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여동생
쾅!
철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눈을 뜬 허평지의 눈은 충혈되어 불그스름했다.
산발에 얼굴은 때투성이였고, 외모는 허칠안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오히려 친아들인 허신년이 너무 준수하여 그와 판이했다.
복도를 사이 둔 건너편에서 깊이 잠들었던 이여(李茹)가 소리에 놀라서 깼다. 초췌한 얼굴에 공포가 가득했다.
복도를 사이 두고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여가 입을 열었다.
“나리, 저는 죽어도 교방사(教坊司)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올해 서른다섯인 그녀는, 여인으로서 미모가 무르익을 나이였다. 5일 간의 옥중 생활에 초췌해지긴 했으나, 보양을 잘한 터라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운치는 여전했다.
교방사란 어떤 곳이던가?
여인들의 지옥이었다.
상처투성이인 허평지는 입을 열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부인, 내가 미안하오. 당장은 황천길에 오르지만, 내세에 내가 다 보상할 거요. 불쌍한 내 새끼들. 그리고 내 조카 녀석.”
5일이 지났다. 허평지가 맞이할 건 참수였고, 여인들이 맞이할 건 교방사였다. 허씨 집안에는 딸이 2명이 있었다. 한 명은 16살이 된 장녀, 한 명은 갓 5살이 된 막내딸. 두 아이는 구석에 쪼그리고 누워 있었다.
눈을 비비며 모친을 부르는 5살 된 막내딸은 자신이 맞이할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16살이 된 소녀도 일어나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는 희고 갸름한 얼굴을 두드러지게 했다. 작은 입과 얇은 입술은 불그스름하고, 두 눈은 크고 생기가 돌았다. 코는 일반 여인들처럼 작은 것이 아니라 오뚝했다. 입체감 넘치는 오관(五官), 참으로 나무랄 데 없는 미모였다.
뭐랄까.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모친 옆에 기댔다.
빼곡히 들어선 속눈썹이 두려움에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옥졸 몇 명이 박도(*朴刀: 대도의 일종으로 길고 폭이 넓은 강철제 칼날에 나무 손잡이를 부착시킨 무기)를 허리에 차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여의 눈빛에, 절망과 결연한 태도가 엿보였다.
허평지는 두 손으로 옥문을 꼭 쥐고, 이를 악물었다. 세은 분실, 독직(*瀆職: 직권남용, 뇌물죄)!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집안 여인들까지 끌어들였으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었다.
5살밖에 안 되는 나이인 막내딸마저 교방사로 끌려가다니. 이보다 암담한 인생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부모가 이를 알고도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허평지! 따라와라! 서명과 수결하고 가거라.”
문을 연 옥졸이 그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고, 복도 한편에 서서 그들에게 나오라고 난간을 쳐 댔다.
허평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떠날 수 있다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느냐?”
허평지는 믿을 수가 없어 재차 되물었다.
“나를 참수하러 온 것이 아니더냐?”
“모릅니다.”
옥졸이 귀찮은 듯 말을 뱉었다.
“상부 지시니, 알고 싶으면 나가서 스스로 물으십시오.”
이여는 불안한 마음으로 딸들의 손을 붙잡고 걸었다. 옥졸의 뒤를 따라 복도 끝까지 가는 동안, 모두 침묵을 지켰다.
“나, 나리……, 우리를 속이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부상을 입은 허평지가 절뚝거렸다. 그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얼떨떨했다.
“신년이, 우리 신년이가 힘을 써서 나가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이여는 생각할수록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나리, 잊으셨어요? 신년이 스승님께서 원경 18년에 형부시랑(刑部侍郎)이셨잖습니까.”
원경 18년이라……. 그로부터 벌써 20여 년이 지난 때였다. 허평지는 반신반의했다. 다만 그 어디에 손 내밀 데 하나 없는 그로서는 딱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말이오.”
