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도시 방어전! (7)
그걸 처음 본 인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오랜 시간 살아가는 자들, 특히 마족들은 그 모습에 무자비한 공포와 맹렬한 적개심을 느꼈다.
“성녀! 신내림이다! 자동 인형에게 신이 깃들었어!”
“갑자기 왜들 이래? 무슨 소리야?”
“어서 도망쳐! 죽는다!”
당장에 소동이 일어났다.
이 와중에 에탕다르는 고개를 들고 마왕성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곁에는 방어막을 치고 기도에 열중인 성녀 베로니카가 있었다.
그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계획대로 마왕성에도 황금 기둥이 하나 세워졌기 때문이다.
쾅-!
느닷없이 날아든 무지막지한 주먹이 에탕다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 덩치로 날아간 에탕다르는 근처 건물 벽을 부수고 들어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쿵-! 치익! 쿵!
갑옷 사이로 증기를 뿜어내며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오롤 726호, 그의 전신도 황금빛에 물들어 있었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방열 망토를 펄럭이며 다시 한 번 신내림을 받은 인형 기사가 투구를 들었다.
그 일그러진 시선도 마왕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100년 전, 수세에 몰린 마족을 더욱 궁지에 몰아세운 것은 인챈트로 하늘의 존재를 강림시킨 성녀들의 등장이었다.
마왕은 용사를 사로잡은 것을 빌미로 싸움을 얼버무린 것에 불과했다.
“아아악!”
“크악!”
황금빛으로 물든 오토마톤들이 마족을 때려잡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비명과 부서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마족 이외의 종족에겐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되니 손짓으로 비키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부서진 빵집 주인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마족과 살림을 차린 정찰병 겔이었다.
“안돼! 못 비켜! 내 자식과 마누라다!”
방열 가발이 원래 무슨 색이건 지금은 모조리 금발이 되어 버린 빛나는 신의 인형께서 고개를 기울였다.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성음이 머릿속으로 울린다.
-보라 가여운 자여. 어찌 천륜을 거스르는가.
다리가 부러진 쿠핀을 지킨 겔이 분통을 터트리더니 빵을 자르던 칼을 들었다.
“네가 말하는 천륜은 내가 아는 것과 좀 다른가 본데!”
-어리석구나. 가여운 자여.
표정이 없는 자동 인형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타원형의 눈알이 일그러져 마치 노려보는 인상이 되었다.
가아아아앙!
캉!
카가가가각!
갑작스레 들리는 거친 소음, 전투복이 요즘 톱밥 천지가 되어 버린 녀석이 체인소드를 양손으로 붙잡고 덤벼들었다.
몸을 돌린 신의 인형께서 재빨리 그것을 막았으나 무기의 성능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체인소드는 롱소드를 갈아 버렸다.
도신이 잘려 버린 검을 들어보던 자동 인형이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상대는 전신에 붉은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더불어 지독한 유황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
“지금이야! 이쪽으로 와!”
“아아악!”
자동 인형 체인의 마스터인 목수 모험가가 달려오더니 쿠핀의 목덜미 깃을 끌고 달렸다.
겔 역시 울고 있는 미노를 부둥켜안고 뛰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저건 뭐야!”
“나도 몰라! 마족인 당신 마누라에게 물어보라고!”
질질 끌려오던 쿠핀은 다리를 붙잡은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댈 뿐이었다.
빈 창고 같은 건물에서 그들을 맞이한 마족 여자가 팔짱을 끼고 와하하 웃어댔다.
금발 사슴뿔 메이브였다.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송곳니를 드러내고 킬킬대고 있었다.
“세상에 저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하하하! 대박이야!”
쿠핀을 부둥켜안은 겔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미노를 달래던 플레인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뭔데? 뭔데! 대체 뭐기에 거의 다 지은 내 작품들을 박살 내는 거냐고!”
마족 수비대원 중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던 메이브가 대답하려는데 건물 밖으로 마족 유유가 후다닥 지나쳤다.
“야 인마! 너 주인도 몰라보고!”
뒤이어 황금빛으로 물든 오토마톤이 망치를 들고 그녀를 뒤쫓았다.
상황이 웃겼던지 배를 잡고 깔깔거리던 메이브가 창고의 공구 상자에서 톱을 주워 들었다.
그러더니 자기 뿔을 슥삭슥삭 잘라 버렸다.
“슬슬 자를 때 됐지. 이게 보기엔 멋지지만 싸움에는 방해되니까.”
그러다 얼빠진 얼굴의 플레인과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잘라낸 뿔을 가리키며 몹시 흥분한 표정을 지어 버렸다.
