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에필로그! (2)
캐롯의 귀환 환영회는 소박한 바비큐 파티 수준에서 멈추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특구 마을 건립에 활약한 캐롯이었기에 도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아르곤 영주 주최로 도시 광장에서 시민들을 불러 모아 놓고 상패와 상금을 시상하기에 이르렀으며, 캐롯이 돌아온 날은 정말로 도시 지정 공휴일이 되어 버렸다.
“우와!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영주님, 이래도 돼요?”
단상에 함께 올라선 데오 영주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린 캐롯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광장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캐롯 오신 날! 어쨌든 오늘은 휴일-!”
“와아아아!”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거리 행진 같은 행사까지 마치고 겨우 돌아온 캐롯을 반긴 것은, 임시 휴일을 맞이하여 공방에서 놀고 있던 크랭크와 아리에테의 아들들이었다.
장남 베어린, 차남 볼트, 삼남 피스.
“캐롯 최고야!”
“응응!”
“으히히! 오늘은 노는 날!”
장녀 캐롤이 삐야악하는 소리를 질렀다.
“공방 안은 어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캐롯의 곁으로 잔뜩 화가 난 캐롤이 들어섰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이러면 삼형제는 어리둥절한 눈이 되어 버린다.
코찔찔이 장남 베어린이 물었다.
“어째서 닮은 거야? 캐롯도 엄마가 낳은 거야?”
흐흐히히 웃음 지은 캐롯이 대답했다.
“아니, 내가 네 엄마를 낳았어. 먹이고 씻기고 달래고 힘들었지 뭐니.”
“으응?”
네 남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캐롯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애들에게 혼란을 끼칠 만한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오오! 리슐리에!”
맞선을 엎어 버린 리슐리에가 공방으로 들어섰다.
요즘 워낙 스케쥴이 밀려 있어서 잠시간 캐롯의 비서직을 자처한 그녀였다.
여전히 고지식한 차가운 안경 도시 여자의 얼굴로 수첩을 펴 든 그녀가 다음 일정을 알렸다.
“이걸로 끝이 아니야. 좀 있다가 영주님 저택에서 있을 저녁 만찬에도 참석해야 하고, 며칠 후엔 왕궁 초청으로 수도에도 가야 해. 미뤄 온 드래곤 슬레이어 탄생 축하 훈장 수여식에는 이젤리아의 국왕도 오신다는 모양이야.”
“이젤리아 국왕? 오! 그때 그 왕자님이구나!”
캐롯이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7년이나 지났으면 지금 몇 살이지? 17살쯤 됐겠……. 리슐리에 왜 갑자기 그렇게 흥분했어?”
시치미를 뚝 뗀 리슐리에는 눈동자에 돋아난 핏줄을 수첩으로 슬쩍 가렸다.
“하여튼 높으신 분들 앞에 나서는 거니 그 머리부터 새로 해야겠네. 내 머리는 어때?”
뒤로 땋은 머리카락을 슬쩍 들어 보이는 그녀를 보고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흐흐히히하고 웃기 시작했다.
사람 놀리는 데는 한마음이 되는 모양인지 캐롯 페이스의 꼬마들도 의미심장하게 웃어댔다.
“맞선 엎어져서 그런 거구나?”
“우에에, 리슐리에.”
“괜찮아! 리슈 누나! 나중에 내가 결혼해 줄게!”
빠직!
“요 꼬마들이!”
차가운 도시 여자 리슐리에는 최근 꽤 다혈질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꼬마들을 뒤쫓았다.
여전히 마왕의 백발을 늘어뜨린 캐롯이 깔깔거렸다.
“미안하지만 선객이 있어.”
크랭크의 차남 볼트를 붙잡고 엉덩이를 두들기던 리슐리에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되물었다.
“꼭 한 번에 하나씩 쓰라는 법은 없잖아? 가령 실내용, 외출용으로 바꿔 쓴다거나…….”
“어어? 그렇게 되나?”
이리하여 리슐리에도 머리카락을 잘랐다.
“보리스와 같은 검은색인데 이쪽이 더 보드랍네.”
크랭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머리를 자른 리슐리에는 단발이 되어 일어섰고, 공방에 수리 맡긴 장비를 찾으러 왔던 모험단의 여성진들이 이 전설적인 행사를 참관하고 자기도 머리를 자르겠다며 성화를 부렸다.
“잘됐군요. 새로 조립 중인 오토마톤에 사용하겠습니다.”
“에에? 캐롯에게 주는 거 아니고요?”
