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고왕금래(古往今來), 변치 않는 인류의 저열함
“부인의 옷차림과 장식품을 보니, 장유서가 잘해 주었나 봅니다.”
허칠안이 슬슬 운을 뗐다.
양진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부인의 나이에 여러 해 동안 회임하지 못한 건, 장유서의 문제가 아니었나요?”
고문을 예상했던 양진은, 젊은 청년의 태도와 온화한 어투에 뜻밖이란 얼굴을 했다. 인상 속의 관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사람들은 회임을 하지 못하는 것을 여인의 탓으로 돌렸는데, 허칠안의 견해는 여인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었다. 마음이 편해진 양진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다들 제 탓으로 돌리더군요. 제가 제구실을 못 해서 이리되었다고. 몇 해 동안 회임이 안 됐었는데, 하필 이때 남편이 또…….”
양진은 말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허칠안이 위로를 한다 싶더니, 또 물음을 던졌다.
“장유서는 생전에 청루(青楼)를 자주 드나들었습니까?”
“물론이죠. 자고로 돈이 많은 부호나 높은 위치에 있는 관리들 중 청루를 안 드나드는 사람이 있나요.”
이런 말은 삼가서 해야 했다. 오십이 넘는 나이에 청루에 자주 드나든다니. 그럼 양진의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다는 말이었다. 복중 애가 이웃 남정네 애라 해도 믿을 상황이었다.
“갑자기 부인이 이해가 되네요.”
혀를 끌끌 차던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장유서가 오십이 넘어서도 청루에다 몸을 담그고 있었으니 오죽 외로웠을까! 바람이 나도 할 말 없지요. ……하지만 살인은 잘못된 겁니다.”
낯빛에 미세한 변화를 보이던 양진이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허칠안이 웃었다.
“권종을 보았는데, 장헌이 부인보다 7살이나 어리더군요.”
양진이 정색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냉소를 머금은 허칠안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건 독수리가 병아리를 잡아먹는 격이지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양진은 정말 알아듣지 못했기에 중얼거렸다.
“그럼 네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주지.”
허칠안이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당신은 오랜 독수공방에 너무 외로워, 의붓아들을 유혹해서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잖아.
사건 발생 당일, 장유서가 세를 거두러 내려간 틈을 타서 의붓아들과 간통하다가, 예정보다 앞당겨 돌아온 장유서한테 들킨 거 아냐? 부자간에 다툼이 벌어진 틈을 타서, 네가 꽃병으로 장유서의 뒤통수를 쳐서 죽게 했겠지.
나중에 죄행을 덮으려고 너희 둘이 장유서의 시체를 마당으로 끌고 나와, 도둑이 절도하다가 살인한 것으로 가장했고. 장헌은 또 담 위에 발자국까지 남겨 네 진술을 증명하려고 꼼수를 부린 것일 테고.”
안색이 창백해진 양진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저는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양진은 큰 소리로 외치며, 땀으로 흠뻑 젖은 두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허칠안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심문 요령으로 친절함을 싹 거두고, 굳은 표정으로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아? 내가 왜 이렇게도 그날 일에 대해 빠삭한지. 왜냐면 장헌이 이미 자백했거든.”
‘아니. 그럴 리 없어.’
양진의 눈에 서린 감정. 그리고 창백함이 더해진 안색. 그녀는 억지로 침착한 척하면서도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억울합니다.”
“간부(姦夫)가 어떻게 죄를 인정하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당신은.”
허칠안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런 격한 협박도 없었건만, 양진의 마음은 공포로 조여들었다.
“너희들은 완벽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실은 허점투성이야. 장헌은 저택을 나가는 발자국만 남겼지, 저택을 침입하는 발자국은 남기지 않았어. 도둑이 무공 있는 놈이라고 한다면 도망칠 때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겠지.
그리고 장유서 살인 도구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 둔기였다는 것! 대봉율법에 따르면 야밤에 타인 저택에 무단 침입하는 자는 장형 80대야. 도중 죽어도 무방해.”
허칠안이 탁자를 두드리면서 물었다.
“그럼 물어보지. 저택에 침입해 도둑질하려는 놈이, 무기 하나 가지지 않았겠어? 그런데 장유서는 왜 하필 둔기로 맞아 죽은 것이야?”
양진은 허칠안의 말에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어째서 주 현령이 장유서를 죽인 게 도둑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 장유서의 시체를 실외로 끌고 나와 도둑이 한 짓으로 가장한 건 좋은 방법이었지만, 너희들은 큰 잘못을 저질렀지.
당시 장유서의 시체 방향을 보면, 두 발이 실내를 향하고 머리가 바깥쪽을 향했어. 이건 범인이 장유서의 뒤에서 둔기로 습격했다는 것을 설명하지.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범인이 도둑놈이라면, 주인이 돌아온 걸 발견하면 숨죽이고 가만히 있거나 도망갔겠지. 일부러 살해하고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이걸 당신이라면 믿겠어?”
양진은 멍해졌다. 이렇게 많은 허점이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허칠안의 일련의 분석은 양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모든 행각이 대낮에 드러난 것 같아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지 못했다.
양진은 공황에 빠졌다.
“할 말 없겠지. 장헌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너한테 뒤집어씌운 거야. 네가 파렴치하게 자신을 유혹해서 관계를 가졌고, 그 후엔 더 이상 너랑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복중 아이로 자신을 위협했다고. 사건 당일도 네가 장유서를 쳐 죽인 거라고.
무고한 피해자인 장헌은 이렇게 많은 허점이 드러나니 더 이상 도망칠 구멍이 없는 줄 알고, 죄를 인정하고 현령 나리께 은자 500냥을 선사하여 모든 죄를 너한테 뒤집어씌워서, 너 홀로 부군을 살인한 사건으로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했어.”