“후, 후후후. 내, 내 뿔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거든? 돌아오면 삶아줄게. 그 물을 마시는 거야. 네가. 케케케.”
“거짓말 마! 필요 없-!”
플레인이 역정을 내는데 이미 메이브는 달려 나간 직후였다.
부러진 다리를 붙잡고 끅끅거리던 쿠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 문 닫아. 저것들 힘은 세지만 탐색 능력은 별로라서 눈에 띄지만 않으면 괜찮아. 으그극, 그, 그리고 메이브 뿔 잘라서 내 입에 물려줘. 지, 진짜니까.”
“뭣?!”
아르곤에 이어 특구 마을에서도 일어난 소동은 새로운 국면을 띄었다.
챙! 챠챵!
마족을 사냥하려는 황금 인형과 그걸 막으려는 붉은 인형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소식을 접하고 성벽 위로 올라온 헤리슨이 한참 서로 싸움 중인 오토마톤을 가리켰다.
곁에는 소매를 걷고 있는 푸시케가 있었다.
“저게 신들린 인형이라고?”
“그래, 저렇게 된 놈들은 못 이겨. 괴물이거든. 어딘가에 저걸 불러낸 성녀가 있을 거야. 그놈을 해치워야 해.”
푸시케는 그러곤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저 빨간 녀석들은!?”
“그건 나도 몰라! 비슷한 놈들이겠지! 이참에 애들 대피시켜! 신들린 것들은 마족만 공격해! 다른 녀석들은 괜찮을 거야!”
벌써 저만치 달려가 버린 푸시케를 보고 헤리슨이 성벽에 몸을 내밀고 외쳤다.
“야! 너는!”
푸시케는 이제 손만 흔들 뿐이었다.
“조용할 날이 없네! 제길!”
몸을 돌린 그녀는 여전히 남아 있는 통신관에 대고 서둘러 대피와 부상자 구출을 지시했다.
그때쯤 머리 위로 꽈르르릉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하늘 저편에서 이상한 점 같은 것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헤리슨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이번엔 또 뭐야?”
휴전선 마을까지 마차로 1시간 거리, 하지만 도로 상태를 무시한 하늘길에서는 직선으로 순식간이었다.
고오오오!
끼릭, 철컥!
부스터가 꺼지고 접고 있던 날개를 편 독수리 비행기는 이제 활공을 개시했다.
신기하게도 쿠르프가 만들어 낸 독수리 비행기는 날개를 새처럼 퍼덕이게도 할 수 있었다.
“아하, 방향 전환하려고 이렇게 만든 거구나. 으이요옥?!”
촥!
순식간에 도착한 아래 마왕성에서 손님맞이용 열선포가 솟아올랐다.
푸확! 푸화아악!
“으리옵!”
괴상한 기합 소리를 내지른 캐롯이 조종석의 레버를 바쁘게 조작하여 비행체를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춤추는 새 같았다.
“쿠우우오오옵! 찌, 찌그러지겠어! 에잇! 그만 쏴대!”
무지막지한 기동 때문에 중력가속도에 짓눌리고 있던 캐롯이 분통을 터트리며 추진체를 점화시켰다.
쿠오오오!
추력을 잃고 떨어지던 비행체는 곧바로 수직 상승을 시작했고, 그 틈에 밖으로 몸을 내민 캐롯이 고대인의 무기를 꺼내 마왕성을 조준했다.
찌이이잉!
매섭게 쏘아져 나간 푸른 광선은 마왕성의 첨탑 하나를 그대로 잘라 버렸다.
쿠구구구!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첨탑을 보고 캐롯은 깜짝 놀라 버렸다.
비행체에 매달려 있던 캐롯이 호옵? 하는 시선으로 손에 든 무기를 보더니 좀 더 쏴대기 시작했다.
“이거 좋네! 가볍고 세고! 고대인 굉장해!”
찌이잉! 찡-!
마왕성과 공중을 맴도는 비행체 간의 쌍방 포격전이 계속되었다.
아르곤과 비슷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던 특구 마을에서도 사람들과 마족들이 고개를 들고 입을 딱 벌렸다.
이윽고 수세에 몰린 마왕성에서 날개 달린 마족과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놀랍게도 몇몇 녀석들은 분명 육상 마족인데 등에 그림자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캬아악! 캭! 공격이다! 역시 인간들은 믿을 게 못돼! 저놈을 떨어뜨려!”
“끼룩끼룩!”
“쿠오오오오!”
아하하 웃으며 다시 조종석으로 쏙 들어간 캐롯은 조종간을 붙잡고 크게 선회했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상황은 어떠냐?
