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도시 방어전! (3)
킁킁!
시큰둥한 얼굴로 코를 좀 벌렁거린 에탕다르가 두 손을 치켜들고 버럭 외쳤다.
“이노옴! 얼른 피하지 않으면 무서운 마족들이 널 잡아먹으러 올 거다!”
깜짝 놀란 꼬마는 서둘러 뭔가 웅장한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대문이 열려 있어서 호기심에 뒤따라 들어간 에탕다르는 그곳이 신전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신전의 예배당에선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문 앞에 마족 사천왕이 어슬렁거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좀 한심한 표정을 지은 에탕다르는 그만 몸을 돌렸다.
“기도는 너희 자신을 위한 것이지 그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잘해봐라. 응원하마.”
잠시 신전을 거닐던 그는 소원을 비는 제단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 안내판의 웃기는 소리도.
“헌금은 신께로의 통화 요금이라고? 많이 내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더냐?”
촤르륵!
금화를 헌금함에 쏟아 넣은 에탕다르가 두 손을 모으고 엉뚱한 짓을 해댔다.
“신님, 마왕을 쓰러뜨릴 방법을 좀 알려주시오. 내 이리 부탁하오.”
동시에 우리 일족의 번영도.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눈까지 감았던 에탕다르는 피식 웃더니 그만 몸을 돌렸다.
“역시 좀 과격하지만 마왕성을 통째로 떨어뜨리는 방법을…… 어?”
신께서 보우하사, 에탕다르의 눈에 놀라운 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제단 바로 옆에서 그를 맞이했다.
단번에 그녀를 알아본 에탕다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어이어이! 하하하! 어이! 베키! 너 베키지? 성녀 베로니카!”
이곳 신전에는 기도하는 여신관이 갇힌 커다란 수정석이 있었다.
아르곤 신전의 명물로 다른 도시에서도 참배하러 오는 유명인, 그녀는 놀랍게도 에탕다르가 아는 사람이었다.
“마왕성에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다가 폭발에 휘말려 저 혼자 떨어져 버렸지. 그때의 얼굴 아직도 기억나는구나. 푸하하할!”
안내 팻말을 꼼꼼히 읽어보던 에탕다르가 히죽 웃음 지었다.
“음, 그래. 모험가들에게 발견되었다고? 프후흐흘흘! 꼴 좋구나! 바보 성녀!”
바로 어제같이 생생한 옛 기억, 당시 마왕성에 쳐들어온 용사 패거리에 이 성녀가 있었다.
성녀 주제에 수정 마법을 이용한 공격과 방어에 능수능란해서 애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에탕다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알겠다. 낙하 충격으로 깨져야 할 보호막이 어딘가에 걸려서 그대로 봉인되었나 보구만? 운도 지지리도 없구나. 베키.”
베키라는 애칭은 당시 용사 패거리들이 그녀를 부르던 것으로 정작 본인은 싫어해서 마왕군 전부가 그녀를 베키라고 불러댔다.
“하여튼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원수라도 반가운걸.”
드래곤 메르카바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늑대인간은 갑자기 약삭빠른 표정을 지어 버렸다.
“잠깐만, 이거 아주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날 마왕성으로 쳐들어온 4인의 용사 파티에서 가장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것은 신관이자 성녀인 베로니카.
그 성녀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이야기가 어째 잘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에탕다르가 중얼거렸다.
그는 저 멀리 떨어진 마왕성을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사천왕 에탕다르가 용사의 동료가 되었다.”
* * *
마족들의 난입으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방주도시 아르곤, 원래라면 대기 중이던 엘프 함대에서 마왕성을 포격하거나 최소한 그만두라고 위협 사격 정도는 펼쳐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절 공격을 가하지 않고 묵묵히 대기 중.
이유는 그네들의 대장로 때문이었다.
잠시 쉴 겸 아르곤의 엘프 커뮤니티를 방문해 있다가 소란을 접한 스틸레인은, 창문으로 뛰쳐나와 혼자 도시를 활보 중이었다.
그녀는 귀에 사각형의 납작한 무언가를 들이대고 소리쳤다.
“그래! 자식들아! 잠자코 있어!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마! 오늘까지 보여준 행보랑 완전 다르잖아! 뭔가 있어! 내분이든 쿠데타든! 아! 확실하다고!”
“캬아아아아!”
카닥카닥-!
스켈레톤 병사들이 한가롭게 도시 산책 중인 엘프를 보더니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눈썹을 세운 스틸레인의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퍼퍼퍽! 쾅!
휘황찬란한 체술에 덤벼들던 스켈레톤이 전부 박살이 나 버렸다.
쾅! 콰자작!
