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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8화 (8/712)

8화. 폭주한 숙모

허씨 가문의 내당.

문턱을 넘자 진동하는 울음소리가 전해졌다. 콩알 만한 허영음이 짧은 팔을 뒤로 넘기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머리를 들어, 귀청이 떠나갈 듯 울고 있었다.

허평지는 담담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허영월은 머리 숙여 밥을 먹었다. 허신년도 음울하게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

숙모는 손으로 이마를 받친 채,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녹아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바로 말했다.

“데려가라! 얼른 데려가거라!”

허칠안이 통곡하던 막냇동생을 상냥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왜 우니?”

“어머니는 거짓말쟁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계월루(桂月樓)로 데려간다고 했잖아요!”

콩알 만한 녀석이 더 크게 울었다.

“방금 전에 아버지도 데려간다고 했었는데……!”

계월루는 경도 최상급 주루(酒樓)로, 드나드는 손님 모두 관직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평민과 상인은 아예 받지 않았다.

오라버니와 언니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아이가 계월루를 기억하는 것은, 한 번 먹으러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이 아이는 총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총명을 딴 곳에 쓰던 모양이었다.

허칠안이 술을 마시고 있는 허평지와 숙모를 쳐다봤다.

콩알이는 숙모의 약점이었다.

“달래 주려고 한마디 했는데 저 모양이니…….”

숙모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어린아이를 속이다니. 숙모가 좀 심하셨네요.”

허칠안은 본능적으로 숙모에게 대꾸했다. 이에 화가 난 숙모가 씩씩거렸다.

“큰오라버니가 날 데려가 줘.”

상냥한 표정을 한 허칠안이 편을 들어 주자, 콩알 만한 녀석이 허칠안의 옆으로 달려와 바지를 잡더니 다리를 타고 올랐다.

‘계월루, 일인당 은자 한 냥…….’

허칠안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녹아야, 데려가거라!”

숙모는 가만있는 허평지가 얄미워 그를 발로 차고는, 입을 삐쭉거리며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창피하다고 느낀 허평지가, 향학열(*向學熱: 배우고자 하는 열의)이 높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회적 사형을 받은 허신년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건만,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밥이나 먹을 뿐이었다.

그럴듯한 국물이 없어서인지 밥맛이 별로였다. 하지만 모두 금방 집에 돌아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꾸역꾸역 먹던 허칠안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수려한 여동생을 보면서 말을 건넸다.

“영월아, 너 왜 자꾸 이 오라비를 훔쳐보는 거냐?”

“저, 저는…….”

허영월의 얼굴이 곧장 새빨개졌다. 예쁜 눈에 물안개가 낀 듯, 촛불에 비치니 반짝반짝 빛났다.

비록 허칠안은 연상을 더 좋아했지만, 이렇게 여린 여동생도 놀려 먹기에 재미가 쏠쏠했다.

바람으로 양 볼을 불룩 채운 허영월은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고개를 들고 허칠안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큰오라버니가 어떻게 권종에서 사건의 진상을 보았는지 궁금해서요.”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던 허신년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 엄청 총명하다고 여기던 허신년도 권종을 살펴보았고, 여러 차례 분석을 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권종을 요구하고 나서 바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던가!

숙모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다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던 동작과 음식을 씹던 동작을 멈췄다.

“세상에 완벽한 범죄란 존재하지 않아. 우연을 제외한 인위적인 사건 모두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법이지.”

허신년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펴고 열심히 경청하고 또 경청했다.

“우선 세은을 호송하는 경로와 은자의 무게에서, 세은의 문제점을 발견했어.”

허칠안은 자신의 추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했다.

허신년의 눈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생기가 돌았다. 마치 사숙(私塾)에서 스승의 지도를 받는 듯했다.

식탁 밑에서 두 주먹을 꼭 쥔 허신년은, 다 듣고 나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괜찮은 추론이었군요.”

허씨 가문의 둘째 공자님은 워낙 말과 본심이 달랐다. 가족들은 이미 익숙했기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16살의 수려한 여동생은 바로 고개를 떨어뜨려, 눈에 서린 감탄을 숨겼다.

흥분한 허평지는 식탁을 치면서 사투리로 몇 마디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거였구나.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니.”

허평지는 무인으로, 그의 수준은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심지어 이름도 비뚤비뚤하다 못해 그 모양새는 닭발을 방불케 했다.

“어휴, 한심한 사람아. 무게를 달 줄도 모르다니.”

숙모가 허평지를 비하했다.

허칠안이 허평지에게 물었다.

“그자들이 은자를 점검할 때,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어요?”

허평지가 잠깐 회상해 보더니 의아해하면서 말했다.

“그런 것 같은데.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진짜 금속나트륨이었네?!’

허칠안이 허평지를 묵묵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진술할 때엔 왜 말하지 않았어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잘한 얘기를 뭐하러 말하느냐.”

여기까지 말한 허평지가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다 육씨 그자 탓이다. 그가 내게 계화밀주(桂花蜜酒)만 건네주지 않았어도……. 네 숙부의 어마어마한 주량을 알잖느냐. 그래서 좀 많이 마셨지. 개의치도 않았는데, 네가 말하니 기억이 나는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이렇듯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를 놓는 전우였다. 권종에 이 말 한 마디만 있었어도 더 빨리 진상을 밝혔을 텐데. 괜히 아까운 뇌세포만 학살했다…….

허칠안이 한탄했다.

