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도시 방어전! (4)
커다란 입을 벌리고 포효한 본 드래곤은 이어서 바닥에서 빛을 발하던 붉은 수정석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러자 그 몸 구석구석으로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쿠워어어어어!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지른 본 드래곤은 이제 본격적으로 뼈로 이루어진 몸통을 휘둘러 주변 건물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쾅-! 쿠쾅!
방금까지 수세에 몰려 도망치려 했던 마족들은 강력한 한 방의 출현에 희열에 찬 괴성을 질러댔다.
“으하하! 좋았어! 가즈아!”
“반격이다!”
본 드래곤이 준비를 마친 시점,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골목길 여기저기, 가정집 창문이나 지붕 위에서 빼꼼빼꼼 캐롯 시리즈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뿐 아니라 거대 괴수의 출현에 놀란 오토마톤과 모험가들도 서둘러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인간의 영토에 선 마족의 본 드래곤은 다시금 포효했다.
마치 덤벼보라는 투였다.
쿠우워어어어어어!
저 웅장한 위용에 누군가가 실없이 중얼거렸다.
“저게 전부 뼈라니. 한동안 마을 강아지들 군것질 걱정은 없겠구나.”
트타타타타타타타!
파파파파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늦게 도착한 마법사 오토마톤들이 거대한 본 드래곤을 발견하고 자동 사격을 개시했다.
쿵쾅쿵쾅-!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뒤를 이어 하드 스킨 오토마톤과 캐롯 시리즈가 사방에서 협공을 개시, 본 드래곤 역시 포효를 내지르며 그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훗날,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기록장치가 높은 가격에 암시장에 나돌기 시작했다.
출처는 놀랍게도 엘프들의 공중 전함.
평화로운 일상이 갑자기 엉망이 되고 그걸 바로 잡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덕분에 영상의 등장인물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 영상을 보기 싫어했다.
한편 에탕다르를 쫓아갔던 스틸레인은 그를 놓치고 조바심을 부리고 있었다.
성문까지 와봤지만 많은 피란민 때문에 누가 누군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녀는 다시 통신기를 꺼냈다.
“나야! 방금 도시 밖으로 파란색 개새끼, 아니, 사천왕 에탕다르가 나가지 않았어?”
-피란민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이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특구 마을 방면으로 향하는 짐마차를 찾아!”
정말 오랜만에 느껴지는 짜릿한 긴장감, 나이를 먹어도 이 감각은 정말 싫다.
우연히 짐마차를 끌고 지나가는 에탕다르를 발견하고 뒤쫓다가 짐칸에 실린 물건을 알아본 그녀는 정말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건 베키였어!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스틸레인 역시 엘프 대장로, 100년 전에도 그녀는 있었고, 그 성격상 마왕성 특공을 위한 용사 파티가 조직되자 거기 들어가려고 억지를 부리다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용사들과의 일면식은 물론 능력치까지 빠삭하기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베키가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태껏 경제특구 꾸미기에 열을 올리던 마왕군이 갑작스레 기습을 가하고, 용사 파티의 여신관까지 훔쳐 가는 것을 보면, 뭘 하려는 것인지 정도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명백한 반대파의 쿠데타다. 마왕 암살이라도 꾸미는 건가?”
조심스럽지 못한 그녀의 중얼거림은 귀가 엄청나게 좋은 누군가에게 들려 버렸다.
“반대파의 쿠데타? 마왕 암살?”
가까운 건물 지붕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드니 머리에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여자였는데 기계식 자동 석궁과 각종 병기로 완전무장 상태였다.
스틸레인이 혀를 찼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그 여자가 훌쩍 뛰어내렸다.
성문 근처에 있는 약초 가공 공장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달려와 사람들을 피신시키고 잔당 소탕 중이던 모르핀이었다.
“경제특구에서 돌아다니는 걸 봤어. 당신 대장로 스틸레인이지? 방금 그 이야기 좀 자세히 말해봐.”
“그만둬라. 관계자 외엔 들어봤자 해가 된다. 우리 쪽에서 대처할 거다.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을 해.”
그러면서 스틸레인은 다시 통신기를 켜려다가 눈을 크게 떴다.
