같아. 스스로의 피땀으로 밭을 갈고 권력자의 힘을 빌려 거름을 주어야지 않겠어?”
친분 있는 서생이 말을 덧붙였다. 그는 허신년이 시사에 능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영숙의 말이 맞아. 오늘날의 관아는 부패가 무척이나 심각하잖아.”
다른 한 서생이 화제에 참여했다.
영숙이라 불리는 서생이, 머리를 끄덕이며 허신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시에 재능이 없다고 하지만 생각해 봐. 다른 걸 아무리 잘 쓰더라도 몇십 년이 지나면 누가 기억하겠어? 하지만 시는 다르지. 시는 대대손손 전해질 수 있잖아.”
‘제아무리 좋은 시구라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백성을 풍요롭게 못 하니 겉치레일 뿐이오.’
허신년은 턱밑까지 올라온 말을 도리어 삼켜 냈다. 오늘 그도 소위 겉치레일 뿐인 시로 노인의 환심을 사러 왔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대국수 이모백이 학생들을 보며 한탄을 했다.
“양 형(杨兄), 그때 당시 저 젊은이들만큼이나 사고가 유연했다면 이십여 년의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거요.”
이에 양공이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병법대가 장진이 실소하면서 차를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 야심만만한 양 형의 ‘입명’경(立命境)을 위한 준비였으니.”
말을 듣던 양공이 깊이 탄식하며 말했다.
“결국은 관아에서 쫓겨나지 않았소.”
“이건 양 형 문제가 아니오. 국자감(國子監) 출신인 그들이 우리 운록서원의 호황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을 거요. 흥! 위로는 아첨, 아래로는 박탈. 권모술수밖에 모르는 소인들! 200년도 안 되는 사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그럴 만한 과거가 있었다.
유가는 성인으로부터 기원되었다. 성인의 대제자가 창설한 운록서원은 유가 정통이라고 자부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년 전, 태자 책봉 사건으로 당시 황제로부터 운록서원은 버림을 받고 말았다.
때마침 그때 운록서원에서 배신자가 나오기도 한 탓이었다. 적어도 운록서원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당시 운록서원의 선생이었던 그 배신자는, 운록서원의 명성을 빌려 권력을 도모했다. 그는 ‘존천리멸인욕(*存天理灭人欲: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애라)’의 이념을 버리고 황제의 환심을 사서 국자감(國子監)을 설립하여 한 시대의 종사로 거듭났다.
그 후로 국자감(國子監)은 운록서원을 대체하여 조정 관원을 배출하는 주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이로써 유가 정통을 둘러싼 싸움이 200년간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