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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22화 (322/329)

322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1)

입을 딱 벌리고 초록 잎으로 우거진 밀림을 살피던 캐롯은 결국 두 팔을 방방 흔들며 절규했다.

“아니! 아니아니! 으-아니! 분명 겨울이었잖아! 블리자드가 휘몰아치는 겨울! 여기는 전부 눈밭이었다고!”

캐롯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아직 메르카바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기엔 주변 상황이 너무도 실감 난다.

찌르르르-!

메엠메엠메-!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에 오도카니 선 캐롯은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으아, 망할 매미 우는 소리 짜증 나.”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한 가지 가능성, 혹은 걱정.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혹시 몇 십 년이나 흐른 뒤는 아니겠지?

오토마톤 캐롯은 자아를 인식하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화를 내 버렸다.

“우라질! 이 망할 심술쟁이 드래곤이! 뭐가 말을 통해!”

키이이이잉!

촤아아악!

춤추는 오르골 인형으로 변신한 캐롯은 넝쿨과 나무를 모조리 썰어 버리며 밀림을 헤집었다.

마왕령의 마수조차 그 기백에 놀라 도망칠 정도의 분풀이였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악!”

매미 소리 요란한 밀림 속에서 자기 이외의 비명 소리를 들은 캐롯이 회전을 멈추고 근처 나무에 딱 달라붙었다.

소리를 지르던 것은 약초를 캐러 들어온 어느 마족이었다.

“뿔 마족이잖아! 으럇!”

나무에서 뛰어내린 캐롯이 자켓을 날개 삼아 펼치고 활강하자 아래에 있던 마족들이 놀라서 도망쳐 버렸다.

“으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야! 어디 가! 잠깐만! 물어볼 게 있다고!”

어찌나 기민하게 움직이는지 도망친 여자들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캐롯은 툴툴대며 그녀들이 올라온 방향을 되짚어 나가기로 했다.

“분명 이쪽이지?”

놀랍게도 그곳엔 길 비슷한 것이 있었다.

“아! 이거 우리가 개척한 임시 도로구나! 좋았어!”

와다다다다!

밀림으로 가득한 산과 들판을 내달린 캐롯은 또 한 번 마족 무리와 마주쳤다.

그녀들은 규모가 꽤 있는 집단인지 짐꾼으로 오토마톤을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그만 캐롯을 보고는 질겁하며 달아나기 일쑤.

“으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야! 어딜 가! 내가 어디가 괴물처럼 보여!”

캐롯은 조바심에 슬슬 울화통이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들이 데려온 오토마톤들은 전원 검을 뽑아 들고 대기 중.

“잠시만! 나는 길을 잃었어! 지금 사람 사는 마을을 찾고 있어! 공격하지 마!”

반응을 살피던 캐롯이 나무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하나만! 하나만 가르쳐 줘! 지금 몇 년도야? 에탕다르의 역습에서부터 몇 년 지났어?”

“7년.”

눈이 왕방울만 해진 캐롯이 나무 뒤에서 뛰어나와 대답한 오토마톤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를 올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7년?! 7년이나 지났다고?”

“그렇다. 당신은 누구의 자동인형인가? 마스터들은 당신을 무서워하고 있다.”

다부진 몸체에 묘하게 생긴 오토마톤이었다. 키는 과거 피아노와 같은 정도였고 방열 가발 대신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전투복에 가려진 몸매는 어쩐지 남성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캐롯은 논리 오류를 일으켜 버렸다.

그때쯤 숨어 있던 마족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대체 뭐야, 저 자식?”

“우리 애랑 이야기 잘하는데? 말이 통하나?”

“기척이 꼭 그거 같지 않아?”

무리의 대장쯤 되어 보이는 자가 나섰다.

“우리는 모르핀 상회에 소속된 자들이다! 너 누구야!”

“말 높여! 존칭! 존칭!”

“하, 하지만 앤데?”

“넌 저게 사람 자식으로 보이냐?”

동료들의 재촉에 그녀는 다시 말을 고쳤다.

“어, 저, 누구세요?”

도끼눈을 뜨고 고개를 휙 돌린 캐롯이 갑자기 확! 하고 쫓아오자 깜짝 놀란 마족들이 도망쳤다.

그리고 오토마톤들도 다시 캐롯을 쫓기 시작했고.

밀림 속에서 정겨운 술래잡기가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기어코 그들을 붙잡아 오해를 푼 캐롯은 그늘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되레 하소연을 풀었다.

“7년! 7년이나 지나다니! 말도 안돼!”

