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옥재(狱灾)
대봉경조부 감옥.
허칠안(許七安)은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났다.
‘이 더러운 냄새의 정체는 뭐야? 설마 우리 집 허스키가 또 침대에 오줌을? 그런데……. 내 머리에 싸지 않고서야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날 수 있나?’
허칠안은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상경한 지 10년. 오랫동안 홀로 생활하다 보면 반려견을 하나 입양하여 외로움을 달래게 되는 법이다. 물론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를 위해서 말이다.
냄새가 너무 고약한 탓에, 허칠안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눈을 비비면서 감았다 다시 떴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변함이 없었다.
돌로 쌓은 벽, 완구(碗口) 세 개 크기만 한 네모난 창. 게다가 그가 깔고 있는 낡아 빠진 초석(草席). 네모난 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그의 가슴을 비췄다. 빛줄기 속에는 먼지가 흩날렸다.
‘여기는 어디?’
깊은 사색에 빠진 허칠안은 지금의 상황이 의심스러웠다.
‘환생! 그래 환생이다!’
왠지 모를 기억이 쓰나미처럼 머릿속을 침입했다.
‘허칠안. 자 녕연(宁宴). 대봉 황조 경조부 관할 하의 장락현아(长乐县衙) 포졸. 월봉(月俸)은 은자 2냥에 쌀 1섬. 부친은 노졸, 19년 전 산해관전역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모친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침입한 뭔지 모를 기억을 여기까지 읽은 허칠안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들 알다시피,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사람 치고 평탄한 사람은 없었다.
“환생을 했어도 경찰관의 숙명은 피하지 못하는구나!”
허칠안은 전생에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경찰관으로 일했다. 그야말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경찰 공무원 아니었던가.
하지만 경찰관은 부모님이 선택해 준 길이었지, 허칠안 스스로의 워너비 직종은 아니었다.
자유를 갈망하고 돈이 좋았던 그는 ‘그리하여 단호하게 사직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라는, 유명 인사가 일기장에 남긴 한마디를 엄청 동경했었다.
“잠깐! 그런데 왜 내가 감옥에 갇힌 거지?”
그가 애써 기억을 되살려 보자, 이곳에 갇히게 된 자초지종이 금방 떠올랐다.
* * *
허칠안은 어린 시절부터 숙부의 손에 키워졌다. 무공을 익히기 위해 그는 해마다 100냥이 넘는 은자를 소모해야 했다. 그러니 숙모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18살에 연정전봉(炼精颠峰)에 오른 뒤, 그의 무공은 정체되었다. 게다가 숙모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결국 허씨 저택을 떠나 홀로 지냈다.
이후, 숙부와의 관계로 허칠안은 관아에서 포졸로 일하게 되었다. 평탄했던 일상이었는데, 뜻밖의 사건이…….
3일 전, 어도위(御刀卫)에서 7품 녹포(绿袍)였던 둘째 숙부가 세은(税银)을 호부(户部)로 이송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했다. 15만 냥에 달하는 은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정과 민간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이에 성상(圣上)께서도 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5일 후 허평지(许平志)를 참수하고, 삼족을 연좌하여 남자는 변방으로 유배한 뒤, 여자는 교방사(教坊司)로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허평지의 조카인 허칠안은, 포졸 직 파면은 물론 경조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틀!’
허칠안은 이틀 뒤 변방에 유배될 것이다.
‘그 후로는 뼈 빠지게 일하다 뒈지겠지.’
“첫 시작부터 지옥모드냐! 아…….”
허칠안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봉건 왕권 통치로 인해, 지금 그가 처한 세계에서 ‘인권’이란 씨도 안 먹히는 단어였다. 또한 변방이 어떤 곳이던가?
황량하기 그지없고, 기후가 악렬했다. 변방에 유배된 죄인 대다수는 10년을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은 변방에 도착하기도 전에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도중에 사망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허칠안은 온몸을 후덜덜 떨었다.
“시스템. 그래, 시스템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시스템의 아버지시여, 얼른 나오시옵소서!”
다급한 목소리였다.
……허나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스템 같은 건 없었다. 정말로 여기에는 무협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서나 보던 시스템이란 것은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허칠안은 꼼짝달싹 못하고 변방으로 끌려가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신체를 보니 도중에 뒈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이를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기에는 여생이 너무 비참했다.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환생에 대한 허칠안의 아름다운 환상은 와장창 박살났다. 남은 것은 그저 초조함과 공포뿐.
허칠안은 한시도 멈추지 못하고 총총거리며 대책을 강구했다. 그 모습은 마치 달아오른 가마솥에 빠진 개미를 방불케 했다.
그는 연정전봉(炼精颠峰), 즉 놀라울 정도의 강체질이었다……. 다만 이 세계에서는 약체질에서 금방 벗어난 정도였으므로 탈옥은 불가능했다…….
‘종족(*宗族: 친족집단)이나 친구를 찾아야 하나?’
허씨 가문은 대족이 아닌데다 족인(族人)들은 각지에 분산되었다. 게다가 15만 냥에 달하는 세은을 잃어버린 사건에 대해서라면, 누가 감히 입을 뻥끗하겠는가?
