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5화 (15/712)

15화. 숙모에게 말대꾸하는 것이 일상

허칠안이 앉자 녹아가 백죽 한 사발, 고기만두 여섯 개, 절인 무 한 접시, 순두부 한 사발을 내주었다.

연정 경지의 무사로서 식사량은 일반인보다 훨씬 많았다.

그에 반해 숙부와 같은 연기 경지에 이른 무사는 식사량이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이 정도면 배가 반만 부르겠군…….’

허칠안이 콩알이를 보면서 친절하게 물었다.

“영음아, 큰오라버니에게 고기만두 하나 나누어 주면 안 돼?”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집안 막내는, 다른 건 다 괜찮아도 먹는 것만은 절대 양보하지 못했다. 자기 밥그릇에 손을 대기만 하면 죽자 살자 달려드는 아이였다.

“안 돼!”

콩알이가 두 팔을 벌려, 마치 어미 닭이 자기 자식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음식을 지켰다.

“급하게 굴지 말고. 오라버니가 너 밑지게 할 수야 없지.”

허칠안이 자기 그릇의 만두 하나를 콩알이 그릇에 넣었다. 세 개였던 만두가 네 개가 되었다.

“이 네 개 만두에 우리 두 사람 몫이 있지?”

허영음이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우리 똑같이 나누어 먹어야 맞지 않아?”

허영음이 머리를 갸웃하더니 끄덕였다.

“네게 만두 두 개, 오라버니도 만두 두 개, 그리고 오라버니가 유조 반 개를 너한테 줄게. 그러면 네가 득을 본 거지?”

“응.”

허영음은 속아 넘어갔다. 스스로 득을 크게 본 줄 알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허평지가 경멸의 눈길로 허칠안을 힐끔거렸다.

숙모는 화가 나서 펄펄 뛰었다.

“너같이 어리석은 걸 내가 낳았다니. 미치겠네, 정말!”

콩알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유조 반 개를 득 보았는데 어머니는 어째서 나를 욕하는 거지?’

이때 허신년이 들어오면서, 입으로 시구를 읊조렸다. 그는 초점 없는 두 눈을 하고 입으로 음식을 넣기만 했다. 깊은 사색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숙모가 숨을 크게 내쉬더니 어리석은 막내딸은 거들떠보지 않고, 잘난 아들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신년아, 갑자기 시는 왜? 사람은 각자 자신의 장점과 결점이 있는 법이란다. 타인의 말에 신경 쓰지 마라.”

허신년은 책론(策论)에 강했고, 시사에 약했다.

“신년, 너 언제쯤 개규(开窍)를 넘어 8품 수신경(修身境)에 이르는 거야?”

허칠안이 갑자기 물었다.

허신년은 유가의 도를 수련하고 있었다. 운록서원은 유가 성인의 대제자가 설립한 것으로써, 천이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다.

그야말로 천하 서생들이 꿈에도 그리는 곳이었다.

운록서원의 대체 불가한 지위는, 학파의 창시자가 성인의 제자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유가의 도를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서원이기 때문이었다.

유가 9품은 개규(开窍)였다.

개규(开窍)는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일목십행(一目十行)의 능력으로 학습력에는 도움이 됐지만, 여전히 수련의 말단을 벗어나지 못한 경지였다.

“아직은 아무런 기미가 안 보입니다. 스승님께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허신년이 유감을 표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개규경을 참조할 수 있지 않아? 개규경 수련은 어떻게 성공했어?”

“성인의 경전을 줄줄 외워 내 것으로 만들면, 그것이 개규경입니다.”

‘줄줄 외운다……. 내 것으로 만든다……. 전자는 대량의 시간을 들여 기억을 해야 했고, 후자는 일정한 오성(悟性)이 필요한데.’

허칠안이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까딱거렸다.

이 점은 무도 체계의 연정경과 마찬가지였다. 긴 시간 인내하면서 기혈을 강화하고 체백(*体魄: 신체와 정신)을 연마해야 했다.

“그럼 수신도 체백을 연마해야 하는 거야?”

허칠안이 물었다.

잠깐 생각해 보던 허신년이 답했다.