마지막으로 뼈다귀 병사의 머리뼈를 밟아 부숴 버린 빨간 머리 엘프 대장로 스틸레인이 으르렁댔다.
“통화하고 있잖아! 이 뼈다귀 망령 새끼야! 아니, 이쪽 이야기다. 어, 걱정 마. 영주가 방어 준비를 잘해놨어, 여기 애들도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고. 절대로 발포하지 마! 그래!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은 게 아니라고!”
삑-!
통신기를 귀에서 떼어낸 스틸레인이 그걸 엄지로 끄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히죽 웃어 버렸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잘 버티는 수준을 넘었지. 사냥은 놈들이 당하고 있다고.”
성벽 위에선 망원경을 든 대머리 콧수염 파본 제1경비대장이 전 병력을 도시 내부로 투입시켜 제압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으하하하! 가라! 가서 다 때려 부숴 버려라!”
더불어 경비단에 버금가는 무력을 보유한 모험가들 역시 도시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이것들아!”
투투투투투퉁!
모험가 파티 몰리 마법사단은 장갑차량을 끌고 나와 도시 대로를 돌아다니며 사방에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파티의 주역인 마법사 몰리는 울상을 지으며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마, 마법이 안 써져요! 우우우!”
“울지 마! 아직 손은 움직이잖아! 울지 말고 탄통이나 바꿔줘!”
“맞아! 게다가 네 마법 지금 써져도 도시에 불밖에 더 내겠냐?”
지붕 위에 올라가 있던 동료들의 외침은 훌쩍이는 마법사의 분통을 터트려 버렸다.
“그래도 말을 좀 예쁘게 해! 상처받아! 마법사는 민감하다고!”
투투퉁! 투퉁!
화살을 쏘면서 움직이는 장갑차량 주변으로는 아스칸과 레나가 따라 걷고 있어서 자아가 거의 없는 해골 병사나 죽을 각오로 덤비는 마수 정도를 제외하고 마족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의도치 않게 그들과 맞닥뜨리는 경우는 있었다.
무언가를 피해 골목길에서 뛰쳐나온 마족들이 아스칸을 보고는 기겁했다.
“으갹! 하필 가는 곳마다 괴물뿐이냐!”
“수정 봉인구를 사용해! 마수나 뼈다귀를 불러!”
“안돼! 상대할 시간 없어! 어서 도망치자!”
우루루 달아나는 마족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레나가 게토를 보았고, 게토는 손바닥을 내밀어 쫓지 말라고 신호했다.
토스트가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하드 스킨을 무서워하네. 오롤이 그렇게 대단했나?”
“특구 마을에서 버터 감자 파는 마족에게 당시 이야기를 들었는데, 파도처럼 몰려드는 오롤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고 하더군.”
지붕에 올라선 게토 대장의 설명에 옆에 앉은 리모가 손가락을 들었다.
“어, 저렇게요?”
“응?”
이마에 손날을 세운 게토와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와아아아! 오아아아! 와아아아아!”
우다다다다다다! 와다다다다다! 퍽! 쨍그랑! 와장창!
조그만 소녀형 인형들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덤벼드는 마족과 스켈레톤 병사를 모조리 때려눕혔다.
무기도 주변 집기를 닥치는 대로 사용하는 덕에 프라이팬에 얻어맞고 무릎을 꿇으면 꽃 화분이 머리로 떨어지는 식이었다.
토스트가 입을 딱 벌렸다.
“무, 뭐야? 저게?”
“저번에 길드 사무소에서 돌아다니는 걸 봤어. 하나하나가 전부 캐롯 시리즈다. 하하, 엄청 많군?”
캬하아아! 달그락달그락!
때마침 대로 저편에서 한 무리의 스켈레온 부대가 출현, 그들에게 덤벼들자 통통 튀던 캐롯 시리즈가 갑자기 발레 인형처럼 자세를 잡더니 핑그르르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키이잉! 키잉! 키이이잉!
-캐롯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시작되었어! 너희들 모두 영원히 계속되는 과자의 나라에 빠뜨려 주겠어! 아하하!
모든 캐롯 시리즈가 동시에 말하니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걸 직접 본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촤악! 촥!
“우왁! 팽이다! 미친 팽이가 날아온다!”
“야! 우린 같은 편이야!”
닿는 모든 걸 썰어 버리며 튕겨 다니는 회오리바람, 칼날 팽이를 보고 모두가 질겁했다.
이 와중에 장갑차량 위로 캐롯 한 대가 내려서더니 반갑게 손을 번쩍 들었다.
-안녕, 몰리 마법사단! 여기는 우리가 정리할 테니 거주 구역을 살펴보러 가줘.
게토가 고개를 내밀었다.