‘그래. 대봉율법. 공로를 세우면 죽을죄를 면할 수 있잖아. 그러려면 세은을 되찾아야 하는데…….’
허칠안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마치 죽기 직전에 동아줄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로라하는 경찰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론 지식이 많았고, 논리가 분명했으며, 추리에 능했다. 게다가 엄청 많은 사례들을 열람한 바 있었다.
하지만 허칠안의 눈빛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
사건을 파헤치려면 권종(*卷宗: 분류, 편철해 보관하는 관문서)을 통해 사건의 경과를 파악해야지만 분석이 가능했다.
감옥에 갇힌 그에게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이틀 뒤에는 변방으로 쫓겨날 터였다.
정녕 이대로 유배당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가!
풀썩!
바닥에 주저앉은 허칠안은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았다.
엊저녁 만취한 상태로 쓰러진 허칠안은 일어나 보니 감옥에 와 있었다. 아마 알코올중독으로 뒈져서 환생한 모양이었다.
신은 그에게 환생 기회를 하사한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죽어 버린 탓에 더 가혹한 벌을 내리신 것이 분명했다.
고대 시대에 유배란 것은 사형 다음으로 가는 중형 벌이었다.
전생 때 사회의 매질은 당한 적 있었으나, 적어도 평화로운 인생이 아니었던가!
이때 어두컴컴한 복도의 저 끝에서부터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린 것이다.
이어 발자국 소리가 났다.
옥졸 한 명이 초췌해 보이지만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서생 한 명을 데리고 오다가, 허칠안이 머물고 있는 옥문 앞에 멈춰 섰다.
“반주향(*半柱香: 향이 절반 타는 시간) 이내로 끝내!”
옥졸이 서생에게 윽박질렀다.
서생은 옥졸에게 읍하고 나서 그가 떠나기까지 지켜보았다. 옥졸이 보이지 않게 되자, 서생은 돌아서서 허칠안과 마주 섰다.
흰색 포(袍)를 입은 서생은, 까만 장발을 옥잠(*玉簪: 옥으로 만든 비녀)으로 묶고 있었다. 검같이 날카롭게 뻗은 눈썹에 광채가 도는 눈, 얇은 입술, 그야말로 준수한 청년이었다.
허칠안의 머릿속에서, 눈앞에 서 있는 청년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허씨 집안의 둘째, 이름은 허신년(许新年).
숙부의 아들이자 허칠안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는 올해 향시(*鄕試: 과거시험의 일종)에 급제했었다.
의외로 얼굴이 편해 보이는 허신년은 허칠안을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내일 변방으로 압송하는 사졸들에게 우리 집안에 얼마 남지 않은 모든 가산 300냥을 쥐여 줬으니 가는 도중에는 무사할 겁니다.”
“그럼 너는 어쩌고?”
음? 허칠안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몸 주인의 기억으로는, 눈앞에 있는 사촌 동생과 의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숙모가 허칠안을 싫어하는 까닭에, 허씨 가문에서 숙부 이외에 허칠안을 반겨 주는 이는 없었고, 사촌 동생들도 그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게다가 몸 주인의 기억에 의하면, 눈앞에 있는 사촌 남동생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남다른 말발의 소유자였다.
허신년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채로 답했다.
“공명은 제적당했지만 서원의 스승님 덕분에 유배는 면했습니다. 변방에 가서는 성질을 죽여야 할 겁니다. 그리해야 1년이라도 더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허신년은 경중 명성이 자자한 운록서원(云鹿书院)에서도 중점 육성 대상이었던 서생인 데다가 신진(新晋) 거인(*举人: 과거 시험에서 급제한 자)이었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하옥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도(京都)를 벗어날 수 없어 경중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발품을 팔았던 것이었다.
허칠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신년의 신세가 결코 자신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아마 허신년은 공명만 제적당한 것이 아니라 천적(贱籍)에 올라, 자자손손 과거 시험에 응하지 못해 영원히 천인(贱人) 신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틀 뒤면 집안 여인들은 교방사(教坊司)로 이송 당해 온갖 모욕을 당하게 될 터였다.
서생인 허신년이 이런 처지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그더러 어찌 경성에서 살아가란 말인가? 변방 유배가 그에게는 더 나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허칠안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다급히 앞으로 다가가 철 난간을 붙잡았다.
“너 혹시 죽으려고?!”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분명 환생한 나로선 처음 만난 사람일 텐데 어째서일까?’
허신년은 굳은 얼굴로 옷소매를 뿌리쳤다.
“무슨 상관입니까!”
허칠안의 눈을 쳐다보던 시선을 조금 아래로 옮긴 허신년은, 사촌형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께선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허신년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뒤돌아 발길을 옮겼다.
“기다려!”
허칠안이 난간 사이로 손을 뻗어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
허신년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너 권종(*卷宗: 분류, 편철해 보관하는 관문서)을 얻을 수 있어? 세은(税银) 실종에 관한 권종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