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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19화 (319/329)

319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갈무리! (3)

드레스를 벗고 미니스커트에 자켓을 걸친 상여자 마왕 티르피즈가 다가왔다.

“네가 성녀 베키인가? 처음 보는군. 내가 바로 너희가 노리던 마왕이다.”

빠직.

마족들도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녀를 알아보는 자들이 꽤 있었다.

“오, 베키. 여전하군.”

“베키다. 나도 그날 여기서 너를 봤다. 끔찍했지. 음, 여전히 끔찍하구나.”

빠직빠직.

“저게 성녀 베키라고?”

“한성깔하는 녀석이지. 가까이 가지 마라. 문다.”

놀림에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베로니카가 테이블을 붙잡아 엎으려는데 주변 오토마톤들이 급히 막아서 뒤엎지는 못했다.

“베키라고 부르지 말라고! 베로니카라고! 베로니카!”

“저 봐, 내가 성깔 있다고 그랬지? 그때 엄청났다니까?”

한때 적이었던 자들과의 티 타임은 이처럼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용사 일당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자들도 있을 법하지만, 그런 녀석들은 이미 벌써 등을 돌리고 에탕다르를 따라 떠나 버렸다.

“그래서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지경이지. 그래서 말인데, 베키. 마왕군 간부가 되어 볼 생각은 없느냐?”

푸흐흡!

마시던 차를 뿜어내 버린 베로니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버렸다.

그녀는 찻물을 줄줄 흘리며 물었다.

“저요?”

베키가 마왕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으나 그녀는 의연했다. 또한 그간 할 일을 소홀히 해온 자신의 태만 역시 담담히 인정하고 있었다.

“결국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사 에스파다에게 마왕을 못 쓰게 할 속셈이 있었다면 그건 반쯤은 성공했단다.”

“에스파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 솔직히 남자인 줄은 몰랐지만요.”

용사를 옹호하려던 베키도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버렸다.

현재 그녀는 고르곤의 공방에 숨어 있는 상태로, 빛의 성녀와 검은 성녀가 동시에 출현한 전대미문의 사태에 요즘 아르곤은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요즘 각지의 신전이며 종단 대표가 몰려와서 빛의 성녀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부리고 있다니까요?”

캐롯의 부연 설명에 베키는 자신의 거취를 진심으로 망설이는 듯했다.

이어서 짝퉁 마왕 캐롯이 근엄한 자세로 무릎을 꿇더니 테이블에 앉은 성녀 베로니카를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

“모두, 현재 유일하게 남은 하느님의 메신저를 찬양합시다.”

그러자 마왕이 선뜻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부하들도 스스럼없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마왕이 읊조렸다.

“신이시여, 당신은 우리를 실패작이라 치부하시며 그 멸종을 바라시지만 그래도 주어진 생명, 착실히 이어 나갈 것입니다. 부디 바라옵건데, 앞으로 저희에게 신경 꺼라, 이 개새끼야!”

마지막을 장식한 사나운 목소리에 마왕의 부하들이 캬! 하는 감탄사를 내놓았다.

“이래야 우리 마왕님이시지!”

“마왕님께서 돌아오셨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에 묻은 눈을 털던 그녀가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백색 단발에 외뿔이 돋아난 마왕이 으르렁거렸다.

“목놓아 울어도 하늘의 어느 개자식은 손 따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나를 다독여 준 것은 어느 조그만 인형 소녀의 마음 씀씀이 하나뿐, 결국 우리가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데헤헤,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거든요.”

두 손으로 볼을 감싼 캐롯이 부끄러워하는 사이 마음을 굳힌 베로니카가 고개를 들었다.

“할게요. 마왕성 간부.”

“헷?! 진짜?”

캐롯이 놀라워하는 것과 반대로 마왕군은 대체로 기꺼워했다.

적으로 마주했을 때 보았던 그 끔찍하고 엄청난 화력이 우리 편!

베키는 계속 말했다.

“지금 많은 분이 저를 감싸주고 계시지만 계속 그렇게 있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종단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어요. 저는 하찮은 마녀 속성을 가진 시골 계집애에 불과했어요. 우연히 강림 주문에 적성이 있어 성녀가 됐을 뿐.”

마왕과 모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마녀 속성이 뭐냐?”

마녀 속성, 베키가 깨어난 현시대에는 사라진 말로서 마법사의 소질을 가진 소녀들을 말한다.

