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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7화 (7/712)

7화. 연정전봉(炼精颠峰)의 몸

허신년은 손에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허씨 가문에 들어섰다. 이곳은 그가 19년을 생활한 곳이었다. 대문에는 아직 봉인 종이가 붙어 있었고, 텅텅 비어 있는 저택은 그야말로 처량 그 자체였다.

퍽!

허신년은 발로 대문을 힘차게 걷어찼다. 문턱을 넘어 비틀거리며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는, 몸을 돌려 대문 앞으로 와서 대문을 꼭 닫고 다시 걸어 들어갔다.

들보에 목을 매는 일이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서생이 아니던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관부가 발견하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체면! 죽어도 체면을 지켜야 하느니라.’

허신년은 외원에서 내원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3살에 글자를 익히고, 5살에 시를 읊고, 10살에 성인(聖人) 도서를 숙독하고, 14살에 운록서원에서 구학하고, 18살에 거인(*举人: 과거 시험에서 급제한 자)이 되었다.

한마디로 천부적인 재능이 남달랐던 그였다.

높은 지능과, 해박한 학식으로 교만함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집 안에서는 늘 고개를 반듯이 쳐들고 다니던 그는 그만큼 성적을 냈고, 허씨 집안의 중심이 되어갔다.

‘사내로 태어나 장렬하게 죽을지언정 굴욕적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테다.’

허신년은 잡고 있던 술병을 높이 들어 나머지 술을 입 안으로 쏟고는 힘차게 내던졌다.

그리고 술기운에 방으로 뛰쳐 들어가 벼루에 먹을 갈고, 인생 절정에 다다른 결별시를 써 내려갔다.

하! 하! 하!

크게 세 번 웃은 허신년이 선지(*宣紙: 글과 그림을 그리는 종이)를 잡아당기고는 방을 뛰쳐나가 준비해 온 삼밧줄을 내원에 있는 은행나무에 걸었다.

허신년은 죽음 앞에서 한 치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이 놀라웠다. 그 느낌은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후련함이었다.

두려움이 없어야 천하를 굽어 볼 수 있지 아니하던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세상에 또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 * *

경성(京城), 천하제일 성(城).

허칠안은 북적이는 고성(古城)을 완만하게 가로질렀다. 마차와 말들이 쉴 틈 없이 옆으로 지나갔다. 도로 양편에는 상가가 줄줄이 늘어졌고, 상가명이 쓰인 번포(*幡布: 바람막이 발)가 바람에 나부꼈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구가 있었다.

연류화교, 풍렴취목, 삼차십만인가(*烟柳画桥,风帘翠幕,参差十万人家: 안개가 내려앉은 버드나무, 구조가 아름다운 교량, 바람막이 발, 청록색의 장막, 높고 낮은 건물, 십만 호에 달하는 인구).

사실상 눈앞에 펼쳐진 경성의 모습은 시구에서 그린 전당(*钱塘: 항주를 가로지르는 강)보다 훨씬 더 번화한 상태였다. <대봉: 지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원경 초년, 경도 인구 196만여 명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은 원경 36년.

경성의 인구는 200만 명을 웃돌았다.

허씨 가문의 대문을 지나면, 또 다른 문이 두 개가 더 나왔다. 허씨 가문에서는 7~8명의 여종과 하인을 두었었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보낸 상황이었다. 때문에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이때, 숙모가 대문 위에 걸어 놓은 편액(匾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신년인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겠습니까. 하옥되기 전 우리를 반드시 구해 낼 거라 했는데.”

그녀는 말하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성의 집값은 엄청 비쌌다. 이만한 저택이면 적어도 5,000냥은 할 터였다. 계약금이 30%라 하더라도 1,500냥인데…….

‘제기랄! 다른 세상에 와서도 집값을 계산하고 있다니!’

허칠안이 입을 삐쭉거렸다.

허평지가 위로의 뜻으로 한마디 했다.

“해박한 우리 신년이가 또 신중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소. 아마 지금도 우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닐 거요.”

‘망할…….’

허칠안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허신년이 죽으려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숙부와 숙모의 눈에 그려진 아들은 심지가 굳고, 경솔하지 않고,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서생일 뿐이었다.

* * *

“하하하하! 나 허신년. 살아서는 소요인(逍遥人), 죽어서는 도깨비로다. 제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불공한 세도(世道)앞에서 어찌하랴. 천하가 나를 용납하지 않으니 이후의 대봉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은행나무 아래에 놓인 의자 위에 어느 한 서생이 서 있었다. 그는 갑자기 관(冠)을 벗어던지더니 머리를 힘차게 내저어 산발을 만들었다.

그는 다름 아닌 허신년으로, 이 순간 고삐 풀린 야생말과 같이 삼노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린 허신년은, 가족들이 굳은 얼굴로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 허신년, 자유를 추종하는 자……. 제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불공한 세도…… 천하가 나를 용납하지 아니하니, 이후의 대봉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뜻밖에 돌아온 가족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죽음이 한 발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정적 가운데 숙모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신년아…….”

그 목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한마음 한뜻이 된 부부가, 살아가려는 의지가 추호도 없는, 그들의 보배인 아들을 의자에서 끌어내렸다.