“우리 신년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예전에 그렇게 신년이한테 무공을 시키자고 말했는데, 나리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지요. 허칠안 그놈한테는 시키시고.”
“어머니, 토끼 너무 귀여워. 토끼 먹고 싶어.”
이여가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가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눈으로 온통 “배고파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종일 먹는 것밖에 모르는구나.”
성미가 급한 이여의 입에선 욕부터 튀어나왔다. 허나 얼굴이 때투성이인 막내딸을 보자 이내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조금만 참자. 금방 토끼를 먹을 수 있어.”
허평지는 당신 아들은 무공에 재능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을 말해도 그 부분은 이내 이여의 기억에서 삭제될 터였다.
‘그래, 아들이야 어머니 눈에는 영원한 최고지.’
* * *
허평지는 서명하는 곳에 도착했다. 붓을 건네받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명과 수결을 마친 뒤, 그는 경지의 승화를 느꼈다.
마치 땅속 깊이 묻힌 종자가 마침내 싹이 터 햇빛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세상이 달라 보였다. 비록 동전 한 닢도 더 많아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인들은 수결만 하면 되었다.
이 상황이 의아했던 허평지가, 공수의 예를 갖추면서 아역 관원에게 물었다.
“대인, 어째서 저희의 죄를 면해 주시는 겁니까?”
이여도 궁금했던지라 덩달아 아역 관원을 바라보았다.
“세은을 되찾았습니다.”
“세은을 찾았다는 말씀이십니까? 하하, 망할 놈의 요괴. 감히 대봉의 세은을 절취하다니.”
허평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내 대봉율법이 떠올랐다. 율법에 의하면, 세은을 되찾더라도 그의 독직죄(*瀆職罪: 직권남용, 뇌물죄)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세은을 되찾은 것이 그의 공로도 아닌데, 조정에서는 왜 자신의 죽을죄를 면해 주었단 말인가?
아무리 가볍게 벌하더라도 변방 유배일 텐데 말이다.
“허 대인, 관포를 잘 보관하십시오.”
관아 관원이 7품 무관 녹포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주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허평지는 추측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고 느꼈다. 그가 관포를 건네받으며 진지하게 되물었다.
“대인, 본관에게 의혹을 풀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관포를 잡고 나니, 스스로 본관이라 부르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
죽을죄는 면할 수 있어도, 관직에 복귀하는 것은 허평지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대봉율법에 의하면 집안 연장자가 법률을 어겼을 때, 자녀들이 공을 세워 죄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관아 관원이 답했다.
“진짜 우리 신년이가 해냈나 봐요. 나리, 우리 신년이가 조정을 도와 세은을 되찾은 겁니다.”
이여는 너무 기쁜 나머지 울먹였다.
“신년아…….”
허평지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관아 관원이 부부의 모습을 보고 말을 이었다.
“조카 허칠안이 부윤 대인을 도와 세은을 되찾았습니다. 방금 전 옥에서 떠났습니다.”
“허칠안?”
허평지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이여의 두 볼에는 눈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기쁜 기색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틀 전, 허칠안이 옥중에서 자신이 중요한 단서를 가지고 있으니 부윤 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리 질러대 대인을 만나게 했더니, 그 뒤로 대인께서 사건을 해결하셨습니다. 대봉율법에 따라 공을 세웠으니 자연스레 면죄를 받으신 겁니다.”
“그, 그런 겁니까?”
허평지는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허평지는 허칠안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키웠기에 그 누구보다도 허칠안을 잘 알고 있었다.
허평지는 문 관원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놈이?’
이여가 아연실색했다.
‘우리 신년이가 구한 것이 아니고 그 망할 녀석이? 그놈은 옥에 있지 않던가?!’
* * *
허평지는 많은 의혹을 품은 채, 집안 여인들을 데리고 관아 후문을 나섰다. 그러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면서 초조하게 서 있는 허칠안을 보았다.