“떼거지로 몰려나왔어! 지금 바빠요!”
독수리 비행기의 조종석은 반쯤 노출되어 있어서 조종사가 팔만 내밀면 바로 밖이다.
그리고 지금 그 밖으로 캐롯이 팔을 내밀고 쿠르프가 쥐여준 권총을 쏴댔다.
탕탕-!
활을 쏘며 날아오던 녀석 몇이 떨어지자 다른 놈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덤벼들었다.
개중에는 특히나 빠른 속도로 나는 녀석들이 몇 있어서 금세 따라잡혔다.
캉캉!
“네 이놈!”
활공하는 독수리 등에 올라탄 마족이 창대로 그 등을 쑤셔대자 캐롯이 바퀴벌레처럼 와사삭 조종실에서 기어 나와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야! 남의 비행기에 무슨 짓이야!”
“으헉! 뭐, 뭐야?”
갑자기 튀어나온 꼬마를 보고 깜짝 놀란 마족이 주춤거리자 캐롯이 냅다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퍽!
“우으악! 너 이 자식!”
뒤로 휭 날아가 버린 마족과는 반대로 캐롯은 허리에 밧줄을 매고 있어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매달린 상태였다.
날아가는 마족에게 혀를 내밀어주는데 더 많은 놈들이 따라붙었다.
“마족은 뭘 만들 줄 모른다더니 순 거짓말이네! 다들 등에 뭔가 하나씩 메고 있어! 부유석이라도 집어넣은 거야?”
이이잉!
자동 줄에 이끌려 다시 와사삭 조종실로 기어 들어간 캐롯은 독수리 비행기의 날개를 접더니 몸체를 빙글빙글 돌려 놈들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다 놈들을 떨구기 위해 지상으로 때려 박듯이 떨어져 내리다 조종간을 있는 힘껏 당겨 지상 수 미터 위를 스치듯 날아오르는 급기동을 선보였다.
바우우웅! 콰아아아!
그 덕에 마족과 드잡이 중이던 황금 인형들이 나동그라지거나 주춤거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뒤쫓던 비행 마수 몇이 그대로 신의 인형을 들이받아 거창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쾅! 쾅!
하늘을 가르던 캐롯은 그게 재미가 들렸는지 몇 번 더 같은 짓을 해대다 마족에게 항의받았다.
몇몇이 날아오는 독수리 캐롯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두 팔로 X를 만들어 보였다.
“이제 그만해! 가게 다 부서진다!”
“저리 가서 해!”
쿠오오오! 바우우웅!
빙글빙글 돌며 그들의 머리 위에서 솟아오른 비행기와 그 내부의 캐롯이 툴툴거렸다.
“흥칫뿡! 도와줘도 뭐라 그래!”
* * *
화려한 공중전과 지상 공격이 벌어지고 있는 하늘 아래, 마왕성에서는 마왕과 용사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아노! 정신 차려라! 나다! 나란 말이다!”
치이이잉-!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든 오토마톤이 머리 위에 동그란 헤일로까지 뜬 채로 팔을 흔들었다.
촤아악! 촤악!
가느다란 철사에 쓸려 나간 마왕성 내부 장식은 칼에 베인 단면을 선보이며 잘려 떨어졌다.
보다 못한 그녀의 아들들과 경비병이 달려와 신의 인형에게 무기를 들이밀었다.
“마왕님을! 주군을 지켜라!”
쓰러져 있던 마왕은 당황해 버렸다.
“안된다! 나서지 마라! 물러서거라!”
촤아악!
마주한 황금빛 신의 인형이 허공을 가르듯 팔을 휘두르자 앞으로 내민 창대와 함께 그들의 목이 후두둑 떨어져 버렸다.
그들의 수급을 마주한 마왕은 오열했다.
“으아아아으으이이이잇!”
아랫입술을 까득 깨물고 일어선 마왕은 긴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북 찢어 버리더니 다리를 드러내고 고개를 들었다.
용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저 피아노의 진짜 역할.
트드드득!
마왕의 팔과 다리에 비늘이 돋아나 생체 갑옷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검은 머리카락도 점차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고고한 황금빛 후광을 드리운 피아노를 마주하고 전투 형태를 잡은 마왕이 못내 울상을 지었다.
“지금 거기, 거기 계시지요? 왜 우리를 이리도 미워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습니까? 어째서 그쪽 편만 들어주고 계시는 겁니까? 왜요? 왜?
신의 인형께서 대답했다.
-너희는 실패작이다. 그러니 속히 없어져라.
마왕은 이성이 끊어질 정도로 분노했다.
“이 개자식이이이!!!”
이윽고 마왕과 신의 인형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