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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17화 (317/329)

317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갈무리! (1)

티르피, 나의 마스터와 당신의 용사는 죽었습니다. 그는 이제 없습니다. 그러니 꿈에서 깨어나 잠자리부터 정리하십시오.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머리와 상반신 일부분만 남은 피아노는 오토마톤다운 충고를 끝으로 작동을 멈췄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마왕은 다 부서진 인형을 끌어안고 훌쩍이기만 했다.

용사가 수명을 다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그때는 그녀를 위로해 주는 인형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흐우우우! 용사가 남겨준 유품이…… 나의 피아노가……!”

좀 떨어진 곳에 처박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캐롯은 이내 눈을 부릅뜨고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마왕은 부서진 피아노를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었는데 딱히 난동을 부릴 기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니 무장을 준비하고, 그런데 저 녀석 아까 일부러 얻어맞으러 덤벼든 것 같지 않았어?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아쉬운 대로 근처 나무 막대를 부목으로 대고 밧줄로 동여맨 캐롯이 뒤뚱뒤뚱 마왕에게 다가갔다.

풀 차지 상태의 고대 병기는 여전히 그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네, 네가 없으면 나는,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구슬프게 흐느끼는 마왕을 가만히 바라보던 캐롯은 토끼처럼 조그만 콧구멍을 벌렁벌렁거리더니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때마침 통신기가 작동했다.

-어찌 됐냐? 들리나? 캐롯!

캐롯이 대답했다.

“어찌저찌 피아노를 부쉈는데 마왕의 멘탈도 같이 부서진 것 같아. 망가진 인형을 끌어안고 질질 우는 동네 아이가 되어 버렸어.”

통신기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둘을 번갈아 보던 캐롯이 크랭크를 불렀다.

-듣고 있다.

“머리만 무사하면 다시 살릴 수 있지?”

-봐야 알겠지만, 상태만 좋다면 소생 자체는 어렵지 않아.

마왕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캐롯은 다시 통신기에 대고 스틸레인을 불렀다.

-뭐냐?

“용사 에스파다의 유품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마왕이 계속 우는데 뭐라도 하나 쥐어주고 싶어.”

잠시 후 스틸레인의 목소리가 마왕성에 울린다.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머리카락 일부와 사랑니를 뽑아 놓았다. 박물관에 전시 중이지.

총을 버린 캐롯은 주저앉은 마왕의 하얀 머리에 작은 손바닥을 올렸다.

“네 인형 고쳐줄게. 그만 울어.”

여전히 울상을 지은 마왕이 어린아이처럼 되물었다.

“저, 정말?”

“그럼, 이만하면 네 마음의 땟국물도 씻겨졌을 거야. 그러니 이젠 뚝!”

그리고 그 앞에 같이 앉아 버린 캐롯은 힘이 다 빠진 듯 포아! 하는 한숨 소리를 내 버렸다.

왼팔은 작동 불능, 오른쪽 다리는 날아갔고, 쓸 수 있는 건 오른팔과 왼쪽 다리뿐.

“에이, 머리카락 또 타 버렸어. 보리스 건데.”

남은 손으로 헝클어진 방열 가발을 가다듬고 있으니 찬바람이 불어온다.

포격에 부서진 벽 너머의 세상은 이제 새하얀 눈발이 본격적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주위를 살피던 캐롯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그 고생을 했는데도 얼굴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다분하다.

“있지, 마왕님. 용사랑 있었던 이야기 좀 해줘 봐.”

후으읍!

거창하게 콧물을 들이켠 마왕이 손등으로 눈가를 닦으며 슬쩍 웃음 지었다.

눈송이는 바람을 타고 그들의 앞까지 날아들었다.

“그를 처음 본 날도 이렇게 눈이 내리고 있었지.”

마주 앉은 캐롯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고, 마왕은 부서진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추억에 잠겼다.

마왕과 용사의 나이스 썸싱, 훗날 그 둘의 이야기는 이야기책으로 만들어져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읽혀 버렸고, 역대 마왕의 가장 수치스러운 추태로 각인되었다.

정작 본인은 아무렴 어떠냐는 식이었지만.

탕탕탕!

망치 소리 요란한 한겨울의 특구 마을, 계절은 이제 한겨울이라 마을 곳곳에는 거의 매일 내리다시피 하는 하얀 눈이 잔뜩 쌓여서 처치 불가능 수준이었다.

하지만 부서진 건물을 고치는 일꾼들은 그 눈마저도 건축 자재로 사용했다.

“이런 끔찍한 것들도 이렇게 모아놓으면 훌륭한 발판이 된다.”

미끄덩!

“우아아악!”