단발머리가 된 리슐리에가 손거울을 들여다보는 사이 아직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의 여성 단원들이 크랭크에게 항의했으나 캐롯이 선을 그었다.
“너희들 착각하고 있는데, 이 마법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크랭크가 쓰는 거야.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주면 남자 친구가 생긴다! 반드시! 이미 있는 사람은 쓰면 안돼! 썸도 안돼! 수라장이 일어날 거라고!”
찔끔한 여자들이 포기를 선언, 하지만 기어코 자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어서 크랭크가 돈 자루를 가져다 나눠주었다.
“이것, 머리카락값입니다.”
“헉! 이거 꽤 짭짤하네요? 감사합니다.”
“돈 따위 상관없으니! 남친! 잘생긴 걸로!”
캐롯이 거들었다.
“돈 따위라니! 그거까지 받아야지 효력이 발생해!”
무뚝뚝한 투구의 거인은 자른 머리카락을 갈무리해 캐롯에게 내밀었다.
참 오랜만의 심부름.
“페트라 부인에게 가져다주고 완성된 방열 가발을 찾아오도록 해. 가게는 그대로야.”
“페트라 부인이 누구야? 가넷 여사 가게 아니고?”
투구 속의 눈가가 좀 웃는 것 같더니 캐롤을 바라보았다.
“캐롤, 안내해 줘라.”
“응! 알았어.”
“으잉?”
캐롤의 손에 이끌려 공방을 나선 캐롯에게 크랭크가 덧붙였다.
“저녁에는 점검할 거다.”
“오우우! 아니, 근데 페트라가 누구야?”
그리하여 도착한 가넷 여사의 가게, 사람 것뿐만 아니라 오토마톤의 방열 가발까지 취급하는 곳인데 최근 주인이 바뀌었다.
보기 드문 은색 머리칼을 틀어 올린 미인 새댁이 살포시 웃는다.
“사실 주인이 바뀐 건 아니에요.”
캐롯이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들었다.
“아! 너 기억해! 그때 은상 받은 은발이잖아! 페트라 부인이 너야?”
앞치마를 하고 작업실에서 나온 페트라가 캐롯의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빙글빙글 웃다가 팔을 벌렸다.
“한번 안아볼까요?”
“그래그래, 요즘 안아보자는 사람이 많아서 프리허그 시즌이야.”
캐롯이 선선히 페트라에게 안겨주었다.
그 모습을 캐롤은 흐뭇하게 지켜보았고,
“당신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 고마워요.”
“나는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구나. 음, 뿌듯하네.”
토닥토닥.
서로를 감싸 안은 캐롯이 페트라의 등을 두드렸다.
가넷 여사의 가게에 취직한 페트라는 그 뒤로도 꾸준히 기술을 배우고 연마해서 가게 운영을 도맡게 되었다.
“그럼 가넷 여사는?”
“얼마 전…….”
페트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퇴근하셨어요.”
“으엉? 집에 갔다는 말이야?”
페트라는 푸후후거렸고, 캐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버렸다.
자주 심부름을 다니는 바람에 사정을 잘 아는 캐롤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참, 여사님은 증손자를 돌보려고 가게를 맡긴 것뿐이야. 페트라 부인은 좀 엉뚱해, 너 있을 때도 그랬어?”
“으에엥?”
캐롤을 돌아본 캐롯이 다시 페트라를 보았다.
“너 원래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이게 다 장난기 많은 남편 때문이에요.”
남편 탓으로 돌리긴 하지만 안심하고 기댈 곳이 생긴 심약한 은발 소녀는 원래의 밝은 성격이 드러나 있었다.
머리카락을 받은 그녀가 결을 살피며 말했다.
“이건 그 리슐리에라는 마법사분 거네요. 이 곱슬머리는 같은 파티의 제시카 거고.”
“와! 그런 것도 보여? 가넷 부인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페트라가 또 히죽거렸다.
“아무래도 제가 그 마법의 수혜자고, 당신이 돌아오자마자 처녀들의 머리칼이 속속 도착하니 주변에 나이가 찬 아가씨들을 그냥 넘겨짚어 본 거예요.”
토끼마냥 콧구멍을 벌렁거린 캐롯이 다시 캐롤을 바라보며 페트라를 가리켰다.
“이 애 7년 전에는 울보에다 겁쟁이였다? 동네 불량배에게 걸린 걸 웬 술주정뱅이가 구해줬는데…….”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린 캐롯이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즉시 그녀의 손가락을 살폈다.
“반지! 너 설마!”
“맞아요. 그 술주정뱅이랑 같이 살게 되었지 뭐예요.”
캐롯은 이제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찾아온 리모를 떠올리고 두 손을 뺨에 가져갔다.