신전이나 마법 학교에서 지식과 심신을 단련하고 수양하면 신관이나 마법사가 되지만, 무지로 그걸 방치하면 극히 드물게 마녀로서 각성한다.

성녀 베로니카가 부끄러워하며 중얼거렸다.

“저는 모든 일이 끝나면 성녀를 그만두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요.”

그런 성녀를 보고 몇몇 마왕군의 사내들이 코를 벌렁거렸다.

마왕이 히죽 웃었다.

“괜찮다면 내 아들 중에서 골라보겠느냐? 용사와의 사이에서 얻은 녀석들이야. 외모만큼은 다들 썩 괜찮은 편이라고 자신한단다.”

내내 입 다물고 있던 청년들이 멋진 자세로 그녀를 유혹했으나 기겁한 베로니카는 극구 사양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옛 동료의 자식들이라는 것이 못내 찜찜했다.

“그, 뭐랄까…… 윤리적으로 뭔가 거부감이 생겨서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아직 강림 주문을 사용할 수 있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베키가 마왕 티르피즈를 바라보았는데 오히려 마왕은 그녀의 손을 잡고 흥분해 버렸다.

“걱정 마라. 주문의 견제 방법이야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네 능력은 지금의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야.”

보통이라면 이 경우 위험도를 먼저 고려하겠지만 파괴적인 강함을 우선시하는 마족의 우두머리께서는 사고방식이 남달랐다.

선뜻 이곳에 초대한 것도 그렇고, 마왕의 배포에 되레 놀라 버린 베로니카는 결국 마음을 굳혔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존경과 찬양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을 위한 신분 세탁의 수단이었다.

“저쪽에서 몇 년 보내면 조용해지겠죠. 그다음엔 제 인생을 찾아 떠날 테니 그 점 숙지해 주시고, 이제 연봉 협상을 시작하시죠.”

잠시 후 세속에 물든 여신관에게 마왕은 쩔쩔매기 시작했다.

캐롯이 파하하 웃으며 금발 태닝 양아치들을 쳐다보았다.

“아쉽게 됐네?”

하지만 금태양 마왕 아들들은 쿨했다.

“여자라면 얼마든지 있어. 하나에게 묶여 있다니 미친 짓이지. 오히려 잘됐다.”

“내 타입이야. 반드시 돌아보게 만들어 주겠어!”

세상 모든 여자가 타입인 발칸이 의욕을 불태우는데 캐롯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어디 갔었어? 안 보이던데.”

“마왕님이 나오지 말라고 하셔서 숨어 있었다. 쉬페르만 나갔다가 죽어 버렸지.”

“어어? 쉬페르가 죽었어?”

“음.”

쥬다는 에탕다르를 따라가 버렸고, 남은 것은 르메이와 발칸뿐이었다.

잘 웃던 마왕의 아들 쉬페르를 떠올린 캐롯이 쓴 표정을 지었다.

“효자는 항상 뭔가 아쉽네.”

“무슨! 마왕님을 대신해 죽다니 큰 영광이야. 다음엔 내가 나설 거다.”

“아니야, 나야.”

마왕이 고개를 돌리더니 으르렁거렸다.

“멍청한 녀석들, 나는 대신 죽어줄 놈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옙!”

차렷 자세로 뻣뻣해진 그들을 보고 캐롯은 히히 웃어 버렸다.

이번 일로 서로 입은 피해는 적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분노와 증오가 계획의 장애물로 작용했으나, 사람들의 욕심은 그것마저 뛰어넘어 특구 마을의 조성을 이어 나갔다.

“억지로 도는 수레바퀴 같아.”

이제 겉모양을 잡기 시작한 3층 건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 캐롯의 감상이었다.

곁에는 크랭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내부 공사가 한창인 건물 안에서는 플레인과 메이브가 또 툭탁거리는지 하여간 소란스럽다.

크랭크의 목소리가 투구에서 흘러나왔다.

“그래도 굴러가지.”

“꾸역꾸역?”

캐롯이 히히 웃으며 고개를 들자 크랭크가 엄지척을 세웠다.

“그래, 꾸역꾸역.”

캐롯 역시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또 대충대충!”

“음, 하지만 인생은 대충 살아도 할 일을 대충하지 말자.”

“와하하! 그거 최고로 주인님다운 대답인 것 같아!”

크랭크와 캐롯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잠깐 킥킥큭큭 웃다가 오늘도 신나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신축 중인 건물로 들어섰다.

