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북부 개척! (1)
학자들은 마왕령의 자원뿐만 아니라 단절된 그들의 문화도 궁금했던 모양인지 이동 중에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따라온 마족 길 안내꾼들이 짜증을 부렸다.
“단장! 이 자식들 때려도 되냐? 자꾸 귀찮게 하는데!”
아리에테가 헛기침하며 탐구욕에 불타는 학자들을 진정시켰다.
“다음 목적지까지 조금 서두르시죠. 바람이 너무 불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눈이라도 다시 내리면 끔찍한 밤이 될 겁니다.”
휘이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아니, 무슨 놈의 날씨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갑자기 왜 이래?!”
드워프의 원성에 마족들이 낄낄거렸다.
“눈이 좀만 더 오면 네 녀석 파묻히는 꼴을 볼 수 있겠다!”
“아니, 이런 고얀! 드워프가 눈 속에 그냥 파묻힐 것 같으냐? 멋진 이글루를 만들어 주마!”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캐롯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소리쳤다.
“그만하고 바람 피할 곳을 찾아줘! 그러려고 같이 온 거잖아! 우오오오! 누가 나 좀 잡아주셈!”
주위를 살피던 유유가 손짓했다.
“저기 숲이 보인다! 저리로 가자!”
와사사사삭! 푸확!
바람에 계속 굴러다녀서 아예 눈 속을 파고 두더지처럼 이동한 캐롯이 튀어 올랐다.
“와! 숲이다! 여기는 바람이 하나도 안 불어! 빨리 와! 빨리!”
울창한 삼나무 군락지로 들어서자 사시사철 푸른 잎이 지지 않은 삼나무 가지가 눈과 바람을 막아주어 안쪽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대신 눈 더미 때문에 지붕이 생겨 버려 한낮에도 숲 안쪽은 어두웠다.
캐롯의 곁으로 어느새 눈을 잔뜩 뒤집어쓴 아리에테가 덜덜 떨면서 다가왔다.
“그, 그럼 일단 드드들어가자. 갑자기 체온을 너무 빼, 빼앗겨서 움직이기 힘들어.”
휘이이잉! 휘잉!
아주 본격적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사방의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던지라 탐사 대원들은 서둘러 삼나무 숲으로 대피했다.
눈을 털던 모르핀이 동행한 마족 동료들을 불렀다.
“유유, 이 근방에 이런 나무숲이 있었나?”
“엉? 난 모르겠는데? 그보다 배고프다! 밥해라! 삼시세끼 제공이라서 지원한 거라고!”
마족 유유가 성화를 부리자 캐롯이 영차영차 돌을 모으고 냄비를 걸었다.
“먹보 마족을 위해 오늘도 뜨끈한 스튜를 끓여봅시다! 다들 땔감 좀 모아와 봐! 망치는 밖에 눈 좀 떠오고. 아니, 근데 애 이름이 망치가 뭐요?”
건육을 꺼내 씹던 유유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저게 주인도 몰라보고 망치 들고 덤비지 뭐야?”
때마침 망치가 솥에 한가득 눈을 떠왔다.
“가져왔습니다.”
“어, 잘했다. 이제 여기로 와.”
유유는 자기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망치가 자리를 잡자 그걸 뒤에서 껴안은 유유가 흐뭇하게 웃어댔다.
“어으으, 뜨끈뜨끈하구나.”
“쉬지 말고 나무 좀 해오라고!”
마력 화로에 냄비를 걸고 눈을 녹이던 캐롯의 성화에 유유가 되물었다.
“그걸로 끓이면 되는 거 아냐?”
“우선순위를 모르네. 땔감이 지천인데 그걸 먼저 써야지. 내일도 눈 집에서 지낼 텐데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 해. 들었으면 다들 움직이삼! 훠이훠이!”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유유처럼 데려온 전투용 오토마톤을 하나씩 끌어안고 몸을 녹이던 탐사대 멤버들이 주변 나뭇가지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농땡이를 피웠다.
생태학자로 따라온 엘프들은 삼나무 군락 주변의 식물군을 살피며 연신 감탄했고, 광물을 살피러 온 드워프는 큼직한 바위를 망치로 두들겼다가 드러난 그 단면에 비명을 질러댔다.
“오, 오팔! 이렇게나 커다란 오팔이라니! 세상에 이 빛깔 좀 보소!”
탐사 내내 발광을 멈추지 않는 엘프와 드워프를 보고 뚱한 얼굴의 마족들이 모르핀을 보았다.
“삼나무가 훌륭해서 뭐에 쓰냐?”
“오팔은 또 뭐였지?”