자재를 짊어지고 그 얼음 계단을 오르던 금발 마족 메이브가 미끄덩 엉덩방아를 찧더니 뒤로 주루룩 미끄러져 내려가 버렸다.

그 꼴에 낄낄거리던 턱수염 사내가 엉덩이를 쓰다듬는 메이브를 가리켰다.

“하지만 미끄러우니 조심합시다. 참고로 저 마족이 주는 음식은 먹지 말 것. 자기 뿔을 잘라 넣거나 침을 뱉는다.”

“으에엑!?”

요즘 아예 목수로 전향해 버린 모험가 플레인의 안전 교육을 받던 일꾼들이 오만상을 찡그렸다.

발딱 일어난 메이브가 역정을 냈다.

요전의 소란에서 뿔을 짧게 자른 그녀는 인간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모양이었다.

“이 자식 플레인! 네 웃음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캐롯의 건물도 쏟아진 파편에 얻어맞았으나 그나마 기초 골격은 무사해서 보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설계도를 펴보던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공사 일정에 큰 차질은 없겠습니다.”

“하지만 곧 원시림 탐사대 일정이 잡힐 텐데요.”

마력 난로 앞에서 손바닥을 쬐던 코비의 중얼거림이었다.

에탕다르의 역습, 세간에는 그렇게 발표되었다. 선 밖의 종족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마왕에게 불만을 품은 세력을 등에 업고 사천왕 중의 하나가 반기를 들어 이번 일을 벌였다고.

당사자는 현재 도주 중,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으나 단독으로 그를 때려잡을 수 있는 건 같은 무력을 가진 사천왕 정도뿐인지라 다들 체포에는 회의적이었다.

더불어 이번 사태에 따른 사과의 의미로 마왕은 협의 중이던 안건과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통과시켰다.

원시림의 경우엔 전면 개방.

실무진들이 격렬히 반대했으나 마왕은 금은동철 말고도 쓸모 있는 것이 많다던데 그게 뭔지 알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설득, 결국 개방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각 길드와 도시 운영 위원회에서는 밤샘 회의가 연이어지고 있었다.

탐사대는 엄선하되 이번 사태에서 큰 활약을 보인 자동 인형 캐롯의 파티에게는 일종의 보상으로서 단독 탐사의 특혜가 주어졌다.

덕분에 아르곤 겨울 기사단에 갑작스레 파티 가입 희망자와 각 단체의 로비가 넘쳐나서 요즘 아리에테와 리슐리에가 엄청나게 바빠졌다.

설계도를 들고 건물을 올려다보던 크랭크가 중얼거렸다.

“건물 공사 때문에 나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내 자리는 당신께 양보하지요.”

“헉! 정말요?”

확 밝아진 표정의 코비였으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덩치 캐릭터로 우직하기만 할 것 같은 코비였지만 미묘하게 이해득실을 따질 줄은 알았다.

이 겨울에 탐사대, 이동 수단이 없으니 걸어서, 이 한겨울에 눈 속에서 야영?

모험가의 소양은 마르지 않는 탐험 욕구!

코비는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렸다.

죽은 동태눈이 되어 버린 청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냥 집 짓는 거나 배울래요. 남부 출장이면 모를까.”

“오! 코비도 패스야? 자리가 하나 비겠네? 하지만 나는 갈 거야! 지상 위에 펼쳐진 던전! 미지와 신비로 점철된 저 원시림이 나를 부른다!”

공사 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백발 꼬마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와하하 웃어댔다.

이 꼬마는 놀랍게도 머리 장식으로 마족의 뿔까지 달고 있었다.

방열 가발에 쓰인 머리카락이며 장식용 뿔 전부 무려 마왕의 것.

그래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남달랐다.

일꾼으로 고용한 마족들이 바짝 긴장했다가 캐롯을 보고 한숨을 턱 쉬었다.

“어우! 깜짝이야!”

“야! 꼬맹이! 마왕님인 줄 알았잖아!”

도시락 바구니를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백발 캐롯은 긴장한 마족 여자들을 상대로 양손을 움켜쥐듯이 내밀고 사납게 외쳤다.

“와오와오! 귀여움에 몸서리치거라! 이 몸이 바로 짝퉁 마왕 캐롯이니라!”

쬐그만 마왕님의 등장에 마족 여자들이 코피를 터트렸다.

뭔가 얄미운데 귀엽다!

장난을 그만둔 캐롯은 이제 가져온 도시락을 일꾼들에게 나눠주었다.

다른 작업장과는 다르게 크랭크네는 도시락을 챙겨줘서 요즘 인기였다.

점심시간이라 잠깐 쉴 겸 난로의 주전자에서 커피를 부어온 플레인이 다가왔다.

“듣고 놀랐다. 이거 저 위의 마왕님 머리카락이라며?”