수일 후, 복구 작업이 한참 진행되는 동시에 원시림 탐사대도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이전에 경비단 건물이었다가 지금은 특구 마을 운영 위원회 건물이 되어 버린 곳에 엄선된 인력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간중간에는 길 안내 역할을 받은 마족들도 여럿 끼어 있었다.

출발 직전, 그들의 사기를 독려하기 위한 양측 구역장과 위원장의 연설이 시작됐다.

“눈이 녹으면 몬스터가 다시 들끓게 되니 기회는 겨우내 두어 달뿐이다! 가능한 넓은 지역을 탐사하고 그걸 토대로 자원 지도를 작성한다! 그대들의 안전과 무사 복귀를 기원한다!”

헤리슨에 이어서 방한복을 껴 입은 푸시케가 올라왔다.

“어, 춥다. 조심해서 다녀와. 신기하다고 막 나대지 말고, 이상!”

출발 탐사대는 모두 5개, 그중에 캐롯의 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투복 차림에 하얀 방열 가발을 포니테일로 묶고 마왕의 뿔까지 장식한 꼬마 인형이 당찬 소리를 내질렀다.

“탐사대 출발-!”

“우와아아아!”

“으랴아아아!”

탐사대 전 인원이 함성을 내질렀다.

구경 나온 사람들도 그들의 무사 복귀를 기원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1번 탐사대부터 들어갑니다!”

뽀드득뽀드득!

선두에 선 마족들의 안내를 받아 일렬로 선 자들이 눈길을 헤치며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으로 들어섰다.

탐사대엔 마족, 인간, 엘프, 오토마톤에 드워프까지 끼인 다채로운 종족 구성을 자랑했다.

고개를 든 비타가 공중에 떠 있는 작은 비행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엘프 장로회에서 학자들과 함께 빌려준 것으로 각 탐사대의 보급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저거 타고 들어가면 되지 않아요? 왜 걸어가요?”

“육로 개척 때문이래. 나올 땐 저 비행선 타고 나올 거래.”

겨울 기사단은 크랭크와 코비를 제외하고 전원 참가, 여기에 모르핀까지 끼었다.

그 모르핀이 뒤를 돌아보았다.

“네 마법은 여기서 못 쓸 텐데. 그래도 따라오는 거냐?”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리슐리에가 코트를 벌리자 안쪽에 각종 시약과 스크롤이 잔뜩 매달려 있다.

“마법사가 입으로만 마법을 쓸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호오!”

5개의 팀은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나가며 나무를 베고 바위를 깨부숴 간이 육로를 개척했다.

걷기 좋은 땅이면 그대로 두고, 길이 정 없으면 토목공사를 벌이는 식이었다.

하지만 겨울이라고 해서 몬스터의 습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겨울잠에 든 괴물을 깨워 전투를 벌이거나 하는 이변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렇게 수일간 이어진 겨울 원시림 탐험과 자원 탐사는 그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그 탐사대의 안내역을 맡은 마족들도 어리숙한 자들이 아니어서 동행한 학자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잘 들어두었다.

“오! 여기는 코르크 나무 군락지로군요. 이거 참 굉장히 두꺼워요.”

“코르크? 그게 뭐냐?”

따라온 엘프 학자가 하하 웃으며 커다란 나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데 푹신푹신하다.

“이 껍질을 벗겨서 병마개로 사용하지요.”

“병마개? 아, 술병 마개를 말하는 거구나.”

“뭐냐, 마족은 유리병도 없느냐?”

드워프 광물학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대자 따라온 마족들이 또 코를 벌렁거렸다.

“이 털북숭이 땅딸보가 자꾸 깔보는데. 나만 기분 나쁜 거 아니지?”

“아니아니, 깔보는 것이 아니다. 되레 안타까워서 그래. 세상에 유리병이 없다니, 그럼 그릇은 뭐로 쓰느냐?”

모르핀이 대답했다.

“흙을 빚어 굽거나 구리를 때려서 적당히 만들어 쓰지. 많이 만들면 그걸 사고팔기도 하고.”

모처럼 들려오는 마족들의 신비롭고도 안타까운 생활상, 드워프와 엘프 학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오오! 마족도 시장 정도는 있구나! 가보고 싶다! 자네들의 문명 수준을 보고 싶어!”

여기 와서 생활 수준이 높아진 모르핀은 갑자기 부끄러워졌고, 다른 마족들도 얼굴을 찡그렸다.

“자꾸 신경 긁는 소리 말고 너희들 할 일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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