“보석의 일종이다. 그냥 좀 예쁜 돌이지.”
“먹지도 못하는 걸 가지고 되게 좋아하네.”
이 삼나무 숲에는 그런 오팔이 천지였다. 그래서 불가에 깔아놓은 돌도 전부 오팔 원석, 드워프는 안타까움에 부들부들 떨었다.
“이 귀한 보석으로 냄비 받침이라니!”
“그 보석 냄비 받침으로 끓인 스튜를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국자를 든 캐롯이 그릇을 내밀자 드워프는 감사히 그걸 받았다. 그러고는 그윽한 표정으로 스튜를 떠먹으며 감상을 내놓았다.
“내 인생에 오래도록 기억될 맛이로다. 으음, 오팔의 풍미가 느껴지는구나.”
그릇에서 스튜를 퍼먹던 마족 여자들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여기다 돌멩이 넣었어?”
“엥? 음식에 돌을 왜 넣어요! 그건 그냥 드워프식 감상이에요.”
후릅릅거리며 스튜를 떠먹던 드워프가 얼빠진 마족들을 쳐다보더니 무릎을 치며 낄낄 웃기 시작했고, 또 속아 버린 마족들은 역정을 내 버렸다.
따뜻한 식사로 몸을 푼 탐사 단장 아리에테가 야영을 선언했다.
“좀 이르지만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겠습니다. 주변 탐사에 몰두하실 분들은 오토마톤을 대동하고 나서 주십시오.”
모르핀이 덧붙였다.
“그리고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지 말 것. 우리가 들어왔다면 다른 놈들도 여기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커.”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빛만은 초롱초롱.
곧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신기한 식물군이나 광물 살피기에 급급했다.
팔짱을 끼고 숲 밖의 눈보라를 지켜보던 모르핀은 공중에 떠 있는 그들의 보급선을 올려다보며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탐사단 하나당 탈출정을 겸한 무인 공중 보급선이 포함되어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내 꿈이 이뤄질 시기도 가깝다.”
“님 꿈이 뭔데요?”
어느새 나타난 캐롯의 물음, 모르핀은 히죽 상어 이빨을 드러냈다.
“상점을 차리고 돈을 잔뜩 벌어서 떼부자가 되어 볼 참이다. 그래서 종족 불문하고 모두를 부려 먹으며 사는 거지.”
“오오! 현실적이네.”
모르핀이 되물었다.
“자동 인형도 꿈이 있나?”
휘이이잉!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먼발치서 구경하던 캐롯이 팔짱을 끼었다. 머리 위 더듬이 안테나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꿈이라…… 그거 먼 미래의 다짐이잖아? 주인님과 계속 이렇게 신나고 소박한 모험을 하는 거 말고는 딱히 모르겠는걸?”
크랭크를 떠올린 모르핀이 현실을 지적했다.
“인간은 그리 오래 못 살잖아? 네 주인이 모험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앞으로 십수 년 정도다. 그 후엔?”
“그 후?”
모르핀이 슬쩍 사심을 드러냈다.
“주인님이 죽고 할 일이 없으면 너도 우리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테냐?”
주인님이 죽……?
드드드득기기기기!
오랜만의 논리 충돌, 모르핀이 당황한 사이 좀 버벅이던 캐롯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외쳤다.
“그러면 주인님의 자손과 모험을 계속해야지! 맞아! 그러면 되는 거야! 나 좀 천잰데? 아하하!”
이것은,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자기를 바로 잡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어느 인형의 삐뚤어진 외침으로도 들릴 수 있었다.
그때 아리에테가 캐롯을 불렀다.
“캐롯! 텐트 치는 것 좀 거들어줘!”
“바보네! 둘이서 그것도 아직 못해?”
도도도 달려가 버린 캐롯을 돌아보며 모르핀은 쓰게 웃었다.
유대인지 집착인지 모를 것에 전설적인 자동인형의 향후 미래를 포섭해 보려던 그녀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난 할 만큼 했다고?”
어깨를 으쓱인 모르핀도 텐트를 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 캐롯을 끌어안고 텐트 안에서 눈을 붙인 아리에테가 거창한 하품을 하며 밖으로 기어 나왔다.
“으어어어! 찌뿌드드하구나.”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야. 꼼짝달싹할 수도 없이 밤새 안겨만 있었네.”
준비 운동 삼아 팔다리를 흔들어보던 캐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묘한 기색을 감지했다.
“어어? 경비들이 없어? 탐사대 사람도 안 보이고?”
졸린 눈을 비비던 단장 아리에테가 놀라서 주변을 살피니 정말로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 어디 갔지? 리슐리에! 로테-! 이봐!”