모르핀이 모자를 벗고 뿔을 드러낸 보인 것이다.
“너 이 자식, 마족이구나.”
“진정해. 나는 달라.”
스틸레인이 뭐가 다르냐고 쏘아붙이려는데 뒤쪽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슷한 무장을 갖춘 청년이 달려와 그녀에게 보고했다.
“모르핀 대장님! 주변 정리 끝났습니다! 역시 장비가 좋고 볼 일이네요! 하하!”
“접근전은 오토마톤에게 맡기고 협공으로 대응해. 그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건 충분하다. 어서 가. 이쪽으로 오는 마족은 다 쏴 죽여.”
“예!”
경례를 붙이고 달려가는 자경단 청년에게서 고개를 돌린 모르핀이 상어 이빨을 히죽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지?”
“너 누구야? 저 녀석들도 네가 마족인 거 다 아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엘프를 보고 마족은 히히 웃기만 했다.
“마왕이 죽으면 과격파 놈들이 들고일어날 거다. 제길, 그렇게 되면 내 투자금도 날아가게 돼. 시간이 없어. 어서 네가 아는 걸 말해. 가능한 도와줄 테니.”
이 상어 이빨 녀석, 모르핀이라고 했나?
스틸레인도 대장로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둘은 몇 마디 이야기로 상황을 정리, 파악하고는 서둘러 지하 정원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많은 사람이 대피해 있었다.
사람들을 단속하던 포비가 달려왔다.
“모르핀! 위쪽은 어때요?”
“중앙 광장에 본 드래곤이 출현했다. 지금 다들 그걸 때려잡고 있지. 당분간 나오지 마라.”
포비가 뒤따라온 스틸레인을 가리켰다.
“이 엘프 분은?”
“사정이 있어서 데려왔다. 이봐, 구경하지 말고 빨리 이리 와.”
정신없이 지하 정원을 두리번거리는 스틸레인의 손을 잡아끈 모르핀은 비밀 출구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급한 모양인지 서둘러 사라진 그녀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쉰 포비가 뒤를 돌아보았다.
비밀 엄수를 위한 투나의 인식 저해 마법도 그걸 직접 보게 된 이상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감탄과 놀라움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세상에 공장 밑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곤란해진 포비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젠 비밀이고 뭐고 없어졌는데요. 이거 어떡해요?”
대피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지하 정원, 그 안쪽에서 여전히 약초들의 생육 상태를 점검하던 투나가 음흉한 고개를 들었다.
“기, 기억을 조작해 버리면 되지! 으흐흐히히! 다, 다 같은 편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야.”
“아니, 마녀님. 그건 좀…….”
반대하려던 포비도 혹하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어차피 다들 약초 공장 직원의 가족들이다. 이 많은 인원을 전부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고?
그날, 투나의 같은 편은 순식간에 개척민 마을 하나를 구성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야, 이런 데가 있었냐? 네놈들은 뭐야? 영주도 알아?”
밖으로 나온 스틸레인이 주변을 살피는 사이, 숨겨둔 자동 이륜차를 가져온 모르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따질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어서 타라.”
기이이잉! 촤아악!
“으어억?!”
자동 이륜차로 초원을 달리는데 뒤에서 스틸레인이 외쳤다.
“야! 왜 길로 안 가! 그보다 너 괜찮은 거냐? 지금 영역권 밖인데!”
“나는 다닐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어. 하지만 여기서도 살펴보는 건 가능해. 어때? 그 자식이 보이나?”
달리는 이륜차에서 일어나 주변을 샅샅이 살피던 스틸레인이 곧 눈을 부릅떴다.
“저기 보인다! 나뭇가지로 위장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 개새끼! 좀 더 가까이 들이대!”
“길을 벗어날 수는 없어! 뛰어올라!”
끼이이익!
촤아아악!
텅-!
차체에 급제동을 걸자 그 반동으로 엄청난 도약력을 선보인 스틸레인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느긋하게 마차를 몰아가는 에탕다르에게 날아들었다.
“야 이 퍼리 새끼야아아! 각오해라!”
그의 귀가 먼저 휙 돌아가더니 에탕다르의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원, 방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로군.”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짐칸의 브레이크까지 착실히 걸어놓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난 늑대인간은 날아오는 반골의 엘프를 향해 입을 벌렸다.
