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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화 (2/712)

2화. 요물 작간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왜 찾으십니까?”

‘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사건 발생의 경과를 알아야겠어. 그래야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면 허신년이 허칠안의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고, 그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기에 그는 에둘러서 말했다.

‘몸 주인의 본래 성격이 어지간히 집요하고 고집이 세야 말이지.’

허신년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권종은 내가 보았으니 구술(口述)로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동안 허신년이 아무리 발품을 팔아 봐도, 중대 사건인지라 그 누구도 선뜻 나서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도 세은을 되찾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허신년은 가문의 인맥과 서원의 관계를 활용하고, 은자를 들여, 경조부 관원에게 권종에서 필요한 부분만 뽑아 적게 했다.

하지만 형사 사건에 대한 판단과 수사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문제점을 간파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것이다.

허칠안은 권종(*卷宗: 분류, 편철해 보관하는 관문서)을 구술하려는 허신년을 손을 들어 막고는 말했다.

“적어 줘. 구술은 의미가 없어.”

구술(口述)로 들으면 집중력이 분산되기에, 차분한 상태로 사고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전생에 논리적 추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동기들 중에서도 1순위로 꼽혔다.

예전이었으면 허칠안을 상대도 안 했을 허신년은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허칠안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허신년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복도의 저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자 허칠안은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다시금 마음이 불안, 초조, 두려움의 소용돌이에 빠진 듯했다.

판을 뒤집을 자신이 없던 허칠안이었기에, 이것은 그저 죽기 전 최후의 발악이기도 했다.

현대 시대 수사에는 범죄 현장 조사, CCTV 확인, 부검 이 세 가지 절차가 빠질 수 없었다.

허나 세은 실종 사건에는 사망자가 없었다. 게다가 고대에 CCTV라니! 그리고 본인은 감옥에 갇혔으니, 위에 말한 세 개 절차 모두 진행이 불가능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권종이 그나마 어느 정도 범죄 현장을 그려내준다는 점이었다.

허칠안은 몸 주인의 기억을 소화하는 한편, 자신에게 몰려오는 모든 부정적인 정서를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만 냉정한 두뇌로 명석한 사고와 엄밀한 추리를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죽을지 살지는 다음에 달려있다…….”

* * *

그렇게 일주향(*一炷香: 향 하나가 타는 시간, 약 40분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총총걸음으로 돌아온 허신년은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선지(宣紙) 몇 장을, 허칠안에게 건네주었다.

“시간이 다 되어 저는 가야 합니다.”

잠깐 망설이던 허신년이 한마디 덧붙였다.

“스스로를 잘 돌보십시오.”

선지(宣紙)의 필적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허칠안은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못했다.

촉박한 시간에다 글자체는 초서(草书)였다. 허칠안이 사숙(*私塾: 옛 사설 한문교육기관)을 몇 년 동안 다녔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은 글자들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역시 지식은 어디를 가나 쓸모가 있는 법. 만약 몸 주인이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났겠지.”

허칠안이 중얼거렸다.

세은 실종 사건의 경과는 이러했다.

[3일 전, 묘시 이각(*卯时 二刻: 아침 여섯시 반), 허평지가 세은을 호송하여 경도에 들어섰다. 진시 일각(辰時一刻), 광남가(广南街)에 도착하여 교량을 건너자마자 괴이한 바람이 일더니 말들이 놀라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귀청이 터질 듯 소리가 울리더니, 강물이 6장(*六丈: 약 20m) 높이로 솟구쳐 올랐다.

세은의 호송을 맡은 사졸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은자를 찾았지만 1,215냥만 되찾고, 나머지 은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건의 경과를 서술한 것 이외에도, 권종(*卷宗: 분류, 편철해 보관하는 관문서)에는 경조부에서 수집한 오고 가던 행인, 호송에 참여한 사졸들의 진술이 쓰여 있었다.

허다한 공술 중 허칠안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빨간색으로 표기한 ‘요물 작간(妖物作奸)’이라는 글자였다.

“요물 작간?”

허칠안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을 느꼈다.

* * *

경조부.

3일 동안 지속된 분주한 수사 일정 가운데, 후당(后堂)에는 세은 실종 사건의 책임자 세 명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진한광(陈汉光), 경조부 부윤(府尹)은 무거운 기색으로 한 손에는 백화청화 찻잔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은 찻잔 뚜껑을 가볍게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찻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의 붉은 도포에는 운안(云雁)이 수놓여 있었다. 이는 그가 정4품 관원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진 부윤이 한탄조로 말을 건넸다.

“이제 이틀 남았네. 성상께서 허평지가 참수되기 전에 우리에게 세은을 되찾아오라고 하셨소. 두 사람 모두 서둘러야 하네.”

진 부윤이 말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검은색 제복에 현색(*玄色: 광택이 없는 검정색)피풍을 걸친 중년 남성이었는데, 오뚝한 코에 꺼져 들어간 눈가, 눈동자는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노란 치마를 입은 계란형 얼굴을 소유한 소녀였다.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눈썹에 희고도 매끄러운 피부, 미모가 유독 빛났다.