“수신경 유생(儒生), 내면에는 추호의 두려움이 없고,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복종케 하며 타인의 투지를 격앙시켜야 합니다. 제가 수신경이 발휘하는 능력들을 보고 수련법들을 생각해내서 시도해봤습니다.”

“성공했어?”

허신년이 못 들은 척 머리를 돌려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내일 서원의 윗분이 출사하여 청주(青州)로 떠나십니다. 먼 길을 떠나는 거라 서원의 학자들이 송별시를 선사하기로 했지요.”

말을 마친 허신년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아직 송별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허영월이 들릴락 말락 하게 말했다.

“오라버니는 시사에 재능이 없잖아.”

그 말은 곧장 숙모의 귀에 들어갔다. 숙모가 바로 허영월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재능이 남다른 네 오라버니가 시사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야.”

머리를 긁적긁적하던 허평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렴 몇 마디 쓰려무나. 네가 그날에 읊던 시가 아주 기백이 넘치더만.”

“큭 큭 큭…….”

허칠안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허신년은 화제를 돌렸다.

“그분은 천하에 학식 높은 선비로서 시사에 정통한 분입니다. 배웅 가는 학생들 모두 시사에 재능 있는 자들이지요. 다들 윗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있겠지만 인맥을 넓히려는 속내도 있습니다. 그분의 눈에 들 수만 있다면, 좋은 점이 엄청 많을 거예요.”

오호!

마침내 인맥에 눈을 돌리는구나.

자부심이라면 하늘을 찌르던 허신년은 종일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다), 군자붕이불당(*君子朋而不党: 군자의 사귐은 벗 삼는 것이지, 작당 모의를 위함이 아니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번 사건이 있고 나서, 마침내 인맥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을 알게 된 것이 틀림없었다.

허칠안은 형님으로서 이에 기뻐했다.

시사에 능하지 않은 허신년이 심혈을 기울여 친교를 맺으려는 걸 보니 큰 인물인 건 확실했다……. 급해진 숙모가 입을 열었다.

“이걸 어쩜 좋아.”

의기소침해진 허신년이 말을 꺼냈다.

“어머니, 문장이란 워낙 묘수오득(*妙手偶得: 고수가 영감으로 우연히 얻게 됨)입니다. 시사도 마찬가지고요.”

허신년이 말을 이었다.

“제가 만약 이분과 친분이 있었다면, 당시 우리 가족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수심에 찬 숙모는 그 누구보다도 아들의 진로에 마음이 쓰였다.

진정한 유생은 기개가 있는지라, 은자나 예물을 선물해서는 안 되는 법. 반드시 그 사람의 흥취에 걸맞은 선물을 해야 했다.

허평지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외할아버지도 너같이 문장만 썼지, 시사에는 재능이 없었단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던 숙모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쏘아붙였다.

“무슨 말입니까. 이게 다 제 부친의 탓이란 말입니까? 신년이가 거인(*举人: 과거 시험에서 급제한 자)에 급제한 것도 우리 이씨 집안 덕분입니다. 영음이 좀 보세요. 나리를 닮아 여태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허신년과 허영월의 외모는 엄마를 닮아 질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다만 허영음 이 콩알 같은 녀석은, 얼굴이 아버지를 닮아 귀여운 것을 빼고는 평범한 외모였다.

허평지는 할 말을 잃었다. 허칠안은 이 말에 발끈했다.

“숙모, 그 말은 아니지요. 숙모의 뜻은 우리 허씨 집안 유전자가 둔하다는 겁니까?”

유전자가 뭔지 모르는 숙모가 냉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네게 학문을 닦을 재능이 있었으면, 무공을 택하지도 않았겠지.”

교만하기 짝이 없는 허신년의 성격에 주도적으로 친분을 맺으려 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일반 신분이 아닐 터였다.

‘신년이 녀석이 얄밉긴 하지만, 그래도 녀석이 인맥을 갖춰두면 나도 언젠가 그걸 써먹을 때가 있을 거야.’

허칠안은 전생에 송별시로 유명했던 대작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학문을 닦는 학자들에게 들러붙을 생각은 없었지만, 합리적인 자원으로 이득을 챙길 수만 있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허칠안의 머릿속에 이내 시 한 수가 떠올랐다.