양진은 들으면 들을수록 공포를 느꼈다. 안색은 절망에 가까웠다. 장헌이 자신을 팔아먹은 사실을 듣게 된 양진의 아리따운 얼굴은 백지장이 되었다.
“장헌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가장 잘 알지?”
허칠안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장헌이 어떤 사람인지 허칠안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사랑 없이 욕망으로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쉽게 부러지는지 알 뿐이었다. 게다가 장헌은 부잣집 2세. 재산은 많지, 젊지,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건만, 여자 한 명을 위해 희생할 리가 없었다.
양진은 절망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슬슬 미끼를 던졌다.
“한 치의 부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현령 나리께서, 장헌의 일방적인 진술을 편신(*偏信: 한쪽으로 치우쳐 믿음)하지 않고, 나를 네게 보냈다. 네가 솔직하게 자백을 한다면 현령 나리께서 죽을죄는 면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갑자기 머리를 쳐든 양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울먹이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정말이고말고.”
드디어 심리적인 방어선이 붕괴된 양진을 확인한 허칠안은, 문을 열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사(堂事)를 불러들여 기록하게 하였다.
* * *
양진은 사건 진상을 숨김없이 낱낱이 토해냈다.
허칠안이 방금 구술했던 진상과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다.
간통이란 잠깐은 좋아도, 결국엔 가족 전체를 매장하는 행위였다.
사건 당일, 부자간에 충돌이 생기자 장헌이 꽃병을 들어 실수로 아버지를 죽였다. 이후 죄를 피하기 위해 양진과 짜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이었다.
다만 전문가가 아닌 둘의 거짓에 허점이 허다했던 데다가 사건 분석 전문가의 머리로 갈아탄 허칠안까지 만났으니 사건이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리라.
기록을 마친 후, 허칠안과 당사는 감금실을 떠났다.
현아에서 이십여 년을 일한 늙은 당사는 허칠안의 심문 수법에 탄복했다.
“며칠 보지 못했더니 몰라보게 변했구먼. 내가 현아에서 일한 세월이 20년이 넘는데, 사건을 자네같이 심사하는 건 처음 봤네.”
허칠안이 절레절레 손을 저었다.
“보잘것없는 수법입니다.”
양진의 입부터 열려고 했던 것은, 그녀가 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 대다수 여성이 그러했다.
방금 전, 현령이 수사하는 과정을 관찰하다가, 허칠안은 나약하고 주견 없는 양진의 성격을 발견해냈던 것이다.
심문 당시, 양진을 속인 게 있었다. 대봉율법에 따르면 간통, 친부 살인을 저지른 여인은 능지처참 형으로 죽이고, 간부(姦夫)는 참수했다. 죽을죄를 면할 수는 없었다.
해당 사건에서 살인죄를 범한 것은 장헌이었다. 부친을 살인했으니 능지처참 형으로 죽을 것이다. 허칠안은 자신의 아비를 죽인 짐승만도 못한 놈이, 어떻게 죽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종범(從犯)인 양진은 죽을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점은 전생에 몸에 밴 법률과 상충하는 부분이었다.
‘시대마다 규범이 다른 법.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생존 법도지.’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해 주었다.
이후 양진의 진술서를 본 장헌은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더 이상 변명이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며 자백했다.
* * *
허칠안은 두 개의 진술서를 들고 내당으로 들어왔다.
왼손에는 찻잔을, 오른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보고 있던 주 현령은, 허칠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책과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어떻게 됐느냐?”
허칠안이 두 개의 진술서를 탁자 위에 놓으면서 답했다.
“다행히 나리의 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진술서를 잡은 주 현령은 자세히 읽어 보더니, 탁자를 내리치면서 크게 화를 냈다.
“짐승 같은 놈! 이런 짐승보다 못한 놈을 보았나!”
학자인 노주(*老朱: 주 현령을 지칭)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진술 내용이었다.
분노가 사그라든 주 현령이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이놈에 대한 좋은 인상이 극에 달했다.
“칠안, 본관이 네 공을 기억해 두겠다. 재주가 좋구나.”
“가르치는 데 일가견이 있으신 대인 덕분입니다. 소인, 보고 들은 것을 따라 했을 뿐입니다.”
이에 주 현령은 크게 기뻐했다.
* * *
신초(*申初: 오후 3시) 당직이 끝나고 난 뒤, 왕 포두가 술을 사겠다고 하면서 쾌반(*快班: 수사직)의 쾌수 8명을 거느리고 주막을 찾았다.
이 시대 물가는 안정적이었다. 은자 한 전(*钱: 0.1냥)으로는 주루(酒楼)에서도 한 상 푸짐히 먹을 수 있었다. 하물며 주막이면 어떠하겠는가.
허칠안은 신통한 추리와 뛰어난 심문으로 주인공이 되었고, 왕 포두마저 그에게 심문 과정을 물어보았다.
“성격이 나약한 여인이 작은 위협에도 겁에 질려 다 토로했습니다. 별거 없습니다.”
약아빠진 허칠안은 절대 자화자찬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 포두와 동료들은 신세계를 접한 것처럼 매우 재미있어하며, 허칠안에게 술을 부어주며 아첨했다.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오른 남정네들의 대화란, 당연히 청루와 기루에 쏠렸다.
이 방면에 있어선 단연 왕 포두가 주인공이었다. 그가 허칠안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칠안, 오늘 기루에 가서 딱지를 떼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옆에서 보는 이들이 엉큼한 웃음을 지었다. 모두 허칠안이 동정을 잃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대장이 사는 겁니까?”
“아니!”
왕 포두가 단번에 거절했다.
‘사지 않는다면…….’
허칠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이 시점에 동정을 잃으면 한평생 연기경에 이르지 못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