손에 사탕수수의 줄기를 쥔 노란 치마 소녀의 허리에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소포(小包)와 팔괘풍수판(八卦风水盘)이 걸려 있었고, 치맛자락 아래에는 구름이 수놓인 앙증맞은 화자(*靴子: 장화의 일종)를 신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사건 해결을 도우러 온 사람이었다. 중년 남성의 이름은 이옥춘, 대봉 관원들이 두려워하는 ‘야경꾼’ 출신이었다.

정찰, 체포, 심문을 거행하는 조직인 ‘야경꾼’은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적군이 모반하도록 꾀하는 일도 했다.

‘야경꾼’은 육부 소속도, 군사 계통도 아니었다.

황실의 정보 조직으로서 관원들의 목에 걸어 놓은 작두인 셈이었다.

‘낮에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밤에 야경꾼이 문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말은 대봉 모든 관원들이 한 번쯤은 들어 본 말일 것이다.

노란 치마를 입은 소녀는 사천감(司天监) 소속이었다. 그 또한 내로라하는 신분이었는데, 바로 사천감 감정(监正)의 제자였다.

가슴에 은색 징을 수놓은 중년 남성과 노란 치마 소녀는, 발 주변에 널린 사탕수수 줄기 찌꺼기를 보고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손바닥을 한 번 돌려 운기(运气)하니 찌꺼기가 한 데 모였다.

머리를 끄덕이던 중년 남성은 성취감을 느끼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이내 얼굴빛이 무거워지더니, 진 부윤의 말에 답했다.

“참으로 오리무중인 괴이한 사건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진 부윤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사건 분석을 시작하면서부터, 사건은 이미 요괴의 작간(*作奸: 간악한 짓)으로 결정 난 바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루 빨리 요괴를 잡는 것이지. 딴생각은 하지 말자고.”

진 부윤이 덧붙였다.

최근 몇 년간 국고는 텅 비었고, 각 지방에는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15만 냥은 일반 현에서 납부하는 일 년 세금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폐하의 분노도 이해할 만했다.

진 부윤이 사건을 맡긴 했지만, 사건의 난이도가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었다.

중년 남성은 머리를 절레절레하더니 더 이상 논쟁을 이어 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말을 했다.

“허평지 그쪽에는 아무런 수확이 없는 겁니까?”

진 부윤이 머리를 저었다.

“일개 무인으로서 억울하다고만 하지, 세은을 어떻게 잃었는지도 모르고 있네.”

“그의 ‘기(氣)’를 살펴본 바,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노란 치마 소녀가 끼어들었다.

이옥춘과 진 부윤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 허평지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사건 당사자로서 가장 먼저 조사를 받고 고문을 당한 것이 허평지였다. 대인 관계와 재정 상황 조사는 물론, 사천감(司天监)의 망기술(望气术)을 통해 본 결과 혐의는 배제되었다.

물론 세은 실종은 허평지의 과실이었기에 죽을 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아역(*衙役: 관아에서 부리는 일꾼)이 총총거리며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작은 죽통(竹筒), 왼손에는 기름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기름종이 봉투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만두가 담겨 있었다.

아역이 죽통을 먼저 건넸다.

죽통을 받지 않던 소녀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로 고기만두만 쳐다보았다.

소녀의 마음을 알아챈 아역이 건네는 순서를 바로 바꾸었다. 고기만두를 한 입 뜯고서야 죽통을 받은 소녀는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측 사람들의 관측에 의하면, 세은이 통과한 이십 리나, 강물, 강변에서 요기(妖氣)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뭣이라!”

억압되었던 분위기가 드디어 폭발했다. 진 부윤은 푸르딩딩한 얼굴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버럭 화를 냈다.

“그러면 15만 냥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것이냐! 어쨌든 강에서 건졌을 것 아니냐! 3일이 지났는데 상대방의 종적조차 찾지 못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망할 놈! 어떤 요괴 녀석이 감히 대봉의 세은을 절취해? 놈을 잡아 갈기갈기 찢어도 내 분이 누그러들지 않을 것 같네!”

세은을 되찾지 못하면 진 부윤이 홀딱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분노는 당연했다. 폐하야 그가 억울하든 말든 상관없을 터였다. 경조부 부윤 자리에 앉았으면 뒤집어쓸 건 써야 했다.

관리들의 세계란 그랬다. 오르는 게 천신만고지 내려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숨을 내쉬던 이옥춘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언급했다.

“우리의 조사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닐는지요. 요괴의 작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에 진 부윤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가 올라오는 화를 짓누르고 말을 이었다.

“요괴가 아니면 요풍(妖风)은 어찌 해석하겠나? 은자가 강물에 떨어졌는데 그러면 어디로 사라졌겠는가? 그리고, 물은 어떻게 수 장(丈) 높이로 솟구치고 강변은 또 어떻게 갈라졌겠느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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