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현아(县衙)의 살인 사건
“채미 사매. 채미 사매.”
한 사람이 채미를 발견하고는, 흥분에 겨워 소리쳤다.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채미를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채미 사매, 가짜 은자를 대체 어떻게 정제해 낸 거야?”
“채미 사매, 얼른 와서 봐봐. 절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사매가 유일하게 가짜 은자를 정제해 낸 사람이잖아.”
그들은 채미를 빈틈없이 에워쌌다.
채미는 어쩔 수 없이 단실에 들어가 사형들이 가짜 은자를 정제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또 실패했네!”
작업하던 연금술사가 풀이 죽어 탄식했다.
“채미 사매,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걸까?”
한 무리의 연금술사들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나도 그때 이렇게 정제했었는데…….’
채미는 깊은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상고에서 내려온 연금술로서, 매우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입니다. 배운다고 바로 배워지는 것이 아니죠. 반드시 일정 기간의 수업을 거쳐야 비로소 지식이 공고해지게 됩니다. 제가 사형들에게 구결(口訣) 하나를 전수할 테니 반드시 기억하세요.”
사형들이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수소리늄베릴륨붕소탄소질소불소네온마그네슘규린.”
채미는 단전 운기로, 이 위대한 구결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읊었다.
“……그 구결은 어떻게 해석하는 거야?”
사형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채미가 대단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한 글자 한 글자는 알아듣겠는데, 조합해 놓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도 이게 뭔지 몰라…….’
채미는 조예가 깊은 듯 미소만 짓고 입을 열지 않았다.
“인재야, 인재. 이 구결을 쓴 사람은 그야말로 연금술의 기재(奇才)라 할 수 있겠네.”
사형 한 명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재가 다 얼어 죽었나. 사형, 터무니없는 생각 말아요!’
채미는 계속하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채미 사매, 그 구결은 누가 알려 준 거야? 사매 혹시 연금술의 고인을 만난 것이야?”
‘잘 물었다!’
채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허칠안이라고, 허평지 어도위 7품 녹포(綠袍)의 조카가 있어요. 그한테 물으면 됩니다.”
채미는 은근슬쩍 허칠안에게 난제를 넘겼다.
어도위라는 소리에 사형들의 얼굴이 굳었다.
“됐어. 우리는 사천감이야. 누구 하나 뒤쳐지지 않는다고. 가짜 은자 정제. 그걸 외부인에게 맡긴다는 게 말이 돼?”
“밖에서 들으면 얼마나 웃겠어.”
다양한 수련 체계 사이에는 서로 얕보는 풍속이 있었다. 도문은 불문을 업신여기고 불문 역시 도문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도, 불, 술사 등 모두가 무사를 업신여겼다.
“채미 사매, 우리를 지도해 줘.”
‘허!’
“다음에 꼭 그렇게 할게요.”
채미는 말을 얼버무리고 사형들을 비집고 나와, 계단을 계속하여 올라갔다.
솔직히 채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 번 정제 성공을 하고 나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절차를 완전 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하다니. 그녀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 * *
관성루의 꼭대기 층은 일반 지붕이 아니라 팔각형 평면이었다. 이는 팔괘(八卦)와 결합한 것으로, 그래서 ‘팔괘대(八卦台)’라 불리었다.
백의(白衣) 노인이 팔괘대의 가장자리에 있는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받친 채였다. 그는 술에 취한 듯, 또 아닌 듯, 팔괘대 아래에 펼쳐진 경성을 바라보았다.
눈치가 빠른 채미는 노인을 방해하지 않았다. 사부는 평소에 일은 안 하고 팔괘대에 앉아 술을 마시고 풍경을 감상하는 걸 즐겼다.
그리고 방해받는 건 질색했다.
그는 술잔을 한 손에 들고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아래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채미가 왔느냐?”
백의 노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부.”
채미는 웃음꽃이 핀 얼굴로 쪼르르 팔괘대 가장자리까지 달려갔다.
바람에 그녀의 노란 치맛자락이 흩날렸다.
“황제가 무슨 포상을 내렸더냐?”
“은자 몇백 냥에 비단 몇 필이요.”
채미가 말을 이었다.
“사부, 가짜 은자가 도대체 뭐예요?”
“나도 모른단다.”
“이 세상에 사부가 모르는 것도 있어요?”
“너무 많지. 너무 많아.”
백의 노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19년 전 그 도적놈들이 어디를 갔는지도 모르잖니.”
“이제 19년 전 그 도적놈들에 대해 말해보세요. 저한테 그 도적놈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도적질했는지도 알려 주시지 않았잖아요.”
백의 노인이 몸을 일으켜 팔괘대의 가장자리에 섰다.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도적질한 물건, 그것은 엄청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면 가짜 은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세요?”
사천감은 술사 체계의 발원지였다. 천하의 모든 연금술사는 사천감 출신이 아니더라도 사천감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었다.
세은 사건의 배후에는 연금술이 연루되어 있을 것이며, 이렇게 기이한 물체를 정제해 냈으니, 일반 술사는 절대 아닐 터였다.
“당연히 알지.”
* * *
별채 방 안.
허칠안은 침상에 누워 창을 거쳐 들어온 달빛을 빌어, 종횡으로 얽혀 있는 지붕 들보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고민됐다. 두려움과 열정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는 전생의 9년 의무교육이 배출한 훌륭한 인재로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모두 복권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뒤처진 군주제 사회에선 쉽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겠어.’
다만, 황권이 절대적인 사회에선 인권 보장이 되지 않았기에, 오늘은 호의호식하다 내일은 유배될 수도 있었다.
허칠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고, 깨어나 보니 날은 이미 밝아있었다. 그는 검은색 제복을 입고, 허리띠를 매고, 장발을 묶고, 박도를 허리에 찼다.