오해를 푼 마족 약초꾼들 역시 점심을 먹으며 캐롯을 눈여겨보았다.

“네가 그 소문의 드래곤 슬레이어였냐? 그런데 어째서 이런 괴기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마왕류급 괴물한테서나 나오는 기운인데.”

“정말요? 그래서 아까 다들 도망쳤나? 아, 맞다. 이 머리 마왕님 거예요. 이 뿔도, 말이 나온 김에 마왕님은 어떻게 됐어요? 마왕 티르피즈.”

큼직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씹고 있던 마족이 대답했다.

“움움, 어떻게 되긴 여전히 마왕인데. 여기도 가끔 오곤 해.”

“가끔 온다고요?”

빵을 다 먹고 손가락을 쭙쭙 빨던 마족은 마무리로 옷가지에 슥슥 비벼 닦으며 대답했다.

“저번 사천왕 반란 때 얻어맞은 뒤통수가 쓰렸나 보지. 현지 시찰 겸 자주 도시를 방문하고 있어. 뭔가 하는 게 많은가 보더라.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때 옆에서 캐롯을 눈여겨보던 마족이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모르핀 사장이 원시림 안쪽에서 조그만 아이를 발견하면 상회로 데려오라고 말하지 않았어?”

“모르핀 사장?”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약초꾼 일행 중의 하나가 낄낄거렸다.

“어? 모르핀 알아? 특구 마을에서 잘나가는 마족 중의 하나야. 우린 그 녀석 밑에서 일하는 쫄따구들이고.”

동료들이 성화를 부렸다.

“쫄따구라니! 우린 엄연히 개인 사업자라고! 다들 자기 오토마톤 데리고 있잖아!”

“맞아! 그 자식이 값을 잘 쳐주니 붙어 있는 것뿐이야!”

“게다가 그 자식 부인이 굉장한 미인이고 말이지. 이 빵도 그 부인이 싸준 거라고. 움냠냠.”

여자들이 하나씩 씹고 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는 캐롯이 친구들에게 자주 만들어주던 것이었다.

그건 둘째치고 캐롯은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부인? 남편 아니고? 모르핀 여자잖아?”

“킥킥, 인간 반려를 마족 여자들은 그리 부르지.”

무리의 대장이 동료 하나를 가리켰다.

“어이 신입, 우리 작은 영웅을 가게로 모셔다드려. 여름의 원시림은 던전이라서 오토마톤이라도 헤매니까.”

신입 마족 여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에에에?”

“에에에! 거리지 말고 빨리 나 좀 데려다줘!”

캐롯까지 성화를 부려 오토마톤이 없는 신입이 안내를 맡았다.

민디라는 이름의 마족은 처음엔 좀 툴툴거렸으나 이내 캐롯과 이야기를 나누며 숲을 걸었다.

“7년 전 마왕령 탐사 도중 옛 숙적 드래곤을 만나 실종된 걸로 알려졌지. 그랬구나. 여태껏 붙들려 있었구나.”

“크으윽!”

캐롯이 가죽 치마를 물어 씹으며 분통을 터트리다가 민디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다 왔다. 저기 봐라. 특구 마을이야.”

“우와-!”

웅장한 크기의 도시가 언덕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7년 전 특구 마을은 겨우 상점가가 들어서고 건물도 막 세워지던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가히 방주 도시급의 규모를 자랑했다.

“방벽도 생겼네?”

“어, 분명 너 실종되고 얼마 안 있다가 마족들이 쳐들어왔다고 했었지? 지금도 간간이 심술을 부리는 자식들이 있어서 저걸 세웠데.”

민디를 따라 방벽 안으로 들어가니 각양각색의 마족들과 인간들, 엘프, 드워프가 섞여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점도 많고, 좌판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전부 캐롯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다 쳐다보네. 너 그거 좀 어떻게 할 수 없냐? 애들이 놀라잖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하여튼 빨리 모르핀 보러 갑시다! 난 지금 마음이 급해! 주인님 소식이 급하다고!”

7년 전 막 세우던 건물 위치를 떠올린 캐롯이 눈에 익은 거리를 따라 상점가를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 맞이한 것은 웅장한 5층짜리 건물.

“오와! 내 건물 좀 봐! 캐롯 빌딩이 무려 5층! 계획엔 3층이었는데!”

건물을 우러러본 캐롯이 눈을 반짝이며 호들갑을 떠는 사이 따라온 민디가 북적이는 상점 건물로 들어가더니 사람을 불러왔다.

캐롯이 몹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모르핀!”

