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사건 분석에 맹호같이 덮쳐들다
허칠안이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권종에 장씨 저택 담 위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근거로, 도둑이 담을 넘어 도망갔다고 추리하셨지요? 부인의 진술과도 맞아떨어지고.”
“그래!”
왕 포두가 답했다.
“발자국은 밖을 향한 것이므로, 도망칠 때 남긴 것입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러느냐?”
“왜 발자국을 남겼을까요?”
“발바닥에 흙이 묻었잖나.”
“발바닥에 어째서 흙이 묻었을까요?”
“담 바로 앞에 화단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럼 어째서 권종에는, 저택 안으로 들어올 때의 발자국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까?”
허칠안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왕 포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왕 포두가 체면을 잃은 것 같아, 다른 포졸들이 몇 마디 거들었다.
“조심스레 들어오다 보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나.”
또 한 명이 끼어들었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는 도망치기 바빠 발자국을 남긴 거지.”
그들을 한 번 훑어보던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그럼 담 바로 아래에 화단이 있었는데, 화단에는 잠입할 때 생긴 발자국은 발견했습니까? 만약 도둑이 담 밖에서 화단을 거치지 않고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경공(轻功)이 있다면…… 도망칠 때도 담을 거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던 동료들은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답을 듣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발견했어.” 혹은 “발견 못 했어.”가 아니라 “모른다.”였다.
포졸들은 이를 눈여겨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칠안, 그게 뭐가 중요해?”
허칠안의 물음에 불복하던 동료가 한마디 던졌다.
이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허칠안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왕 포두를 보면서 말했다.
“피해자는 둔기에 뒤통수를 맞아 죽은 것이 맞습니까?”
왕 포두가 이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즉사했지.”
“그럼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째서 둔기로 쳤을까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범인라면 몸에 무기 정도는 지녔을 텐데. 칼이나 검으로 죽이면 더 쉽지 않았겠습니까?”
편청이 조용해졌다. 모두 문제점을 발견해 낸 것이었다. 소리가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혹시 처음에는 사람을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아니!”
이것은 허칠안의 반박이 아니었다. 왕 포두의 반박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두 눈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둔기로 뒤통수를 쳐서 즉사했는데,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으면 그렇게 심하게 칠 리가 없잖느냐?”
다시 의자에 앉은 왕 포두가 중얼거렸다.
“그래, 어째서 날카로운 흉기가 아닌 둔기였을까……?”
“당시 범인에게 마땅한 무기가 없었다면요.”
이 말에 뭔가 알아챈 듯한 왕 포두였지만,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다.
“마지막 한 가지. 제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허칠안이 권종을 다시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피해자 가족을 현아(县衙)에 데려와 심문할 때, 장 부인이 너무 무릎을 오래 꿇고 있다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의원의 진단에 의하면 그녀는 회임 상태였지요.”
“애만 불쌍하지. 태어나기도 전에 아비가 죽었으니.”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쓰잘머리 없는 잡담만 늘어놓는 이 사람들 참……. 짜증이 나는군.’
허칠안은 잡담이 끝난 뒤에 입을 열었다.
“장 부인이 피해자와 혼인한 지도 10년이 됐는데, 왜 하필 이때 회임한 걸까요?”
남녀 모두 신체가 건강했다면,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이가 없었을 리 없었다. 일부러 안 낳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 중 아이가 피해자의 애가 아니라면?”
애가 없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에게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고대에는 불임 치료 기술이 낙후하다 보니, 성공 확률이 매우 낮았다.
왕 포두는 숨이 거칠어졌다.
“칠안, 구체적으로 말하거라. 구체적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이던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자택 침입 절도 사건이 아닌 간통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 부인이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 거죠. 간부(*姦夫: 간통한 남자)는 외부인일 수도 있고, 피해자의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피해자가 외출하여 세를 거두는 틈을 타서 밀회하다가, 뜻밖에 돌아온 피해자에 의해 현장이 잡힌 거죠. 그러다가 충돌이 생기고, 간부(姦夫)가 홧김에 꽃병이나 둔기를 들고 피해자를 친 겁니다.
장 부인과 간부(姦夫)는 다급히 현장을 처리하고 피해자를 마당으로 끌어내어, 도둑이 저택에 침입하여 살인한 사건으로 가장한 거고요.
밀회를 위해 미리 지리적인 부분과 순찰 정보를 파악한 간부(姦夫)는 어도위 사졸들에 의해 발각되지 않았을 테지요. 만약 재물이 목표였다면 절대 당일에 잠입하지 않았을 겁니다. 피해자가 거두어들인 은자를 은표로 바꾼 다음에 도둑질 하겠죠. 장 부인은 세를 거두었다는 단서로 수사 방향을 재물 절취로 몬 것이겠고요.”
눈만 휘둥그레진 포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권종만 보고 범인을 판단한다고?”
“칠안, 함부로 말해서는 안 돼.”
“그런데, 일리가 있지 않아?”
허칠안의 분석을 듣고 난 동료들은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그가 대단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경과에 의해 과감하게 추측을 했을 뿐이지, 진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검증이 필요합니다.”
입이 딱 벌어진 동료들에게 허칠안이 한마디를 했다.
사건 수사는 우선 단서 수집, 다음 추리 분석, 맨 마지막에 검증 및 증거 수집으로 순서가 진행되었다.
놈은 순찰하던 사졸을 속여 넘겼다. 게다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닌 둔기로 사람을 죽였다. 거기에 장 부인의 회임 사실까지, 허칠안은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들을 하나로 엮었다.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한 듯한 왕 포두는 숨을 깊게 쉬더니, 감정을 가라앉히고 허칠안의 분석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던 중 의문점을 발견했다.
“왜 간부(姦夫)가 피해자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느냐?”