숙모는 아들을 안고서 구슬프게 울었고, 숙부는 옆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소년 시절 난감한 순간 세 가지를 꼽으라면,

오른손 왼손이 느리게 움직이는 그때, 부모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여선생님의 엉덩이를 논하고 있을 그때, 선생님이 바로 뒤에서 지켜보는 순간. 자신이 쓴 중2병 소설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순간.

세 순간 모두 수치의 극에 달해 쥐구멍을 찾게 했다.

생리적인 죽음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인 순간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극기 훈련을 했던 허칠안인지라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큭큭큭.

이번엔 그만 웃고 말았다.

허영월이 고개를 돌리더니 허칠안을 책망하듯 눈을 흘겼다. 친오라버니를 만나면 사탕을 달라고 하려던 막내 허영음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누가 서생 아니랄까 봐! 사고가 민첩한 허신년은 바로 대응책을 생각해 냈다. 그는 곧바로 두 눈을 뒤집더니 까무러치는 척했다.

* * *

허칠안은 자신의 별채 방 안에서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차디찬 냉수가 모공에 스며드는 느낌은 너무 시원했다.

‘연정전봉(炼精颠峰)의 몸이라니. 과연 내한성이 좋구나.’

그는 생사 위기에서 벗어난 지금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생철학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사고할 여유가 생긴 듯했다.

“그러고 보니 몸 주인의 사망 혹은 쓰러지기 직전의 기억은 없어. 왜지?”

허칠안은 전생의 자신이 어떻게 숨이 넘어갔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으로 회까닥했을 것이었다. 다만 이 몸 주인의 죽음에 관한 기억은 전무했다.

허칠안의 전생의 사망 원인은 알코올중독. 왜 알코올중독이 되기까지 술을 처먹었냐고? 다 승급, 월급 때문이 아니겠는가.

경찰을 그만두고 창업을 했는데, 창업 2년 만에 모두 말아먹었다. 그래서 다시 말단부터 성실하고도 부지런한 사회의 노예가 되었다.

* * *

허칠안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그만 잠들어 버렸다. 깨어나 보니 이미 밤이었다.

너무 불린 탓에 온몸이 새하얗게 변했고, 손가락은 쭈글쭈글해졌다. 허칠안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구리거울 앞에 다가가 머리를 묶었다.

구리거울에 소년의 얼굴, 짙은 눈썹,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오랜 시간 무공을 연마한 탓에 엄청 단단해 보이는 얼굴 윤곽이 비쳤다.

“전생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연예인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볼만 하네…….”

허칠안이 만족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게다가 신체는 전생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

어쨌거나 무인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냐. 차라리 역사 서적에 나오는 정상적인 고대에서 깨어났으면 좋았을걸.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무공 부실자일 거 아냐. 이 세상에는 고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반응도 못해보고 머리가 몸뚱이에서 순식간에 떨어져 나갈 수도 있을 거야.”

이 세상에는 요족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무사, 술사, 유가, 불문, 도문, 주술사, 독술사 등 수련 체계도 엄청 다양했다.

600년 전에 대봉 황조가 세워졌을 때, 초대 사천감 감정은 각 체계를 품계로 나누었다.

허칠안은 9품 연정 경지. 허평지는 8품 연기 경지. 7품은 연신(炼神) 경지였다.

그다음부터는 허칠안도 몰랐다.

그는 오히려 사천감 술사 체계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사천감은 대봉 황조에만 속해 있는 수련 체계인 데다, 과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중 6품 연금술사의 발명과 창조는 백성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술사 체계는 9품 의술사, 8품 망기사(望氣師), 7품 풍수사, 6품 연금술사로 되어있었다.

‘그 다음은 뭐, 역시 난 알 턱이 없지.’

기타 체계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경성에서 자란 허칠안으로서는 접할 기회가 적었다.

이때 뜰 안으로 녹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숙모의 시녀 녹아(綠娥)였다.

“큰공자님, 나리께서 식사하시라 하십니다.”

그 눈가에는 희색이 돌았지만, 눈빛에는 초췌함이 역력했다.

그녀는 10살 되는 해에 허씨 가문에 팔려 와 숙모의 시중을 들곤 했다. 허씨 가문에 일이 생기고 나서, 이곳을 떠나야만 했던 녹아는 이후 생계를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5일 만에 허씨 가문이 다시 원상 복귀되다니! 허영월의 말로는 모두 큰공자님인 허칠안의 덕분이라고 하였다.

열여덟 아리따운 시녀가 허칠안 앞에서 쑥스러워했다.

“음……, 나를 큰공자님이라 부르지 말거라.”

큰공자님이란 호칭은 허칠안이 듣기에 너무 거북했다.

“큰공자님을 큰공자님이라 부르지 뭐라 부르겠습니까.”

녹아가 의아해했다.

“……그래, 알았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별채를 떠나 본채로 들어갔다. 머뭇거리던 녹아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전 나리와 부인께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부인이 세은 도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세은이 가짜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 나리께 물었는데, 나리께서 대답하지 못하자 싸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녹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공자님은 아시죠?”

돌아오는 길에, 허칠안은 허평지에게 세은이 도난당한 게 아니라 바뀐 것이라 말했었다.

‘숙모는 당시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었는데……. 역시 마음에 두고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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