“캐롯?”

별로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이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캐롯과 손을 맞잡은 모르핀이 즐겁게 웃었다.

7년이 지났으나 마족이라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때 다른 아는 얼굴도 뛰쳐나왔다.

“캐롯이 돌아왔다고?!”

캐롯이 두근두근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는데 키가 더 커지고 어깨가 벌어진 사내가 캐롯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새카만 검은 머리에 갸름한 얼굴선이 인상 깊인 미남이었다.

“캐롯! 나, 날 알아보겠어?”

“보리스? 세상에! 보리스야?”

흑발 미청년 보리스는 어느덧 굉장한 미남자가 되어 웃고 있었다.

보리스와 또 손을 맞잡은 캐롯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다.

보리스도 따라서 빙글빙글 돌았고.

캐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투덜이 보리스! 7년 만이잖아! 건강해? 여전히 머리는 기네.”

“이건 모르핀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어.”

때마침 검은 머리에 뿔이 달린 꼬마 소녀가 쪼르르 달려와 보리스에게 매달렸다.

“아빠, 무서워. 누구야?”

캐롯이 기겁했다.

“으허억?! 보, 보리스 너 이 자식!”

“아무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 중얼거린 보리스는 승리자 모르핀을 가리켰다.

팔짱을 한 모르핀은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다.

“인간 남자를 끼고 사는 건 모든 마족 여편네의 꿈이지.”

“모르핀! 평소 보리스를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느끼긴 했지만 굉장해!”

오랜만에 즐겁게 웃어 버린 모르핀은 바로 캐롯을 데리고 상회 건물 뒤로 돌아갔다.

차고지로 보이는 창고에는 아리에테에게 양도받은 자동 이륜차가 세워져 있었다.

자리에 오른 모르핀이 고양이처럼 웃으며 상어 이빨을 히죽 드러냈다.

“이야기는 나중에 사람들 다 모였을 때 들어도 돼. 넌 지금 네 주인님의 근황이 더 궁금할 거야. 그렇지?”

“딱 아네! 우린 더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모르핀!”

캐롯이 냅다 뒷자리에 올라탔다.

“보리스! 민디에게 상금 줘! 잠깐 캐롯 바래다주고 오마!”

모르핀 사장의 외침에 민디가 확 밝아졌다.

“어어? 상금이 있었어?! 야호!”

기잉! 기이이이잉! 촤아아악!

바퀴를 미끄러뜨리며 마을의 대로를 벗어난 자동 이륜차 로시난테는 새로 포장된 도로를 달려 삽시간에 방주 도시 아르곤에 도착했다.

끼이익!

모르핀은 캐롯을 일부러 광장에 내려주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록 해. 바뀐 동네 구경도 할 겸.”

“역시 뭘 좀 아네! 아니, 근데 여기 있던 청동문은 어디로 갔어?”

여전히 로시난테에 올라 있던 모르핀이 손가락을 뻗었다.

광장 한구석에 돔형 건물과 출입구가 보인다.

“그날 습격 때문에 방벽 안으로 옮겼어. 자, 어서 가. 너희 공방은 그대로야.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이사도 가지 않았다.”

폴짝 뛰어내린 캐롯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전과 변함없는 길을 따라 달렸다.

그러다 모험가 길드 건물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쾅-!

“으하하! 이 양반들아! 내가 죽은 줄 알았지!”

깜짝 놀란 모험가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캐롯은 사라진 뒤였다.

“뭐야? 뭐가 왔다 갔어?”

“캐롯 아녔어?”

“이 친구가 꿈을 꿨나.”

“아냐! 분명히 봤다고!”

길드 건물에 소란을 일으킨 캐롯은 도도도 달려가다 마리아의 여관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또 들이닥쳤다.

“으아하하하! 내가 돌아왔노라! 마리아! 마리아 살아 있지? 어서 대답해!”

와장창!

깜짝 놀라 소반을 떨어뜨린 여점원이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캐롯? 아, 예 마, 마리아는 건강해요.”

“그럼 됐어! 난 바쁘니 이만 간다! 좀 있다가 또 올게!”

주방에서 나이를 좀 먹어 버린 마리아가 나와서 무슨 일인가 살피는데 점원과 근처 자리에서 점심을 먹던 모험가들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뭐야? 왜들 이래? 누가 나 부르지 않았어?”

점원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봤죠?! 아저씨 봤죠!”

“봤어! 봤다고! 이런 제길! 돌아왔구나!”

둘은 이제 손을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고, 마리아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뭘 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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