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2화 (12/712)

12화. 심문

주 현령은 허평지와 술자리를 몇 번 가진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에 허평지가 20냥을 들여 조카를 쾌수로 집어넣었던 것이다.

대봉 황조에서는 이원(吏员)의 직위를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철밥통인 셈이었다.

“그래, 맞아. 그자야.”

주 현령이 웃었다.

이때 허씨 가문이 연루된 세은 사건을 떠올린 서 주부가 바로 물었다.

“대인, 무슨 말씀이십니까?”

왕 포두도 귀를 기울였다.

주 현령이 웃더니 말을 꺼냈다.

“온 경성을 소란스럽게 한 세은 사건이 있지. 이 사건에서 1순위로 문책 당해야 할 허씨 가문이 아무 일 없이 풀려난 이유를 알고 있느냐?”

왕 포두가 바로 답했다.

“어도위 허 대인이 사건 해결에 협조하여, 성상께서 은혜를 베풀어 죄를 면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은 방금 전 허칠안의 입에서 들은 것이었다.

서 주부가 주 현령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물어보았다.

“아니면 사건에 사람들이 모르는 내막이 있습니까?”

서 주부의 관직으로는 세은 실종 사건의 내막을 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 현령은 장락현의 최고위 관원이었다. 고위 권력들이 모여든 경성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윗분들과의 관계가 없었으면 이 자리에 편히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었다.

주 현령이 피식 웃더니 답했다.

“허평지는 한낮 무인이다. 그 사건에서 속죄양에 불과해…….”

주 현령은 말을 절반만 하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너무 많은 걸 누설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급히 말을 돌렸다.

“허씨 집안을 구한 건 허평지가 아니다.”

“그럼 누굽니까?”

왕 포두가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이미 마음속에 답을 내린 서 주부는 주 현령의 뒷말을 기다렸다.

“허칠안이다. 그가 세은 사건의 진상을 밝혔지. 이 일은 권종에도 기록됐다. 본관 친우가 경조부에 있기에 알고 있었다. 비록 허칠안은 허평지의 조카이긴 하나 자녀가 부모의 죄를 이어받고, 부모의 빚을 갚는 것과 같은 이치지.”

서 주부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더니 물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허칠안은 부아(府衙) 감옥에 갇혀 있었을 텐데, 어떻게 해낸 겁니까?”

주 현령이 읊조리듯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불가사의했는데 지금은 알 것 같네.”

“권종만 보고 말입니까?”

서 주부도 믿기 어려웠다.

‘권종만 가지고 이 정도라니…….’

왕 포두는 멍해졌다. 이처럼 그는 가끔 위에 있는 관리들의 입에서 관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얻어 듣곤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믿기 어려운 것은, 허칠안이 세은 사건에서 큰 힘을 발휘해 허씨 가문을 구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왕 포두는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일만 하던 우직한 청년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신통하게 사건을 분석해 낸단 말인가!

* * *

왕 포두가 패표(*牌票: 명령 집행 시 제시하는 공문)를 받아 휴게실로 돌아와 보니, 허칠안은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 잡생각에 사로잡혀 삼경(*밤 11시~새벽 1시 사이)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허칠안을 깨우려고 손을 들자, 왕 포두가 말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게 놔두어라.”

그리고 임의로 두 사람을 짚으면서 말했다.

“나랑 장씨 저택에 다녀오자.”

포졸 3명이 각각 자신의 백역(*白役: 말단 관리)을 거느리니, 9명의 사람들이 급하게 장락현아를 나섰다.

백역은 임시 요역의 일종이었는데, 백성으로 구성되어 월봉이 없고 숙식 제공을 받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적어도 죄를 뒤집어쓰고 옥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 * *

허칠안은 건너편에서 ‘어허!’ 하고 위엄 있게 울리는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입 옆에 흐른 침을 닦고 대당으로 걸어갔다.

현령이 공당에서 심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 현령은 공당 주좌(主座)에 올라앉았다. 그 양옆에는 당사(堂事)와 주졸(走卒)이 서 있었다.

공당 탁자 아래 좌우 양측에는 삼반 아역들이 서 있었고, 중간에는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 명은 구름 문양이 수놓인 청색 옷을 입은 젊은 남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자색 비단치마를 입은 아리따운 부인이었다.

두려움에 질린 부인에 반해 젊은 남성은 상대적으로 침착한 얼굴이었다.

팍!

경당목(*惊堂木: 옛날, 법정에서 법관이 탁상을 쳐서 죄인을 경고하던 막대기)을 힘껏 내리치던 주 현령이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을 말하거라!”

이 소리에 부인이 본능적으로 젊은 남성을 보았다. 젊은 남성이 그녀에게 침착한 눈빛을 보내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입을 열었다.

“초민(草民), 장헌입니다.”

부인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부(民妇), 양진(杨珍)입니다.”

“너희 두 사람! 어떻게 장유서를 죽였느냐! 얼른 이실직고 못 해!”

주 현령이 호통쳤다.

놀라 비틀거리던 부인은 긴 속눈썹을 부들부들 떨었고, 얼굴은 공포에 질렸다.

젊은 남성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대인,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초민이 어찌 제 아비를 죽이겠습니까?”

“사건 발생 당시,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서재에 있었습니다.”

“어째서 부인과 함께 있지 않았느냐?”

“초민, 장부를 보고 있었습니다.”

“증인이 있느냐?”

“늦은 밤 어디에 증인이 있었겠습니까?”

장헌의 답변이 논리 정연한 걸 보니, 거리낌 없거나 미리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허칠안의 논리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컸다.

그날, 장헌이 현장에 없었다는 걸 증명할 증거는 없었다. 하나 살인했다는 증거 또한 없었다. 추리는 추리일 뿐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경우 혐의는 풀리기 마련이었다.