허평지가 보기에, 이러한 정보는 마치 타인이 어떤 옷을 입었고 머리를 어떻게 다듬었는지와 똑같은 것일 터였다. 때문에 그는 이러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단서인지를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가 말씀하신 육씨 그자가 아버지를 모해한 것이겠네요.”

허신년이 바로 핵심을 간파했다.

“내가 어리석은 탓에, 집안 전체가 망할 뻔했구나.”

허평지는 슬픔에 잠겼다.

“칠안아, 당시 나와 네 아버지가 함께 산해관전역에 참전하고, 함께 살아남아 함께 출세하기로 약속했단다. 하지만 나만 살아남고 네 아버지는 전사했지. 형님이 나를 위해 날아오는 칼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죽는 사람은 나였을 거란다. 그때 내가 다짐했다. 더 잘살겠다고, 다르게 살겠다고 말이다.”

더 이상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신년이는 글을 읽게 하고, 너에게는 무공을 연마하게 했던 것이다. 솔직히 사심이 섞여있었지.”

숙모가 옆에서 눈을 흘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요, 마음이 모두 친조카한테 있었죠.”

해마다 100냥이 넘는 은냥이었으니 말이다…….

“숙모의 말뜻은 그렇담, 둘째는 친아들이 아니란 말이죠?”

허칠안이 맹세하건대, 이 말은 절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인 반응이 대뇌의 반응보다 빨랐을 뿐이었다.

전(前) 허칠안의 숙모를 향한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못된 녀석아, 네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냐!”

숙모는 화가 난 나머지 탁자를 내리쳤다.

허신년과 허영월은 머리 숙여 밥만 먹었다. 이런 광경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허평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만 좀 하시오. 겨우 목숨 하나 건져 왔는데. 둘이 싸우는 걸 계속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렇게 다들 머리 숙여 밥을 먹었다.

* * *

산해관전역에 대해선, 허칠안에게도 기억에 남는 바가 있었다.

대봉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유가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육백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다 20년 전, 산해관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산해관전역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전쟁은 반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 반년 동안 100만에 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이었다.

허칠안의 아버지는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막내가 녹아를 따라 돌아왔다. 배고프니 울음을 그친 것이다. 키가 너무 작은 탓에 식탁에 닿지 않아, 녹아가 다리에 앉혀 밥을 먹여 주었다.

“어머니, 우리 왜 컴컴한 방에서 지냈어요? 매일 배부르게 먹지도 못하고.”

콩알이는 요 며칠 간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옥을 컴컴한 방이라 불렀다.

식탁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숙모가 가여워하는 눈빛으로 콩알이를 바라보았다.

이때 허평지가 한탄했다.

“아버지가 잘못했다.”

“네.”

콩알이는 아버지 말에 응하더니 계속하여 종알거렸다.

“어젯밤에 너무 배가 고파 일어나서 벌레 한 마리를 잡았어요. 바로 머리 위에 이런 게 있었어요.”

콩알이가 작은 검지 두 개를 머리 위에 치켜세우고 까딱였다.

그건 바퀴벌레, 쥐와 함께 옥중 2대 건달이라 불리는 벌레였다.

모든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이런 고역을 겪게 하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너, 너 그걸 먹은 건 아니지?”

입술을 부르르 떨던 이여는 눈가를 붉혔다. 30살이 다 되어 낳은 막내딸은 총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무척 총애하는 아이였다.

허영음이 해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 배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어요.”

침묵이 흘렀다.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얼굴이 백지장이 된 숙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러고 나서 어머니 입에 넣었더니, 어머니가 엄청 빨리 먹어 버렸어요.”

콩알이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듯 가슴을 내밀었다.

이때 숙모의 몸이 비틀거렸다.

허신년이 그릇에 젓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저 배불렀어요.”

허영월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저도요.”

허칠안은 허신년의 말실수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배불렀어요? 큭큭큭.”

허평지는 말이 없었다.

숙모는 몇 초간 넋을 놓고 멍했다.

“욱…….”

잠시 후 숙모는 식탁 아래에 얼굴을 묻고 구토를 하였다.

“으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 광경은 마치 돼지 도살장을 방불케 했다.

* * *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봉 경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관성루(观星樓)는 사천감의 사무 거점이었다.

노란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7층을 지날 때쯤, 단약 제조실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흰 옷을 입은 연금술사들이 귀 밑까지 얼굴을 붉힌 채 싸우고 있었다.

“어째서 또 실패한 거야? 분명 엄청 단순한 절차잖아.”

“내가 말했잖아. 소금 사용량이 부족하다고.”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물이야.”

“불이지! 만 사형(師兄)이 열을 너무 가해 소금이 흘러넘쳤다고!”

“너무 어렵다. 소금이 은자로 변하는 연금술은 너무 어려워. 할 줄 모르는 걸 어떡해.”

채미라 불리는 노란치마 소녀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삐쭉거리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들, 아직도 가짜 은자를 만들고 있네.”

이틀 전, 채미가 소금이 은자로 변했다는 소식을 사천감에 알렸다. 하지만 사형들은 믿지 않았다.

소금이 은자로 변한다고? 3살짜리 애도 믿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은 사건이 해결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폐하께서 가짜 은자의 위력을 알고 신기함을 못 이겨 사천감에 가짜 은자를 제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사천감 연금술사들의 밤낮 없이 달리는 경주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틀 전부터 현재까지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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