“그를 의심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한가로이 차를 마시던 허칠안이, 왕 포두와 동료들의 절박한 눈빛을 보면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피해자의 아들 장헌(张献)의 진술을 보면, 당일 밤, 아내와 함께 잠들지 않고, 서재에서 장부를 보고 있었습니다. 깨어 있었다면 어찌 마당의 인기척을 듣지 못할 수 있었겠습니까? 장 부인이 잠에서 놀라 깰 정도였으면 엄청 큰 소리였을 텐데, 깨어 있던 그가 못 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두 번째로는 화단에서 놈이 잠입하면서 남긴 흔적이 없다면, 외부 침입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 아들의 혐의가 가장 크게 되지요”
허칠안의 말은, 캄캄했던 사건 수사의 길에서 만난 한 줄기 빛이었다.
“그러니까, 담에 있던 발자국도 일부러 남겨 우리의 수사 방향을 흐렸다는 것이구나?”
왕 포두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남은 발자국과 피해자 아들의 발 크기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허칠안이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자기 발자국을 남기지 않겠지.”
왕 포두가 말했다.
허칠안은 이에 탄복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아첨에 들어갔다.
“역시 우리 대장! 그야말로 대봉 포졸계의 신적인 존재이십니다.”
모두가 놀랄 만한 장편 대론을 펼치던 허칠안이 돌아서자마자 납작 엎드려 아첨을 해 댔다. 까무잡잡한 왕 포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바로 주 대인을 찾아갈 테니, 준비하고 있거라. 조금 있다가 나랑 장씨 저택에 가보도록 하지.”
시커먼 피부로도 감출 수 없는 감격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허칠안을 가리키더니 지붕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러고 나서 이내 후당으로 현령 나리를 찾으러 다급히 편청을 뛰쳐나갔다.
* * *
왕 포두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허칠안의 얼굴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나 증거 수집이 어려웠던 것이다.
“지문 검사를 하지 못하니, 증거 수집은 거의 불가능해. 발자국도 장헌의 발자국일 가능성이 없고……. 이것들 외에 이 시대의 어떤 방법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까?”
허칠안은 머리를 싸고 고심했다.
* * *
“저 관리 놈들, 돈 챙길 때에는 하나 같이 약아빠지더니, 일을 하라니깐 하나하나 무능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주 현령이 내당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 워낙 큰 살인 사건이었던 데다가, 피해자가 급사중(给事中) 서 대인의 먼 친척이니 사건 해결이 더 시급했다.
급사중이 어떤 사람들이던가?
스스로 청렴하다고 자부하면서 아무나 무는 미친개와 같은 존재였다. 눈에 거슬리기만 하면 상서하여 탄핵을 시도했다.
마른 얼굴에 수염을 길게 기른 서 주부(主簿)가 옆에서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대인, 계속하여 압박을 가하다간, 임의로 피의자를 데려올 수 있습니다.”
산전수전 겪은 자들이라, 수하에 있는 관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손금 보듯 뻔했다.
“평소에나 눈감아 주지. 경찰(*京察: 벼슬아치의 치적을 심사하여 면직하거나 승진시키던 일)이 눈앞인데, 나중에 심한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 낸 사유로 탄핵을 받으면 본관은 어찌하란 말이냐?”
그때,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왕 포두가 내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멈추어 예를 갖추고 격앙된 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인! 소인, 장씨 사건에서 새로운 단서를 찾았습니다. 대인께서 패표(*牌票: 명령 집행 시 제시하는 공문)를 내어 주시면 소인, 당장 가서 사람을 잡아 오겠습니다.”
주 현령이 냉소를 머금었다. 서 주부도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 내는 수법은 평소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그리하여선 안 됐다.
보통은 범인이 자백하고 나면 공술과 권종을 형부(刑部)로 상납했다. 그다음 형부에서 실태를 조사하고 확인하여 판결을 내렸다.
연말은 경찰을 진행하는 시기라, 경성 관아의 분위기가 사뭇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자신의 꼬리를 치우면서도, 타인의 감독에 나서서 적의 약점을 들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상황이 눈 깜짝할 사이에 뒤집히는 시기였다.
윗분들의 반응을 보고 왕 포두가 급하게 변명에 나섰다.
“대인, 오해하셨습니다. 소인, 진범을 잡으려는 것이지 절대 임의로 피의자를 지목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인을 믿어 주십시오.”
‘네가 어떤 수준인지 내가 알겠느냐…….’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주 현령이, 왕 포두를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그럼 자세하게 말해 보거라.”
‘이제는 내가 보여 줄 차례구나.’
왕 포두가 내심 기뻐하며 말을 시작했다.
“대인, 제가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씨 사건에는 많은 의문점들이 잠재해 있습니다.”
허칠안의 추리를 왕 포두는 두 대인에게 그대로 구술했다.
얼굴에 냉소를 머금었던 주 현령은 들을수록,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빳빳이 폈다. 나중에는 아무 말도 없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깊은 사색에 빠진 것이다.
“묘하구나, 묘해!”
서 주부가 박수를 쳤다. 엄청 흥분한 모양이었다.
“양파 까듯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느낌이로구나. 눈에 띄지 않는 단서에서 사건의 발단과 결말을 그려 내다니. 형부에 인재가 있었구나!”
아직 검증이 필요했지만 과감한 추리는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왕 포두가 웃으면서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주 현령이 웃더니 물었다.
“말해 보거라. 누가 알려 주었느냐?”
왕 포두는 잠깐이나마 공로를 가로챌 생각을 접고 이실직고했다.
“허칠안 쾌수입니다.”
쾌수는 쾌반 관리의 호칭이었고, 포졸이라고도 불렸다.
‘허칠안…….’
주 현령이 먼저 알아챘다.
“그자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