“너 캐롯이냐?”
소프트 스킨이 없어서 완전 인형처럼 보이는 소녀가 깜찍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가에 V자 손가락을 들이댔다.
-절찬 다중 의식 연결 중! 캐롯 108호 인사드려요!
옆에서 리모가 얼떨떨한 소리를 냈다.
“다중 연결? 하여튼 저게 다 너라고?”
-정확히는 의식에 약간 개입한 수준이지. 완전한 나라고는 할 수 없어. 나는 하나! 그래서 비싸지! 유니크하거든?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캐롯이 확실하다.
이제 캐롯 108호는 손가락을 꼽으며 상황을 보고했다.
-뒤쪽에 789번가는 우리가 싹 쓸어놓고 왔어. 6번가 순으로 반대로 돌아볼게.
“알았다. 그럼 우리는 네 말대로 거주 구역을 살펴보러 가마.”
-좋아! 이제 주먹 인사로 마무리!
그러면서 캐롯 108호가 주먹을 내민다. 피식 웃어 버린 게토가 거기에 자기 주먹을 맞대었다.
캐롯 108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나팔을 만들어 하늘에 대고 외쳤다.
놀랍게도 다시 한 번 캐롯 시리즈 전체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는 우리 집이야! 삶의 터전이야! 마왕군 따위에게 내어 줄 수는 없어! 우리 땅을! 지켜내자!
그러자 곳곳에서 거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우오오오!”
토스트도 호들갑을 떨며 따라 외쳤다.
“우오오! 뽕이 차오르잖아! 뽕이!”
“시끄러워 가만 좀 있어! 캐롯! 마법이 안 써지는데 혹시 알아?”
지붕의 계단에서 얼굴을 내민 몰리의 물음에 캐롯 108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몰라. 위력 증강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쓸 수는 있다던데 추천하진 않아. 하여간 몸조심해!
손을 흔든 캐롯 108호는 다시 회오리 칼바람이 되어 뼈다귀 병사들을 부수러 떠나 버렸다.
게토가 외쳤다.
“바로 거주 구역을 돌아보자! 레나! 아스칸! 돌아와!”
수많은 캐롯들이 도시를 휩쓸고 모험가와 경비대, 오토마톤이 분투한 덕분에 마족들의 기세는 금세 꺾여 버렸다.
패퇴하여 물러선 마족들은 속속 중앙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제길! 이러다 전멸당하겠어!”
“계획이 이게 아닌데!”
그때 느긋하게 마차에 오른 에탕다르가 돌아왔다. 마족들은 이빨을 드러냈다.
“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한가롭게 분탕질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받아라.”
마부석의 에탕다르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졌다.
그걸 받아 든 뿔 마족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사천왕 희망의 데스나이트가 주는 선물이다. 어이쿠, 너무 커서 들어가질 않겠군.”
마부석의 에탕다르는 눈대중으로 짐칸에 실린 수정석과 청동문을 비교해 보더니 서둘러 마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좀 이따 여기로 빨간 머리 엘프가 올 거다. 막아.”
“어, 야, 야!”
모두가 짐마차를 몰고 바삐 사라지는 그를 보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정말로 빨간 머리 엘프가 나타났다.
퍽퍽!
“적이다! 공격해!”
“이 파란 개새끼 어디 갔어! 저리 비켜!”
찡-!
앞을 가로막는 마족 떼거지를 보고 분노한 스틸레인이 두 손을 들고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투두두두두두!
퍼퍼퍼퍽!
매직 미사일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마족들은 킬킬 웃기 바빴다.
“결계 안에서 마법을 쓰다니 꽤 하는가 본데! 하지만 네 공격은 억제되었……!? 어디 갔어!”
마족들이 주춤한 틈을 타서 잽싸게 몸을 빼낸 스틸레인은 이미 저만치 달려가 버린 뒤였다.
놓쳐 버린 엘프를 보고 당황한 잔존 마족들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곧 모험가랑 인형 놈들이 몰려올 거다! 그냥 철수하자!”
“그냥은 못 가! 이거 지금 아니면 언제 쓰냐! 에라이!”
에탕다르가 던져준 수정구를 높이 든 마족은 그걸 길바닥에 내동댕이쳐 깨 버렸다.
파챵-!
푸쉬이이익-!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더니 곧이어 아공간 게이트가 열리고 대규모 해골 병사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곧 서로서로 몸을 붙잡고 한자리에 뭉쳐 몸을 쌓아 올리더니 검은 연기가 사그라들 때쯤 거대한 용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본 드래곤?”
“역시 마왕군 무력 끝판왕! 희망의 데스나이트! 으하하!”
쿠우어어어어어어!