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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화 (4/712)

4화. 제대로 기술을 뽐낼 때가 되었다

허칠안이 내당에 발을 들이자,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맞이했다.

‘붉은 도포를 입은 자가 부윤, 운안을 수놓았다? 음……, 정4품이로군……. 가슴에 은색 징을 수놓은 아저씨, 어디 보자. 그래, 야경꾼 조직……. 대박! 이 소녀는 누구야? 너무 예쁘잖아. 시집은 갔나?’

진 부윤이 높은 의자에 앉아 무표정으로 범인 심문하듯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허칠안, 3일 전 하옥할 때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은닉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 있겠지?”

그것은 관리들의 일반적인 수법으로, 한시바삐 단서가 뭔지 알고 싶어도 심리적인 압박을 먼저 가하는 것이었다. 관리 스스로 먼저 단서를 묻는 일은 없었다.

허나 허칠안으로선 이곳까지 왔으니,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칠안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부윤 대인, 방금 전 허씨 집안 둘째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를 통해 권종을 얻을 수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성실해야 했다.

세 사람 모두 허신년을 알고 있었다. 허신년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허평지의 맏아들로서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네가 말한 단서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진 부윤이 물었다.

“소인, 권종에서 사건의 진상을 발견했습니다.”

“잠깐!”

진 부윤이 허칠안의 말을 끊었다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말을 이었다.

“권종에서?”

“네, 소인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습니다.”

허칠안이 연달아 머리를 끄덕이면서 긍정의 뜻을 표했다.

이 말을 들은 진 부윤은, 허칠안을 옥에 바로 가두려던 생각을 잠시 짓누르고 엄숙한 표정으로 엄포를 놓았다.

“그래, 말해 보거라. 다만 경고하는데,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네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세은(税银) 도난 사건은 요괴가 한 짓이 아니라 사람이 한 소행입니다.”

이 한마디에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 부윤이 탁자를 내리치면서 호통을 쳤다.

“허튼소리! 여봐라, 끌고 내려가서 장형 200대를 때려라!”

요괴가 세은을 절취했다는 것은 더 이상 논할 필요 없는 기정사실이었다. 이에 세 명의 책임자는 그에 뜻을 같이했다.

허칠안이 가치 있는 단서를 내놓기를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그들은 방금 전 그 발언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느라 지껄인 소리로 여겼다.

이때 아역이 달려 들어왔으나, 이옥춘이 머리를 갸웃하더니 손짓으로 아역을 물렸다.

“진 대인, 진정하시지요.”

눈을 돌려 허칠안을 바라보는 이옥춘의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관심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성질 급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허칠안은 진 부윤을 흘겨보며, 이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성문 수위(守卫)의 구공(口供)에 의하면 숙부가 묘시 이각(*卯时 二刻: 아침 여섯시 반)에 성문에 들어섰고, 세은 호송 대오는 진시 일각(*辰時 一刻: 일곱시 시 십오 분)에 광남가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괴풍이 일어 말들이 놀라서 강물에 뛰어들었지요.”

허칠안은 최대한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진술하여, 침착한 모습으로 설득력을 높이려고 했다.

진 부윤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찬성의 뜻을 보였다.

“그게 바로 요괴가 강물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세은(稅銀)을 절취했다고 확신한 이유란 말이다.”

“아니요!”

허칠안이 소리 높여 반박했다.

“요풍도 폭발도 모두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대인들은 단서 하나, 그것도 치명적인 단서 하나를 간과했습니다.”

“어떤 단서 말이냐?”

진 부윤이 다급하게 캐물었다.

이옥춘은 경청의 태도를 보였다.

채미도 건과를 물기만 했지, 씹지는 않은 채 흥미진진해 하며 허칠안을 지켜봤다.

“숙부가 세은(稅銀) 15만 냥을 호송했습니다. 여기서 대인들께 여쭙겠습니다. 은자 15만 냥이면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이옥춘의 얼굴은 굳어버렸고, 채미는 요점을 파악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 부윤이 얼굴을 붉히고 윽박질렀다.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하거라!”

허칠안은 힌트를 주어 대인들이 스스로 알아채도록 재주 부리려다가 농교성졸(*弄巧成拙: 지나치게 솜씨를 부리다가 도리어 서툴게 됨을 이르는 말)의 꼴이 되어 속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이 사람들 봐라, 계산 능력이 이렇게도 따라 주지 않나?’

허칠안이 바로 말을 이었다.

“9,375근입니다.”

세계 질량 환산 공식에 의해 16냥이 한 근, 그러면 15만 냥이면 9,375근이었다.

이옥춘은 뭔가 알아챈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양미간을 찌푸리던 채미가 물었다.

“그게 뭘 설명하는데?”

은방울 구르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머리가 따라가지 않아 아쉬웠다.

허칠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성문 어귀에서 광남가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이옥춘이 답했다.

“30리.”

“도중 장터 몇 개를 경과합니까?”

“……4개.”

“느리게 달리는 말이면 어떻게 될까요?”