주 현령이 머리를 돌려 부인을 보면서 윽박질렀다.

“장 부인, 자네는 장유서와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자녀 한 명 두지 않았건만, 어찌 이제 와서 회임을 한 것이냐? 사실대로 말하거라. 의붓아들과 간통하다 남편을 죽인 것이냐?”

장 부인이 놀라더니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대인, 민부 억울합니다. 워낙 몸이 좋지 않아 몇 해 동안 날마다 몸조리에 정성을 기울이다, 어렵게 남편 자식을 회임하게 된 것입니다. 대인께서는 어찌 이를 가지고 민부가 남편을 죽였다고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심사하다가 어느 세월에 진상을 밝히나.’

미모가 눈에 띄는 부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허칠안은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 * *

팍!

주 현령이 다시 한번 경당목을 내리치면서 호통쳤다.

“사람을 죽인 뒤 담을 넘어 도망치는 까만 그림자를 보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째서 담 아래 화단에는 발자국도 없고, 화초가 밟힌 흔적도 없느냔 말이다.”

이 말에 그만 장 부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고운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이때 장헌이 막아 나섰다.

“대인, 도둑놈이 어떻게 저택에 잠입했는지 모친이 어찌 알겠습니까. 포졸들이 수사하지 못한다고, 죄를 우리 모자(母子)한테 뒤집어씌워서는 안 됩니다.”

‘젠장! 모자(母子) 좋아하네! 단어를 모욕해도 유분수지.’

허칠안은 더 이상 들어 주기 거북했다.

주 현령은 대로(大怒)했다.

“말만 번지르르. 여봐라! 상형(上刑)하거라!”

이 시대의 심문 절차는 대개 이러했다.

윽박지르다가 안 되면 고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심한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만 이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설비와 전문 기술이 부족했기에 증거 수집이 엄청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 장단점이 있는 법이었다.

이때, 장헌이 큰 소리로 말했다.

“대인, 지금 고문으로 자백을 얻으시려는 겁니까? 저희 가숙(*家叔: 집안의 숙부)이 예부 급사중이십니다. 탄핵받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장헌이 말한 가숙이, 바로 그 먼 친척 되는 급사중이었다. 먼 친척이라 하지만 줄곧 장씨로부터 뇌물을 받았기에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급소를 찌른 한마디에 주 현령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가 결코 이 배경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감히 본관을 위협해! 여봐라! 장형 20대를 쳐라!”

아역 네 명이 앞으로 다가왔다. 두 명이 몽둥이를 교차하여 목을 고정하고, 다른 두 명이 장헌의 바지를 벗어 던졌다.

퍽! 퍽! 퍽!

막대기가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공당에 울려 퍼졌다.

잇따라 장헌의 비명소리도 울렸다.

주 현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살인죄를 자백하기에는 20대로 부족했다. 50대면 모를까. 다만 50대면 사람이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장헌이 자백한다고 하더라도, 장헌은 여전히 사건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급사중 친척이 손을 쓰면 주 현령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에 가서는, 오히려 자신이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 냈다는 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장헌이 바닥에 눌려 장형을 맞는 틈을 타, 허칠안은 주 현령 옆에 서 있는 주졸에게 손짓했다.

잠깐 망설이던 주졸이 조용히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말 좀 전해 주시오. 내게 괜찮은 생각이 있는데, 주 현령한테 심문을 잠깐 멈춰 달라고 해주시오.”

허칠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에 주졸이 못마땅해하며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이 있다고 그러냐. 헛소리 마라. 나까지 욕 먹이지 말고.”

“지금 심사를 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지 않소. 나리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제안을 받아들일 거요. 나중에 술 한번 사겠소.”

“흐흠, 알겠다…….”

주졸이 총총걸음으로 주 현령 옆으로 돌아가, 귓속말로 몇 마디 했다. 그러자 주 현령이 고개를 돌려 허칠안 쪽을 바라봤다.

으흠!

눈빛을 거둔 주 현령이 경당목을 두드리며 하명했다.

“우선 두 사람을 옥에 가두거라.”

* * *

내당.

주 현령은 시녀가 올린 찻물을 한 모금 마셨다.

허칠안은 관아에서 몇 년 굴렀던지라, 관아의 암묵적인 신호를 조금은 배웠기에, 바로 주 현령을 따라 차 한 모금 마셨다.

“칠안, 무슨 방법이 있는지 말해 보거라.”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주 현령의 태도가 어찌 이리도 온화한지!

기억 속의 주 현령은 관아 관리들한테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환생을 겪고 나서 얼굴이 더 잘생겨졌나?’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문 없이?”

“물론입니다.”

더 궁금해진 주 현령이 찻잔을 내려놓고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말해 보거라.”

‘당신이 게임 이론이라는 걸 알기나 알아?’

허칠안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인, 우선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 * *

조용한 감금실.

이곳으로 끌려온 양진은, 윤기 나는 눈동자를 팽글팽글 굴려대며 안절부절못했다.

괴롭힐 줄 알았던 관리들은 그녀를 이곳에 데려다 놓고는 가버렸다. 하지만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찌익…….

나무문이 열리자, 그곳으로 포졸복을 입은 젊은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건장한 체구에 강한 얼굴선, 이목구비가 준수한 편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얘기나 좀 나눕시다.”

젊은 남성이 차까지 건네주면서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허 경관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허 경관?’

이렇게 친절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양진이, 경계의 눈빛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눈앞의 아리따운 부인을 지켜봤다. 역시 대부호의 눈에 들었던 여인이라 미모가 타고났다. 집에 있는 숙모에 비해 조금 뒤쳐지긴 하지만 말이다.

나이도 딱 좋았다. 30살이라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