그녀가 목청껏 외쳤으나 주변의 검은 숲속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다른 텐트를 들춰보던 캐롯의 외침은 당황한 탐사 단장의 정신을 더욱 크게 흔들었다.
“안에도 사람이 없어!”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야영지의 그 많은 텐트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보급선? 보급선은!”
숲 밖으로 달려 나간 캐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보라가 사그라지고 햇살이 쏟아지는 백색 평야 위로 야트막이 두둥실 뜬 보급선이 보였다.
“있어! 하지만 역시 사람은 없어!”
다시 돌아온 캐롯과 아리에테는 이제 안쪽의 검은 숲을 돌아보았다.
“설마, 우리만 놔두고 다 같이 삼나무 숲속 탐험을 떠난 거야?”
“아무리 좋게 봐도 이건 이상해!”
그러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고 냅다 고함을 내질렀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캐롯이 귀를 막을 정도였다.
“지오! 비타! 보리스! 다들 어디에 있어! 모르핀-! 리슐리에-!”
탐사 단원들의 이름을 다 부르며 소리를 질러대도 대답이 없다.
이쯤 되니 슬슬 불안감이 생겼다.
캐롯이 킁킁 콧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들었다.
“여기 있어. 내가 찾아올 테니.”
“그러다 너까지 없어지면!”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는 여기 남아 있어야 해. 그리고 아리에테는 혼자가 아냐. 그렇지, 시온?”
아리에테의 머리 장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여튼 집 지키고 있어! 3시간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구조 요청하고!”
내내 강인한 모습을 엿보이던 여기사 아리에테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돌아와!”
저만치 앞에서 손을 흔든 캐롯은 다시 와다다 삼나무 숲으로 뛰어들었다.
캐롯은 달리면서 바닥의 흔적을 살폈다.
확실히 안쪽으로 들어간 발자국이 여럿 보인다.
그 흔적을 추적하며 짬짬이 나무에 칼집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데헷! 던전 길 찾기의 기본 소양이라고.”
촥촥!
사람이라면 고된 일이지만 오토마톤인 캐롯에게 5미터 간격으로 칼집을 내면서 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었다.
크랭크를 따라다니면서 자주 했던 일이기도 했고.
“호호호! 옛날 생각도 좀 나는걸?”
촥촥!
한참 그렇게 달리던 캐롯이 스쳐 지나가는 삼나무 사이로 희끄무레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찾았다!
끼이이익! 촤아악!
재빨리 몸을 돌리고 엉덩이를 치켜세우며 미끄러진 캐롯이 허리를 펴더니 두 팔을 들고 빽 소리쳤다.
“야! 너희들 여기서 뭐 해!”
어두컴컴한 숲을 서성이던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리더니 서둘러 다가왔다.
전투복 어깨에 새겨진 숫자는 51호와 53호.
그들이 말하는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았다.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렇습니다. 단장님께 보고 후 구출 작전을 나섰습니다만, 요구조자는 발견치 못했습니다.”
캐롯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단장은 나랑 같이 자고 있었는데?”
“아닙니다. 우리와 같이 새벽 불침번을 섰습니다.”
캐롯은 입을 다물었다.
밤새 그녀에게 안겨 있던 캐롯이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밖의 소리는 못 들었을지언정 아리에테가 깨는 건 확인하지 못했다.
“아, 여기 정말 뭔가 있나 본데? 저번에 리슐리에가 말하던 개념 던전 같은 곳인가?”
그네들이 서 있는 삼나무 숲속은 여전히 온통 어둠뿐이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범상치 않은 곳.
캐롯은 나무에 그어 놓은 칼자국을 설명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또 다른 사람은 본 적 없지?”
“봤습니다.”
캐롯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 누구?”
잠자코 있던 오토마톤 53호가 캐롯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3시간 전 당신을 보았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캐롯이 여기에 들어온 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날 봤다고?
슬그머니 눈이 반달이 된 캐롯이 으헤헤 웃어 버렸다. 잃어버린 동료들의 걱정도 들었지만 묘한 즐거움이 샘솟는다.
“오우야! 겁난다! 무슨 도플갱어나 고스트라도 있는 거야? 그런 고급 환상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하여간 알았지?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말고 바로 돌아가! 겁쟁이 여기사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상위 개체로 인식한 캐롯에게 명령받은 오토마톤들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씩씩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몸을 돌린 캐롯은 나이프로 나무에 표식과 글자를 남겼다.
-캐롯이야! 이 글을 본 사람은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고 표식을 따라 달려!
그리고 또 와다다다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