“리모오오오오!”
딸랑-!
때마침 먼지가 잔뜩 묻은 차림으로 리모가 들어왔다.
웬 오토마톤과 함께.
“어? 뭐야, 캐롤이 둘이네.”
“하나는 캐롯이다! 내 존재감 너무 옅어진 거 아냐? 요즘 훈장도 받고 상장도 받았는데!”
리모가 낄낄거렸다.
“7년이나 지나면 흐려질 만도 하지. 뭐냐, 가발 맡기러 온 거구나?”
캐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데 페트라가 호들갑을 떨면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정말! 먼지 털고 들어와요! 빨리잇! 상품에 먼지 앉으면 가넷 부인께 혼난단 말이에요!”
“알았어. 알았으니 떠밀지 마.”
리모는 순순히 밖으로 다시 나가 자기 옷의 먼지를 털고 데려온 오토마톤의 먼지도 함께 털었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그를 가리키며 캐롯이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녀석 좀 이상하지 않아? 몰리 마법사단에서 제일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인데.”
“음, 확실히 그렇긴 한데. 집에선 얌전해요. 말도 잘 듣고요.”
“그럼 다행이네. 캐롤은 모르겠구나. 공방에 샤를이라는 오토마톤이 있었는데 말이야.”
캐롯의 이야기를 듣던 캐롤이 눈을 반짝였다.
“와! 정말요? 진짜예요? 아빠에게 머리칼을 팔면 남친이 생긴다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만나셨는데요? 어떻게!”
아무래도 여자아이다 보니 남의 연애사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페트라는 당시의 놀라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곤란한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으으음, 하여간 그 뒤로도 어딜 가든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건 정말 굉장히 무섭고 놀라운 경험이었지. 하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단다. 정말 어딜 가든 나타났었어. 한 번은 식당에서 일하다가 손님에게 음식을 쏟았는데 우리 그이였지 뭐예요.”
페트라의 당시 현장 증언을 들으며 캐롯이 자신만만하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이 마법은 뭔가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서라도 인연을 이어주는 것 같아. 남자에게도 효과가 있어. 게다가 결혼하면 부부 금실도 끝내주지. 자, 페트라 부인의 증언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갑자기 페트라 부인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 버렸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
캐롤이 두 뺨에 손을 대고 호오오옵 하는 소리를 냈다.
좀처럼 얌전한 캐롤이 캐롯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녀석, 따라 하지 마라. 분간이 안 가잖아.”
다시 들어온 리모의 지적에 캐롤이 히히 웃었다.
가만히 캐롤을 내려다보던 리모가 캐롯을 보았다.
“잘 키워서 우리 며느리로 삼을 테니까 너 캐롤에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알았어?”
“헹! 엉? 며느리? 너희들도 애가 있어?”
리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페트라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으헤헤 웃으며 어딘가의 불한당처럼 혀를 빼물었다.
“당연하지, 이런 미인 부인을 가만 둘리가…… 허업!”
퍼퍽!
캐롯과 페트라의 주먹질에 리모가 배를 잡고 고꾸라졌다.
고운 이맛살을 찡그린 페트라가 주먹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애들이 있는데 이상한 소리 마요.”
“그래, 이 조심성 없는 것아.”
캐롤만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어른들의 발 빠른 대처를 구경했다.
하여튼 머리카락을 다시 맡기고, 새로 완성된 방열 가발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
상점가에서부터 도로변에 이르기까지 사방에서 인사가 쏟아졌다.
“이야! 캐롯! 오늘은 캐롯 오신 날! 덕분에 잘 쉰다!”
캐롯은 일일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들 지냈어? 조만간 길드에서도 환영회 할 거야!”
“으하하! 내가 죽은 줄 알았지?”
“이 몸이 돌아왔다!”
한참 그렇게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낯을 좀 가리는 캐롤이 힘들어했다.
아들들과는 달라서 아빠인 크랭크를 닮다 보니 아직은 여린 곳이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전부 써 버린 캐롤은 그만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캐롯은 잠시 자신감의 쿨 타임이 끝날 동안 그 곁을 지켰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그러니까, 크랭크도 어릴 때 이랬다는 거지? 처음부터 그런 철면피는 아니었던 거구나.”
캐롯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캐롤은 후하후하 심호흡 중.
꼬마 소녀의 귓가로 캐롯의 입가가 다가갔다.
“오토마톤의 인기에 짓눌리지 마. 예비 주인님아.”
“에?”
캐롤이 고개를 돌리자 자기와 꼭 닮은 소녀가 8월의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히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