반듯한 자세에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는 준수한 청년이었다.
고대 복장이 얼굴과 기질에 모두 점수를 가한다는 건 인정하는 바였다. 다만 화장실을 다니기 너무 불편한 게 단점이었다.
그는 담을 넘어 집에서 아침밥을 얻어먹고, 숙질(叔侄)과 함께 일터로 나갔다. 허평지는 관직에 복귀하였으므로,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
장락현아는 경성의 부곽현(*附郭县: 부속 현을 뜻함)으로써, 관아는 경성 안에 있었다. 허씨 가문과는 6~7리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허칠안은 말도 없고 마차도 없었으므로 두 다리로 걸어갔다.
장락현아는 북쪽에 위치한 남향 건물이었다. 대문 앞에는 사람 신장과 비슷한 높이의 돌사자가 지키고 있었고, 적갈색으로 칠한 대문 양옆에는 칠이 벗겨진 대고(*大鼓: 큰 북)가 놓여 있었다.
현아의 조직 구조를 보면, 가장 높은 직위가 지현(知县)이었고, 그를 주관이라 불렀다. 그 아래에는 조수 두 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현승(县丞), 다른 하나는 주부(主簿)였다.
이 세 명 모두 품계가 있는 조정명관(*朝廷命官: 임금이 임명한 관리)이었다.
세 명의 조정명관 아래에는 전사(典史)가 있었는데, 수령관(首领官)이라고도 불렸다. 여기서부터는 품계가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삼반육방(三班六房)이 있었는데, 삼반은 조반(*皂班: 간수직), 쾌반(*快班: 수사직), 장반(*壮班: 체포직) 등을 책임지고, 육방은 조정 육부에 대응한 것이었다.
허칠안은 쾌반의 관리로서, 민간에선 포졸이라고 불렀다.
관아로 들어가면 전리(*典吏: 하급 관리)가 점호를 했는데, 대청 앞에 서 있던 이(李) 전리가 허리에 박도(*朴刀: 주로 들고 다니는, 장식도 없고 칼집도 없는 칼)를 찬 허칠안을 보더니 어리둥절해 하였다.
청천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
관리들도 이 전리의 표정을 보고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그들 역시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 허칠안, 너 사람이야? 귀신이야?”
누군가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이 전리는 허칠안의 그림자를 보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뭔 허튼소리야! 그림자 비치는 귀신을 본 적이 있단 말이냐?”
이 말에 사람들의 긴장이 풀렸다.
“송장이 걸어 다닐 수도 있는 법.”
허칠안의 한 마디에, 느슨해진 분위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이에 허칠안이 얼른 읍하고 말을 이었다.
“농담입니다. 소인, 전리 대인을 뵙습니다. 저 출옥했습니다.”
이에 이 전리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허씨 집안이 세은 사건으로 인해 하옥당한 소식은, 그들도 들은 바 있었다.
“큰 공을 세웠지요. 그리하여 성상께서 은혜를 베풀어 허씨 가문의 죄를 사면해 주셨습니다.”
허칠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사건 발생 경과를 서술하고, 공로를 숙부인 허평지에게 돌렸다. 그리곤 경조부에서 내어 준 증빙을 내밀었다.
세은을 되찾기는 했지만 판결이 내려오지 않았기에, 세은 실종 사건은 아직 결과가 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필경 절차를 마쳐야 하니 그렇게 빠를 수도 없었다.
때문에 장락현아의 관리들은 아직 이 일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점호가 끝나자 얼굴이 익은 몇몇 포졸들이 다가와 축하했다.
“칠안, 너 술 사야 해.”
“임수가(临水街) 기루에 가무에 능한 기녀를 몇 명 새로 들였다는데. 칠안, 오늘 우리와 함께 가는 건 어때?”
‘술 한턱내는 거야 괜찮은데 기루에 드나드는 것까지 나보고 돈을 내라고?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냐?’
허칠안이 돈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발밑에 돌멩이같이 딱딱한 것이 밟혔다. 머리 숙여 내려다보니 쇄은자(碎银子)였다.
‘아침부터 이런 행운이?’
허칠안은 쇄은자를 발로 살포시 밟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다들 떠난 후에야, 빠른 속도로 쇄은자를 주워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돈주머니에 넣었다.
* * *
허칠안은 긴 복도를 지나 서측 편청(*偏厅: 손님을 맞이하는 곳)에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전리가 시커먼 안색으로 들어오더니, 왕 포두(*捕头: 포졸 우두머리)를 향해 말했다.
“왕 포두, 현령 나리가 우리 보고 내당으로 오라시네.”
왕 포두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
왕 포두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허칠안이 얼른 옆에 있는 관리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오늘 포두 안색이 왜 저래?”
“네가 감옥에 있는 요 며칠, 강평가(康平街)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 하필 죽은 이가 글쎄 돈과 권력을 가진 상인이지 뭐야. 그래서 현령 나리가 아주 노발대발이셔서, 날마다 왕 포두를 잡고 욕설을 퍼붓잖아.”
“상인 하나 죽었는데 현령 나리가 그럴 리가 있나?”
허칠안이 해바라기 씨를 까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자고로 살인 사건이라면 무엇이든 큰 사건이었다. 다만 경성 부곽현의 현령인 그가 그렇게 화낼 정도는 아닐 터였다.
“허, 그 상인이 급사중(给事中) 모 대인의 친척인가 봐. 아마 그쪽에서 압력을 가하나 보더군.”
관리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올해 경자년이잖아.”
“경자년?”
허칠안이 미처 반응을 하지 못하자, 관리가 설명해줬다.
“경찰(*京察: 벼슬아치의 치적을 심사하여 면직하거나 승진시키던 일)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