허칠안이 고기만두를 한 입 꽉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시 말이죠? 오늘 숙모한테 허씨 집안은 모두 인재라는 것을 보여 드리죠.”

시가 지나치게 훌륭할 것 같아 고민되었다. 교과서에 나올 만한 시라면, 모두 고전이었으니 말이다.

시사에서의 핵심은 평측(*平仄: 음운의 높낮이)의 응용이었다.

허신년을 힐끗 쳐다보던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하늘에는 새 한 마리, 땅에는 벌레 한 마리. 새가 덮치자, 벌레가 꿈틀거렸다.”

“풉…….”

허영월은 입을 막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허칠안이 쏘아보자 얼굴이 바로 붉어지더니 고개를 떨궜다.

‘너무한 거 아냐? 정말 한 대 치고 싶다.’

허칠안이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이 시는 몸 주인이 10살 때 만든 시였다. 당시 허씨 가문의 자녀 3명을, 숙모의 부친이 가르쳤다. 바로 수재였던 그 외할아버지.

한 번은 수재인 외할아버지가 사시를 시험 보았는데, 그때 이 시가 탄생했었다.

숙모는 대놓고 조롱했다.

“칠안아, 숙모가 널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허씨 집안에 학문을 닦을 수 있는 혈통이라고는 신년이 한 명뿐이란 얘길 하고 싶은 것이란다. 너랑 네 숙부의 글씨를 보렴. 벌레가 기어 다닌 흔적 같지 않더냐. 글씨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주제에 시를 짓는다고?”

입을 삐죽거리던 숙모가 흰자위를 번득거렸다.

난감한 표정의 허평지가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칠안아, 서생들의 일에 우리는 끼어들지 말자꾸나. 오늘 휴일이니 우리는 집안일을 좀 도우는 것이 어떠하냐?”

뜻인 즉, ‘너 이놈, 공연히 웃음거리 만들지 마라. 학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네놈이 괜히 끼어드는 바람에 네놈 체면도 깎이고, 나도 덩달아 부인한테 조롱당하잖아.’ 정도 됐겠다.

“천리황운백일훈(*千里黄云白日曛: 천 리 석양빛 구름 햇볕을 가리는데).”

허칠안이 다시 한번 읊조렸다.

이에 숙모는 흰자위를 번득이더니, 고개를 숙여 죽을 마셨다.

허평지는 기름이 번지르르한 막내딸의 입을 닦아 주었다.

한편, 허신년은 눈썹을 찌푸렸다. 한 마디로 뭘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허칠안이 이렇게 정교한 시구를 지은 것만으로도 너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북풍취안설분분(*北风吹雁雪纷纷: 북풍은 기러기에 불고 눈은 바람에 날리네).”

허신년이 멍을 때렸다. 머릿속에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글귀였다.

허영월이 머리를 들어 영롱한 눈빛으로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더 이상 시구를 읊지 않고 머리를 숙여 죽을 마셨다.

“뒤에는? 뒤에는요?”

허신년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 느낌은 마치, 찻집에서 이야기 선생이 이야기를 절반 정도 하다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에서 갑자기 책상을 치면서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다음 회에 찾아오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짜증이 난 나머지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난 시를 지을 줄 몰라.”

허칠안은 숙모를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그저 오늘따라 숙모가 너무 고와서 본 거지, 절대 사과하라는 뜻이 내포된 것은 아니었다.

숙모가 큰 눈을 부릅뜨고는 머리 돌려 아들에게 물었다.

“이게 좋은 시인 것이냐?”

딸과 아들의 태도를 보자, 허평지도 놀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놀람과 기대가 섞인 눈빛이었다.

“막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불식군(*莫愁前路无知己, 天下谁人不识君: 가는 길에 아는 이 없다고 근심하지 말게나, 천하에 그대 누가 모르겠는가).”

허칠안이 유자를 씹으면서 마지막 두 마디를 던졌다.

탁.

허신년이 탁자 위에 젓가락을 놓쳤다.

“막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불식군…….”

그는 중얼중얼하면서, 정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