급격히 공손해진 마족들에게 도시락을 하사하던 짝퉁 마왕 캐롯이 빠하하 웃으며 그에게도 종이로 감싼 큼직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대패 용사 플레인, 그대도 한입 하겠는가?”

마왕의 백발은 이제 캐롯의 방열 가발이 되었다. 전투 도중 또 머리를 태워 먹은 것에 대한 조그만 보상이었다.

코비도 감사히 도시락을 받더니 바로 한입 깨물며 물었다.

“움움, 요줌 바뿌다면쇼요?”

“버릇이 없고 식탐이 많은 용사로고~! 아! 정말로 바빠! 영혼 좀 생긴 것 가지고 여기저기서 학자님들이며 신관님들이 찾아오고 난리라고! 저녁에 또 정비 길드에서 수상한 단체랑 뭔가 검증이 있대.”

크랭크의 투구가 잔뜩 어두워지며 커다란 팔뚝이 부풀어 올랐다.

“얼마 전엔 캐롯을 분해해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접촉해 왔었지요. 물론 거절했습니다만.”

의기양양해진 캐롯이 턱을 세웠다.

“엣헴! 당연하지! 지금 내 몸값이 얼만데! 날 분해해 보고 싶다면 공주님과 영주님과 마왕님과 이웃 나라 왕자님과 우리 주인님과 어떤 드래곤님에 자칭 신님까지 해치우고 와야 해. 뒤쪽의 두 분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덧없이 망가지는 건 바라지 않을걸?”

굉장한 인맥에 말한 자기도 놀라운지 눈을 깜빡이던 캐롯은 이제 도시락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상자 위에 올라서서 장엄하게 외쳤다.

“으음므흐하하하! 이 몸을 찬양하라! 그리하면 소세지 바게트 샌드위치가 공짜!”

코비를 포함한 모두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크랭크도 끼어 있었다.

“캐롯 님을 찬양하라!”

양철 컵에 뜨거운 커피와 큼직한 소세지 바게트 샌드위치를 움냠냠 씹고 있던 마족 유유와 메이브만이 한심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넌 절 안 해?”

“됐어. 모자라면 저놈 것에 침이라도 뱉으면 되니까.”

기겁한 플레인이 자기 점심을 사수했다.

“너는 정말! 그러지 좀 마라!”

도시락을 전부 나눠준 캐롯은 상공의 마왕성을 가리켰다.

“전해 줄 것도 있고 마왕성 공사 감독 다녀올게! 저녁까지는 내려올게!”

“그래라. 피아노 상태도 좀 물어봐 주고.”

“오우!”

눈길을 와다다 달려간 캐롯은 마왕성으로 향하는 공중 승강기에 올랐다.

이번 사태로 거의 박살 난 마왕성은 현재 절찬 수리 중, 인간과 마족, 오토마톤들로 구성된 인부들이 뒤섞여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캬아악! 뭐라고?! 이 인간 놈이!”

“뭐냐! 망치질 좀 제대로 하란 게 그리 기분 나쁘더냐! 봐라! 자재를 다 부숴놓았잖아!”

당연히 곳곳에서 마찰이 생겼지만 금세 진화되었다.

단발머리 마왕이 직접 나선 덕이다

“또 무슨 일이냐?”

“아, 아니 마왕님, 저자가 자꾸 제 솜씨에 불만을 드러내기에…….”

팔짱을 낀 마왕이 인간 인부를 바라보자 얼굴이 확 달아오른 그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싸움으로 뿔도 하나 잘리고, 마음을 다잡을 겸 머리카락도 단발로 쳐 버린 마왕은 굉장한 섹시미를 자랑했다.

그걸 보고 수인 마족이 분통을 터트리더니 인간 인부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놈 지금 우리 마왕님을 보고 욕정을 품은 게냐!”

“요요요욕정이라니! 너야말로 말조심해라! 너희 마왕님 앞이야!”

“허어업! 마왕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맛살을 좁힌 마왕은 머리를 짚었다.

“나는 괜찮으니 싸우지들 말고 작업에 매진하도록. 그대들도 이참에 이 자들의 기술을 배워 내게 도움이 되도록 해라.”

“예! 마왕님!”

남은 마족 병사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원래 병사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있었다. 다만 이번 사태로 대다수 마족이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자기 일족으로 복귀해 버렸다.

남은 건 온전히 마왕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했거나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남은 자들 뿐.

“마왕님, 손님이 왔습니다.”

“야호! 울보 마왕! 놀러왔어요!”

새로운 몸을 얻은 피아노가 캐롯을 데려왔다.

울보 마왕 티르피즈는 캐롯의 볼때기를 붙잡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으응?”

“우오오옵?! 늘어진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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