어?
뭔가 반짝이는 빛무리가 모인다 싶더니 느닷없이 위력적인 마력포가 발사되었다.
찌잉!
콰아아아아!
쿠쾅-!
공중에서 격추당한 엘프를 보고 모르핀이 깜짝 놀라 외쳤다.
“스틸레인!”
시선을 돌린 에탕다르는 그녀에게도 마력포를 쏘았다.
콰아아아아!
“으이이익?!”
기이이잉!
모르핀이 타고 있는 자동 이륜차는 낭만 강도단의 것을 노획한 것인데 앞뒤가 전부 구동륜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핸들을 꺾으며 가속 레버를 밀어 버리자 차체가 춤추듯 빙글빙글 돌아 버렸다.
그 덕에 마력포는 차체가 있던 지면을 불태워 버렸다.
이어서 검댕이 범벅인 몸을 일으킨 스틸레인이 귀에 통신기를 대고 에탕다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자식을 해치워-!”
저 멀리 떨어진 공중 전함에서 작은 반짝임이 드러났다.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챈 에탕다르는 급히 여신관 베키가 들어 있는 수정석을 깨부수더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베키! 일어나라! 베키! 정면으로 함포 사격이 온다! 막아라! 빨리!”
귀에 대고 큰소리를 외치자 100년 전 용사 파티의 신관이 눈을 감은 채 팔을 들었다.
찡-!
콰드드득?!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얼음덩이 같은 수정석이 퍼져 나오더니 방패를 형성, 뒤를 이어 날아든 공중 전함의 마력포를 그대로 받아냈다.
쿠콰아아아아아!
여신관 베키를 뒤에서 붙잡은 에탕다르가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 웃었다.
“크으하하! 이것이 절대 방어 수정술식의 베로니카다!”
함포 사격의 엄청난 열기와 폭풍에 휘말린 스틸레인과 모르핀은 반론도 못 하고 굴러다녔다.
“크으윽!”
후폭풍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스틸레인 대신에 모르핀이 그녀가 떨어뜨린 통신기를 귀에 대고 외쳤다.
“막아냈다! 한 번 더 쏴!”
-음성 불일치, 당신은 대장로 스틸레인이 아닙니다.
통신기를 노려본 모르핀이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 규정 따질 시간 없어!”
에탕다르는 늑대인간, 그래서 모르핀만큼 귀가 좋았다.
100년간의 잠에서 깨어나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베키를 붙잡은 에탕다르가 그녀를 모르핀 쪽으로 돌렸다.
“베키! 적 대규모 스켈레톤 부대가 접근하고 있다! 방벽을 쌓아서 감싸! 정면! 거리 30!”
찌이이잉!
빠자자자자작!
베로니카가 다시 팔을 들자 번쩍이는 빛과 함께 모르핀이 있는 곳을 에워싸며 웅장한 수정 방벽이 솟아 올라 버렸다.
귀찮은 추적자를 물리친 에탕다르는 잠에서 깨어나려 노력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서둘러 마차를 출발시켰다.
깨워 버렸어. 심장이 쫄깃한걸?
여신관 베로니카는 100년 만에 새로운 동료를 얻어 다시 한 번 마왕성과 마왕의 공략에 나섰다.
한편, 방벽 안에서는 모르핀이 스틸레인을 찾아 깨우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걸 마셔!”
큰 화상을 입어 덜덜 떨던 스틸레인의 입에 포션을 기울이자 하얀 연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멀쩡해진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팔을 만지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와, 이거 굉장하네? 좀 더 줘봐!”
“길부터 뚫어! 급해!”
모르핀은 그녀에게 통신기를 던져주고는 넘어진 자동 이륜차를 일으켜 세웠다.
통신기를 돌려받은 스틸레인의 요청에 공중 전함은 다시 한 번 함포 사격을 개시, 수정 방벽에 구멍을 내놓았다.
“타라! 추적한다!”
하지만 모르핀은 어째서인지 아르곤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야! 추적한다면서!”
“너나 나로선 저걸 못 이겨! 다른 놈을 보내자!”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자동 이륜차, 그 뒷자리에 앉은 스틸레인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