조카를 만나게 된 그 순간, 느꼈던 수많은 의혹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무사 출신인 허평지였지만, 이 순간만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조카를 안아 주려 했지만, 낯 뜨거워서 포기하고 대신 어깨를 힘차게 두드리면서 한마디 했다.
“칠안아! 장하구나.”
그 힘찬 두드림으로 허칠안은 숨이 넘어갈 뻔했다.
“숙부, 숙부께서 연기전봉(练气巅峰)인 것을 까먹으셨습니까? 우리 둘은 한 등급이나 차이가 난다고요.”
허칠안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 나갔다. 추호의 낯가림도 없었다.
이런 친숙함에 놀란 허칠안은, 숙부의 어깨 너머에 서있는 여인들을 보았다.
‘숙모의 지저분한 모습을 좀 보소…….’
이러한 생각들은 저도 모르게 드러난 것이었다.
숙모의 처지에 고소해하던 것도 잠시, 허칠안은 어느새 사촌 동생의 미모에 정신이 팔렸다.
널찍한 죄수복을 입은 소녀. 헝클어진 귀밑머리가 고전미 넘치는 얼굴 양 옆에 드리웠다. 게다가 오뚝한 코까지. 얼핏 보면 혼혈 미인을 방불케 했다.
청초하면서도 청순함을 소유한 나이. 표현 못 할 다중 매력으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박! 나에게 이런 여동생이 있었다니.’
허칠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몸 주인의 기억 속에 여동생의 모습은 매우 흐릿했다. 아마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았다. 숙모가 미우니 동생들도 덩달아 미웠을 것이다.
이전의 허칠안은 동생들한테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허칠안의 이글이글한 눈빛에, 허영월(许玲月)이 쭈뼛쭈뼛하면서 그를 불렀다.
“오라버니!”
이제 막 5살이 된 허영음(许铃音)이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허칠안 앞에서 급정거를 하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허칠안이 손짓하면서 말을 걸었다.
“줄 사탕이 없어서 어째. 나도 금방 옥에서 풀려나왔어.”
여기서 언급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몸 주인은 큰동생과 둘째 동생을 싫어했지만, 막냇동생은 싫어하지 않았다. 왜냐면! 막냇동생이 숙모의 모습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옥이 뭐야?”
“네가 요 며칠 지내던 곳.”
“오라버니가 한 명 더 있잖아요. 그 오라버니한테는 사탕이 있나요?”
“음, 오늘 그 오라버니는 오지 않았단다.”
콩알만한 녀석의 얼굴에 실망이 드리웠다. 그 아이가 말한 다른 오라버니는 허신년이었다. 너무 어려 사촌 오라버니와 친 오라버니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막냇동생은 그리 총명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아이의 어머니를 닮아서…….’
몸 주인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나중에야 허칠안을 쳐다본 여인은 숙모 이여였다. 항상 허칠안에게는 찬밥 대접이었던 여인. 꿈에서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재수 없던 조카 놈에게 굽신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여인은 뻣뻣한 고개를 억지로 돌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맙구나. 칠안아…….”
이때 허칠안의 기억에 희미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있었다.
숙모에게 별채로 쫓겨나던 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허칠안이 하늘을 두고 맹세했었다.
‘나 허칠안, 앞으로 무조건 출세하리라.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어!’
지금 생각해 보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제3자의 시각으로 몸 주인과 숙모의 관계를 보니, 모든 일이 결코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허칠안은 무공을 연마하기 위해 해마다 100냥이 넘는 은자를 갉아먹었다. 100냥이면 일반인 가정의 2~3년 생활비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그것도 부유한 가정에 한해서 말이다.
이런 허칠안에 대한 숙모의 원망은, 결코 지나치지만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허칠안이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숙모, 감사의 말은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나서 다시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말에 이여는 눈을 부릅뜨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조카를 쏘아보았다.
이 광경을 바라보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던 허평지는 한마디 던졌다.
“그래, 우선 집으로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