“느리게 달린다면…….”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레지던 이옥춘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그런 거였구나!’

문득 모든 것을 깨달은 기색이었다.

3일 동안 요괴를 추적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경험이 풍부한 야경꾼으로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이미 인식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단서가 분명하지 않았기에,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이었다.

진 부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전히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한 그는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기 싫어 우선 침묵했다.

그런 그가 채미를 힐긋 쳐다보았다. 채미의 모습은 그에게 위로를 주었다.

갑갑하다는 듯 채미가 되물었다.

“문제가 뭔데?”

이옥춘이 흥분조로 말했다.

“시간, 시간이 안 맞잖아.”

“광남가에서 남성문까지 족히 30리는 되는 거리인데, 묘시 이각에 성문을 들어서서, 느리게 달리는 말로 4개의 장터를 지나 진시 일각에 광남가까지 도착할 수 없지 않나.”

선입견에 사로잡혀 요괴 작간이라고만 생각했던 이옥춘은, 허칠안이 양파 껍질 벗기듯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문제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은은 진시 일각에 광남가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말이 강에 뛰어드는 장면을 목격한 백성들의 수가 많아 거짓일 수가 없지요.”

소녀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진 부윤이 만족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이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건…….’

멍해진 이옥춘이 무의식적으로 허칠안 쪽을 바라보았다.

“호송한 것이 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허칠안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로구나!”

진 부윤이 반박하고 나섰다.

“네 숙부와 은자를 호송하던 사졸들은 차치하더라도, 권종에 쓰인 당시 현장에 있던 백성들의 진술에도, 말들이 강에 뛰어들었고, 은자도 함께 강물에 굴러 떨어졌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는 손에 있던 권종을 흔들면서 강조했다.

“여기에도 거짓이 있더냐.”

“눈에 보인다고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소인, 대인의 의혹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허칠안의 시선이 탁자 위에 고정되었다.

“종이와 붓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진 부윤이 손을 흔들며 허락을 표했다.

허칠안은 족쇄를 끌고 탁자 옆에 서서, 물을 붓고 벼루에 먹을 갈았다. 그리고는 선지(宣紙)를 펼쳐 놓은 뒤, 비뚤비뚤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인, 소인의 부탁대로 종이 위에 적힌 물건들을 준비해 주십시오.”

건네받은 선지를 훑어보던 진 부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도 볼게요.”

채미가 희고 보들보들한 손을 내밀었다.

선지를 받아 쥔 그녀 역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이옥춘은 이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구겨졌던 부분을 잘 펴서 다시 진 부윤에게 넘겼다.

* * *

일각(*一刻: 15분)이 지난 시각. 아역 두 명이 준비한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 내당에 진열했다.

물건들을 한 번 훑어본 세 명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머리를 돌려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네가 요구한 물건들을 준비했으니, 반드시 본관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을 줘야 할 것이다.”

진 부윤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태도에는 변화가 엿보였다.

일각이라는 시간 동안, 정4품인 그는 온갖 지혜를 동원해 허칠안의 추리를 곱씹어 보았다. 일리가 있었다. 다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면 세은(稅銀)이 강물에 굴러 떨어진 사실 같은 것.

그는 이 속에 숨어 있는 절묘한 계략을 발견하지 못했다.

“소인, 대인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면 성상께 상서하여 허씨 가문의 죄를 면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부자 전승(传承)을 매우 중요시 하는 대봉. 자대부과(*子代父过: 아버지의 과오를 아들이 계승받음)인 만큼 부(父)를 대신하여 공을 세워 죄를 면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물론이다.”

진 부윤이 머리를 끄덕였다.

허칠안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연신 머리를 끄덕이더니, 준비한 물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앞에는 양초, 소금, 사기잔, 철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가 하려는 것은 아주 단순한 실험이었다. 바로 고등학교 화학 수업에도 나오는 금속 나트륨 추출 실험.

원래 고대에서는 추출이 불가능했다. 두 가지 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전기, 다른 하나는 염화나트륨의 용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이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6품 사천감 술사인 연금술사!

연금술사는 대봉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보편화 된 직업이었다. 그들의 발명과 창조는 이미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든 지 오래였다.

허칠안 또한 폭발한 세은이 사실은 금속 나트륨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고(思考)로 폭발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획기적인 가설과 엄밀한 추리는 초기 필수 작업이었다. 검증과 증거 수집은 나중에 진행해도 되었다.

전생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 형사들이 밤낮없이 단서에 따라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추리를 하고 나서, 이에 기반을 두어 증거를 수집했다. 물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기존 사고를 뒤엎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세은(稅銀) 역시 금속 나트륨이 아닐 수 있었다.

‘어쨌든 연금술사가 이 점을 실현할 수 있으니, 그거면 됐다.’

대인들을 위해 정확한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야말로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방향이 정확하다면, 배후 주모자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

요괴 작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건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었다. 설령 나중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더라도 그때는 이미 허칠안이 머나먼 변방으로 떠난 이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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